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의 계급] ① 서울시 놀이터 실태 최초 분석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과 놀이터가 쟁점이었다. 아파트 내부의 어린이집은 구립이었다.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아도 아파트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었다. 어린이집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 안의 놀이터에서도 놀았다. 그런데 일부 주민이 불만을 품었다.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자는 안건을 입주민 대표회의에 제출했다.

다른 입주민들의 반대로 이 안건은 부결됐지만, 아파트 놀이터를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말자는 아이디어는 다른 곳에서도 등장했다. 2021년 경기 광명시의 한 아파트는 '어린이 놀이시설 이용 지침' 안내판을 놀이터 입구에 세웠다. 놀이터를 이용하려면 아파트 거주자임을 증명하는 '비표'(확인표)를 착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비표를 달지 않은 어린이들은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단비뉴스>는 서울시에 있는 놀이터의 ‘실체’를 취재했다. 놀이터가 어디에 많고, 어디에 적은지 데이터를 통해 알아봤다. 행정안전부의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시스템, 국가통계포털의 지역별 주택유형, 통계청의 마이크로데이터 통합서비스 등에서 자료를 찾아 교차분석했다. 그 결과를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1회에서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어린이 놀이터의 실태를 보도하고, 2회에서는 대안과 제도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놀이터는 어디에 많고, 어디에 적을까? 지난해 10월 8일 오후 4시 서울 도봉구 누원어린이공원에서 열댓 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다. 박시몬 기자
놀이터는 어디에 많고, 어디에 적을까? 지난해 10월 8일 오후 4시 서울 도봉구 누원어린이공원에서 열댓 명의 어린이가 놀고 있다. 박시몬 기자

서울시 놀이터 대부분은 아파트 놀이터

행정안전부의 기준을 보면, 어린이 놀이터는 20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우선,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아동복지시설, 종교시설 등에 설치된 놀이터가 있다. 이런 놀이터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식당이나 키즈카페 등에 설치된 놀이터도 있지만, 개수도 적고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접근에 제약이 많다.

누구나 접근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는 두 종류다. 아파트나 주상복합 등 주택단지에 설치된 놀이터, 그리고 주택가 인근의 도시공원 안에 마련된 놀이터다. 이를 각각 ‘주택단지 놀이터’, ‘도시공원 놀이터’로 부른다.

서울시의 다양한 놀이터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이들 두 유형의 놀이터다. 행안부 통계(2022년 10월 기준)를 분석한 <그림 1>을 보면, 서울시 전체 어린이 놀이시설 1만 317개 가운데 주택단지 놀이터는 59.9%(6179개)를 차지한다. 아파트 놀이터가 가장 많은 것이다. 그 다음으로 도시공원 놀이터가 15.9%(1641개)다.

그림 1. 행안부 기준 20개 범주 중 아파트와 도시공원 ,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놀이터와 키즈카페의 비중을 살펴봤다. 그 외의 분류는 기타로 처리했다. 그래픽 이정민 기자
그림 1. 행안부 기준 20개 범주 중 아파트와 도시공원 ,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놀이터와 키즈카페의 비중을 살펴봤다. 그 외의 분류는 기타로 처리했다. 그래픽 이정민 기자

노원구와 종로구의 놀이터 격차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놀이터라고 해서 누구나 찾기 편한 곳에 있지는 않다. 지역별로 놀이터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기준, 서울시의 주택단지 놀이터와 도시공원 놀이터는 총 7820개다. 이들 놀이터의 위치를 25개 자치구별로 나눠 살펴보면, 노원구에 놀이터가 가장 많고, 종로구의 놀이터가 가장 적다.

<그림 2>를 보면, 서울시 전체 놀이터(주택단지 놀이터+도시공원 놀이터) 가운데 노원구의 놀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7.8%(610개)로 가장 크다. 이어 강남구가 6.7%(523개), 송파구 6.7%(507개), 강서구 6.3%(495개), 양천구 5.8%(456개) 순이다. 반면, 놀이터 수가 가장 적은 자치구는 종로구 1.0%(78개), 중구 1.2%(96개), 금천구 1.9%(152개), 용산구 2%(156개), 광진구 2.1%(166개) 순이다. 

