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6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수상작 - 플로리다 정신병원 탐사

미국 플로리다 주 게인즈빌(Gainesville)의 한 정신병원에서 23세 남성, 앤서니 바르소티 3세(Anthony Barsotti Ⅲ)가 죽었다. 그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타이레놀을 달라고 했다. 의료진도 그의 상태를 몰랐다.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고, 타이레놀을 먹였다. 그는 뇌사 상태에 빠져 죽었다. 잿빛 얼굴에 어슴푸레 뜬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한 채였다.

앤서니는 조현병 환자였다. 타인을 공격하는 이상 행동이 심해 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에서도 이상 행동은 고쳐지지 않았다.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됐다. 어느 날 그는 텔레비전 앞을 서성거리던 다른 환자를 공격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병원 직원은 앤서니를 콘크리트 벽에 밀쳤다. 

그때 그의 두개골은 갈라졌을 것이다. 그로부터 3시간여 동안, 그에게 적절한 조치를 해 준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앤서니는 동료 환자를 공격했다. 그 공격은 질병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병원 직원도 앤서니를 공격했다. 그 공격은 환자들을 지키려는 선의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죽었다.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살인, 무거운 업의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 앤서니 바르소티 3세의 부모가 취재진과 인터뷰하며 앤서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고 있다. ⓒ Tempa Bay Times, Sarasota Herald-Tribune

보이지 않는 폭력, 법 뒤에 숨은 잔혹

<템파 베이 타임스>(Tempa Bay Times) 기자 레오노라 라피터 안톤(Leonora LaPeter Anton), 앤서니 콜미어(Anthony Cormier)와 <새러소타 헤럴드 트리뷴>(Sarasota Herald-Tribune) 기자 마이클 브라가(Michael Braga)가 플로리다 주 정신병원에서 계속되는 폭력 사태의 실체를 찾아 나섰다. 이들이 협업해 내놓은 탐사보도 ‘보이지 않는 광기의 위험’(Insane. Invisible. In danger)은 2016년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심사단은 이 보도를 두고 ”플로리다 정신병원에서 늘어나고 있는 폭력과 방치를 폭로하고, (이에 대한) 주 정부 공무원들의 책임을 밝힌 훌륭한 협력 보도 사례”라는 심사평을 남겼다.

'Insane. Invisible. In danger'를 직역하면 '미친. 보이지 않는. 위험에 처한'이라는 뜻이다. 보도 내용의 다양한 맥락이 이 제목에 숨어 있다. 주립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방치된 병동 안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동시에 누군가를 위험에 빠트리기도 했다. 환자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격무에 시달린 직원이 실수로 그들을 상처 입혔다. 직원이 공격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병동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했다. 3명의 기자들은 약 1년 반 동안 플로리다에서 가장 큰 6개 주립 정신병원을 조사했다. 전·현직 직원들과 주 정부 관계자, 환자와 그 가족을 인터뷰했다. 수천 페이지의 정부 기록도 함께 조사했다.

환자가 목숨을 잃거나 공격을 당해도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는 점을 기자들은 발견했다. 관련 기록조차 찾기 어려웠다. 플로리다 주의 법률에 따르면, 정신 병원의 환자가 사망해도 직원의 잘못이 없다고 판단되면 주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직원의 책임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동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폭력은 법의 허점 속으로 조용히 가라앉는다. 

끈질긴 노력으로 관련 자료를 취재한 결과, 삭감된 예산이 사고를 불렀다는 점이 드러났다. 환자도, 직원도 안전하지 않았다. 플로리다 주 정부가 책정한 정신 건강 관련 예산은 과거에 비해 1/3 가까이 삭감됐고, 이에 따라 병원 인력이 줄었다. 환자에게 필요한 상담이나 치료 프로그램도 사라졌다. 인력이 감축된 후 직원들은 2교대로 일했다. 예산 감축에 따라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대신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환자를 혼자 알아서 감독해야 했다. 예산이 삭감된 기간 동안 플로리다의 6개 주립 정신병원에서 거의 1,000건의 폭행, 또는 부상 사건이 발생했다. 앤서니를 밀쳐 사망에 이르게 한 병원 직원 마이클은 다른 직원이 잠깐 쉬러 간 사이 앤서니를 감독했고, 그 역시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

▲ 플로리다 주의 정신 건강 예산이 1억 달러 가까이 삭감되는 동안, 폭력 사건이 꾸준히 증가했음을 보여주는 그래프. ⓒ Tempa Bay Times, Sarasota Herald-Tribune

방치된 정신병원에서 일하던 토냐 쿡(Tonya Cook)은 환자에게 공격당했다. 그녀는 2012년 어느 날 밤, 27명의 남성 환자를 혼자 보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조현병을 앓고 있었고, 폭력적이었다. 동료 직원은 위층에 있어 토냐를 도울 수 없었다. 그녀는 라디오 안테나를 뽑아들고 다가오는 환자를 보지 못했다. 그는 토냐의 얼굴을 안테나로 수차례 가격했다. 눈썹, 입술, 관자놀이, 패인 눈에서 피가 흘렀다. 그 후 토냐는 그 후 병동 철문만 보면 몸이 얼어붙었다.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람을 돕는 것이 행복했던 선량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해고당했다.

