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1년 퓰리처상 지역보도 부문 수상작 – 주민 괴롭힌 보안관을 추적하다

경찰은 범죄가 일어난 뒤 범인을 찾는다. 이미 벌어진 피해는 회복하기 어렵다. 범인의 꽁무니만 쫓다 보면 누가 언제 범죄를 저지를지 파악해 미리 막고 싶다는 데까지 생각이 뻗을 수 있다. 이런 상상을 영화로 만든 것이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그런데 이 일을 현실에서 이루려다 주민을 감시하고 조직적으로 괴롭힌 경찰이 지역 언론의 탐사보도로 드러났다.

<탬파베이타임스>의 탐사보도팀 캐슬린 맥그로리(Kathleen McGrory)와 네일 배디(Neil Bedi) 기자는 범죄를 예측하겠다며 빅데이터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치안 책임자가 실제로는 권력을 남용해 그저 주민을 괴롭혔다고 폭로했다. 방대한 물증과 증언을 바탕으로 2020년 9월부터 4개월 동안 세 차례 걸쳐 보도된 이들의 기사 ‘타겟티드’(Targeted)는 이듬해 퓰리처상 지역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탬파베이타임스의 탐사보도 ‘타겟티드’의 메인화면. 시리즈 기사와 함께 보도가 영향을 미친 주요 변화, 후속보도 모음을 볼 수 있다.
탬파베이타임스의 탐사보도 ‘타겟티드’의 메인화면. 시리즈 기사와 함께 보도가 영향을 미친 주요 변화, 후속보도 모음을 볼 수 있다.

과학적 치안을 가장한 괴롭힘

문제가 불거진 곳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파스코카운티 보안관실이다. 카운티는 시(city)보다 조금 큰 광역행정 단위로, 보안관은 카운티의 경찰 수장이다. 2011년 취임한 보안관 크리스 노코(Chris Nocco)는 ‘선제적 치안’을 선언하고 ‘정보주도치안’(ILP, Intelligence-led Policing)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과기록을 바탕으로 특정한 알고리즘에 따라 ‘다중범법자’ 점수를 산출해 이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점수는 범죄의 종류와 경중에 따라 다르게 매겼는데, 정식으로 입건되지 않더라도 용의선상에 놓이거나 특이동향 보고서에 이름이 적히기만 해도 점수가 올라갔다. 재판 날짜를 놓쳐 출석하지 않거나 다른 사건의 증인이 돼도, 심지어 피해자가 되어도 점수가 쌓였다.

복잡한 프로그램 이름과 달리 범죄 예방법은 간단했다. 다중범법자 목록에 올라 있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경찰관이 주기적으로 찾아갔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집을 둘러싸고 창문에 손전등을 비춰 내부를 살폈다. 경찰차 대여섯 대를 집 앞에 종일 세워두기도 했다. 

감시 대상자가 집에 없으면 가족이나 친구, 연인을 찾아가 행방을 물었다. 협조하지 않으면 잔디 길이가 길다거나 뒷마당에 닭을 기른다는 등 온갖 트집을 잡아 벌금을 매겼다. 편견을 배제한 객관적 자료와 통계를 바탕으로 첨단 치안을 벌인다고 보안관실은 포장했지만, 실상은 경찰력을 동원해 요주의 인물과 주변인을 통제하는 정책에 가까웠다.

탬파베이타임스가 확보한 보안관실의 보디캠 영상. 경찰관이 손전등으로 집 안을 비춰보고 있다.
탬파베이타임스가 확보한 보안관실의 보디캠 영상. 경찰관이 손전등으로 집 안을 비춰보고 있다.

물증에 기반한 탐사보도

사례 한두 건을 전하며 정황과 의혹을 제기하는 정도로는 탐사보도가 되기 어렵다. 누군가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을 증거에 기반해 폭로한다는 점에서 탐사보도는 다른 보도 양식과 차이가 있다. ‘타켓티드’는 주민 감시와 괴롭힘이 몇몇 경찰관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자행됐다는 사실을 구체적 증거에 기초해 보도했다. 

우선, <탬파베이타임스> 기자들은 변호사의 도움을 얻어 여러 차례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결국 정보주도치안 프로그램의 비공개 매뉴얼, 경찰이 잠재적 범죄자로 분류한 이들의 목록, 이들을 감시하기 위한 순찰 기록, 순찰 현장을 담은 보디캠 영상 등을 받아내 체계적 괴롭힘의 실체를 밝혔다. 특히 매뉴얼에는 보안관실이 주민을 괴롭힌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내용도 있었다. “대상이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 전략은 효과가 없다.”

