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피해의 최소화’ 원칙 우선 고려해야

희생자 실명 공개로 벌어진 찬반 논란

지난달 5일 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이 끝났다. 그럼에도 이태원역 1번 출구를 찾아 애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희생자를 기리는 엄숙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애도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 있었다. 지난 14일 시민언론을 표방한 인터넷매체 <민들레>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155인의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서다. 이 매체는 추모 대상이 익명으로 추상화됐다면서 진정한 애도를 위해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족 동의 없는 일방적인 희생자의 실명 공개는 큰 논란을 일으켰다. 희생자의 실명 공개 논란을 두고 여론은 찬반으로 갈라섰다.

이번 논란은 재난 상황을 신중히 보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언론에 의해 시작됐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동시에 이태원 참사로 언론이 재난보도를 할 때 지켜야 할 윤리적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 되짚고 넘어갈 필요성도 대두됐다.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희생자 실명 공개가 논란이 됐던 이유를 짚어보고 외신은 희생자의 실명 공개를 어떻게 하는지 함께 살펴봤다.

유가족 동의 없이 실명 공개하며 “양해 구한다”

<민들레>는 유가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먼저 공개했다. 유족이 원치 않으면 유족의 의사를 반영하겠다고 했다. 일방적인 발표였던 셈이다. 희생자 실명 공개를 두고 논란이 커지자 이 매체는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개를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10여 명의 이름은 삭제했다. “신원이 특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몇 분 이름은 성만 남기고 삭제했다”고 밝혔다.

<민들레>는 나이, 얼굴 사진과 같은 다른 인적 사항 정보 없이 이름만 공개했기 때문에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명 공개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내놨다. 중앙행정기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개인정보는 ‘살아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이기에 사망자의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 상 개인정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만 사망자에 관한 정보가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라면 유족의 개인정보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간과했다.

<민들레>의 주장처럼 이름만 기재하는 것으로는 피해자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을까? 개인정보보호법에 직접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름’만으로 희생자가 특정될 여지는 충분히 있다. 먼저 실명이 공개된 외국인 희생자의 경우 그들이 누구인지 바로 특정될 수 있다. 실제로 외교부는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 일부 국가 대사관의 항의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구나 유족 동의 없는 실명 공개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언론윤리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일본 NTV의 경우

여기서 외신이 이번 이태원 참사를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보자. 우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월 3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9명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인 희생자 스티븐 블레시(Steven Blesi)의 아버지를 직접 인터뷰했고 그 내용을 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블레시 유족의 동의를 받고 희생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다. 다른 희생자 8명의 이름과 사진도 유족과 지인을 취재해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쳤다. <민들레>가 유족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반적으로 범죄 용의자 등의 이름과 사진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월 31일 이태원 참사를 보도하며 유족의 동의를 거쳐 희생자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0월 31일 이태원 참사를 보도하며 유족의 동의를 거쳐 희생자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했다. 워싱턴포스트 갈무리

일본의 경우는 어땠을까? 이번 이태원 참사의 외국인 희생자 26명 중 두 명이 일본인이다. 두 희생자의 이름도 일본 언론에 공개됐다. 일본의 경우 통상 이런 참사 희생자의 실명을 공개해왔다. 10월 30일 아사히신문은 희생자인 토미카와 메이의 이름과 나이를 공개했다. 다음날 교도통신과 홋카이도신문에도 토미카와 씨의 실명이 공개됐다. 홋카이도신문에는 홋카이도 네무로시 의원인 토미카와 씨의 부친 토미카와 아유무 씨의 사진과 이름도 공개됐다. 일본은 수사기관이나 행정기관 등을 통해 취재원의 실명을 전달받아 보도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이런 언론의 공개방식에 대한 최근 일본의 여론은 탐탁지 않아 보인다.

