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브로커'

2010년 서울시 관악구의 한 교회가 ‘베이비박스’를 만들었다. 외부에서 내부로 연결된 통로에 공간을 만들어 차가운 바닥 대신 따뜻한 실내에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게 했다. 유기된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도록 한 다소 모순적인 공간. 이곳에 온 아이들은, 아니 놓인 아이들은 다시는 보호자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를 두고 간 보호자는 어린아이의 품속에 편지를 넣어두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우성아 미안해, 꼭 데리러 올게.” 아이에게 돌아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보호자들. 영화 <브로커>는 이 편지에 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놓고 간 아이를 몰래 빼돌려 입양시키려는 입양 브로커 상현, 동수와 아이를 버리면서도 지키고 싶은 엄마 소영, 그리고 이들을 쫓는 경찰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 CJ ENM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박스에 놓고 간 아이를 몰래 빼돌려 입양시키려는 입양 브로커 상현, 동수와 아이를 버리면서도 지키고 싶은 엄마 소영, 그리고 이들을 쫓는 경찰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 CJ ENM

입양 브로커와 함께 '내 아이'를 팔다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브로커>는 2018년 <어느 가족>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이다. 영화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간 소영(이지은 분)이 ‘버려진’ 아이들을 몰래 입양시키는 브로커 상현(송강호 분)과 동수(강동원 분)를 만나 자신의 아들을 입양할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담아낸다. 저명한 일본 감독과 한국 제작진,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폐막한 제75회 칸 영화제에서는 상현 역을 맡은 송강호 배우가 한국 배우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극은 초반에 빠르게 진행된다. 소영은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간 자신의 아들 우성(박지용 분)이 베이비박스를 관리하는 보육원에 없고 상현의 집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보육원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을 빼돌려 온 ‘입양 브로커’ 상현과 동수는 소영과 삼자대면을 한다. 상현은 경찰에 신고하려는 소영을 막으며 제안을 한다. 경북 영덕에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데, 1천만 원의 사례금을 받아 나눠주겠다고. 소영은 상현과 얼굴을 마주한 채 답한다. “언젠데 출발이.” 다음 날 세 사람과 우성은 트렁크 문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승합차를 타고 ‘버려야 끝나는’ 여행을 떠난다.

소영은 우성을 버리기 위해 왔지만, 자신의 아이를 두고 흥정하는 무례한 ‘거래자’ 앞에서 분노한다. ⓒ CJ ENM
소영은 우성을 버리기 위해 왔지만, 자신의 아이를 두고 흥정하는 무례한 ‘거래자’ 앞에서 분노한다. ⓒ CJ ENM

협상은 위기를 맞는다. 영덕에서 만난 예비 양부모는 우성이를 보자마자 상현에게 따지듯 묻는다. 사진과 얼굴이 다르고, 눈썹도 너무 옅지 않냐며 아이의 외모를 지적한다. 그러고는 아이 아빠가 누구인지 묻더니 ‘입양 사례비’를 흥정하기에 이른다. 1천만 원은 너무 많으니 400만 원은 어떤지, 그리고 12개월 할부는 되는지. 상현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소영은 분노에 가득 차 상현과 동수가 ‘고객’이라 부르는 그들에게 달려든다. 그들은 욕설을 퍼붓는 소영에게 무례하다고 말하고, 소영은 답한다. “넌 정중하냐.” 역광이 비친 소영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 가려진 소영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다.  

상현에 따르면 브로커들의 불법 행위는 ‘선의’다. 버려진 아이와 아이를 원하는 사람을 이어주는 큐피드라고도 했다. 영덕에서 첫 거래가 불발된 뒤 네 사람은 다시 또 다른 ‘선의’를 실행하기 위해 떠난다. 그 뒤에 검은색 승용차가 따라붙는다.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이들을 인신매매하는 용의자들을 쫓는 여성청소년계 팀장 수진(배두나 분)과 이 형사(이주영 분)다. 경찰은 브로커들을 잡으려고 하고, 브로커와 소영은 최적의 조건에 아이를 넘기려 애쓴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소영에게 따로 접근해 설득하기도 하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자신들의 입으로 전하기도 한다. 아이의 몸값을 두고 “근데 좀 싸지 않냐”라고 말하는 식이다. 경찰이 브로커를 쫓는 과정에서 전하는 말들은 관객들이 브로커와 소영에게 느끼는 거부감을 대신 내보이기도 하며 거리감을 좁혀주는 역할을 한다.  

아이를 팔아야만 이어지는 가족의 여정

영화는 아이를 팔아넘기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만나면 안 됐을 사람들이 만나서 유대감을 나누는 지점들도 세밀하게 그려낸다. 우선 세 사람의 관계부터 독특하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같이 다닐 수 없는 사이다. 영덕을 지나온 세 사람은 동수가 어린 시절 살았던 보육원에서 하루를 묵는다. 그곳에서 소영과 상현은 부부 행세를 하고, 우성은 그들의 아들이 된다. 보육원에서 떠나오던 날에는 “나도 입양시켜줘”라고 노래를 부르던 해진(임승수 분)이 승합차 뒤에 숨어있다가 남은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해진은 우성의 형이었다가 상현의 아들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잠깐 가족이 됐다가 다시 브로커 동지가 되는 순간들의 합은 이들의 유대감을 서서히 만들어간 원동력이 됐을지도 모른다.