2015년부터 감시 대상자 목록에 오른 이른바 ‘다중범법자’는 모두 946명이었다. 정보주도치안 프로그램을 도입한 건 2011년부터였지만, 보안관실은 2015년 이전 기록을 내놓지 않았다. 프로그램 운용의 일부 기간인 2015년 이후 자료만 분석했는데도 경찰관들이 표적 감시를 위해 순찰한 횟수가 5년간 1만 250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탬파베이타임스>는 수 시간짜리 보디캠 영상을 보며 의미 있는 장면을 선별해 인터랙티브 기사로도 구성했다. 첫 번째 기사와 같은 날 발표했는데, 기사의 이해를 돕고 현장감을 높이는 보조 기사의 구실을 했다. 영상에는 경찰관이 감시 대상자와 가족에게 온갖 트집을 잡으며 괴롭히는 모습이 담겼다. 한 감시 대상자의 가족은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게 문을 열어주다 문 앞에 서 있던 경찰을 쳤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다.

파스코카운티 보안관실 보디캠에 찍힌 피해자의 영상. 경찰이 나무로 된 문에 맞은 뒤 곧장 감시 표적을 체포하려는 모습이 담겼다.
파스코카운티 보안관실 보디캠에 찍힌 피해자의 영상. 경찰이 나무로 된 문에 맞은 뒤 곧장 감시 표적을 체포하려는 모습이 담겼다.

데이터 분석으로 미성년 피해자 규모 밝혀내

정보공개청구를 통한 취재는 대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제되지 않은 기초 데이터를 정돈하고, 가려진 정보의 조각을 맞추고, 다른 정보와 연결하여 의미를 파악하려면, 여러 차례 정보 공개를 청구하게 된다. 보안관실이 <탬파베이타임스>에 처음 내어 준 정보도 불완전한 것이었다. 감시 대상자의 이름은 있었지만, 언제부터 이들을 감시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기자들은 경찰 감시의 피해자들이 미성년 시절부터 목록에 올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탬파베이타임스>는 주 정부가 가진 전과자 정보를 받아 보안관실에서 얻은 자료와 비교했다. 확인해 보니 보안관실의 감시 대상 목록 가운데 소년범 전과가 있는 사람이 88명이었다. 감시 대상 목록의 10% 가까운 이들이 미성년 시절부터 조직적으로 감시당했을 가능성을 드러내는 데이터였다. 순찰 근무기록과 대조해 보니, 감시 방문이 가장 많았던 상위 20명 가운데 절반이 미성년자라는 점도 드러났다. 

이런 취재를 위해 기자들은 정보공개청구 비용으로만 4500달러(500여 만 원)를 썼다. 그 비용은 탐사보도재단(Fund for Investigative Journalism)의 도움을 받았고, 확보된 자료는 취재팀에 속하지 않은 데이터 전문기자가 참여해 분석했다. 정보공개에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 범죄자 목록도 공적인 정보로 분류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 이를 돕는 공익 재단이 있다는 점은 미국과 한국의 ‘정보공개 제도·문화’의 차이를 드러낸다. 어찌 됐건, 끈질기게 공적 정보를 추적하는 취재 방법은 인상적이다. 

표적 감시 대상에 오른 소년과 그의 가족. 경찰은 감시 활동을  방해하는 듯한 행동을 하면 감시 대상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 체포했다. 탬파베이타임스
표적 감시 대상에 오른 소년과 그의 가족. 경찰은 감시 활동을  방해하는 듯한 행동을 하면 감시 대상자는 물론 그 가족까지 체포했다. 탬파베이타임스

경찰권 남용은 어느 청소년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차량 절도 전과자였던 매튜 롯(Mattew Lott)은 안정된 직업을 가진 뒤부터 진지하게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안관실이 감시를 시작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안하다, 고마웠다’는 유서를 가족에 남겼지만 자살의 명백한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탬파베이타임스>의 기자들은 전문가 3명에게 이 청소년의 ‘심리 부검’을 의뢰했다. 전문가들은 보안관실의 계속된 감시와 범죄자 취급이 소년을 무력하게 만들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성년 피해자 매튜(오른쪽)와 그의 어머니. 탬파베이타임스
미성년 피해자 매튜(오른쪽)와 그의 어머니. 탬파베이타임스

철저하고 충실하고 완전한 반론

증거에 입각한 추적 보도라는 점에 더해, 이 기사의 특징은 반론을 다루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고발 대상의 반론을 많이 소개하면, 고발의 힘이 빠진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기자가 반론을 소극적으로 취재한다. 기사 끝에 반론을 형식적으로 배치하는 일이 많다. 때로는 ‘여러 차례 반론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정도로 갈음한다. 반면 이 기사는 주요 고발 대상인 보안관실의 반론을 기사의 앞쪽에 매우 큰 비중으로 배치했다. 

