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SBS 특집 다큐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

코로나로 잠시 주춤하긴 하지만, 전 세계 여행은 대부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어서 특별한 이유 없이 갈 수 없는 곳이 있다. 가장 가깝지만 가장 먼 나라 ‘북한’이다. 미지의 세계인 북한은 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니 그곳에 관한 상상력도 자연스레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 상상력에 도전을 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북한을 미래의 사업장으로 꿈꾸는 청년들의 이야기, SBS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이다.

▲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의 부제는 ‘우리는 레드 오션으로 간다’이다. 다큐는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곳으로 청년들이 나서는 이유를 보여준다. ⓒ SBS

북한을 ‘청년 사업장’으로 바라보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작년 11월 SBS에서 방영된 2부작 다큐멘터리다. 10여 개의 청년 사업팀이 사업장으로는 ‘넘볼 수 없는 곳’으로 인식되는 북한에서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기획한다. 아이템은 비즈니스 컨설턴트, 통일연구원 등 여러 전문가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지원자 중 사업 실현 가능성이 가장 큰 3명은 세계 3대 투자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에게 투자 자문을 받을 수 있다. 다큐는 북한을 비즈니스 차원에서 접근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난해 12월 이달의 PD상 TV 시사교양 정규부문을 수상했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북한을 다뤘던 기존 프로그램과 소재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이전까지 프로그램은 대부분 새터민 탈북 과정에 집중하거나,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식으로 다소 자극적인 구성을 취했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실질적으로 북한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도 제한적이었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북한을 사업장으로 인식하는 청년 사업 아이템의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을 소재로 한 새로운 프로그램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다큐 주인공인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차별화 지점을 확보한다. 미디어에서 북한을 언급할 때 청년은 소재의 대상이(혹은 주체가) 되지 못했다. 사업 대상으로 북한을 다룰 때도, 국가와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남북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청년이 주체인 사업은 없었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이 금기를 깨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한다. 다큐는 청년이 주체가 돼 북한을 사업장으로 하는 비즈니스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했다. 여기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북한의 상황을 바탕으로 향후 교류와 사업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짐 로저스를 섭외함으로써 청년 예비 사업가들의 기획에 현실성을 더했다. 

▲ 세계 3대 투자 전문가 중 한 명인 짐 로저스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북한의 잠재성을 바탕으로 투자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다. 그가 북한을 상대로 문을 두드리는 한국 청년들에게 자문하는 이유다. ⓒ SBS

우리가 몰랐던 북한, 그리고 청년의 도전 

10개 청년 사업가 팀이 내놓는 사업 기획안은 열 가지다. 남북 전통 통일주, 남북한 사이에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플랫폼 개발, 익스트림 스포츠를 활용한 북한 관광, ‘두부밥’ 등 북한 음식을 활용한 사업, 남북한 청소년 문화 캠프, 북한을 메타버스로 옮겨놓은 관광사업, 가축 분뇨를 활용한 발전, 북한의 특징을 살린 핫플레이스 개발, 남북한 수어 사전 개발 등이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청년이 제시한 사업에 필요한 북한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 시청자 이해를 돕는다. 이 정보들은 남쪽 사람들의 북한에 관한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남한과 북한 사이에 중고물품을 교환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기획안은 언뜻 보면 현실성이 매우 부족해 보인다. 북한의 IT 기술 능력 등이 뒷받침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은 북한 IT 기술자와 함께 일을 한 사업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이를 보충한다. 사업가는 물품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는데, 함께 만든 기술을 보면 영상 인식 분야 등에 있어 북한은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유력 대학의 학생들이 IT 국제 경진대회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는 등 앞으로 발전 가능성도 크다는 사실을 프로그램은 전달하기도 한다. 

