[인문사회교양특강]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가 많죠. 여러분 생각하시기에 누가 권력을 잡는 게 맞겠어요?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제국주의에 빌붙었던 사람들일까요.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이 맞겠죠. 근데 지구상에서 딱 두 나라가 제국주의에 빌붙었던 사람들이 권력을 계속 장악했어요. 그중 하나, 남베트남은 없어졌어요. 그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에 빌붙었던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한 나라가 어디예요?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죠. 우리가 가진 특수성이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이죠.”

한홍구(64)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지난달 17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친일 인사들이 해방 후에도 계속 남한의 지배 세력을 형성한 것이 과거사 정리에 걸림돌이 됐음을 지적했다. ‘한중일 과거사의 쟁점’을 주제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이 마련한 이날 특강에서 한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해법과 일본기업 대상 구상권 포기 선언에 관해 ‘탄핵 사유’ ‘배임죄’를 거론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진보적 역사학자이자 시민운동가인 그는 <대한민국사> <지금 이 순간의 역사> <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공저) 등 수십 권의 책을 펴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과 섣부른 타협 곤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 인문교양특강에서 ‘한중일 과거사의 쟁점’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양혁규 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 인문교양특강에서 ‘한중일 과거사의 쟁점’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양혁규 기자

한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정상회담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가해 일본기업들을 대상으로)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솔직하게 얘기해서 배임죄”라고 말했다. 배임이란 맡은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관련 조직과 구성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서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린 것과 관련해 국내 대기업 등이 돈을 내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일본 전범 기업에는 구상권, 즉 정부가 돈을 대신 받아낼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한 교수는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에 구상권을 행사 안 하겠다는 것은, 잘 모르지만 (대통령) 탄핵 사유가 아니냐”며 “하여튼 배임죄는 확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관련 한일 합의를 한 뒤 피해 당사자와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샀던 것을 거론하며 “국가의 이름으로 도장을 찍어버리는 것은 되돌리는 게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 입장에서는 강제징용 문제도 그렇고 위안부 문제는 더더욱 그렇고 절대로 양보 안 한다”며 “성급하게 해결하려고 나서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에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뒤틀린 한일 과거사를 바로잡을 기회가 ‘조일수교’, 즉 북한과 일본의 국교 수립에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남한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경제지원을 대가로 잘못된 협상을 했지만, 북한은 앞으로 수교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강제동원 등의 문제에 관해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제대로 받아낼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북한이 일본의 배상금을 받지 않는 대신 북한 개발을 위한 경제적 지원은 국민 동의를 전제로 우리가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 등 과거사 ‘보편적 기준’으로 접근 필요 

한 교수는 위안부 피해 등 과거사 문제는 민족감정 대신 인류의 보편적 기준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을 위안부로 만든 주모자는 재판받고 사형당한 일도 있다”며 “미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자료를 가장 많이 갖고 있지만, 동아시아 여성의 피해에 관해서는 침묵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 중의 여성 인권침해와 평화 파괴 등 보편적 기준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계속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이 한홍구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양혁규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이 한홍구 교수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양혁규 기자

한 교수는 “전쟁에서 여성들이 성적인 착취를 당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국가가 개입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병사들의 성병 관리를 통해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인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위안부 제도를 운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효율과 합리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 막장을 보여주는 제도가 위안부”라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회담 당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거론하지 않은 배경에는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과정에서 정부 내에 위안부 파견 논의가 있었을 정도로 잘못된 사고방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 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해 기지촌 여성 공급을 지원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짚어야 할 부끄러운 과거라고 지적했다.  

북중관계는 한미관계와 다르다

한 교수는 중국과 관련해 “북중관계를 한미관계와 같이 보고 중국이 (핵 문제 등에서) 대북 제재에 나서 줄 것을 기대하는데, 어림없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 항미원조(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도와줌)의 명분 아래 100만 대군을 투입해 15만 명 이상 희생을 치렀고, 북한은 그 이전 중국 공산당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무기를 지원해 구해준 관계라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아니어서 훨씬 미묘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교육 등의 영향으로 한국인 사이에 중국을 얕잡아 보는 시각이 있고, 최근에는 동북공정(고조선 등 한국 고대 역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움직임) 등의 영향으로 반중감정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북공정 등은) 구소련 해체에 대한 충격에서 나온 대응”이라며 “역사는 훔쳐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강연에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한홍구 교수가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은별 기자
강연에 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한홍구 교수가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은별 기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지수현(26) 씨는 “정부가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 나설 때 언론이 나서서 말려야 한다고 했는데,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한 교수는 “과거사 문제가 터졌을 때 언론은 약자,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문제를 재구성해 어떻게 나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선도해서 어젠다(의제)를 만들어내고, 대중보다 앞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깨우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광고주의 영향력 등 언론인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을 지적한 뒤 “여러분이 스무 살 때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스무 살 때의 자신을 생각할 때 최소한 지켜야 할 것을 돌아보며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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