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제천시, ‘최저임금 준수’ 조건 위탁 고민...“주차관리원도 설득해야”

“이게 다예요. 나 거짓말하는 게 아니에요.”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주차관리원 김수철 씨가 하루 동안 번 돈을 꺼내 보였다. 가슴 쪽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지폐로만 2만 5천 원이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김 씨는 번 돈을 거스름돈 주머니와 다른 쪽에 넣는다. 잔돈이 없는 손님에게 받은 듯 만 원짜리 한 장도 섞여 있었다. 그가 일하는 충북 제천시 노상공영주차장의 요금은 10분에 200원이다.

그는 월급을 받지 않는다. 손님들이 내는 주차요금이 곧 수입이다. 대신 주차장 관리를 시에서 위탁받은 사장에게 하루 만 5천 원씩 ‘사납금’만 내면 된다. 과거 택시 기사들처럼 사납금보다 적게 벌면 사비를 들여 메워야 하지만 다행히 그런 날은 많지 않다. 김 씨는 “운이 좋으면 사납금을 내고도 하루 5만 원을 가져가지만, 비 오는 날이면 대개 2만 원을 번다”고 말했다.

일하고 있는 김수철 씨. 요금 200원이 나왔는데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며 천 원을 주고 간 손님도 있었다. 박성동 기자
일하고 있는 김수철 씨. 요금 200원이 나왔는데 거스름돈을 받지 않겠다며 천 원을 주고 간 손님도 있었다. 박성동 기자

주간 66시간 노동, 월 100만 원 소득

적게 번다고 해서 김 씨의 일이 편한 것은 아니다. 73살인 김 씨가 맡은 주차장은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에 나뉘어 있다. “분리대 넘을 때는 정신 바짝 차리는 거죠.” 나가는 차를 발견하면 다급히 쫓아가야 한다. 놓치면 요금을 나중에라도 받을 방법이 없다. 들어온 차를 한참 늦게 발견해도 손해다.

주차관리원은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1시간씩, 주차장이 무료로 개방되는 일요일을 빼고 주 6일 일한다. 김 씨 주장대로면 한 달을 꼬박 일해도 월 소득이 겨우 100만 원꼴이다. 김 씨는 “일하면서 다리가 아파져 목요일마다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맡기고 병원에 간다”며 “원래 체중이 80킬로그램(kg)이었는데 일한 지 6개월 만에 5kg은 빠졌다”고 말했다.

88살 황춘식 씨는 10년 넘게 주차관리원으로 일했다. 황 씨가 일하는 자리는 목이 좋지 않다. 대신 사납금을 하루 8천 원만 낸다. 주차량이 많은 교차로 건너편의 사납금은 곱절인 만 6천 원이다. 황 씨는 사납금을 내고 하루에 4만 원까지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황 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한 시간 사이 차 7대가 나갔다. 적게는 200원, 많아도 600원을 주고 떠났다.

주차관리원이 쓰는 주차요금 기록용지. 입차 시간이 적혀 있다. 들어온 차를 늦게 발견하면 현재 시각으로 적는다. 박성동 기자
주차관리원이 쓰는 주차요금 기록용지. 입차 시간이 적혀 있다. 들어온 차를 늦게 발견하면 현재 시각으로 적는다. 박성동 기자

자리를 비우는 만큼 손해다 보니 소변은 한 평 정도 되는 휴게실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하면 냄새가 덜 나요.” 황 씨는 소변을 본 페트병에 물을 타서 하수구에 버렸다. 휴게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에는 가스레인지에 손만 좀 쬐고, 춥지 않게 옷을 잘 입어야죠.”

“월급제는 안 돼요, 횡령할까 봐”

제천시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은 22개 구역, 450면이다. 대체로 차단기를 설치할 출입구가 따로 없어 사람을 쓸 수밖에 없다. 제천시는 2년 단위로 경쟁입찰에 부친다. 운영권을 따낸 사업자가 많게는 5개 구역, 300여 면을 관리한다. 구역마다 요금을 징수할 사람이 적어도 서너 명 필요한데, 업자들은 이들을 주로 구두계약으로 고용한다.