해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미묘한 네 사람의 관계에 모호함을 더해준다. 이들은 때에 따라 거짓말을 하며 일시적인 ‘가족 행세’를 반복하고, 작은 유대감들을 쌓아간다. ⓒ CJ ENM
해진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미묘한 네 사람의 관계에 모호함을 더해준다. 이들은 때에 따라 거짓말을 하며 일시적인 ‘가족 행세’를 반복하고, 작은 유대감들을 쌓아간다. ⓒ CJ ENM

얼핏 보면 이들은 가족 같다. 상현과 동수는 아이에게 더러운 것이 묻을까, 목욕할 때 불편하진 않을까 애지중지 대한다. 하지만 여전히 둘은 비즈니스 관계다. 아이를 넘기고 사례금을 받아 이득을 취해야 하는 브로커와, 아이가 사라져야 하는 의뢰인의 관계. 이 지점에서 상현과 동수가 우성을 아끼는 모습은 상품을 관리하는 마케터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에게 우성은 비즈니스에 필요한 일종의 ‘상품’이다. 잘 관리돼야 팔리고, 반품되지 않기 때문에 아이의 상품 가치를 잘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가족 같지만, 가족 같지 않은 이 비즈니스 관계는 끊임없이 거래처를 찾게 만들고, 이들의 여정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내 진짜 이름을 밝히는 순간

여정은 계속 이어진다. 이들은 자연스레 마음을 터놓고, 관계에도 진전이 생긴다. 하지만 그 진전은 급작스레 이뤄지지 않는다. 하나하나 차분히 열려간다. 그중 하나가 ‘이름’이다. 해진을 포함한 다섯 명이 처음으로 승합차를 타던 날, 소영은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힌다. 이전까지 상현과 동수에게 ‘선아’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했는데, 이는 옆집에 사는 짜증 나는 아줌마의 이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름을 밝히며 서로 간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름은 캐릭터 간의 이미지나 메시지를 연결한다. 이를테면 동수와 우성은 행복과 희망을 찾아 멀리 가려는 이미지로 연결된다. 동수는 영덕을 거쳐 하루 묵은 보육원에서 떠나기 전날 밤, 보육원에서 같이 지낸 동생과 대화를 나눈다. 밤이 되기 전 어둑어둑해진 저녁 지평선을 배경으로 두 사람은 맥주캔으로 축구를 한다.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장면에서 동수의 친구는 동수에게 부탁한다. “형은 저 멀리 가라. 형이 애들한테 유일한 희망이니까.” 멀리 가야 한다는 이미지는 영화 후반부에서 서울에 있는 거래자를 찾기 위해 다섯 사람이 기차를 타는 장면과 연결된다. 해진이 우성이의 이름 뜻을 소영에게 묻는다. “날개 우, 별 성. 멀리멀리 갔으면 좋겠어.” 보육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입양을 거부해 온 동수와, 입양을 기다리는 우성이 목적지는 모르나 ‘멀리멀리 갔으면’ 하는, 떠나보내는 이의 욕망이 담겨 있다.

이들을 가족이라 부르긴 어렵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족으로 보이는 건, 결국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동수는 해진을 포함한 다섯 명이 마지막으로 떠난 월미도 여행에서 우성을 품에 안은 채 소영과 대관람차를 탄다. 그 안에서 동수는 소영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소영이 우성을 버리는 데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듯, 자신의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라고. 그렇게 동수는 자신도 용서하게 됐다고 덧붙인다.

동수역을 맡은 강동원은 지난 8일 관객과의 만남 자리에서 소영에게 동수의 어머니를 투영시켰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겠다’는 편지 하나 두고 떠난 어머니가 떠올라 같은 행위를 한 소영에게 처음에는 적대적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을 지닌 소영을 이해하게 되고, 마지막엔 그를 용서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소영과 동수는 아이를 버리고 싶지 않은 엄마, 버려지고 싶지 않았던 아이의 마음을 서로 이해하게 되면서 새로운 의미의 가족으로 진화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섯 명이 함께한 월미도 여행. 그들은 결국 아이를 버리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들이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직시하지 못했던 내면의 상처들이 아닐까. ⓒ CJ ENM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섯 명이 함께한 월미도 여행. 그들은 결국 아이를 버리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들이 버리려고 했던 것은 아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직시하지 못했던 내면의 상처들이 아닐까. ⓒ CJ ENM

그들은 무엇을 버리려고 했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8일 관객과의 만남 마무리 발언에서, 자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생각하는 것은 ‘회색빛의 그라데이션’이라고 했다. 세상을 흑백으로 양분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인물과 어떤 사건도 흑백 양극단으로 묘사하지 않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버리려는 소영도, 팔아넘기려는 브로커들도, 입양을 당하고 싶어 하는 해진도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다만, 감독이 말했듯 이들은 ‘회색빛의 그라데이션’ 속에 놓여 있다. 무책임하지만 때로는 책임감이 있고, 무정하지만 때로는 정을 베푼다. 그렇게 그들이 단순히 이해받고 싶고, 이해하려는 사람에 불과함을 관객들이 느끼면서 감독의 그라데이션은 완성된다.

영화는 ‘버리면서’ 마무리된다. 소영이 성 매수자였던 우성의 친부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경찰에 자수하면서 일명 ‘거래’ 장소에 있던 동수가 인신매매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아이를 버리려던 소영이 자신을 도와주던 브로커들을 버린 것이다. 하지만 동수는 소영의 탓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후련한 표정이다. 그리고 경찰에게 묻는다. 소영이는 괜찮냐고.

브로커와 소영, 우성 그리고 해진의 만남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아이를 버리려고 만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것을 버렸다. 아이를 낳았다는 죄책감, 보호자에게 버려진 상처, 스스로에 대한 미움을 그들은 각자 서로를 통해 이해하고 결국 버렸다. 다섯 명이 불 꺼진 모텔방에 누워 마치 의식처럼 건넨 말이 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어둠 속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이 얻어낸 가장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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