북한의 가축 분뇨를 이용해 발전하겠다는 기획안은 전력이 부족한 북한의 실정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화학 비료가 부족한 북한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다. 북한은 화학 비료가 부족해 가축 분뇨를 대부분 비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전기로 사용할 만큼 가축 분뇨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생산이 보편화돼있는 만큼, 천연자원을 활용한 전기 생산이라는 큰 범주에서의 도전은 의미가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 북한과 남한의 전통주를 결합한 남북 통일주를 만들겠다는 ‘으능정이 부루어리’ 팀. 이 팀은 짐 로저스로부터 “이야기가 매우 좋고 확장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았다. ⓒ SBS

청년 개개인 스토리도 프로그램에 다양성을 더한다. 북한과 남한 청소년 문화교류를 기획안으로 내놓은 팀에는 북한에서 4개월 동안 공부한 지원자가 있었다. 그는 캐나다 국적을 갖고 있었고, 아버지가 북한의 한 대학으로 교환교수를 가면서 북한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 학우들과 함께 지내온 시간을 기억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가 내세운 남북 문화교류의 중요성이 설득력을 가진 이유다. 청각장애인 3명은 남북한 수어책을 만드는 사업에 도전했다. 남한과 북한의 수어가 다르고 향후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라도 서로의 수어를 명확히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세 사람은 사업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큐는 각자의 상황에서 사회에 필요한 사업 아이템을 제시하는 청년을 통해 멈춰선 남북교류의 의미와 방향성을 확보해 낸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로 접근했어야

남북관계는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경색 국면이다. 민간단체 차원 교류는 물론이고 국가 간 교류도 자연스레 중단된 상태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다시 남북관계 중요성과 의미를 환기한다. 남과 북은 가장 가깝기에 누구보다 쉽게 교류할 수 있고, 양국이 동시에 발전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또한,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설 때 그들이 마주한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큐는 남북관계에서 청년이 나서야 하는 이유를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아쉬움도 남는다. 이 프로그램의 차별점은 북한을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업 기획안의 실현성을 피상적으로 보여주는 데 그쳤다. 사업 기획안을 제출한 팀이 10개다. 2부작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 열 개 팀의 기획안을 모두 보여주다 보니, 각 사업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가장 호평을 받은 통일주의 경우에도 유통 과정,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등을 내세우기보다는 소재 자체의 주목도에만 집중하는 식이었다. 전문가의 조언, 짐 로저스의 자문만으로는 10개 기획안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어려웠다. 사업으로서의 실현 가능성, 조달 비용과 추진 방법, 사회적 의미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시청자 입장에서도 청년들의 실질적인 북한 사업경쟁으로 이해하고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획안에 관한 피상적인 평가는 이 다큐만의 ‘북한 비즈니스’라는 차별 지점을 살려내지도, 청년들이 나선 남북교류와 협력이라는 미래 희망을 불사르지도 못했다.

짐 로저스의 역할도 모호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북한을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한 시도가 더 빛을 발하기 위해선 짐 로저스의 역할이 중요했다. 짐 로저스가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했듯 미국의 북한 제재 상황 때문에 실질적인 투자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할이 조언 수준에 머문 것은 아쉽다. 북한 상황을 상세히 분석한다거나 투자 관점에서 어떤 지점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현재 경색된 국면에서 그만이 제안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히 다루었다면 프로그램이 의도했던 북한의 비즈니스적 관점이 더 드러났을 것이다. 

▲ 10개 팀의 기획안을 나열식으로 모두 보여주는 구성은 ‘북한 비즈니스’라는 특성이 무엇인지, 실현 방법과 의미를 전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팀 수를 5개로 줄이거나, 비즈니스적 차원에서 각 팀의 성공 가능성을 강조했을 때 프로그램의 의도가 더 돋보였을 것이다. ⓒ SBS

멀지만 가야 할 그 길, 선봉에 청년이 있다

여전히 북한은 미지의 세계다. 동시에 매일 마주하는 실재 세계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언젠가 북한과의 공존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2021 청년들의 페이스北>은 그 중심에 청년이 있다고 말한다. 다큐의 초반에 제시되듯 북한에 관한 청년의 관심은 매우 저조하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중심이 돼야 한다는 다큐의 메시지는 유효하다. 청년들은 대동강에서 술을 만들고, 카누를 타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레드오션’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남북관계의 미래는 청년이 열어야 하고, 그 꿈들은 몽상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현재진행형이다. 


편집: 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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