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특강] 연합뉴스 김태균 콘텐츠인큐베이팅팀장

“인공지능(AI) 시대에 기자의 업무는 어떻게 바뀔까요? 인공지능이 잘하는 일을 기자가 하는 건 포크레인 앞에서 땅 파기 실력을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기자는 ‘취재하고 기사 쓰는 사람’이었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기자는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자연어 데이터(뉴스)의 생산·유통·축적 과정을 이끌고 바꾸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연합뉴스> 김태균(45) 콘텐츠인큐베이팅(CI)팀장이 지난 9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AI+기자, 험난하면서도 가치 있는 만남’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으로 강단에 오른 그는 “인공지능이 보도의 양과 속도 등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인간은 콘텐츠의 깊이와 질을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2005년 연합뉴스에 입사한 후 사회부, IT(정보기술)과학부, 국제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2018년 CI팀이 출범한 후 인공지능을 활용한 보도 제작의 기획·개발을 맡아 왔다.

보도의 양·속도는 인공지능이, 품질·깊이는 인간이

김태균 연합뉴스 CI팀장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보도의 기획과 개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김태균 연합뉴스 CI팀장이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특강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보도의 기획과 개발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김 팀장이 이끄는 연합뉴스 CI팀은 지난 4년여 동안 총 20여 종의 인공지능 뉴스 서비스를 개발, 운용해 왔다. 주로 지진·기상특보·기업실적 등의 분야에서 기사 초안을 작성하는 일이다. 인공지능이 초안을 쓰면 인간 기자가 검토한 후 필요한 수정을 하고 제목을 달아 출고한다. 2020년에는 머신러닝(데이터를 통해 컴퓨터 스스로 학습) 기반의 날씨 기사를 도입했는데, 사람이 30분 걸려 쓰던 예보 기사 작성 시간이 5분 이내로 단축됐다. 기자는 절기와 기념일 등을 모르는 인공지능 대신 맥락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연합뉴스 인공지능 뉴스 서비스는 지진 발생 기사를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작성한다. 김 팀장은 “지진 관련 데이터가 들어오면 인공지능이 0.1초 만에 지진 기사 초안을 쓴다”고 설명했다. 기사의 양과 속도를 인공지능이 책임지면서 뉴스 보도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김 팀장의 분석이다.

미국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뉴스 서비스가 우리나라보다 더 앞서 있다. 예를 들어 블룸버그통신은 취재·기사 작성·유통까지 모든 단계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주요 기업에서 통신상의 기업설명회인 ‘컨퍼런스 콜’을 하면 인공지능이 발표 음성과 관련 데이터를 수집·추출한 뒤 자동으로 속보를 쓴다. 이 속보는 번역기를 통해 여러 언어로 번역, 송출된다.

과거엔 상상도 못 했던 일 가능케 하는 AI 서비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이 김태균 팀장의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조성우 기자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들이 김태균 팀장의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를 통해 외부 청강생도 참여했다. 조성우 기자

김 팀장은 인공지능이 과거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미국 증시는 거래 규모가 너무 크고 한국과 시간대도 달라 국내에서 기사로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인공지능 뉴스 서비스 ‘서학개미 봇’은 실시간으로 미국 주식 정보를 독자들에게 상세히 제공한다. 그는 동시에 “인공지능을 기존 업무 체계에 도입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세심한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인공지능 뉴스 도입은 업무 체계라는 ‘몸’에 인공지능 서비스라는 ‘보철물’을 이식하는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 구글의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알파고가 한국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대국해 승리하자, ‘인공지능이 곧 인간의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빠르게 확산했다. 언론 분야에서도 ‘AI 저널리즘’에 관해 우려 섞인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김 팀장은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가 이긴 바둑은 가로세로 19칸 안에서 1차원적 복잡성을 다루는 일이지만 기자의 업무는 취재·뉴스 콘텐츠 제작·유통의 3단계로 매번 달라지는 다층의 게임판”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판단의 층위(layer)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이 대신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재벌의 비리를 취재할 때 재벌 측 취재원은 기자에게 항상 사실만을 말하지 않을 수 있다. 참사가 일어난다면 유족을 존중하는 취재 윤리도 필요하다. 상황과 사건마다 매번 게임판이 달라진다. 특히 통계와 빈도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도덕적 판단과 감성적 배려를 익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팀장은 “참사 보도에 인공지능을 쓴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유족과 사회적 감정·분위기를 판단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데 기계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기자는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층적 판단과 깊고 섬세한 공감 능력, 기계가 할 수 없는 창의적 글쓰기를 그 예로 들었다. 김 팀장은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기자가 갖춰야 할 역량은 데이터 문해력(literacy)”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데이터에 기반한 허위 조작 정보도 더욱 정교해지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데이터를 제대로 해석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의 커리어 패스(career path)는 더 다채로워질 전망”이라며 “데이터 및 인공지능 문해력이 기자의 새 기초 교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기존의 저널리즘 감각을 강화하는 역할

김태균 팀장이 질의답변 시간에 수강생의 질문을 듣고 메모한 뒤 답변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김태균 팀장이 질의답변 시간에 수강생의 질문을 듣고 메모한 뒤 답변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인공지능은 애초 없었던 저널리즘 감각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원래 있던 저널리즘 감각을 강화해줄 뿐입니다.”

김 팀장은 인공지능 뉴스 서비스 개발업무를 하며 얻은 교훈을 이렇게 설명했다. 결국 새로운 저널리즘을 제시하는 건 ‘인간 기자’의 몫이라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 언론이 할 일을 3가지로 제시했다.

첫째는 취재 지원 및 뉴스 유통을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해 뉴스 서비스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둘째, 초거대 인공지능의 신중한 활용이다. 초거대 인공지능은 글을 잘 쓰지만, 동시에 매우 정교한 허위기사를 쓸 위험성도 있다. 실제 업무에 활용하기 위해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셋째, 데이터의 축적이다. 인공지능을 학습하기 위해선 데이터가 필요하다. 언론사가 취재·작성한 정보는 인간의 고급 지적 활동을 기록한 자료로 매우 가치 있는 데이터다. 데이터 자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축적할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김 팀장은 마지막으로 “결국 좋은 인간 기자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자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과 뚜렷한 지향점을 가지고 창의적인 기사를 쓰는 아름다운 지식인”이라며 “이런 장점을 갖춘 기자가 인공지능과 협업도 잘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자”라고 말했다.

팩트체크는 어렵지만 악성 허위정보는 잘 포착

수강생들이 강연 후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질문을 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수강생들이 강연 후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질문을 하고 있다. 조성우 기자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박동주(27·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씨는 “인공지능을 통한 팩트체크 알고리즘은 가능하다고 보는가”라고 물었다. 김 팀장은 “인공지능이 팩트체크를 하기는 굉장히 어렵다”며 “인공지능은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 인공지능이 가진 데이터에서 누군가 거짓을 10번 입력하면 (빈도상) 그걸 사실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팩트체크를 할 만한 아이템은 인공지능이 찾을 수 있다”며 “허위 정보의 경우 정보가 확산하는 방식이 일반 뉴스와 다르기 때문에 악성 허위 정보를 찾아내는데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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