주차관리원의 수입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다. 지난해 2월 제천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주차장 관리원의 근로조건을 제천시가 직접 챙기라고 주문했다. 한 달 뒤 제천시는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준수하라며 주차장 관리를 맡은 업자들에게 공문을 보냈고, 최저시급을 명시한 근로계약서를 쓰게 했다.

2021년 2월, 제천시의회 임시회 산업건설위원회에서 유일상 의원이 조완형 당시 일자리경제과장에게 주차관리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라고 주문하는 모습. 영상자료 제천시의회
2021년 2월, 제천시의회 임시회 산업건설위원회에서 유일상 의원이 조완형 당시 일자리경제과장에게 주차관리원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라고 주문하는 모습. 영상자료 제천시의회

하지만 개선이 이뤄진 주차장은 22개 구역 중 3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주차장에서는 여전히 사납금제가 유지되고 있다. 애초 시의회가 시정을 요구한 주차장도 3곳뿐이었다. 이들 주차장은 출입구가 있고 차단기가 설치된 곳이다. 다른 노상주차장과 달리 차량이 얼마나 드나드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차량의 출입 기록이 전자식으로 관리되지 않는 노상주차장에서는 주차관리원이 월급은 월급대로 받으면서, 받은 주차요금을 고용주에게 모두 신고하지 않고 중간에서 챙길 우려가 있다. 주차장 운영권을 따낸 박신원 씨는 “서로 믿고 일해야 하는 건 맞지만 주차관리원이 직접 돈을 만지는 일이라 월급제는 어렵다”며 “입찰 경쟁자가 많아 시에 내야 하는 수탁료도 부담된다. 사납금을 깎아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출입차 관리가 되는 내토전통시장 주차장. 이곳에서 일하는 주차관리원은 최저임금에 맞는 월급을 받는다. 박성동 기자
출입차 관리가 되는 내토전통시장 주차장. 이곳에서 일하는 주차관리원은 최저임금에 맞는 월급을 받는다. 박성동 기자

중앙시장번영회는 주차관리원 5명을 고용했지만, 실내 주차장에서 일하는 2명만 월급을 주고, 노상주차장을 담당하는 3명에게는 사납금을 받고 있다. 중앙시장번영회 관계자는 “밖에서 일하는 분들은 실제로 얼마를 버는지 몰라 전환하지 못했다”며 “사납금으로 하루에 5만 4천 원씩 받고 있는데 ‘돈이 되니까 일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정문 내토전통시장상인회장도 “다른 곳은 몰라도 전통시장은 유동 인구가 많아 수금이 잘 되는 편”이라며 “우리는 노상주차장은 30면 있는데 80%만 차 있다고 단순히 계산해 봐도 한 달 내내 일하면 월 300만 원은 벌어가겠다 싶어 사납금 액수를 적당히 정했다”고 말했다.

내토시장 노상주차장에서 일하는 73살 김두관 씨는 “차가 자주 들어오는 건 맞지만 그만큼 일이 힘들어져 한계가 있다”며 “전체 절반인 16면만 맡고 있고, 일주일의 절반씩 다른 사람과 교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사납금으로 하루 6만 5천 원씩을 내고 한 달에 80여만 원을 벌어간다고 주장했다.

제천시, 최저임금 준수 조건 입찰 검토

주차관리원 한 명이 정확히 얼마를 벌어가는지, 주차구역 한 곳에서 수익이 얼마나 나오는지 모르는 건 제천시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주차관리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주차장 위탁 운영 사업자가 내야 하는 낙찰가 기준을 내려야 할지, 주차요금을 올려야 할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관련 조례에 따라 주차 면수에 주변 건물의 공시지가를 곱하는 방식으로 낙찰가 기준을 정하고 있다. 수익이 많이 나오는 구역은 낙찰가 기준의 두 배를 내겠다는 사업자가 나타나지만, 수익성이 없는 곳은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 여섯 차례나 유찰돼 다른 구역과 묶어서 재입찰하기도 한다.