▲ 플로리다 주 정부가 병원 예산을 감축하면서 인력도 함께 줄었다. 당시 병원에서 일하던 토냐 쿡도 그 시기에 환자에게 공격당했다. ⓒ Tempa Bay Times, Sarasota Herald-Trubune, 다큐멘터리 화면 갈무리

‘퓰리처 명가’와 지역 언론의 치밀한 협업

이 보도가 나온 후, 플로리다 주 의원들은 2016년 정신병원 예산에 1600만 달러, 정신과 의사 및 기타 전문 직원과의 계약에 240만 달러, 보안 카메라 및 경보기와 같은 안전 장비에 150만 달러를 추가하는 정책을 입안했다. 

레오노라 안톤 기자가 소속된 <템파 베이 타임스>는 미국 플로리다 주를 근거로 삼은 지역 주간지다. ‘미디어 연구를 위한 포인터 연구소’(Poynter institut for media studies)가 운영하고 있다. 포인터 연구소는 저널리즘 전문 연구기관이자 비영리 저널리즘 학교다. 미국의 팩트체크 기관 <폴리티팩트>(Politifact)도 운영하고 있다. 포인터 연구소가 운영하는 <템파 베이 타임스>는 1964년 이래 12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덕에 독립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언론사의 명성을 잇고 있다. <새러소타 헤럴드 트리뷴> 역시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에 있어 지역 현안에 밝다. 

레오노라 안톤 기자는 <더 해치 인스티튜트>(The Hatch Institute)와의 인터뷰에서, 함께 일하는 기자와의 협업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앤서니 콜미어와 마이클 브라가는 이 보도로 협업하기 전에 이미 ‘은행털이’(Breaking Banks)라는 탐사보도로 2014년 탐사기자협회(IRE, 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가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이 경험을 토대로 마이클 브라가는 비즈니스, 부동산과 정부 재정 등을 취재하는 데 강점을 발휘했다. 앤서니 콜미어가 법정 기록을 주로 조사했고, 레오노라 안톤 기자는 사건의 내러티브를 썼다. 이 보도에 등장하는 법적 쟁점, 재정 이슈 등이 스토리텔링과 잘 어울려 전개된 이유다. 

거대한 부조리 속, 작은 한 생애

▲ 기사와 다큐멘터리에는 환자의 유족, 사고 관계자, 병원 관계자 등의 얼굴이 나란히 실렸다. ⓒ Tempa Bay Times, Sarasota Herald-Trubune

레오노라 안톤 기자는 기사의 내러티브를 위해 이야기를 이끌어갈 캐릭터와 철저히 사실에 기반한 핵심 일화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이야기가 문제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표현했다. 환자들이 견뎠던 방치, 직원이 겪었던 공포를 재구성해 독자가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첫 기사의 도입 대목에서 독자는 병원 직원인 토냐 쿡이 사고를 당했던 시간을 함께 겪는다. 그녀가 부상을 입는 그 순간을 기사는 마치 소설처럼 안내한다. 그녀가 27명의 남성을 혼자 돌보며 걸었던 병동 복도의 불빛, 두려움을 이기려 품에 꼭 안았던 철제 파일의 촉감을 묘사한다. 기사의 문장은 그날 밤의 긴장, 급박한 순간, 그리고 고통을 전한다. 

▲ ‘Insane. Invisible. In danger’의 첫 기사 도입부. 토냐 쿡이 입은 부상을 내러티브와 사진으로 드러낸다. ⓒ Tempa Bay Times, Sarasota Herald-Trubune

화려한 인터랙티브나 영상 대신, 취재팀은 초상사진을 많이 활용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 가족과 정부 관계자 등의 얼굴 사진을 기사에 나란히 담는다.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건이 일어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독자들은 기사를 읽으며 문득 이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기사의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의 얼굴, 무감각했던 얼굴, 이미 이승을 떠난 얼굴이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인상적인 실명 보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레오노라 안톤 기자는 인터뷰에서 실명 보도 원칙을 지키고, 초상을 공개하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대단한 비법은 없었다. 취재원에게 기자의 목적을 꾸미지 않고,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대했다.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이들을 통해 구조적 비극을 생생하게 폭로하는 기사가 그렇게 탄생했다. 

* 이 기사의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 다큐멘터리보안 카메라 영상에는 환자와 직원이 겪은 폭력이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이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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