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결혼이민비자] ① 가정폭력을 안으로 삼킨 여자들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은 2020년 기준 29만 5000여 명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15만 7000여 명 외에, 13만 7000여 명이 F-6 결혼이민비자로 체류하고 있다. 이들의 다문화가정에도 갈등이 있다. 혼인이 파탄에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체류자격을 유지하려면 혼인관계를 아무런 문제 없이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취재팀은 이주여성 13명을 만났다. 그들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참을 수밖에 없고, 이혼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인터뷰에서 당당히 이름을 밝힐 수도 없다. 이혼하더라도 아이가 있으면 좀 더 머무를 수 있지만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다. 혼인 중엔 충실한 아내로, 이혼 뒤엔 역경을 감수하는 어머니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그들은 반복해서 입증해야 한다.

비자와 국적 문제로 제기된 2년치 행정소송 판결문도 조사했다. 힘겨운 사연 너머 제도의 허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결혼이민비자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기사 세 편에 담았다. 이 기사들은 <한국일보> 제3회 기획취재 공모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각각의 기사는 <한국일보> 지면과 누리집에도 같은 날 게재됐다. (편집자주)

① 가정폭력을 안으로 삼킨 여자들
이혼 이주여성, “아이와 생이별 두려워”
행정소송 판결문 분석…결혼이민제도 개선해야

 

결혼이민여성 중 45%는 비자를 받아 체류 중이다. ⓒ 홍성우
결혼이민여성 중 45%는 비자를 받아 체류 중이다. ⓒ 홍성우

농장 일꾼으로 데려왔다는 남편

A 씨는 필리핀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밝고 쾌활해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어느 날 친구 소개로 한국인 남자를 만났다. 농장을 운영한다고 했다. 남편은 26살이었던 A 씨와 20살 차이가 났지만 그래도 다정한 편이었다. 그와 결혼해 2016년 한국으로 왔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였다. 남편만 믿었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섬에 도착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들어갔다. 직원이 있다던 농장에서는 시어머니와 남편 둘이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부터 일을 시켰다. 양파, 마늘, 깨, 밀. 온갖 작물을 재배하는 6만㎡에 가까운 농지였다.

​F-6 비자 발급 현황. ⓒ 한국일보 그래픽A 씨는 한복을 입고 지역 다문화센터에서 다도를 배웠다. ⓒ A 씨
​F-6 비자 발급 현황. ⓒ 한국일보 그래픽A 씨는 한복을 입고 지역 다문화센터에서 다도를 배웠다. ⓒ A 씨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열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남편은 “할 일이 많으니 물이나 마셔라”라고 말했다. 지병인 고지혈증으로 자주 가슴 통증도 느꼈다. 섬에는 큰 병원이 없었다. 육지에 있는 병원에 다녔다. 남편은 그게 못마땅했다. 남편은 농장 일 시키려고 데려왔다고 대놓고 말했다.

A 씨의 외국인 등록증. 세 달 전 비자 유효기간을 넘긴 상태에서 연장 심사가 진행 중이다. ⓒ A 씨
A 씨의 외국인 등록증. 세 달 전 비자 유효기간을 넘긴 상태에서 연장 심사가 진행 중이다. ⓒ A 씨

남편 동의 없인 미등록 신세 되기 일쑤

병원에 다니면서 농장 일을 돕지 못한 날이 많아졌다. 다정하던 남편은 A 씨에게 병원비도 주지 않았다. A 씨는 지인 소개로 구리에 있는 닭 공장에 취업했다. 병원비를 벌고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남편도 동의했다. 살기 위해 섬을 떠났다.

비자를 연장할 때가 다가왔다. 남편은 A 씨가 구리에 온 뒤로 연락을 받지 않았다. 처음으로 남편 도움 없이 비자 연장을 신청하느라 만료일을 넘기는 바람에 벌금도 냈다. 출입국·외국인청 심사관은 남편과 떨어져 사는 이유를 물었다. A 씨는 진료기록을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남편과 함께 가면 이런 질문을 받지 않고도 쉽게 연장이 됐다. 그의 비자 연장은 아직 심사 중이다.