지난 11월 4일 일본 최대의 민영방송인 NTV는 토미카와 아유무 시의원이 딸 토미카와 메이의 시신과 함께 홋카이도 나카시베츠 공항에 도착한 장면을 영상뉴스로 보도했다. 공항 출입문 앞에서 그가 허리 굽혀 인사하는 장면은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토미카와 아유무 네무로시 의원이 참사로 희생된 토미카와 메이의 시신과 함께 나카시베츠 공항에 도착한 후 취재진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NTV 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토미카와 아유무 네무로시 의원이 참사로 희생된 토미카와 메이의 시신과 함께 나카시베츠 공항에 도착한 후 취재진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NTV 뉴스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이 영상에는 “딸을 잃은 부친의 모습을 시의원이라는 이유로 미디어에 노출하는 것은 지나친 거 같다”, “슬퍼하는 유족을 근거리에서 촬영하는 보도진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현재 일본 미디어의 윤리 수준이다” 등의 의견이 달렸다. 범죄 용의자나 사고 피해자 등의 이름을 모두 공개해온 일본에서도 피해자와 유가족의 신원 공개가 피해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 언론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여론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여론의 변화는 일본신문협회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된다. 일본신문협회는 지난 3월 인터넷 홈페이지에 실명보도에 관한 협회의 입장을 밝혔다. 협회는 지난 2019년 7월 36명이 희생된 교토애니메이션 방화사건과 작년 12월 26명이 희생된 오사카 방화사건을 계기로 희생자의 실명공개 보도에 관한 협회의 견해를 밝힌 것이다. 재난보도를 할 때 희생자와 유가족의 입장을 존중하는 보도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지난 3월 일본신문협회 홈페이지에 실명보도에 관한 협회의 견해가 게재됐다. 일본신문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지난 3월 일본신문협회 홈페이지에 실명보도에 관한 협회의 견해가 게재됐다. 일본신문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협회는 여기서 “실명보도를 절대시하지 않고, 유족의 입장이 존중되어야 하며, 그 필요성을 사건에 따라 판단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리고 “‘(희생자)의 이름을 반복해서 보는 게 고통’이라는 유족의 의견을 존중해, 당초 실명으로 보도됐어도 후에 익명으로 고치는 경우도 있다”며 “현장의 상황을 표현할 때도 유족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말을 피하는 등 실명보도에 관해 계속 검토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참사 희생자의 신분을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켜온 일본 언론의 보도 방식도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관행보다 중시돼야 할 ‘피해의 최소화’ 원칙

희생자 실명 공개를 찬성하는 측은 지난 서해훼리호 침몰(1993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세월호 참사(2014년)의 전례를 거론한다. 이들 참사 때 그랬던 것처럼 피해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희생자 실명 보도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혼란스러운 재난 상황에서 피해 상황을 긴박하게 보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사회적인 애도에 필요하다며 사후에 일괄적으로 명단을 공개하는 것과는 맥락이 다르다. 또한 1990년대에는 사건 사고에서 희생자나 용의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미 그런 관행은 바뀐 지 오래다.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 등에 관한 사회의 인식이 변화한 것이다.

특히 더 이상 관행이라고 할 수 없는 과거 사례를 거론하는 것으로는 최근 ‘피해의 최소화 원칙’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피해의 최소화’는 미국 언론단체들은 물론 국내에서도 언론윤리 규범들이 명시하고 있는 개념이다. 불필요하게 보도 대상이 된 사람들의 피해를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재난과 같은 상황을 보도함에 있어서는 희생자나 유족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원칙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마련된 ‘재난보도준칙’에도 들어있다. 재난보도준칙 제5조에는 “언론의 역할 중에는 방재와 복구기능도 있음을 유념해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제18조와 제19조는 유가족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제18조에는 “취재 보도 과정에서 사망자와 부상자 등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나 희망사항을 존중하고, 그들의 명예나 사생활, 심리적 안정 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특히 제19조는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위 준칙들은 재난 상황의 취재보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피해자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이 유가족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려면 그 이상의 공익적 필요성과 긴급성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민들레>의 일방적인 명단 공개는 참사를 두고 불필요한 논란만 만들었을 뿐이다. 언론이 재난과 관련한 보도를 할 때는 그 보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피해의 최소화’ 원칙에 저촉되지는 않는지 잘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