10개월에 걸친 취재 과정의 마지막 2개월 동안 기자들은 보안관실의 반론에 집중했다. 보안관실은 처음엔 인터뷰를 거절했고, 나중엔 서면으로 답변을 줬다. 질문하고 반론하는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네 차례나 이어졌다. 그 답변의 분량은 모두 합해 서른 쪽이 넘었다. 

보안관실이 내놓은 반론 내용을 보면, <탬파베이타임스>가 보도 취지뿐만 아니라 취재한 내용까지 자세하게 보안관실에 설명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덕분에 반론도 상세해졌다. <탬파베이타임스>는 첫 기사를 보도하면서, 보안관실에 제기한 질문, 그리고 이에 대한 보안관실의 답변을 모두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탬파베이타임스는 파스코카운티 보안관실의 서면답변 전문을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탬파베이타임스는 파스코카운티 보안관실의 서면답변 전문을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세 차례에 걸친 보도 가운데 첫 기사의 분량은 A4용지 20쪽이다. 한국 언론이 내놓는 일반적인 스트레이트 기사가 A4 1쪽(약 1600자) 이내인 점을 생각하면, 방대한 분량이다. 첫 기사에서 보안관실의 반론은 20쪽에 이르는 기사의 세 번째 쪽에 등장한다. 기사의 초반부에 보안관실의 반론을 충분히 보도한 다음, 다시 본격적인 고발 기사가 이어진다. ‘문제 제기-반론-반론에 대한 반박’의 흐름으로 기사를 구성한 것이다. 

익명 취재원은 버리고 오직 실명 취재원만 

보안관실이 반론한 내용의 핵심은 이른바 ‘정보주도치안’ 프로그램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경찰 활동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다시 반박하는 대목에서 등장하는 취재원은 20명이 넘는다. 전직 경찰관 4명, 피해자 9가구, 전문가 5명, 다른 지역 카운티의 보안관과 보호관찰당국 대변인 등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 이름을 밝혔다. 기자들이 만난 이들은 전직 경찰관 6명, 피해자 21가구, 전문가 15명 등이었는데, 실명 인용을 거절한 이는 아예 기사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실명으로 인터뷰한 이들의 증언은 보안관실의 반론과 달랐다. 어느 전직 경찰은 “‘삶을 비참하게 만들어라’, ‘이사 가고 싶게 만들어라’ 같은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어느 피해자는 괴롭힘을 피하려고 가족의 거처를 모텔로 옮겼고, 얼마 뒤 다른 카운티로 이사 갔다고 증언했다. 강압적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경찰관들은 주거지와 먼 곳으로 근무지가 발령되는 등 불이익을 받았다.

탬파베이타임스가 실명으로 인용한 전직 경찰관들. 이름과 얼굴을 밝힌 이들의 인터뷰가 권력자와 시스템을 고발하는 탐사보도의 중요한 증거가 됐다.
탬파베이타임스가 실명으로 인용한 전직 경찰관들. 이름과 얼굴을 밝힌 이들의 인터뷰가 권력자와 시스템을 고발하는 탐사보도의 중요한 증거가 됐다.

또한, ‘타겟티드’는 원천정보에 최대한 접근한 기사다. 정보공개를 청구해 핵심 물증인 ‘문서’를 받아내고, 피해자들과 전직 경찰관들의 실명 인터뷰로 ‘당사자’의 증언을 확보했다. 보디캠 영상을 통해 기자들이 목격하지 못한 ‘현장’까지 확인했다. 현장, 사람, 문서 등 원천정보의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라도 없었다면 고발하는 힘은 약해졌을 것이다.

보도 이후 플로리다주 의회는 정보주도프로그램으로 주민을 감시할 수 없게 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연방정부 법무부는 파스코카운티의 프로그램이 적절한지 검토에 나섰다. 인권단체와 피해자들은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크리스 노코 보안관을 고발했다. 

크리스 노코 파스코카운티 보안관. “하나가 되어 싸운다”(We Fight As One)는 선전 구호가 그의 뒤편에 적혀 있다.  탬파베이타임스
크리스 노코 파스코카운티 보안관. “하나가 되어 싸운다”(We Fight As One)는 선전 구호가 그의 뒤편에 적혀 있다.  탬파베이타임스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탬파베이타임스>는 퓰리처상을 가장 많이 받은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전신인 <세인트피터즈버그타임스>에서 2012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는데, 그 뒤로 올해까지 10여 년 동안 퓰리처상을 6차례나 받았다. 최종 후보작에도 그만큼 자주 이름을 올린다. 

<탬파베이타임스>는 지역신문이지만 탐사보도를 간판 뉴스로 내세우고 있다. 비영리 언론 교육기관이자 저널리즘 연구기관인 포인터연구소가 소유하고 있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겟티드’를 보도한 캐슬린 맥그로리와 네일 배디 기자는 퓰리처상 수상 이후,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로 자리를 옮겼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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