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교양특강]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국의 보이밴드 방탄소년단(BTS)과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어떻게 세계를 강타하는 문화현상이 됐을까. 최근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휩쓸고 있는 한국 콘텐츠의 강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케이팝(K-POP), 한류 등으로 불리는 우리 문화의 세계적 인기가 이어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국내외에서 ‘BTS 연구자’ ‘한류 전문가’로 유명한 홍석경(58)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지난 15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인문교양특강에서 이런 물음에 답했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에서 언론정보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세계화와 디지털 문화 시대의 한류> <BTS 길 위에서> 등의 저서로 주목받은 그는 이날 충북 제천 세명대 학술관에서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이후의 한류’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한류는 ‘의도적 전파’가 아닌 ‘자발적 수용 현상’

“지금의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모두 (뿌리를 찾자면) 80년대 민주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제가 학부와 대학원 모두 합해 8년 동안 서울대를 다녔는데, 당시 주로 본 건 캠퍼스에 날리던 최루탄 연기였어요. 문화적으로도 검열이 심하고, 굉장히 억압된 시기였죠. 이때 가해진 문화적 억압이 민주화 운동 이후 하나씩 해체됐고, (그 자유가) 현재 대중문화의 시초가 됐다고 할 수 있죠.”

홍석경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세명대 학술관 강의실에서 한류 현상과 관련한 주요 논의들을 소개하고 있다. ⓒ 박시몬
홍석경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세명대 학술관 강의실에서 한류 현상과 관련한 주요 논의들을 소개하고 있다. ⓒ 박시몬

홍 교수는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의 문화적 해방이 지금의 K-POP과 한류의 기반이 됐다고 분석했다. 예술 활동의 자유가 창의적인 대중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대중문화는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보편성을 지녀야 성공할 수 있는데, 이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외국 언론인이나 연구자들 중에는 한국 정부가 상품을 수출하듯 인위적으로 문화를 수출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죠. 한류는 한국 정부의 의도적 전파가 아니라 디지털 문화와 세계화 맥락 속의 ‘자발적 수용 현상’입니다.”

그는 한국 정부가 비빔밥 등 한식을 세계에 알리려 홍보한 일이 있지만 모두 실패했고, BTS의 음악이나 한국 드라마 등은 세계 각국 사람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아시아인의 눈으로 볼 때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서 가난과 설움을 겪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며 “드라마 등 한국 미디어에 등장하는 포장마차 술 문화나 길거리 음식, 인간관계와 같은 모든 요소를 수용자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흡수했다”고 말했다.

디지털 문화와 세계화가 뒷받침한 한류 확산 

홍 교수는 한류가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진 데에는 언어의 장벽을 깨는 미디어 소비문화의 영향도 컸다고도 설명했다. 세계화와 다문화 현상을 전 세계 많은 국가가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하는 시대에,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인터넷 환경이 갖춰진 덕이었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전 세계 한류 팬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같은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해 팬덤을 형성하고 자유롭게 미디어를 소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각국 청소년 문화의 빈 공간을 채우는 복합 문화물로서 한국 가수들의 수준 높은 노래, 안무 실력과 아이돌의 비주얼(외모)도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한국 콘텐츠는 OTT를 통해 세계적인 입지를 더욱 굳히고 있는데, 최근 넷플릭스 콘텐츠 중 인기 상위권 드라마의 80% 이상이 한국산이라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킹덤> <스위트홈> <오징어게임> <지옥> 등이 각국에서 폭발적 호응을 얻었는데, 그 여파로 오래된 한국 드라마들까지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홍 교수는 “브라질 시골 마을에 사는 50대 여성이 기존 한국 드라마를 소비하며 한국의 문화와 가치, 정서를 습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면서 '그해 우리는'과 같은 최신 드라마 외에 '곰배령'과 같은 오래된 드라마가 남미 등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홍석경 교수 강의 자료
넷플릭스에서 한국 콘텐츠가 강세를 보이면서 '그해 우리는'과 같은 최신 드라마 외에 '곰배령'과 같은 오래된 드라마가 남미 등에서 인기를 끄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 홍석경 교수 강의 자료

‘백인 문화의 대안’ ‘보편적 메시지의 발화자’ 된 BTS

“프랑스 보르도대학교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학생들 책상에 인피니트, 비스트, 투애니원 등 K-POP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고 아시아계 혹은 한국 출신 학생이 있나 생각했어요. 그러나 당시 제가 일했던 학교에는 프랑스 현지인만 다니고 있었습니다. 아시아계 학생이 전혀 없었어요. 고정 관념이 깨졌죠. K-POP의 흐름을 예의 주시하게 된 계기였죠.”

홍 교수는 BTS가 인종과 젠더(성별) 문제에 있어 세계인들에게 해방감을 주었고 탈백인중심문화, 대안적 남성성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그간 세계 대중문화는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이 제작하고 출연한 영화, 드라마, 음악이 주로 소비됐는데 BTS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는 “BTS는 세계인이 공감하고 관여하는 보편적 메시지의 발화자가 되는데 성공했다”며 “디지털 문화의 강자로서 매력과 공감 능력을 획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BTS는 특히 전 세계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불평등과 불안, 우울에 관해 목소리 내며 공감을 얻었다. <기생충>을 관통하는 주제인 불평등도 배경만 다를 뿐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홍 교수는 과거 일본에서 흥행한 국내 드라마 <겨울연가>와 <오징어 게임>을 비교하면서 “과거의 한류는 하나의 오리엔탈리즘(동양에 대한 서구의 편견)으로 받아들여진 측면이 있지만 지금의 한류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만한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등 청중이 현장과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박시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등 청중이 현장과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박시몬

문화산업 종사자 노동환경 개선 필요 

홍 교수는 세계 속의 한류가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가장 먼저 ‘한국 내 인종주의 타파’를 꼽았다. 다문화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피부색이나 인종에 관한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 한류 팬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한국 아이들 100명 중 5명의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 아닌 시대가 됐다”며 “이에 맞는 발돋움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부의 역할과 관련, 개입하려 하지 말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문화 콘텐츠 수출 등을 주도하려 하지 말고, 한류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방송영상 아카이브 등의 인프라 개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어진 질의답변 시간에 신유미(25·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씨는 “아이돌 그룹의 외국인 멤버가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가 활동할 경우, 기술 유출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홍 교수는 “많은 국가가 우리의 문화를 수용하고 따라가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자발적 동의, 즉 ‘소프트파워’에 의한 것”이라며 “(문화적) 기술은 어디에 등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답했다. 

홍석경 교수와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 박시몬
홍석경 교수와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 ⓒ 박시몬

홍 교수는 언론이 한류 문화 콘텐츠를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언급했다. 그는 “기자들이 대개 바빠서 그렇겠지만, 케이팝과 관련해서 중요한 사전 지식을 습득하지 않고 취재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접근한다면 좋은 보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클래식에 대해 함부로 안 쓰는 것처럼’ 케이팝 아이돌과 프로듀서들을 아티스트로서 대우하고 존중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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