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결혼이민비자] ② 이혼 이주여성, “아이와 생이별 두려워”

취재팀과 인터뷰 중인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양육권이 없는 이혼 결혼이주여성은 체류 자격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 이정민
취재팀과 인터뷰 중인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양육권이 없는 이혼 결혼이주여성은 체류 자격 연장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 이정민

“내 아이의 스무 살 생일이 두렵다”

C 씨는 몽골에서 왔다. 지인 소개로 2005년 한국인 남성과 결혼했다. 남편은 돈을 벌어오지 않았다. C 씨는 아침 일찍 밥을 차리고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출근했다. 공장에서 녹초가 되어 돌아오면 집에는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었다. 남편과 싸워도 봤지만 술 먹고 죽일 듯이 나오는 그에게 맞서긴 어려웠다. 협의이혼을 했다. 아들에 대한 양육권은 포기했다. 엄마가 외국인이면 아들이 취직하거나 결혼할 때 문제가 생긴다며 실제로는 아들을 키우게 해줄 테니 서류상으로는 양육권을 포기하라는 남편의 설득 때문이었다.

처음 몇 년은 남편 말대로 C 씨가 아들을 키우며 함께 살았다. 비자 연장을 신청하자 출입국·외국인청 조사관이 집에 불쑥 찾아와 냉장고에 붙은 어린이집 식단과 바닥에 널린 장난감을 보고 돌아갔다. 아들과 계속 만나고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조사관이 또 언제 들이닥칠지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전남편이 나타났다. 아들을 자기가 키우겠다고 했다. 한국어도 못하면서 공부는 어떻게 시킬 거냐는 물음에 C 씨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전남편과 살게 된 아들이 집에 오는 날을 손으로 꼽았다. 아들이 오면 손발톱을 깎아주고, 좋아하는 소고기 칼국수도 해줬다.

C 씨는 떨어져 살면서도 아들을 살뜰히 챙겼다. ⓒ 강지훈
C 씨는 떨어져 살면서도 아들을 살뜰히 챙겼다. ⓒ 강지훈

C 씨는 아들을 만날 때마다 비자 연장 신청 때 낼 사진을 찍는다. C 씨가 가진 비자는 F-6-2. 배우자 없이 자녀를 양육하는 이주민이 발급받는다. 원칙적으로 양육권이 있어야 하지만 C 씨처럼 면접교섭권만 있어도 된다. 다만 출입국·외국인청 ‘외국인체류 안내매뉴얼’에 따르면 양육권이 있는 경우 한 번에 3년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면접교섭권만 있으면 1년 범위 안에서 연장된다.

양육권이 없는 이주여성은 비자 만료일이 다가오면 불안하다. 김유정 호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양육권자의 협조가 없으면 자녀를 만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자녀와 교류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체류가 불허될 수 있다”며 “성년이 될 때까지 비자를 연장할 수 있다면 체류 허가 기간을 1년보다 늘려 자녀가 있는 이주여성의 체류 불안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녀가 민법상 성년인 만 19세가 될 때까지만 비자가 연장되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김 교수는 “자녀가 성년이 되더라도 가족결합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제가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C 씨는 비자를 연장했다. 내년 7월에 만료된다. 지난달 만난 아들은 전남편에게 맞고 왔다고 했다.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아이가 크게 다치진 않아 전남편이 아동학대 방지 교육을 이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C 씨는 자신이 몽골로 돌아가면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전남편은 아들에게 밥 한 번 차려준 적이 없다. 안정적인 직업도 없는 탓에 아들의 통신비와 급식비, 체험 학습 활동비 모두 그의 통장에서 나가고 있다고 했다.

C 씨는 아들의 스무 살 생일이 두렵다. 6년 남았다. 결혼이주여성이 체류에 대한 불안 없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자녀 곁에 남는 방법은 두 가지다. 영주권자의 배우자 등에게 발급되는 장기 체류 비자 F-2로 체류자격을 바꾸거나 간이귀화를 하는 것.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양육권이 없는 그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통장에 발목 잡힌 엄마의 꿈

올해 서른 살인 D 씨의 오랜 꿈은 ‘행복한 가정’이었다.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살았던 그의 집은 가난했다. 8남매 가운데 둘째. D 씨는 한 명이라도 입을 줄이려고 14살에 집을 나왔다. 학교 선생님 집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웨스턴 민다나오 주립대에 입학했다. 졸업 후 친구 소개로 만난 남편은 다정했다. 윗니가 다 드러나게 활짝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와 함께라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를 만난 2010년 곧바로 결혼해 한국으로 왔다.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한국에선 남편이 활짝 웃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었다. 매일 술을 마셨고, 술이 들어가면 욕을 했다. D 씨에게 화분을 던지기도 했다. 2018년 이혼했다. 남편이 요구한 이혼이었다. ‘말이 안 통한다’는 이유였다.

