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 위장 취재, 위법하지 않아도 윤리적 문제 따져 봐야

대부업체에 취업한 기자

지난달 31일 한국기자협회가 한겨레의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연재 보도를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기자협회보는 지난달 27일 기사에서 이 기사가 ‘청년의 빚에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지난 7월 금융위원회가 ‘청년특례 채무조정 제도’를 1년 동안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도덕적 해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한겨레 기자 4명은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될 저신용 청년들 대부분이 실제로 빚내서 투자한 이들인지 알아보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기사에서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출처 한겨레
한겨레는 기사에서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출처 한겨레

취재 과정에서 한겨레 탐사기획팀 소속 김지은 기자는 대부업체에 취업해 3주 동안 추심 업무 상담사로 일했다. 한겨레는 “청년 부채 문제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대부업체 취업을 취재 방법으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에는 기자가 추심 업무 상담사로 일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가 나온다. 기사에 인용된 취재원들의 말은 추심 업무 상담사로 ‘위장’한 기자에게 한 말이다.

논란이 된 위장 취재

취재 과정에서 기자라는 신분을 숨기는 것을 ‘위장 취재’(undercover newsgathering)라고 한다. 기사에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고 일시적으로 취업을 하거나 기자가 아닌 다른 신분을 사칭하는 것도 위장 취재에 포함된다. ‘푸드 라이언 대 ABC 방송’ 사건(The Food Lion v. ABC)은 위장 취재의 대표적인 사례다. 1992년 11월 ABC 방송의 기자 2명이 식료품 가맹점 푸드 라이온에 취업해 유통기한이 지난 육류를 재가공해 판매하는 현장을 몰래카메라에 담아 보도했다. 취업 과정에서 기자들은 이력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하고 기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숨겼다.

사회의 비리와 부조리를 폭로해 퓰리처상 후보에 올랐지만 위장 취재 방식이 문제가 돼 끝내 수상하지 못하게 된 사건들도 있다. 1979년 퓰리처 위원회는 ‘시카고 선타임스’(Chicago Sun-Times)의 “미라지”(Mirage) 연재 보도를 지역 보도 부분(special local reporting award) 후보로 지명했지만, 나중에 언론사가 술집을 열어 기자를 종업원으로 위장 취업시킨 취재 과정을 문제 삼았다. 1982년엔 ‘로스앤젤레스 헤럴드 이그재미너’(Los Angeles Herald Examiner)의 캘리포니아 의류 산업에서 벌어진 불법 이민자 착취 고발 보도를 공공 서비스(public service) 부문 후보로 지명했지만, 기자가 불법 이민자로 가장하고 의류 회사에 위장 취업한 것을 문제 삼았다. 두 보도 모두 끝내 퓰리처상을 받지 못했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미라지” 보도가 위장 취재를 이유로 퓰리처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1979년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Columbia Journalism Review)가 이를 다뤘다. 출처 콜롬비아대학
시카고 선타임스의 “미라지” 보도가 위장 취재를 이유로 퓰리처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1979년 “콜롬비아 저널리즘 리뷰”(Columbia Journalism Review)가 이를 다뤘다. 출처 콜롬비아대학

“언론, 법 어기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업무 수행 가능”

1992년 ABC 방송의 보도 이후, 푸드 라이온의 주가는 10% 이상 폭락했다. 푸드 라이온은 1995년 7월 연방법원에 ABC 방송을 상대로 사기, 무단침입, 충실의무위반 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996년 12월 배심원단은 ABC 방송의 사기와 무단침입, 충실의무위반을 인정했다. 배심원단은 ABC 방송이 푸드 라이온에 사기에 대한 손해배상금 1400달러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550만 달러, 덧붙여 무단침입과 충실의무위반에 대한 명목적 손해배상금 각각 1달러씩을 책정했다. 판사는 손해배상액 산정이 지나치다고 판단해 배상금을 31만 5000달러로 감액했다.

그런데 1999년 항소법원은 푸드 라이온이 주장한 사기는 인정하지 않았고 ABC 방송의 무단침입과 충실의무위반 책임만 인정했다. ABC 방송의 기자들이 이력서에 허위 정보를 기재하고 정보를 누락한 것과 푸드 라이온이 피해를 본 것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ABC 방송은 단돈 2달러의 명목적 손해배상금만 지급하는 것으로 사건이 종결됐다. 

배상금이 31만 5000달러에서 2달러로 줄어든 것만 보면 법원이 마치 전적으로 ABC 방송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ABC 방송 취재의 불법성을 인정했다. 푸드 라이온은 일하지 않을 ABC 방송 기자를 뽑고 교육하느라 손해를 봤고, 또한 기자들을 직원으로 고용한 것이지 매장 내 비공개 구역에서 영상을 촬영하도록 허락한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항소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를 들어 무단침입과 충실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 달라는 ABC 방송의 요청을 1심 법원이 거부한 것이 정당하다고 봤다. 충실의무와 무단침입금지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률로서 언론에만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항소법원은 “언론은 그런 사소한 불법행위들을 저지르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the media can do its important job effectively without resort to the commission of run-of-the-mill torts)고 지적하기도 했다.