제천시는 직원들의 최저임금 준수를 조건으로 사업자와 계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올해 말이면 모든 주차장의 위탁 기간 2년이 끝난다. 모든 주차장 운영권을 새로 입찰해야 한다. 지금 제천시와 사업자들이 쓰는 계약서에는 상시근무자를 ‘고용’해 배치할 것만 규정돼 있는데 아예 최저임금 준수를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다.

제천시가 수탁자와 작성하는 계약서. 주차요금 징수를 놓쳐도 제천시가 조치해 줄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제천시가 수탁자와 작성하는 계약서. 주차요금 징수를 놓쳐도 제천시가 조치해 줄 수 없다는 내용도 있다.

제천시 교통과 관계자는 다만 “시가 업무를 위탁했다고 해서 수탁자와 노동자 사이 근로관계까지 개입하는 건 월권이 될 수 있다”며 “고용노동부에도 질의하는 등 관련법을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자들의 반발 우려에 대해 이 관계자는 “횡령을 막을 수 있도록 카드 결제와 차량 출입 기록을 할 수 있는 전자단말기를 보급하는 것은 결국 비용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한 구역에서만 시범적으로 전자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려고 관련 사업에 쓸 수 있는 국비를 신청했지만 떨어졌다”며 “한 곳에 1억 원이 넘는 시스템 도입 비용은 자체 예산으로도 감당할 수 있다고 보고,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차관리원 설득 필요... “어느 쪽이 유리한지 설명해 줘야”

전자관리 시스템을 적용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저임금 문제의 당사자인 주차관리원이 월급제 전환을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주차관리원은 “수입은 월 100만 원보다 조금 적다”면서도 “월급제 전환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월급을 받고 소득이 신고되면 기초연금 수당이 깎여 더 힘들어진다”며 “지금도 필요한 만큼 벌고 있어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아직 연금을 받지 않는 59살 김영수 씨는 월급제를 원한다. 김 씨는 “경차와 전기차는 요금의 절반을 할인해 준다”며 “앞으로 전기차는 계속 많아질 텐데 내 노력과 상관없이 소득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산부는 하루에 4시간까지 무료로 주차할 수 있고, 월 정기 주차권을 사면 정가의 3분의 1 정도만 내면 되는데 제천시가 이렇게 복지혜택을 늘리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주차관리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주차관리원이 사용하는 휴게실(좌)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김영수 씨는 개인적으로 컨테이너를 구해 연탄난로를 설치했다. 박성동 기자
주차관리원이 사용하는 휴게실(좌)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김영수 씨는 개인적으로 컨테이너를 구해 연탄난로를 설치했다. 박성동 기자

강원도 태백시도 주차관리원이 월급제 전환을 반대하는 문제를 겪었다. 지난해 4월 시의회에서 노상공영주차장 관리원의 저임금 문제가 지적돼 올해부터 전자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정작 사납금제는 폐지하지 못했다. 주차관리원들이 수탁자와 사납금을 낮추는 선에서 월급제 전환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법률원 최혜인 노무사는 “복지혜택은 개인차가 있을 수 있고 체계가 복잡해 어떤 소득 방식이 더 유리한지 일률적으로 따지기는 어렵다”며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상대로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등의 법 위반을 막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월급제를 대신한 사납금제 자체를 불법으로 볼 근거는 없다. 택시업을 규제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서만 개별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사업자에게 과태료를 매기도록 규제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한발 더 나아갔다. 월급을 준 뒤 실적이 모자란 기사에게 월급 일부를 공제한다면 최종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위반하면 안 된다고 지난달 14일 판결했다.

최 노무사는 “노동자 처우를 받으면 퇴직금과 유급휴가, 사회보험 혜택도 받지만, 근로시간이 지켜지거나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당하지 않는 등 소득 외 혜택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어떤 형태가 주차관리원에게 도움이 될지 지자체가 나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한 뒤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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