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 박성제 문화방송사장 특강

"중립적인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것과 정확한 팩트(사실)를 보도해야 한다는 말은 둘 다 양립할 수 있는 저널리즘 가치지만, 그것이 충돌하는 경우도 꽤 많다는 거죠. 그럴 땐 맥락을 봐야죠."

지난 17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 202호에서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으로 박성제(55) MBC 사장이 특강을 했다. ‘공영방송 MBC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박 사장은 언론의 중립성에 앞서는 가치로 ‘진실’을 꼽았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유족을 만났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한 것을 인용하며 ‘진실 앞에 중립은 없다’가 자신과 MBC 기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1993년 MBC 기자로 입사해 정치, 경제, 사회부 등을 거친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으로 해직됐다가 문재인 정부 때 복직한 후 보도국장을 거쳐 2020년 사장에 선임됐다.

진보적으로 보이는 매체의 공통점은 ‘주인 없는 회사’  

박성제 사장이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 특강에서 공적으로 관리되는 MBC의 소유구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박성제 사장이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 특강에서 공적으로 관리되는 MBC의 소유구조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민 기자

박 사장은 MBC 기자와 PD들이 만드는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이 흔히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이유를 ‘주인 없는 회사여서 기자들의 자율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MBC는 KBS처럼 수신료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아닌 방송문화진흥회와 정수장학회가 소유권을 나눠 갖고 공적으로 관리한다. 정부·여당이 6명, 야당이 3명을 추천하는 방문진 이사들은 경영 감독만 한다. 방문진이 선임하는 사장은 3년 임기제인데, 1989년 결성된 MBC 노조는 사장 등 경영진이 보도와 제작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투쟁해 왔다.

“MBC 구성원들은 몇 년 있다 나갈 사장이 아니라 각자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내 뉴스가 망가지는 거, 내 프로그램이 망가지는 건 못 참아. 그러면 싸우는 거죠. 무서워할 주인이 없으니까 용감하게 싸울 수 있죠.”

그는 MBC 보도가 피해자와 약자의 관점을 많이 담기 때문에 ‘진보, 좌파’ 등의 지적을 받지만 실제로는 진영과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다 보면 사회적 약자, 부조리, 쪽방촌을 만든 사회경제구조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소유주가 있는 언론은 자본의 관점에서 이런 기사를 거르기도 한다. 또 피해자나 약자보다는 정부, 기업, 검찰, 정치인 등 ‘힘 있는’ 주체를 대변하는 데 더 비중을 두는 언론사도 있다. 박 사장은 “MBC는 그런 기사들이 (취재한 대로) 나갈 수 있는 회사”라며 “이것이 MBC 저널리즘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원지주제가 확립된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사실·진실·양심·상식 뒤에 중립의 자리가 

2012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장 등을 맡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가 5년 반 만에 복직한 그는 6개월 후 보도국장이 되면서 ‘MBC 뉴스의 재기’를 위해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당시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을 이끌던 JTBC의 뉴스 시청률이 7~8%인 반면, 기자·PD 등의 무더기 해고·징계 여파로 침체기를 겪은 MBC 뉴스데스크 시청률은 2~3%에 그치고 있었다. 그는 뉴스 시간을 늘리고 기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뉴스 혁신에 나섰다. 

박성제 사장은 강연에서 언론의 중립성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과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강생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이정민 기자
박성제 사장은 강연에서 언론의 중립성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과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강생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이정민 기자

그는 최근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발언 MBC 보도와 관련해서도 보도국의 판단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윤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주변 참모들에게 했던 비속어 발언이 문제가 됐다. 당시 MBC를 비롯해 10개 넘는 언론사가 촬영 영상을 함께 분석했고, 대통령실 언론담당 비서관도 내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보도 자제 요청을 거부하고 MBC를 시작으로 같은 내용을 보도했는데, 대통령실은 MBC만을 문제 삼았고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등의 조처로 대응했다. 

박 사장은 “뒤늦게 ‘날리면’이라고 대통령실이 주장을 했다고 해서 이걸 5:5로 보도하는 게 중립적인 언론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영방송이 추구해야 할 팩트와 진실, 양심, 상식 앞에서 중립이 제1의 원칙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상파를 넘어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그룹’으로

그는 뉴미디어 시대에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MBC가 앞으로는 ‘지상파 방송’이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 콘텐츠 그룹’을 지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MBC의 예상 매출 목표인 약 8천억 원 가운데 광고 매출은 3천억 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나머지는 드라마와 예능,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콘텐츠 판매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에서 곧 선보일 <피지컬:100>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소개되지만 제작은 MBC가 맡았다. 그는 “이런 시장이 점점 커질 것”이라며 유튜브 말고도 다른 동영상 플랫폼이 나오면 거기에 적응하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MBC의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하는 수강생. 이정민 기자
강연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하는 수강생. 이정민 기자

강연 후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윤재영(29) 씨는 MBC 뉴스 유튜브 채널의 월간 조회 수가 5억 뷰 가까이 되는 것과 관련해 ‘유튜브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 비결’을 물었다. 박 사장은 “현재 여러 뉴스 채널에서 진행하는 뉴스 집(zip: 사안별 뉴스 모음 영상)이나 자막 뉴스 같은 경우 MBC가 가장 먼저 시도했다”며 그렇게 선점한 것들이 알고리즘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줌으로 연결한 한 참가자가 ‘MBC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묻자 박 사장은 “올바른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그것을 MBC에서 지켜낼 수 있는 의지와 자질이 있는지를 볼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