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박진홍 SBS 시사교양 PD

“그런데 말입니다~.”

진행자 김상중은 매번 엄숙한 말투로 수수께끼 같은 살인 등 각종 사건의 핵심 의혹을 짚는다. 지상파 시사교양프로그램에 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시대에도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0~49세 시청자층의 높은 관심과 120만 유튜브 구독자의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프로듀서(PD)로서 4년여 동안 이 프로그램을 연출했고 담당부장(CP)도 지낸 박진홍(53) SBS PD가 지난 14일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으로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콘텐츠 전성시대,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제작방향’을 주제로 특강에 나섰다. 

‘그알’ 성공에 이어진 질문 “이것으로 충분한가” 

▲ <그것이 알고싶다> <궁금한 이야기 와이(Y)> 등을 연출한 박진홍 PD가 세명대 문화관 첨단강의실에서 지상파 시사교양PD의 고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이예진

박 PD에 따르면 <그알>은 1992년 처음 출발할 때 의문스러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는 ‘미스터리 장르’로 기획됐다. 이 프로그램은 ‘과학적 검증’과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접근법으로 MBC <피디(PD)수첩>이나 KBS <추적60분>과 차별화를 추구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소재가 됐던 화성연쇄살인사건 특집과 재야인사 장준하의 사망원인을 검증한 특집이 대표적이다. 이런 차별점을 바탕으로 <그알>은 사건 전문 프로그램으로서 강력한 팬덤(지지층)을 형성했다. <그알>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본방송을 쪼갠 작은 클립들이 종종 인기 영상으로 유통된다. 이 프로그램에 범죄전문가로 자주 출연한 권일용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겸임교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은 유명인사가 됐다. 

박 PD는 <그알>에서 성공한 작품 뒤에 꼭 질문을 붙였다고 한다.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는 범죄사건을 제외한 사회적 이슈를 자주 다루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서 당대의 정치사회적 현안을 다루는 역할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그알>은 <PD수첩>이나 <시사직격> 같은 타사 경쟁 프로그램보다 강력범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난해 45회 방송 가운데 살인, 성범죄, 마약, 사기 등 강력범죄가 아닌 주제는 14회였다. 반면 경쟁 프로그램들은 검찰개혁이나 부동산 같은 정치사회 현안을 많이 다뤘다. 시청률은 <그알>이 높았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범죄수사나 피해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으로서 범죄사건 외의 것들을 많이 다루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스토리 구조’가 더욱 중요해진 시사교양

▲ <그것이 알고싶다>의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100만을 넘긴 것을 자축하는 광고. ⓒ SBS

박 PD는 최근 ‘콘텐츠의 산업화’ 추세에 따라 방송프로그램 제작에서 홍보, 마케팅, 상품 판매 등의 가치사슬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기획단계에서 제작 이후의 수익성까지 계산해야 하는 산업 생태계에서 시청자의 관심도가 떨어지는 시사교양 콘텐츠는 큰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한다.   

특히 잘 만든 영화, 예능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뤄야 할 주제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도 ‘관심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박 PD는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영화 <더킹>은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베테랑>은 재벌의 갑질 문제를, <오징어 게임>은 불평등 문제를 인상적으로 드러냈다. 또 KBS 예능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와 JTBC <용감한 솔로 육아> 등은 이성애자 부부 중심의 전통가정이 아닌 대안가족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박 PD는 이와 관련, 시사교양 콘텐츠에서도 ‘이야기 구조를 잘 짜는 역량’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시청자가 쉽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감각이 성공의 관건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 비해 시사교양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역할이 굉장히 커졌고 개별 창작이 아닌 집단적 협업이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수의 동료가 상호 피드백을 통해 만들어 낸 작품이 시청자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드러내기’는 여전히 중요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이 강의실 참석 및 줌 화상회의를 통해 박진홍 PD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 이예진

박 PD는 콘텐츠의 역할이 ‘드러내기’ 아니면 ‘새롭게 보기’ 둘 중 하나라고 분류했다. 드러내기는 모르고 있던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새롭게 보기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가공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 것을 말한다. 그는 시사교양프로그램이 갈수록 시청률과 작품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만, 갇혀 있는 사실을 드러내는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PD는 다큐멘터리와 관련한 금언 ‘기록이 축적되면 서사가 발생한다’를 소개하며 PD지망생들에게 평소 각자의 경험을 기록하고 영상으로 만들어볼 것을 권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다 기록이고 콘텐츠”라며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무언가를) 관찰하고 그것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연 후 이어진 일문일답에서 박동주(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입학예정자) 씨는 “(방송사) PD 면접에서 지원자가 이야기 구조에 ‘감’이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하느냐”고 물었다. 박 PD는 “특정 주제나 장소를 제시하고 그 주제와 관련된 5분 분량의 이야기를 만들라고 자주 시켰다”고 답했다. 그는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라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걸 뒤집어서 결론을 던지고 거꾸로 올라가며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며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들은 눈에 띈다”고 덧붙였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신문, 방송, 뉴미디어 등에서 탁월한 활동을 보이는 현직 언론인을 초청해 ‘저널리즘 특강’을 열고 있다. 초청 강사들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과 함께 급변하는 미디어 지형과 언론의 대응, 언론인의 고민 등에 관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한다. <단비뉴스>는 강연과 문답 내용을 기사와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배달한다. (편집자 주)

편집: 김주원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