그림 2. 서울시 자치구별로 주택단지 놀이터와 도시공원 놀이터를 집계했다. 놀이터 수가 적은 순으로 나열하니 종로구가 가장 적고, 노원구가 가장 많았다. 그래픽 이정민 기자
그림 2. 서울시 자치구별로 주택단지 놀이터와 도시공원 놀이터를 집계했다. 놀이터 수가 적은 순으로 나열하니 종로구가 가장 적고, 노원구가 가장 많았다. 그래픽 이정민 기자

노원구는 거주지역이고, 종로구는 상업지역이자 경복궁과 종묘를 비롯한 고궁이 집중돼있는 곳이다. 놀이터 수에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린이 인구 대비 놀이터 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놀이터 한 개당 몇 명의 어린이가 이용하게 되는지 계산했다. 이를 ‘놀이터 인구밀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놀이터 인구밀도가 높으면 놀이터가 부족하다는 뜻이고, 그 반대라면 놀이터가 비교적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9월 기준, 서울시 전체 944만여 명 인구 가운데 만 13세 이하 어린이는 84만여 명이다. 이를 서울시 전체의 주택단지 및 도시공원 놀이터와 비교해 놀이터 인구밀도를 계산하면, 놀이터 1개 당 106.8명의 어린이가 이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자치구별 놀이터 인구 밀도를 분석하면, 노원구(놀이터 1개당 76.3명), 성동구(82.7명), 중구(87.4명), 마포구(96.1명), 구로구(97.2명)의 놀이터가 비교적 충분하고, 광진구(156.1명), 강동구(139.8명), 송파구(139.2명), 종로구(132.0명), 은평구(122.4명)의 놀이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지도로 나타낸 <그림 3>을 보면, 대체로 주거지역일수록 놀이터 인구밀도가 낮고, 상업지역일수록 놀이터를 함께 이용해야 하는 어린이 인구가 많다.

그림 3. 놀이터 인구밀도(놀이터 1개당 어린이 수)를 나타낸 서울시 자치구 지도다. 색이 진할수록 밀도가 높은 곳이자 어린이 놀이터가 부족한 자치구다. 강동구, 광진구, 송파구는 놀이터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색이 진하게 나타났고, 노원구, 성동구는 비교적 놀이터가 많은 곳으로 색이 연하게 나타났다. 그래픽 신유미 기자
그림 3. 놀이터 인구밀도(놀이터 1개당 어린이 수)를 나타낸 서울시 자치구 지도다. 색이 진할수록 밀도가 높은 곳이자 어린이 놀이터가 부족한 자치구다. 강동구, 광진구, 송파구는 놀이터 인구밀도가 높은 곳으로 색이 진하게 나타났고, 노원구, 성동구는 비교적 놀이터가 많은 곳으로 색이 연하게 나타났다. 그래픽 신유미 기자

동네마다 다른 놀이터 인구밀도

자치구 내에서도 동별 편차가 크다. 서울시에는 467개의 법정동이 있지만, 동별 인구를 집계하는 지역은 457개동이다. 이 가운데 놀이터가 아예 없는 동은 강서구 오곡동, 종로구 공평동, 중구 소공동, 영등포구 문래동1가 등 160개에 이른다. 다만 그 대부분은 어린이 인구가 많지 않은 상업지역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어린이가 살고 있는 동네의 놀이터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2022년 10월 기준, 서울시의 법정동에 거주하는 만 13세 이하 어린이 인구는 평균 1846명이다. 그 절반인 924명 이상의 어린이가 거주하는 171개 동만 추려, 놀이터 인구밀도를 측정했다. 

그림 4. 서울시 법정동별 어린이 수 평균인 1846명 중 절반인 924명 이상이 사는 171개 동의 놀이터 인구 밀도를 살펴봤다. 그래픽 신유미 기자
그림 4. 서울시 법정동별 어린이 수 평균인 1846명 중 절반인 924명 이상이 사는 171개 동의 놀이터 인구 밀도를 살펴봤다. 그래픽 신유미 기자

분석 결과, 은평구 대조동의 놀이터 인구밀도가 서울시에서 가장 높았다. 대조동에는 어린이 1518명이 살지만, 놀이터는 3개뿐이다. 약 506.0명의 어린이가 하나의 놀이터를 이용하는 셈이다.

이어 은평구 역촌동의 놀이터 인구 밀도가 두 번째로 높았다. 3383명의 어린이가 살지만, 놀이터는 8개에 불과하다. 이외에도 송파구 삼전동, 광진구 군자동, 은평구 구산동, 강북구 수유동, 송파구 잠실동, 송파구 신천동의 놀이터 인구밀도가 높았다.

그림 5. 서울시 법정동별 어린이 수 평균인 1846명 중 절반인 924명 이상 어린이가 사는 동네 중 놀이터 인구 밀도 하위 10개 동을 살펴봤다. 그래픽 신유미 기자
그림 5. 서울시 법정동별 어린이 수 평균인 1846명 중 절반인 924명 이상 어린이가 사는 동네 중 놀이터 인구 밀도 하위 10개 동을 살펴봤다. 그래픽 신유미 기자

반면, 놀이터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동은 강서구 가양동이었다. 가양동에는 2861명의 어린이가 살고 있는데, 놀이터는 59개에 달한다. 놀이터 1개를 약 48명이 함께 쓰는 셈이다. 이를 은평구 대조동의 놀이터 인구밀도(506.0명)와 비교하면, 그 격차가 더욱 뚜렷하다. 그 밖에도 영등포구 영등포동(55.2명), 동작구 본동(58.5명)의 놀이터 인구밀도도 낮았다.

