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엠바고와 국가안보 어느 것이 우선일까? 엠바고 수용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들

지난해 10월 4일 밤, 강원도 강릉 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그 사이 이태원 참사와 북한 무인기 도발 등 많은 일이 벌어져 오래전 일 같지만, 불과 석 달여 전 일이다. 굉음을 내며 하늘을 붉게 물들인 미사일은 마치 전쟁이 일어난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다. 트위터 등 SNS상에서는 관련 사진과 영상이 공유되며 무슨 일인지 상황을 추론하는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다음날인 5일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우리 군 합동참모본부는 한미 연합 지대지미사일 사격 훈련 중 발생한 낙탄 사고라고 해명했다.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대한 대응조치로 실시한 훈련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현무-2C 미사일 1발이 동해상이 아닌 발사 지점 서쪽에 있는 영내 골프장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사고가 발생한 전날 밤 11시 이후 무려 8시간이 지나서야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더구나, 한참 지난 뒤의 일이긴 하지만 이 해명마저 실제 사실과 상당히 달랐다.

지난해 10월 5일 새벽 SNS에 올라온 현무-2C 미사일의 낙탄 현장 사진. SNS 갈무리
지난해 10월 5일 새벽 SNS에 올라온 현무-2C 미사일의 낙탄 현장 사진. SNS 갈무리

보도가 늦어진 이유는 합참이 언론에 보도유예, 즉 ‘엠바고’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전날 합참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한미 훈련 정보를 제공하며 오전 7시 이후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훈련 도중 낙탄 사고가 발생하자, 마찬가지로 보도유예를 요청했다. 일부 인터넷 언론이 폭발음이 담긴 제보 영상을 공개하면서 ‘정확한 원인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기사를 내자, 아예 기사를 내려달라고 하기도 했다. 낙탄 사고 사실을 공개하면 훈련 진행 상황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이미 SNS상에서 폭발 현장 영상이 공유되고 있는 가운데 뻔히 눈으로도 보이는 사고 사실까지 보도유예를 해야 했는지 비판이 제기됐다. 주민들의 불안이 가중되지 않게 신속하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옳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안보에 해당하는 사안이니 훈련이 끝난 후 보도했어도 괜찮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기자는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더 큰 이익을 위해 보도 시점을 제한하는 ‘보도유예’

‘엠바고’(embargo)는 원래 ‘항구에 정박 중인 상선의 출항금지’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언론계에서는 정보 제공자가 언론이나 기자에게 뉴스나 보도자료를 제보하면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하는 ‘보도유예’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상당수의 정부 부처, 시민단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보도유예를 요청하는 데 목적에 따라 크게 5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보충 취재형 엠바고’다. 전문적이고 복잡한 사안을 다룰 때 취재기자들이 보충 취재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예산안을 발표할 때도 엠바고를 걸고 기자단에 자료를 미리 제공한다. 복잡한 예산안을 제대로 파악해 정확한 보도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공식 발표 일주일 전에 출입기자단에게 대략적인 브리핑을 한다. 기자들은 엠바고 기간 보충 취재를 통해 기사를 준비한다. 며칠 뒤 장관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면, 엠바고가 해제되면서 미리 준비한 기사를 보도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자료는 미리 입수하더라도 보도하지 않는 ‘발표 자료 엠바고’, 양국의 협정 또는 회담 개최에 관한 기사를 공식 발표가 있을 때까지 보도하지 않는 ‘관례적 엠바고’, 뉴스 가치가 있는 사건이 일어날 것은 예측할 수 있으나,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뒤에 기사화한다는 조건으로 미리 보도자료를 제공하는 ‘조건부 엠바고’, 진행 중인 사건이나 인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 보도를 유예하는 ‘공공이익을 위한 엠바고’가 있다. 크게 보면 더 충실한 기사를 쓰기 위한 것이거나 오히려 보도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더 충실한 보도를 위한 엠바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보도해도 되는 시점에 맞춰 허겁지겁 기사를 쓰는 일이 발생한다. 기사가 부실해지는 피해는 뉴스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엠바고는 사실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이번 낙탄 사고처럼 국가안보 등에 피해가 갈 수 있다며 보도를 미루는 것은 실제 발생한 일의 보도를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이런 엠바고는 국민의 알권리가 다소 침해되더라도 더 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보도 시점을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 사안에만 적용돼야 한다. 국민의 알권리와 보도유예로 인한 이익을 비교해 엠바고를 수용할지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엠바고는 한쪽이 요구한다고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안보’와 ‘알권리’ 충돌…치밀하게 이익 비교했어야

이번 미사일 낙탄 사고 역시 보도유예 수용 여부를 고민해볼 사안이다. 합동참모본부가 엠바고를 요청했을 때 언론은 보도 가치를 어떻게 판단해 이를 수용했을까? 이번 낙탄 사고는 엠바고의 5가지 유형 중 ‘공공이익을 위한 엠바고’로 분류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훈련이 미리 언론에 보도될 경우 북한이 곧바로 대응 사격에 나서는 등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런 군사 훈련은 기밀로 취급해 항상 보도유예를 지켜왔다. 하지만 훈련 계획과 달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낙탄 사고에까지 보도유예를 적용하는 게 맞는 건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것도 사고가 민간인 주거지 주변에서 발생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로서는 훈련에 대한 엠바고를 이유로 낙탄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주민들이 먼저 사고를 목격하고 SNS에 사진과 영상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심야에 미사일 훈련이 실시된다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낙탄 사고까지 난 상황에서 계속 기밀을 유지하는 것은 주민들의 알권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국방홍보훈령 제5장 제25조 보도원칙에 따르면 군에서 발생한 사고는 극히 중한 사고, 중한 사고, 경한 사고 3가지로 나뉜다. 국방홍보훈령 갈무리
국방홍보훈령 제5장 제25조 보도원칙에 따르면 군에서 발생한 사고는 극히 중한 사고, 중한 사고, 경한 사고 3가지로 나뉜다. 국방홍보훈령 갈무리

