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교수와 <한겨레> 출신 고나무 작가의 동명 논픽션 르포를 원작으로 한다. 한국형 프로파일링의 태동기를 담은 범죄 수사 드라마로,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살인 사건이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됐다. 드라마는 한국 경찰 첫 프로파일러이자 범죄행동분석팀장을 역임한 권일용 교수를 모델로 한 송하영(김남길)의 작업을 통해 ’악의 심리’를 읽는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보여준다. 신예작가인 설인아 작가는 실존 인물과 사건이 주는 현실감에, 캐릭터의 개인사를 촘촘히 더해 프로파일러의 탄생 과정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 한국형 프로파일링의 탄생을 다룬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범죄자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범죄가 탄생한 사회적 배경에 주목한다. ⓒ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여타 범죄 수사물과 달리 범죄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드라마는 범죄자에게 과도한 서사를 부여하는 것을 지양한다. 범죄자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도가 넘은 서사를 부여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대사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인간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일탈과 실수를 경험한다. 그러나 모두가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악의 마음을 읽어내는 프로파일러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시대가 낳은 괴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나누는 작은 관심과 위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올리게 한다. 대다수 범죄는 무관심과 소외가 빚어낸 사회적 범죄이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 최초의 프로파일러

범죄 수사 분석팀이 연쇄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한 2000년은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조차 낯선 시대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이미 하고 있는 나쁜 일을 계속하는 게 더 쉬워요.”

▲ 범죄자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사건 당시의 범죄자의 관점으로 현장을 봐야 한다.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 범인은 왜 살인을 저질렀나 그 심리를 파악하고자 골몰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는 송하영은 늘 전력을 다하며 프로파일러로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 SBS

지금에야 사람들이 프로파일링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만, 경직된 경찰 조직 내에 처음으로 새로운 수사방식을 도입하고, 부처와 사람과 예산을 투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대에 낯선 것은 끊임없이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기에 범죄 수사분석팀은 늘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렇게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길을 가며 송하영은 프로파일러로 조금씩 성장해나간다.

“수사관은 발자국 모양을 보고, 프로파일러는 발자국이 난 방향을 본다.”

프로파일링은 첫째로 범인을 잡는 데 필요하다. 현장의 증거를 기반으로 용의자의 생김새와 직업, 성격을 추측해낸다. 하지만 범인이 잡힌 이후에도, 프로파일러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범죄로 인한 고통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범인의 심리를 분석하고 범죄자 심리분석 보고서를 남긴다. 이후의 또 다른 범죄를 막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송하영은 범죄자의 내면을 낱낱이 파악하기 위해 ‘스스로 범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기’, 즉 ‘그화되기’를 시도한다. 범죄자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할수록 범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틈만 나면 범죄가 벌어진 그 시간에, 그 현장에 가서 범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범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잔인한 행동을 일삼는 연쇄살인범이 되어 범죄자처럼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영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하지만 자신이 입은 제복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라 믿기에, 그 무게를 감당하느라 정작 자신의 마음은 돌아보지 못한다.

범죄자가 되어 그의 생각과 행동을 읽어내는 일

▲ 피해자의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범인이 사용한 흉기를 추론한다. 범인이 둔기를 휘두른 방향과 강도를 분석해 범행 방식과 범인의 성격을 도출해낸다. ⓒ SBS

송하영이 힘들 때마다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은 동료들이었다. 범죄행동분석팀장 국영수는 처음 송하영을 찾아와서 그가 프로파일러가 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야 하는 일이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린 마음, 직관, 논리적 분석력, 사적 감정 분리,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네가 적임자다."

국영수 팀장은 송하영이 누구보다 인간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송하영은 늘 피해자들의 사진을 곁에 두고 범인을 추적한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피해자 사진을 두고, 이 시간에도 고통받고 있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심지어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신의 집에도 잔혹한 현장 사진들을 걸어놓기 일쑤였다. 하영은 늘 피해자와 그 유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다.

▲ 범죄수사분석팀장 국영수는 연쇄살인마 조현길이 토막살인하고 유기한 여아의 손가락을 찾기 위해 현장을 샅샅이 수색한다. 늦은 밤까지 아이의 마지막 손가락을 발견하기 위한 현장 수사는 계속된다. ⓒ SBS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고 했다. 머지않아 우리도 미국처럼 인정사정없는 애들 나타난다. 얘들은 동기도 없다. 미리 대비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증거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