아파트 많은 동네와 연립주택 많은 동네의 격차

동별 분석 결과를 보면, 하나의 자치구 안에서도 놀이터의 격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자치구 안에서 놀이터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동과 매우 낮은 동을 비교해봤다.

우선, 은평구에서 놀이터가 가장 부족한 곳은 대조동이다. 대조동에는 1518명의 어린이가 살지만, 놀이터는 3개뿐이다. 놀이터 인구 밀도는 506.0명이다. 반면 1217명의 어린이가 사는 은평구 수색동에는 19개의 놀이터가 있다. 놀이터 인구밀도는 64.0명이다. 인구밀도로 보면, 두 지역의 격차가 8배에 가깝다.

격차의 배경에는 아파트가 있다. 수색동에 사는 전체 3619개 가구의 주택 유형을 보면, 아파트가 59.9%(2169가구)로 가장 많고, 단독주택 19.6%(711가구), 연립‧다세대주택 16.6%(603가구) 순이다. 이 동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인 '수색증산뉴타운' 사업 이후 고층 아파트와 복합 쇼핑몰 등이 들어섰다. 실제로 수색동에 있는 19개 놀이터 모두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다.

이에 비해, 대조동에 사는 전체 1만 3045개 가구의 주택유형을 보면, 39.3%(5139가구)가 연립‧다세대주택으로 가장 많고, 단독주택 31.4%(4099가구), 아파트 15.7%(2057가구) 순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 다세대 주택이나 일반 주택에 사는 동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지역에서 어린이들이 개방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놀이터는 도시공원 놀이터 뿐인데, 그조차도 1개에 불과하다.

위성 사진으로 촬영한 두 동네의 지도에 놀이터를 표시한 <그림 6>을 보면,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수색동과 일반 주택이 많은 대조동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 6. 은평구 대조동(왼쪽)과 은평구 수색동(오른쪽)에 있는 놀이터를 지도에 표시했다. 대조동은 연립‧다세대 주택이 많고, 수색동은 반홍산 주변으로 아파트가 많다. 이정민 기자
그림 6. 은평구 대조동(왼쪽)과 은평구 수색동(오른쪽)에 있는 놀이터를 지도에 표시했다. 대조동은 연립‧다세대 주택이 많고, 수색동은 반홍산 주변으로 아파트가 많다. 이정민 기자

이런 상황은 다른 자치구에서도 발견됐다. 송파구에서 놀이터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삼전동이다. 삼전동에는 만 13세 이하 어린이 1996명이 살지만, 놀이터는 6개뿐이다. 놀이터 인구 밀도는 332.6명에 이른다. 이 지역은 전형적인 연립‧다세대 주택가다. 삼전동에 사는 전체 1만 4804가구의 주택유형을 보면, 연립‧다세대 주택의 비율이 68.5%(1만 152가구)로 가장 높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3.2%(477가구)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송파구에서 놀이터 밀도가 가장 낮은 오금동에는 아파트가 많다. 오금동은 만 13세 이하 어린이 3568명이 38개의 놀이터를 이용한다. 놀이터 인구밀도가 93.8명으로, 주택 유형을 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가 48.1%(6953가구)로 가장 많다. 

그림 7. 송파구 삼전동(왼쪽)과 송파구 오금동(오른쪽)에 있는 놀이터를 지도에 표시했다. 삼전동의 주거형태는 대부분이 연립‧다세대 주택이다. 반면, 오금동에는 아파트가 많다. 이정민 기자
그림 7. 송파구 삼전동(왼쪽)과 송파구 오금동(오른쪽)에 있는 놀이터를 지도에 표시했다. 삼전동의 주거형태는 대부분이 연립‧다세대 주택이다. 반면, 오금동에는 아파트가 많다. 이정민 기자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 5000만 원 정도다. 반면, 연립‧다세대주택의 평균 매매가격은 3억 5000만 원 정도다. 중산층 이상이 사는 지역에는 놀이터가 많고, 서민 주거 지역에는 놀이터가 적다고 볼 수 있다.

계층계급의 차이가 놀이터의 차이로 연결되는 고리에는 현행 법령도 있다. 현행법상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150세대 이상의 주택단지에는 반드시 놀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아파트를 지으면 놀이터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반면, 일반 주택이나 연립·다세대 주택에는 이런 법적 의무 규정이 없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지, 해외에서는 ‘놀이터의 격차’를 어찌 해소하고 있는지, 2회에서 살펴본다. 

후편: ②아파트 안 살면 어디서 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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