위법성 가르는 ‘피해 여부’와 ‘수단의 상당성’

1994년 ‘CBS 방송 대 데이비스’(CBS Inc. vs. Davis) 판례에서 연방항소법원은 보도 내용이 진실하고 공익적이라면 불법적으로 취재한 것이라도 공표를 금지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보도 여부와 상관없이 취재 과정의 위법성은 별도로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위법성은 피해 발생 여부로 판단했다. ‘푸드 라이온 대 ABC 방송’ 사건 1심에서 사기가 인정된 것도 재판부가 푸드 라이온이 불필요한 사람을 고용해 피해를 봤다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푸드 라이온이 불필요한 고용과 피해의 인과를 입증하지 못해 항소법원에선 손해배상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장 취재에 대해 국내에서도 몇 가지 판례들이 나와 있다. 구치소 수용자를 취재하려고 수용자의 지인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접견을 신청해 구치소 안에서 대화를 촬영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해당 프로그램의 PD와 촬영감독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신분 위장과 촬영이 교도관의 직무 집행을 방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수용자와 접견인의 관계는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촬영 장비를 가지고 들어간 것이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실질적인 피해가 없지만 수단의 상당성을 인정받지 못해 처벌받은 위장 취재 사례도 있다. 지난 2007년 당시 MBC 김세의 기자는 충남 계룡대 안에 있는 불법 유흥주점 운영 실태를 확인하려고 지인으로부터 임시출입증을 얻어 초소를 출입했다. 취재 내용은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됐다. 군검찰은 김 기자를 군 형법상 초소침범 혐의로 기소했다. 고등군사법원은 2008년 11월 “충분히 정상적 출입절차를 통해 계룡대에 출입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계룡대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수단의 상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2009년 8월 대법원은 ‘징역 1년에 선고유예 2년’을 선고한 고등군사법원의 판결을 확정했다.

공익성과 불가피성, 피해 여부에 따라 위장 취재는 위법한 것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위장 취재에 신중해야 하는 까닭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2005년 논문에서 지상파 방송 3사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추적60분>, <PD수첩>, <그것이 알고싶다>를 상대로 한 35개의 법적 분쟁 사례를 분석했다. 법원은 탐사 보도의 목적과 취재 내용의 공공성·진실성은 인정하면서도 취재 과정의 위법성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적 책임을 요구했다. 오대영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재작년 한 강연에서 “한국 법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언론의 비윤리적이거나 위법적인 취재 방법은 금지한다”고 말했다.

“정직하지 못한 신문이 정직을 위해 싸울 수 없다”

이창근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명예교수는 1999년 논문에서 위장 취재는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남을 속인다는 측면에서 윤리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짓말에 의한 신분 위장과 몰래 촬영은 공동선적 관점에서 인격체로서 취재원을 기만한다는 점에서 원초적으로 비윤리적이며 정당화하기 힘든 행위”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정당화는 도덕적 질책에서 면책을 구하는 것이지 기자의 윤리적 부담 또한 면제되는 건 아니라면서도, 위장 취재를 정당화할 수 있는 조건 4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취재 사안이 공적으로 중요한 관심사여야 한다. 타블로이드 저널리즘이 선호하는 단순 흥미 위주의 사안은 공적으로 중요한 관심사로 보기 어렵다. 사회의 원활한 기능을 위해 대중이 반드시 알 필요가 있는 사안일 때 위장 취재도 정당화할 수 있다.

둘째 혐의를 입증할 수 있고 공익이 피해보다 크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위장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 취재진은 위장 취재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혐의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2009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기만 취재의 일종인 ‘몰카’ 취재에 대해 “몰카 취재를 우선 해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비리가 밝혀지는 것을 조건으로 용서한다는 것은 몰카 취재를 일종의 ‘로또’로 만드는 괴상한 법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공익이 위장 취재로 취재원이 입을 수 있는 피해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는 확신도 필요하다.

셋째 대안적 취재 방법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기만 취재는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정당화할 수 있다. 이 교수는 미국 언론학자 램버스(Edmund B. Lambeth)의 말을 빌려 “기만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내와 상상력, 결연한 의지 그리고 노련미’가 있다면 웬만한 기삿거리를 보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자가 더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취재할 수 있다면 기만 취재도 먼저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반론에 “효과적인 기사 전달이라는 저널리즘적 가치를 위해 취재원의 인권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비판했다. 언론이 민주와 자유 같은 가치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취재 방법도 이러한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공개적 논의를 거쳐야 한다. 이 교수는 “언론은 궁극적으로 그 정당성을 독자 앞에서 공개적으로 옹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논의는 사내외에 그쳐선 안 된다. 독자들에게도 “보도 내용과 더불어 취재에 활용된 기만적 방법이 제기하는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다뤘는지, 그리고 그러한 기만적 취재 방법이 왜, 어떻게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공개적 논의가 위장 취재를 윤리적으로 신중하게 고려하게 할 뿐만 아니라 “언론에 대한 독자들의 불신과 질타를 최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했다.

한겨레의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시리즈에서 기자의 위장 취재가 대부업체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위장 취재가 불가피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해당 연재 보도에는 19~36살 청년 16명의 인터뷰 내용이 나온다. 또 주빌리은행과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등의 도움을 받아 ‘청년 시절 진 빚으로 고통받아온 중장년 5명’의 이야기도 취재했다. 추심 업무 상담사로 위장 취업을 하지 않았더라도 유관 단체의 도움을 받고 확보한 취재원과 인터뷰해 청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포스트 전 편집국장이자 편집인 벤 브래들리는 1974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 전 편집국장이자 편집인 벤 브래들리는 1974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워싱턴 포스트

1979년 “미라지” 보도가 논란이 됐을 때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편집국장이자 편집인이었던 벤 브래들리는 “신문 자체가 기사를 얻는 데 정직하지 못한데 어떻게 정직과 청렴을 위해 싸울 수 있겠는가? 경찰이 신문기자로 가장하기를 원하는가?”라고 말했다. 위장 취재가 윤리적인 취재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장 취재가 손쉬운 취재 방편으로 여겨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