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민주화 35년이 지난 이후에 검찰공화국으로 다시 가는가 싶어 우려가 참 큽니다. ‘우리가 성취했다고 하는 민주주의가 뭐지’라는 생각도 근본적으로 하게 됩니다. 교과서적인 삼권분립의 원칙이 거의 무너지는 양상이라....”

진보적 사회학자인 김동춘(64)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지난달 24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를 주제로 강연하며 윤석열 정부를 이렇게 비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의 연사로 초청된 그는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후퇴가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며 “민주주의 후퇴의 최대 피해자는 사회의 제일 약자들”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노동, 교육, 사회정책 등을 연구해 왔으며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등으로 시민운동에도 몸담았다.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등 수십 권의 저작이 있으며 <한겨레>에 연재한 ‘김동춘 칼럼’ 등으로 2016년 송건호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할 때 고통당하는 것은 사회의 약자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승연 PD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인문사회교양특강에서 ‘민주주의의 위기와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조승연 PD

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 아주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양상을 보여줬다”며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 원칙이라고 이야기하는 국민주권, 삼권분립, 대의제, 사법 독립, 정당 정치, 표현의 자유 등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8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 후보인 김기현 당 대표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나경원·안철수 등 다른 후보들에게 의도적으로 불리한 언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김 교수는 또 야당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각계 요직에 검찰 출신이 포진한 현실 등과 관련해 ‘검찰공화국’ 회귀를 우려했다. 그는 “검찰은 최고 명령자가 단추를 누르면 따라가는 조직인데, 최고 권력자가 뛰어난 식견을 가지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엄청난 비극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이어 “21세기에 검찰 정치라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며 “이 사람들이 무슨 비전이 있고, 외교와 경제에 대해 뭘 아는가. 이거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 민주주의 장애물은 ‘준 전쟁 상태’와 경제위기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이 김동춘 교수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강생을 포함, 40여 명이 참여했다. 조승연 PD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학생들이 김동춘 교수의 강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날 특강에는 줌 화상회의로 연결한 외부 청강생을 포함, 40여 명이 참여했다. 조승연 PD

김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전쟁과 경제위기이며, 한국은 두 가지 모두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적 위기인 전쟁은 합법적 민주 절차를 중단시키는데, 한국은 6.25전쟁 이후 70년 동안 준 전쟁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는 데 악용될 수 있는 국가보안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가보안법이 있는 나라에선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없다”고 말했다. 휴전 상태인 한국에서는 어떤 정치적 사안이 화두가 돼도 안보적 사안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평화가 보장되어야만 민주주의가 될 것이다”라고 한 말을 인용하며 “평화와 민주주의는 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경제위기도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시민들은 불안에 빠진다. 불안은 민주주의를 잠식한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 다수 시민은 경영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그래서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노동자의 발언권과 경영 참가권을 보장하는 산업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독일은 노사 공동결정제도를 통해 노조가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만, 한국에서는 10%의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가 100%의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고 세습 재벌의 독재 체제를 완화하는 것이 한국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돈 있는 사람들이 입법, 행정, 사법부와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언론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상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게 한다면 당연히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강조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한국 정치 발전 막아

김 교수는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며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할 수단이 거의 없으며, 관료 집단의 자율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원집정부제를 통해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제를 절충하고, 결선투표제를 통해 당선자의 대표성을 높이는 프랑스를 예로 들며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교수는 또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선거구제(당선자를 1명만 내는 것)와 단순 다수제(다수 후보 중 한 표라도 많은 후보가 당선)인 현행 선거 방식으로 선출된 의원들은 다양한 집단을 고루 대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선거 자금이 많고, 기본적인 지지도가 높은 거대 정당 후보에게 유리하다. 그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정치에 진출하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체가 될 사람들을 주체화시키는 것이 이 문제의 해결책입니다.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주체가 안 되는 데서 오늘의 모든 문제가 기인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특히 지역사회 붕괴, 청년 문제는 당사자들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총 의석 비율을 정당 득표율과 최대한 일치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지지율이 낮은 소수 정당도 현재보다 의석수를 늘릴 수 있는 제도다.

수강생 강민정 씨가 질의응답 시간에 다당제 실현의 조건을 질문하고 있다. 조승연 PD
수강생 강민정 씨가 질의응답 시간에 다당제 실현의 조건을 질문하고 있다. 조승연 PD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강민정(25·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생) 씨는 “정치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다당제가 들어서기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실적으로 구조가 바뀌려면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라고 물었다. 김 교수는 “대통령제는 권력의 중심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거대 정당 중심의) 양극화로 갈 수밖에 없다”며 “적어도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조치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