혼자 아들을 키웠다. F-6-2 비자를 얻었다. 12살 된 아들은 활짝 잘 웃는다. 일주일에 네 번 나가는 축구학원에서 친구도 많다. D 씨가 울 때면 “우린 행복할 수 있어”하며 안아준다. 가끔 필리핀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아들이 아플 때 곁에 아무도 없을까 이를 악물고 국적을 따야겠다 다짐했다.

4월 20일 경기도 파주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고 있는 D 씨. ⓒ 윤준호
4월 20일 경기도 파주의 한 카페에서 기자를 만나고 있는 D 씨. ⓒ 윤준호

귀화하기 위해서는 생계유지 능력과 한국어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혼자 살면서 돈벌이와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이주여성은 드물다. 3000만 원의 재산증명도 필요하다. 일정한 소득이 있다는 재직증명서만으로 통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련 활동가들은 드물다고 말한다. 여경순 전 천안 모이세 이주여성센터 소장은 “3천만 원 없이 재직증명서만으로 통과하는 경우는 20건 중에 한두 건밖에 되지 않는다"며 “아주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 이상 어렵다”고 말했다. D 씨는 간이귀화를 위해 매달 적금을 들고 있다. 공장 월급 170만 원에서 월세 60만 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20만 원씩 붓는다. 그러나 이렇게 모아도 3000만 원에 달하려면 12년이 걸린다.

재산과 소득요건에 관해 황선영 글로벌한부모센터 대표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결혼이주여성 노동실태와 현황>을 보면 경제활동을 하는 이주여성 가운데 단순노무직 종사자가 40%나 됐다. 이들의 월 평균 임금은 100에서 200만 원 사이가 53%로 절반을 넘었다. 황 대표는 “가난해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은 이주여성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복한 가정만을 위한 법

2020년 법무부는 F-6-2 비자 소유자에게 F-2 비자로 전환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F-2 비자는 이른바 ‘거주 비자’다. 장기간 체류할 수 있고 취업 제한도 없다. 2인 가구를 기준으로 중위소득 308만 원의 40%인 월 123만 원 이상의 소득이 있다면 체류자격 변경 시 생계유지능력이 입증된다. 여기에 한국이민재단이 주최하는 한국어 교육 과정인 사회통합프로그램을 4단계 이상 이수해야 한다. 공부에만 매진해도 최소 1년이 걸리는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현 '이주노동자의 노동 여건 및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주당 노동시간은 평균 50시간이다. 응답한 여성 노동자 가운데 24.1%는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이 넘었다. 이런 현실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자녀가 성년이 되면서 체류가 불안정해지는 이주여성 문제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국제결혼 붐이 일기 시작한 2000년 입국한 결혼이주여성은 9000명 수준이었다. 2005년 3만 700여 명을 정점으로 이후 조금씩 줄었다. 원옥금 이주민센터 동행 대표는 “2005년쯤 결혼한 가정의 아이가 아직 만 16~17살”이라며 “이들이 성인이 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0일 취재팀이 만난 생각나무BB센터 안순화 대표는 한국 체류 제도와 귀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이정민
지난 4월 20일 취재팀이 만난 생각나무BB센터 안순화 대표는 한국 체류 제도와 귀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 이정민

사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생각나무BB센터의 안순화 대표는 “한국의 체류와 귀화 제도는 국가에 부담이 안 되는 행복한 가정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제도 아래서는 이혼한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계속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C 씨와 D 씨는 자녀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고 말한다. C 씨는 “아들의 양육권을 되찾아 여느 엄마와 아들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양육권 소송을 고민하고 있다. D 씨는 ‘손흥민’이 되길 꿈꾸는 아들이 경기를 뛰는 모습이 궁금하다. 귀화를 포기하지 않을 참이다. 안순화 대표가 말했다. “덜 행복한 가정도 보호해야 ‘법’이 아닐까요?”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은 2020년 기준 29만 5000여 명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15만 7000여 명 외에, 13만 7000여 명이 F-6 결혼이민비자로 체류하고 있다. 이들의 다문화가정에도 갈등이 있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체류자격을 유지하려면 혼인관계를 아무런 문제 없이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취재팀은 이주여성 13명을 만났다. 그들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고, 이혼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당당히 이름을 밝힐 수도 없다. 이혼하더라도 아이가 있으면 좀 더 머무를 수 있지만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다. 혼인 중엔 충실한 아내로, 이혼 뒤엔 역경을 감수하는 어머니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그들은 반복해서 입증해야 한다.

비자와 국적 문제로 제기된 2년치 행정소송 판결문도 조사했다. 힘겨운 사연 너머 제도의 허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결혼이민비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기사 세 편에 담았다. 이 기사들은 <한국일보> 제3회 기획취재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각각의 기사는 <한국일보> 지면과 누리집에도 같은 날 게재됐다. (편집자주)

① 가정폭력을 안으로 삼킨 여자들
② 이혼 이주여성, “아이와 생이별 두려워”
③ 행정소송 판결문 분석…결혼이민제도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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