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1년 퓰리처상 국내보도부문 수상작 – 월가 시리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또 다른 이름은 ‘대침체’(Great Recession)다. 2006년부터 주택 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담보대출을 기반으로 한 파생금융상품 가격도 폭락했다. 리먼브라더스 등 대규모 투자은행들은 파산했다.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예금, 직장, 집을 잃고 고통받았다. 그러나 모두가 고통받은 것은 아니었다. 

월가는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월가 금융인들은 당장 돌아오는 보너스만 신경 썼다. 회사를 위협하는 투자도 서슴지 않았다. 회사는 망했지만, 이들은 보너스를 두둑이 챙겼다. 뉴욕 금융감독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 월스트리트 간부들이 받은 보너스 총액은 239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매체 <프로퍼블리카>(ProPublica)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월가의 비밀스러운 거래를 2009년부터 2년 동안 총 11편에 걸쳐 보도했다. 특히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의 도덕적 해이를 파헤쳤다. 그림자 금융은 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면서도 은행과 같이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은 투자은행, 헤지펀드 등을 말한다. 이 기사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 가운데 처음으로 2011년 ‘국내보도’(National Report)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월가의 광란을 한 편에 그리다

<프로퍼블리카>의 월가 시리즈는 헤지펀드인 ‘마그네타 캐피털’(Magnetar Capital)의 거래를 추적한 내용과 세계 최대 증권회사 ‘메릴린치’(Merrill Lynch)의 불법 거래를 폭로한 내용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보도 ‘마그네타의 거래: 어떻게 헤지펀드 한 곳이 버블을 견뎠나’(The Magnetar Trade: How One Hedege Fund Helped Keep the Bubble Going)는 마그네타의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의 부도덕한 투자를 폭로하는 내용이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지난날 경제호황의 통제되지 않은 인센티브와 무모한 행동에 관한 이야기다.

▲ <프로퍼블리카>가 실은 부채담보부증권(CDO)에 관해 설명하는 만화 일부다. 금융인들은 주택담보대출 금융파생상품으로 엄청난 보너스를 챙겼고, 이는 2008년 대침체로 이어졌다. ⓒ 프로퍼블리카 기사 갈무리

헤지펀드 회사 마그네타는 영화 <빅쇼트>에 나오는 수법과 같은 수법을 썼다. 다만 더 교묘했고, 그 규모도 훨씬 컸다. 영화 제목에 쓰인 ‘빅쇼트’(Big Short)라는 용어는 주식이나 채권이 하락하면 이익을 얻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마그네타는 300억 달러를 투자해 부채담보부증권(CDO) 거래를 키웠다.

마그네타가 만든 CDO를 추적하던 <프로퍼블리카> 취재팀은 ‘메릴린치’ ‘JP모건’ 등 거대 투자은행이 마그네타와 공모한 사실을 알게 됐다. ‘이상한 보조금: 메릴린치는 어떤 식으로 자기 회사를 날렸을까’(The ‘Subsidy’: How a Handful of Merrill Lynch Bankers Helped Blow Up Their Own Firm)는 메릴린치의 일부 간부가 CDO 부서를 만들어 마그네타와 함께 CDO 상품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거액의 보너스를 챙긴 사실을 폭로했다. 이로 인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 메릴린치는 수백만 달러를 손해 봤다. 메릴린치는 금융위기 때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에 인수되면서 부도를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개인이 탕진한 돈을 세금으로 메꾼 것이다. 

탐사 아닌 수사

이 시리즈를 보도한 제시 아이신저(Jesse Eisinger) 기자는 경제 부문 탐사보도 전문기자다. 2002년부터 <월스트리트저널> 유럽 지사에서 생명공학 및 제약 분야의 취재를 맡아 제약 회사 등의 비리를 폭로하는 기사를 주로 썼다. <월스트리트저널 매거진>으로 이직한 뒤 보도한 기사 ‘월가 장성곡’(Wall Street Raquiem)에서는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Bear Stearns)와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부도를 예측하기도 했다. 

탐사보도는 ‘investigation journalism’을 번역한 말이다. 그러나 원래 단어인 investigation의 뜻을 생각해보면, ‘수사보도’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탐사 기자는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관 역할을 한다. 탐사보도 기법도 수사 기법과 비슷하다. 자료 수집과 분석, 면담 등으로 이뤄진다. 제시 아이신저가 취재의 첫 단계에서 택한 방법은 인터뷰였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경찰과 검찰에게는 법적으로 수사할 권리가 있지만, 기자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취재에 착수하고 수개월 동안 인터뷰에 응해주는 취재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월가의 비즈니스 방식에 불만을 품던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내부 사정을 잘 알았다. 첫 번째 보도 ‘마그네타의 거래’는 취재원의 증언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만 20명이 넘는다. 이후에는 각 취재원으로부터 거래 기록을 모아 마그네타가 거래한 전체의 그림을 파악했다. ‘마그네타 거래 타임라인’(The Timeline of Magnetar’s Deals)는 마그네타가 만든 CDO 30개 중 26개의 자금 흐름을 추적한 내용을 인포그래픽으로 제시한다.

▲ 마그네타의 거래 규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이다. 파란색 원은 해당하는 달에 발행된 서브프라임 CDO 전체 시장을, 검정색 원은 CDO 시장에서 마그네타의 거래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 프로퍼블리카 기사 갈무리

탐사보도의 힘

<프로퍼블리카>의 보도는 미국 상원의 특검으로 이어졌다. 진짜 수사가 된 것이다. 그 결과 2011년 6월 21일 미국 은행 JP모건체이스(JP Morgan Chase)는 투자를 권유할 때 투자자에게 상품을 충분히 설명하는 의무를 명시한 연방증권거래법을 어긴 혐의로 벌금 1억5400만 달러를 냈다.

탐사보도의 또 다른 가치는 소속 매체와 상관없이 기자들을 협동하게 만드는 데 있다. 장막 너머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있어 기자들은 한 팀이다. 월가 시리즈 역시 <프로퍼블리카>의 단독 작품은 아니다. 비영리 라디오 <WBEZ>의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팀과 공영 라디오 <NPR>의 ‘플래닛 머니’(Planet Money)팀 등과 공동으로 이 문제를 취재하여 보도했다.

제시 아이신저는 한 인터뷰에서 <NPR>이 금융위기 발생 전에 보도한 ‘거대 자본’(The Giant Pool of Money)이라는 프로그램을 접했던 것이 마그네타를 향한 추적을 시작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 <NPR>의 이 방송은 내부자 인터뷰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원인을 폭로하면서 화제가 됐다. 방송을 들은 뒤 제시 아이신저는 은행투자자들이 금융위기가 올 것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 궁금증을 품게 됐고, 그 결과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CDO를 파고들 수 있었다. 이렇듯 탐사보도의 진정한 추진력은 언론사의 경쟁이 아니라 기자들의 협동에서 비롯한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나종인 PD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