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애플TV플러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

인간은 자연이 주는 ‘힐링’을 당연한 것으로 누리며 살았다. 자연과 생명은 바쁜 도시 생활을 벗어나면 언제나 즐길 수 있는 관광 요소로 여겨졌다. 인간이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이 자연과 다른 생명의 생존 조건은 얼마나 망가졌을까? 연구자가 그 변화를 관찰하고 싶어도 실제로 하기는 힘들었다. 지구 어느 곳이나 사람이 없는 날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은 새로운 분기점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봉쇄령 등으로 인간의 활동이 제한되자 자연이 달라졌다. 인간이 사라진 시공간은 야생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다섯 개 대륙에서 나타난 자연의 변화를 관찰한 다큐멘터리다. 인간과 생활 반경을 공유했던 다양한 생명이 자연의 질서를 되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차량과 선박의 소음이 사라지자 동물은 마음껏 활발하게 의사소통한다. 어미 동물은 이전보다 더 많은 새끼를 낳고, 새끼는 더 건강한 환경에서 자란다.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인 애플TV플러스가 BBC스튜디오(BBC Studios)와 함께 제작했다. BBC스튜디오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상업 자회사로 주로 TV 방송용 콘텐츠를 제작하고 배급하다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 2021년 4월 공개된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의 포스터. 아프리카펭귄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의 도로를 건너고 있다. 팬데믹으로 아프리카펭귄의 활동 반경에서 인간이 사라지자 아프리카펭귄은 팬데믹 이전보다 더 자주 새끼를 위한 먹이 사냥에 나섰다. ⓒ 애플TV플러스

인간의 소음에 묻혔던 야생 생태계의 소리

코로나19 제재 이후 미국 서부의 대도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의 교통 소음은 70%까지 줄었다. 경적과 엔진 소리가 사라지자 금문교 그늘에 살던 흰정수리북미멧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연구자는 흰정수리북미멧새가 짝을 부르는 새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며,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진 새들이 이전보다 활발하게 번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방문객이 130만 명이었던 미국 남동부 알래스카에서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이 사라지자 연구자는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가 의사소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다가 조용해져 멀리서도 새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어미는 이전보다 더 자주, 더 멀리 사냥에 나섰다. 어미 고래는 수유를 위해 최대한 많이 사냥해야 한다. 고요해진 바다 덕분에 어미 고래는 이전보다 새끼를 더 잘 먹일 수 있었다.

▲ 혹등고래 어미와 새끼의 모습이다. 혹등고래는 하와이에서 알래스카만으로 이동하는데 백만 명을 실은 유람선과 동선이 겹친다. 팬데믹으로 유람선이 사라지면서 바닷속은 25배나 조용해졌고, 새끼와 어미는 생산적인 소통을 할 수 있었다. ⓒ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 공식 예고편 갈무리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치타도 관광객이 줄어들어 새끼를 더 잘 보호할 수 있게 됐다. 치타는 먹이를 사냥한 후 고양이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먹이가 있는 곳으로 새끼를 부르는 신호다. 소리를 크게 내거나 자주 내면 하이에나나 사자와 같은 포식자에게 새끼를 잃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 치타는 관광객들에게 둘러싸여 새끼와 소리를 주고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코로나19 세계적 유행으로 관광객이 사라지자 어미 치타는 새끼와 빠르게 소통할 수 있었다. 연구자들은 그동안 3마리 중 1마리만 살아남던 새끼가 더 많이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했다.

인간이 공존이라 여겼던 생태계의 진실

남아프리카 펭귄은 번식기에 더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새끼가 매일 체중의 15% 정도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사냥을 마친 어미는 물고기를 배 속에 넣고 새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문제는 해변이 휴양객으로 가득 찼다는 점이다. 어미는 낮에 사냥을 마쳐도 인적이 드문 밤까지 기다렸다가 새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곤 했다. 팬데믹 이후 해변에 인간이 사라지자 남아프리카펭귄은 하루에 최대 세 번까지 새끼에게 먹이를 먹였다. 덕분에 새끼가 건강하고 빠르게 자라고 개체 수가 늘었다. 둘째를 낳는 펭귄도 많아졌다. 연구자는 10년 넘게 보지 못한 광경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인간은 남아프리카펭귄이 해변에서 휴양객과 잘 지내고 있다고 여겼는데, 사실은 인간이 펭귄의 생태계를 방해하고 있었다. 

일본의 도시 나라는 연간 방문객이 1300만 명으로 일본사슴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본사슴은 자신들이 먹이를 먹던 목초지 대부분을 인간들이 세운 건물에 점령당했다. 그동안 일본사슴은 관광지 안에서 길러지며 관광객이 주는 쌀과자를 주식으로 먹고살았다. 나라는 사슴과 인간이 함께 지내는 유명 관광지가 됐고, 인간은 그것이 야생과의 공존이라 생각했다. 팬데믹 이후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일본사슴의 주식도 끊겼다. 사슴이 굶주릴 거라는 걱정과 달리, 나이 든 사슴은 어린 사슴을 데리고 횡단보도를 건너 관광지를 벗어났다. 과거에 먹던 풀밭을 찾아낸 것이다. 비록 자투리 풀밭이었지만 풀로 배를 채운 사슴은 쌀과자를 먹을 때보다 더 건강해졌다.

▲ 코로나19로 제재가 내려진 지 12일 정도 됐을 때 인도 잘란다르에서는 대기오염이 사라져 집 옥상에서 히말라야를 볼 수 있었다. 30년 동안 스모그에 가려졌던 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 공식 예고편 갈무리

진정한 공존을 고민해야 할 때

<그해, 지구가 바뀌었다>는 인간이 자연에서 ‘힐링’하는 동안 자연은 본래의 질서를 잃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텅 빈 거리와 자연이 회복하는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는 연출은 자연의 희생은 간과한 채 자연과 공존한다고 여긴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는 사람 사이 공존에 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인간이 자연을 향해 그랬듯 우리 사회도 희생된 존재를 외면한 채 사는 건 아닐까. <그해, 지구는 바뀌었다>는 더불어 사는 삶을 재정의하는 다큐멘터리다.


편집: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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