2000년대 한국에는 오로지 살인만을 목적으로 한 연쇄살인마가 등장했다. 이전에 연쇄살인은 ’무동기 살해’라고 왜곡되었지만, 이들의 살해는 무동기 살해가 아니다. 살인을 결심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코 저지르고야 마는 것은 연쇄살인마에겐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다. 미국 FBI의 범죄분석보고서를 보고 이런 끔찍한 연쇄살인 범죄가 머지않아 한국에도 나타날 것이라 경고했던 건 국영수 팀장이었다. 국영수는 이미 연쇄살인범이 등장했을 때 뒤늦게 과학범죄수사를 시작하기에는 늦다고 판단하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팀을 꾸리기 시작한다. 그는 계급주의와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전형적인 수사관이었다. 동기들은 경찰청 건물 위로 향할 때 그는 지하실에 있는 범죄행동분석팀으로 향했다. 아직 팀이 경찰 조직 내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순간에도 팀이 와해되지 않도록 지키고자 노력하는 국영수 팀장의 리더십은 한국 최초의 범죄수사팀을 이끌고 나가는 동력이 된다.

▲ 윤태구는 보수적인 경찰조직에서 유일한 여자 팀장 자리를 지키는 강력계 형사다. 거추장스러운 긴 머리는 왜 자르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건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답하지 않는다. 경찰보다 여자 경찰이라는 인식이 더 큰 장애물로 다가온다. ⓒ SBS

하지만 프로파일링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수사이고, 무당이 자리를 깔고 하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동료 경찰들의 부정적 인식에 부딪힌다. 기동수사대 1계 2팀 윤태구도 프로파일링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윤태구는 누구보다 예리한 눈으로 현장을 살피는 강력계 팀장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기에 송하영이 현장에 보이는 관심이 단순한 관심에 지나지 않을까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송하영이 매일 현장에 나와 증거를 수집하고, 그가 만든 용의자 프로파일링 보고서가 실제 검거 이후 많은 부분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점점 송하영을 믿게 된다.

수사 방법과 인식의 차이에도 수사관들 모두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하는 건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송하영과 국영수, 윤태구의 범죄와의 길고 긴 싸움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경찰과 범죄자라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 경찰을 업으로 삼고 고민하며 애쓰는, 현장감 넘치는 경찰의 새로운 면을 부각하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촬영 현장을 찾아 코멘트해서 현실성을 높였다. 인기 드라마 <시그널>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를 통해 강력 범죄를 해결해 통쾌함을 주는 미스터리 범죄 수사물이라면,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비교적 범인을 잡는 순간의 긴박함은 덜하다. 하지만 취조과정에서의 범인의 자백을 끌어내는 송하영의 치열한 심리전이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경찰과 언론이 제대로 만나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더 있다. 고집스럽게 현장에 나타나 물고 늘어지는 ‘팩트 투데이’의 최윤지 기자다. 그는 잔인한 범죄를 누구보다 빠르게 전달하려는 속도전에 휘말리지 않고, 범죄를 만든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그가 던진 질문은 끔찍한 범죄가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이유는 뭔지,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만든다.

최 기자는 수사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는 발생한 범죄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어린아이를 토막 내 살해한 범인을 보도하는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단순히 빠르게만 소식을 전하는 것인가 의문을 품는다. 피해자들과 유가족이 안고 가야 하는 아픔에 대해서 한 번도 언론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문제를 제기한다. 책임감 있는 언론과 범인을 잡을 때까지 추격하는 경찰의 만남은, 악이 더는 활개 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제 역할을 해낸다.

▲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메인 포스터. 대한민국을 공포에 빠뜨린 동기 없는 살인이 급증하던 시절, 최초의 프로파일러가 연쇄살인범들과 위험한 대화를 시작한다. ⓒ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어두운 터널을 함께 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프로파일러, 수사 경찰, 기자, 그리고 피해자와 유가족 모두가 주인공이다. 송하영의 모티프가 된 권일용은 원작에서 자신은 최초의 프로파일러일 뿐, 후배 중에서 최고의 프로파일러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아직은 1호 프로파일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세상이지만, 지금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다음 세대 프로파일러들이 앞으로 범죄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악의 마음을 처음으로 들여다본 첫 주인공의 이야기다. 지금도 범죄 현장에서는 그의 뒤를 이은 수많은 프로파일러들이 악과 마주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범죄자의 마음과 행위를 읽기 위해 애쓰고 있을 터이다.

끔찍한 강력범죄는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먼 이야기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든 범죄의 뿌리가 우리 모두의 무관심과 방치일 것이라 말한다. 부유층 노인만을 대상으로 둔기로 연쇄 살인한 구영춘은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서울 거리를 돌아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구영춘의 이야기는 더는 남 일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된 사람들 모두가 범죄를 방치하고 있었는지는 않았는지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현실의 일부를 다루는 드라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이런 현실에서 선과 악을 다르게 만드는 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다. 그럼 악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역할일 것이다.


편집: 이주연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