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6년 퓰리처상 피처 기사 수상작 – 아주 큰 무언가

“북극곰이 살고 있는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다룬 기사에 쓰이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기사만이 아니다. 영상물에도 이를 다룬 내용은 빠지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표현이자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내 옆에서 발생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독자와 시청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못 느끼게 만든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국내 기후변화 보도의 현황과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기후위기 보도가 수용자로 하여금 기후위기를 ‘당장 나에게 중요한 문제’로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재난을 소재로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심어준 기사가 있다. 2016년 퓰리처상 피처 부문 수상작인 ‘아주 큰 무언가'(The Really Big One)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을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죽어간 삼나무가 전하는 쓰나미의 경고

<The Really Big One>은 2015년 7월,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캐서린 슐즈(Kathryn Schulz) 기자가 태평양과 면한 미국 북서부 지역의 대형 지진 가능성을 과학 개념과 역사적 사실 등을 바탕으로 설명한 기사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해당 보도를 ‘환경 보도의 걸작’이라고 평했다.

기사는 2011년 3월 일본 가시와 시에서 열린 지진학 국제회의장을 비추며 시작한다. 지진을 연구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열렸던 이 시기에 역사적 비극이 발생했다. 지진 해일(쓰나미)이 가시와 시에서 320여 킬로미터(km) 떨어진 도호쿠 지방을 덮쳤다. 회의장에 있던 학자들은 지속 시간이 길어지는 진동을 느끼며 그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진동은 4분 넘게 이어졌다. 유례없는 강도인 규모 9.0의 지진은 쓰나미로 이어져 일본 북동부를 강타했다. 1만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인 도호쿠 지역에 진도 9 이상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했다. 1만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참사도 일어났다. 출처 KBS 유튜브 채널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인 도호쿠 지역에 진도 9 이상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그 여파로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했다. 1만 8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참사도 일어났다. 출처 KBS 유튜브 채널

이 비극은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태평양과 인접한 미국 북서부 지역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기사는 이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지질학적 지식을 가져온다. 미국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는 캐스캐디아 섭입대(Cascadia subduction zone)가 있다. 섭입대는 한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아래로 밀려들어 가며 만들어지는 곳이다. 이 섭입대를 따라 지진과 마그마 등이 발생한다. 캐스캐디아 섭입대의 경우 지구에서 가장 작은 지각판 가운데 하나인 후안 데 푸카 판(Juan de Fuca Plate)이 북아메리카판(North American Plate) 아래로 들어가면서 생겼다.

캐스캐디아 섭입대(Cascadia subduction zone)는 미국 북서부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지진과 지진해일이 발생하면 13,000여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출처 PBS 유튜브 채널
캐스캐디아 섭입대(Cascadia subduction zone)는 미국 북서부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져 있다. 이곳에서 지진과 지진해일이 발생하면 13,000여 명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출처 PBS 유튜브 채널

문제는 해당 섭입대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이 최근에야 알려졌다는 것이다. 기사는 그 역사적 흐름에 주목한다. 1700년까지 1만여 년 동안 모두 41차례의 섭입대 지진이 발생했다. 약 243년을 주기로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 주기는 만 년에 걸친 평균값이므로 243년마다 한 번씩 반드시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소의 오차를 두고 주기적으로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은 분명했다. 기사가 쓰인 2015년은 마지막 지진이 발생한 1700년으로부터 315년이 지났던 때였다. 심각한 문제가 여기 있다. 캐스캐디아 섭입대 주변 도시들은 지진, 나아가 쓰나미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고 기사는 지적하고 있다.

3만 4500채의 집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The Really Big One>은 과학 기사다. 동시에 재난 기사다. 기사는 대지진의 위험성을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런 위험에 대비하지 않은 도시의 현실을 드러낸다. 지진이 발생하면 지진파 이전에 압축파(compressional wave)가 발생한다. 압축파는 지진파보다 60~90초 앞서 주변에 퍼진다. 이런 압축파를 감지하면, 1분에서 1분 30초 동안 긴급 대피가 가능하다. 그래서 지진 위험 지역에는 압축파를 감지하는 센서를 설치한다. 그런데 미 북서부 지역에는 압축파를 센서로 감지해 주변에 대피 신호를 보내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 없다.