군에서 발생한 사고를 무조건 기밀에 부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군이 언론 등에 대응할 때 지켜야 하는 일종의 매뉴얼인 국방홍보 훈령에 그 내용이 담겨있다. 국방홍보 훈령 제25조 보도 원칙을 보면, 군 관련 사고를 ‘극히 중한 사고’, ‘중한 사고’, ‘경한 사고’로 나눈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낙탄 사고는 중한 사고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국방홍보훈령 제25조 2항은 “중한 사고 이상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오보 또는 왜곡보도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단 시간 내에 발표한다”고 되어있다. 이 규정을 지켰다면 정부는 한미 훈련 진행 중 낙탄 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빠르게 알렸어야 한다.

보도 유예의 공익이 더 클 때도 있다

1990년 9월 강릉에 북한 잠수함이 침투했을 때 당시 언론은 현장중계를 하듯 작전 상황을 방송했다. KBS
1990년 9월 강릉에 북한 잠수함이 침투했을 때 당시 언론은 현장중계를 하듯 작전 상황을 방송했다. KBS

국가안보와 국민의 알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보도를 자제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 상황도 있다. 대표적으로 납치된 국민을 구출하기 위해 군사 작전이 진행되는 경우다. 1990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작전이 노출돼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언론은 강원도 동해에 나타난 북한 잠수함을 취재하기 위해 군 작전 포위망에 들어가 현장 중계를 하듯 방송했다. 한국의 언론 보도를 본 북한은 무전으로 새로운 작전 경로를 전달했고, 한국은 군인 11명, 민간인 4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엠바고를 지키지 않은 언론사가 정부의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때였다. 당시 국방부는 인도양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해 작전을 펼쳤다. 국방부는 해군의 1차 작전을 설명하면서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보도유예를 요청했고, 작전의 진행 경과 등을 설명하면서 다시 엠바고를 요청해 동의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국방부를 출입하지 않던 부산일보는 국방부가 아닌 별도 경로로 작전에 관한 정보를 입수해 종이신문과 인터넷판에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국방부는 선원의 신변 위협과 작전 차질 등을 이유로 부산일보에 인터넷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방부는 2차 구출작전이 성공한 후 각급 중앙행정기관 등에 요구해 부산일보에 대해 1개월 기자실 출입 제한과 사전 보도자료 제공을 중단시켰다. 사실상 모든 정부 부처가 부산일보를 제재한 셈이다.

부산일보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부산일보는 국방부를 출입하지 않아 엠바고 합의의 당사자가 아니며 국방부에서 설명을 들은 적도 없으므로 엠바고 파기를 전제로 제재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부산지방법원 2011가합3841 판결). 취재원이 엠바고를 요청할 경우 취재기자가 이를 수용해야 하는 의무는 없지만, “전체 취재기자가 통일적으로 엠바고를 준수해야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일 때”는 엠바고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부산지법은 또 “보도하려는 내용이 국가 안위나 중대한 공익과 관련된 사안이거나,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사안인지에 따라” 관련 내용이 비밀에 부쳐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이런 사안에서는 부산일보가 해당 부처에 엠바고가 걸렸을 가능성을 감안해 국방부에 확인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엠바고 약정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엠바고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부산지법 판결은 엠바고에 관해 국내에서 나온 유일한 판결이다. 부산일보가 항소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는데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엠바고 합의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중대한 사안은 독자적으로 파악을 했더라도 엠바고 여부를 해당 부처에 확인했어야 한다고 본 것은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엠바고 여부를 떠나 국민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구출 작전을 미리 보도한 것이 옳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알권리 침해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기자는 보도유예 요청이 들어올 때 보도를 유예할 필요성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어떤 것의 이익이 더 큰지 면밀히 비교할 필요가 있다.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김수훈 교수는 지난 2000년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안보와의 관계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국가이익과 국가기밀을 어떠한 기준에서 정의하고 판단할 것인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국익과 기밀에 관한 기준은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생각과 주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엇이 국익이고 기밀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정부 혼자서 독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1961년 미국에서는 정부가 엠바고를 요청했다가 후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게릴라전을 펼쳤던 ‘피그만 사태’다. 케네디 정부는 쿠바 침공 작전에 관해 브리핑하면서 사전 보도할 경우 국가이익에 반할 가능성이 있다며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당시 언론은 정부의 엠바고 요청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무리한 작전이었고, 침공은 3일 만에 실패했다. 케네디는 훗날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피그만 작전에 관해 자세히 보도했더라면 미국의 결정적 실수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했다. 국익과 기밀에 대한 판단을 정부 혼자서 독점했기에 발생한 일이다.

정부와 국민 가운데서 양측의 이해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은 언론이다. 양측의 이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도유예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보도유예를 수용하되 나중에 이를 수용한 이유와 범위, 기간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좋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한 가지 유의할 지점이 있다. 보도유예의 실질적 의미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 언론과 실시간 SNS가 활발해지면서 특정 시간 이후에 보도하기로 합의하는 행위가 사실상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별 의미도 없이 관례로 보도유예를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엠바고가 필요 없는 정보도 취재원과 기자단의 편의를 위해 즉시 보도를 선택하지 않고 유예하는 것이다. 엠바고가 일상화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엠바고는 더 큰 이익을 이유로 알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엠바고는 남용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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