F-6는 결혼이민비자다. 세 종류가 있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F-6-1을 발급받는다. 이혼 뒤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F-6-2,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인정되면 F-6-3을 받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결혼이민비자를 가진 여성은 13만 7000여 명이다. 남성은 3만 700여 명이다. 남녀를 합쳐 매년 1000명 정도가 체류자격을 잃는다. 매년 미등록 신분이 되는 수는 2017년 1300여 명에서 2년 뒤 900명대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1200여 명으로 다시 늘었다. 미등록 상태가 적발돼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전체 수는 잘 줄지 않는다. 미등록 체류자는 통상 3000명을 넘나든다. 2020년에는 3700여 명이었는데 여성이 3400여 명으로, 남성 310명의 11배가 넘었다.

F-6비자 발급 현황. ⓒ 한국일보 그래픽
F-6비자 발급 현황. ⓒ 한국일보 그래픽

‘동행’이 ‘동의’로 바뀌었을 뿐

출입국·외국인청은 F-6-1 비자 연장에 앞서 ‘혼인의 진정성’을 심사한다. 위장결혼이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주로 혼인관계가 지속되고 있는지 보는데, 이를 ‘남편에게’ 확인한다. 전에는 비자 연장 때마다 심사관 앞에 남편을 데려오게 하는 신원보증제도가 있었다. 사실상 남편에게서 ‘체류 허락’을 받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법무부는 2011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동행’만 사라졌을 뿐, ‘동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심사관은 혼인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남편에게 전화로 묻는다. 조세은 인천 이주여성센터 ‘살러온’ 부소장은 “각종 서류를 남편 명의로 떼야 하는 데다 연장 심사 전 남편과 다투면 남편이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한다”며 “장애인 남편을 부양하려고 밤늦게 일했는데, 남자를 만나러 다니느냐며 늦게 들어오면 비자 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정생활이 파탄 나면 이혼을 한 뒤 F-6-3, 혼인단절비자를 받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 이혼한 결혼이주여성 B 씨는 몇 해 전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신분이 됐다. 남편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이혼했지만 F-6-3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다. 이 정도로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F-6-3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이혼할 때만 받을 수 있다. 이혼판결문이나 가정폭력을 고발한 기록을 내야 한다.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다문화 부부가 합의가 아닌 재판을 통해 이혼한 비율은 45%로 한국인 부부 19%와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귀책사유를 확인받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결혼이주여성 가정 폭력 경험 관련 통계. ⓒ 한국일보 그래픽
결혼이주여성 가정 폭력 경험 관련 통계. ⓒ 한국일보 그래픽

문제는 입증이 어려운 폭력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심한 욕설’은 응답자 81%, ‘외출 방해’ 25%, ‘낙태 강요’도 11%가 경험했다. 이은혜 아시아의 창 변호사는 “F-6-3 비자 발급 요건으로서 가정폭력은 다양한 가정폭력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며 “증거가 없는 폭력의 경우, 부인하는 남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제결혼 건수는 2005년 4만 2000여 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1만 6000여 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호소하는 이주여성은 늘고 있다. 이주여성 상담센터 다누리콜센터에 따르면 상담 사례는 2015년 14만여 건에서 6년 만인 지난해 19만여 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주여성의 ‘이혼’은 도망이 아니다

체류자격이 불안해지는 것을 피해 이주여성은 ‘이혼 뒤 귀화’가 아니라 ‘귀화 뒤 이혼’을 택하기도 한다. 덜컥 이혼부터 하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 폭력을 당하고 있어도 귀화할 때까지 참는다는 것이다. 결혼 15년 차인 한 베트남 출신 여성은 “F-6-3은 받기 너무 어려워 굳이 시도하지 않는다”며 “국적을 얻은 뒤 이혼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인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결혼이민비자 제도를 악용해 국적만 얻으면 도망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F-6-1과 F-6-3 사이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이런 일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는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해야만 이혼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이혼 사유 대부분에 해당하는 성격 차이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이주여성에게는 “‘이혼할 권리’마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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