오리건주 지진 광물 사업부(Oregon Department of Geology and Mineral Industries)에 따르면, 이 지역 건물 가운데 75%는 캐스캐디아 섭입대 진동을 견디게끔 설계되지 않았다. 지진이 발생하면, 이곳의 전력망은 붕괴하고 수많은 건물이 무너질 것이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시는 지진 발생 시 시의 모습을 담은 시뮬레이션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영상은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개인이 입는 피해는 더욱 처참하다. 시뮬레이션 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는 경고한다. 지진이 발생하면 포틀랜드 시에서만 3만 4500명이 거주하는 가옥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재앙은 지진에 그치지 않는다. 기사 속 표현에 따르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장에 없어야 한다”(The only likely way to outlive one is not to be there when it happens)는 쓰나미가 곧이어 지역을 덮치기 때문이다. 1995년 이후로 오리건주는 홍수 지역에 병원, 학교 등을 세우지 못하게 했으나, 규제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해서는 따로 제재하지 않는다. 또한 해안가에 사는 주민 중 노인의 거주 비중이 높아 취약계층의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기사는 경고한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캐서린 슐즈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한 계기를 소개했다. 자신의 가족이 해당 지역에 살고 있고, 오리건주에 위치한 포틀랜드에 자신이 거주한 경험도 있다고 했다. 지역의 상황에 비교적 익숙했던 기자는 2013년, 포틀랜드시의 정책에 깊게 관여하는 사촌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처음 캐스캐디아 섭입대에 대해 알게 됐다. 지진과 쓰나미로 지역이 겪을 위험성을 인지한 그는 변화를 가져오고 싶었다. 기사를 통해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길 바랐다.

이해하기 쉬운 재난 기사는 왜 필요한가

'The Really Big One'을 통해 캐서린 슐즈 기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명했다. 대지진이라는 재해에 대비할 것. 이를 위해 그는 ‘이해하기 쉬운 재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퓰리처 위원회가 그의 기사를 ‘우아한 과학적 서술'(elegant scientific narrative)이라고 평한 이유다. 출처 2016 Pulitzer Prizes.
'The Really Big One'을 통해 캐서린 슐즈 기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명했다. 대지진이라는 재해에 대비할 것. 이를 위해 그는 ‘이해하기 쉬운 재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퓰리처 위원회가 그의 기사를 ‘우아한 과학적 서술'(elegant scientific narrative)이라고 평한 이유다. 출처 2016 Pulitzer Prizes.

캐서린 슐즈는 과학 전문기자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학문과 저널리즘을 경험해 온 저널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1996년 브라운대학교에서 미술사(Arts in history)를 전공했고, 졸업 후 가족을 따라간 칠레에서 <산티아고 타임스>(Santiago Times) 기자로 일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기후변화 비영리 미디어인 <그리스트>(Grist)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5년 <뉴요커>에 합류한 뒤에도 미국 와이오밍주에 이주한 초기 무슬림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등 과학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룬 커리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은 캐서린 슐즈로 하여금 ‘쉬운 과학기사’를 쓸 수 있게 한 강점이 됐다.

이 기사는 전문적 지식을 많이 담았다. 그러나 친절하다.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독자를 돕는 시도가 곳곳에 담겨있다. 그런 시도를 <뉴요커>에서 도모했다는 것이 더 인상적이다. <뉴요커>는 전통적으로 사진을 잘 싣지 않는다. 그래픽을 쓰는 일도 거의 없다. 오직 문장만 적는다. 어려운 개념과 복잡한 수치를 많이 사용하는 과학 기사를 쓰기에 최악의 매체라고 평해도 좋을 정도다. 캐서린 슐즈는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림으로 보여주는 대신, 독자의 양손을 이용한 묘사를 문장에 담아 지각판의 충돌을 설명했다. 양손을 두 개의 판이라고 가정하고 부딪히고 꺾는 움직임을 설명해 지진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독자에게 더 친근하게 전달한 것이다.

<The Really Big One>을 읽은 대다수의 독자는 ‘생생함’을 기사의 장점으로 꼽는다. 그 생생함은 마치 내가 곧바로 겪을 것만 같은 두려운 감정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캐서린 슐즈는 기사의 목적이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진에 대비되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진실로 두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진과 쓰나미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과학적 보도로 전달한 이 기사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언론인들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을 막으려면, 독자가 오감으로 절감할 수 있는 기사를 언론이 보도해야 한다. 오리건주의 가정집 유리 창문이 요동치는 장면을 상세히 묘사한 슐즈처럼, 북극곰의 이야기 대신 당장 내일 자신이 일상에서 겪게 될 위험을 보여주는 보도가 필요한 것이다. ‘쉽게 쓰는 기사’는 언제나 필요하다. 기후위기의 시대, 그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기사는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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