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20년 퓰리처상 오디오 보도 수상작 - 밀려난 사람들

퓰리처상은 미국 내 언론과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이에게 주어진다. 초기 퓰리처상 언론 분야는 지면 기사만 대상으로 했지만 언론 환경 변화에 맞춰 규정을 바꾸고 시상 부문을 확대했다. 2006년 신문과 잡지의 온라인 기사를 시상 대상으로 포함했고, 2009년부터 지면 매체가 아닌 온라인 매체도 시상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꿨으며, 2011년에는 각 부문의 심사에서 시각 자료, 데이터베이스,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활용 여부를 고려하도록 심사 기준을 강화했다. 이 상이 처음 만들어진 1917년에는 보도와 사설 등 두 개 분야에서만 상을 줬지만, 이제는 지역 보도, 국제 보도, 탐사 보도, 해설 보도, 피처 보도 등 15개 분야로 다양해졌다. 퓰리처상의 변화를 따라가면 미국 내 저널리즘 지형이 어떻게 변했는지 흐름을 알 수 있다. 

논픽션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강자

퓰리처상 심사위원회는 2020년 오디오 보도(Audio Reproting) 부문을 신설했다. 오디오 보도는 소리로만 뉴스를 전달하는 모든 오디오 저널리즘을 말한다. 위원회는 오디오 저널리즘이 논픽션 스토리텔링에서 이룬 성과를 인정하며 공공의 이익에 기여한 오디오 보도에 상을 수여하겠다고 밝혔다. 오디오 저널리즘은 시각적 요소 없이 소리로만 전달하므로 청취자를 몰입시키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기승전결이 잘 짜인 정교한 구성, 생생한 인터뷰 음성, 적재적소의 효과음과 배경음악 등이 활용된다. 청취자와 친밀하게 교감하기 위해 사건을 취재한 기자가 1인칭 시점으로 사실을 설명하는 형식을 택하는 경우도 많다. 청취자가 기자의 경험을 들으며 취재 과정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퓰리처상이 오디오 보도 부문을 처음 제정한 2020년의 수상작은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의 ‘밀려난 사람들’(The Out Crowd) 보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을 다루면서, 이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공무원과 이주민의 삶을 보도했다. 특히 복잡한 정책을 다룬 내용을 인물과 장면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기승전결을 이루는 이야기 구조로 전달했다. 이렇게 서사 구조로 내용을 전달하는 오디오 뉴스 형식은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가 처음 개척한 영역이기도 하다.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는 아이라 글래스(Ira Glass)가 시카고 공영 미디어(Chicago Public Media)에서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1회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ational Public Radio·NPR)을 통해 방송하고 있다. 아이라 글래스는 2015년부터 프로그램의 이름을 그대로 따와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를 일종의 독립 뉴스 프로덕션으로 운영하며 방송을 제작하고 있다.

▲ ‘밀려난 사람들’ 보도 화면 갈무리. 멕시코 국경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자이크로 처리했다. ⓒ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 홈페이지 갈무리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를 일군 것은 ‘멀티 저널리스트’다.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PR)에서 17년 동안 인턴, 조연출, 기자, 프로듀서 등 여러 직군을 거친 아이라 글래스는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를 통해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방법을 실험했다. 그는 즉흥적인 대화 형식의 라디오 프로그램보다 서사 구조로 잘 짜인 라디오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았다. 글래스는 소설 기법을 적용한 라디오의 전달력을 믿었다. 퓰리처상 수상 이후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글래스는 “캐릭터와 장면, 영화처럼 전개하는 이야기에 매우 관심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는 일반적으로 에피소드당 평균 310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매주 220만 명이 듣는다.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는 자회사 ‘시리얼 프로덕션’을 만들어 팟캐스트로 진지한 보도를 전달하는 실험도 벌였다. ‘시리얼 프로덕션’ 소속 프로듀서들은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시리얼>(Serial), <에스타운>(S-town), <좋은 백인 부모들>(Nice White Parents) 등을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시리얼> 시즌 1은 3억 회 이상 다운로드되는 성공을 거뒀다. 이후 <뉴욕타임스>는 ‘시리얼 프로덕션’을 인수했다. 자회사를 매각한 뒤에도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는 독립 언론사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문학적 형식의 오디오 저널리즘이 미국 내에서 심층 보도의 중요한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두 개의 이야기로 전한 진실

2019년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정부는 ‘멕시코 잔류 정책’을 시행했다. 멕시코 잔류 정책은 중남미 등에서 올라온 이주민이 망명 신청 이후 미국이 아닌 멕시코에서 대기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망명 신청자는 트럼프 정부의 이민 정책으로 멕시코에 장기간 머물러야 했다. 멕시코는 망명 신청자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망명 신청자를 노린 살인, 납치, 성폭행 등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했다. ‘밀려난 사람들’ 보도는 트럼프 정부가 시행한 이민 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몰리 오툴 기자는 망명 신청자의 상황을 심사하고 잔류 여부를 결정하는 공무원 세 명을 만났다. 에밀리 그린 프리랜서 기자는 망명 신청 후 멕시코에 도착하자마자 납치된 가족을 취재했다. 아이라 글래스는 멕시코 국경에 있는 임시 거주 캠프에서 이주민을 만났다. 

▲ ‘밀려난 사람들’에 담긴 내용을 취재한 몰리 오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기자(왼쪽) 에밀리 그린(오른쪽) 기자. ⓒ 퓰리처상 홈페이지 갈무리

보도는 프롤로그, 1막, 2막 등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서는 멕시코 국경에 있는 배경지식을 전달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아이라 글래스는 멕시코 국경에 머무는 사람들의 열악한 상황을 들려준 후 몰리 오툴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오툴 기자의 보도와 함께 1막 ‘잘 가, 이방인’(Goodbye, Stranger)이 시작된다. 그는 멕시코 잔류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세 명을 인터뷰한다. 위험에 처할 줄 알면서도 이주민에게 멕시코로 가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은 멕시코 잔류 정책의 불법성과 부당성을 드러낸다. 2막 ‘먼 길을 돌아 집으로’(Take the long way home)는 멕시코에서 납치당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겼다. 에밀리 그린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망명 신청자가 아들과 함께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멕시코 카르텔은 그의 여동생에게 가족의 몸값을 요구한다. 에밀리 그린 기자는 여동생을 통해 당시 상황을 녹음한 파일을 구했다. 납치에서 풀려난 이주민은 에밀리 그린 기자와 인터뷰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껴 떠나온 고향이 멕시코보다 낫다면서 고향에 다시 돌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막의 이야기는 멕시코 국경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에 노출돼 있는지 전달한다. 

감정을 휘두르는 날카로운 도구

‘밀려난 사람들’을 기획하고 제작한 프로듀서 나디아 리먼은 트럼프 정부의 강경 이민 정책이 미국의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았다. 미국이 힘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곧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미국 사람이 어떤지 보여준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나디아 리먼은 오디오 저널리즘이 그 의미를 잘 전달할 것이라고 믿었다. 오디오는 “감정을 휘두르는 무언가를 가진 날카로운 도구”로 청취자에게 취재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오디오가 그만큼 “많은 힘과 많은 책임을 지닌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언론의 역할 중 하나는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함께 살아갈 방법을 질문하는 일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여긴 사회 구성원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인식하게 돕는 것이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다. 미국에서는 소설 형식을 덧입은 오디오 보도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밀려난 사람들’은 여기에서 들을 수 있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이예진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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