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MBC충북 성교육 프로그램 ‘성교육은 처음이라’

코로나19가 성교육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플랫폼 사용이 사회 전반에 확대 적용됐다. 청소년은 성과 관련된 광고 혹은 콘텐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내몰렸다. 아이들의 잘못된 성 가치관을 바로잡고자 최근 학부모들은 성교육도 사교육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소그룹으로 나눠 외부 강사를 초빙해 성별·연령별로 맞춤식 성교육 과외를 시키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학교 성교육을 향한 불신’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교육부 지침상 초·중·고교는 연간 15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성교육(성폭력 예방교육 3시간 포함)을 시행해야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국어, 과학 등 교과 과목 시간에 성이나 사랑, 몸과 관련한 주제를 다뤄 성교육 의무 시간을 채운다. 공교육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충분하지 않다고 본 이유다. 성교육 사교육을 통해 자녀가 어렸을 때부터 전문가에게 올바른 성 관념을 배우도록 부모가 직접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성교육도 사교육 해야 하나요?

공교육에서의 성교육을 크게 불신하게 만든 배경에는 ‘N번방 사건’이 있다. 2010년 이후 급격하게 보급된 스마트폰은 유아부터 성인까지 모두에게 필수품이 됐다. 스마트폰을 통해 빠르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청소년들은 손쉽게 성착취물을 접하고, 공유가 가능해졌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기 전에 또래끼리 스마트폰을 통해 성범죄물 영상을 자연스럽게 공유했다. 그 세대가 큰 10년 후, 2020년 N번방 사건이 터졌다. N번방을 만든 조주빈을 지목해 사회가 그에게 돌을 던졌지만, 사실 가해자는 조주빈만 있는 게 아니다. 성착취물을 보며 즐긴 모든 사람이 가해자였다. 이를 막고 교육해야 할 학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공교육에서 해야 할 성교육에 문제를 느낀 부모가 제대로 된 성교육을 위해 사교육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이유다.

▲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프로젝트' 일환이었던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책 표지. 덴마크 문화부 아동도서상을 받았고 해외에서 유아 성교육 자료로 널리 쓰인다.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며 국내에서는 논란이 일었다. ⓒ 담푸스

N번방 사건이 일어난 데는 한국 사회의 성 엄숙주의가 있다. 아이들이 일찍 성에 관심을 보이면 부모는 대부분 두려움을 느낀다. 대표적으로 어린이 성교육 책을 ‘금서’로 낙인찍은 사례가 있다. 2020년 8월 어린이 성평등 교육을 위해 선정된 책 7종을 향해 국회에서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 “동성애를 가르친다” 등 비판을 퍼부었다. 특히 엄마·아빠의 성관계 과정을 묘사한 덴마크의 성교육 동화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의 삽화를 두고 많은 학부모가 눈살을 찌푸렸다. 성관계를 불건전하게 여기면서 아이들과 성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아이에게 올바른 성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을까? 성을 이야기하는 게 금기시된 사회는 성인지 감수성을 끌어올릴 방안을 알맞게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권력형 성범죄, 회사와 학교·또래 간 단톡방 성폭력,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 접속 등 현대 성범죄는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과거보다 더 일찍, 더 쉽게 성범죄에 노출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성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고민의 산물이 바로 MBC충북이 내놓은 성교육 프로그램 <성교육은 처음이라>다.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라 제작한 최초의 성교육 시리즈

▲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지상파 방송 최초로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제작한 성교육 시리즈다.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라 총 12화에 걸쳐 다양한 성교육 소재를 다뤘다. ⓒ MBC충북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지난해 9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방심위는 “청소년의 눈높이와 젠더 관점에서 흥미롭고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했다”고 선정 사유를 꼽았다. 아나운서 박혜진, 개그맨 최효종, 모델 배유진을 비롯해 청소년 패널로 전수빈, 홍지수, 김민영 씨가 출연한다.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유네스코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하는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에 따라 한국적 상황과 청소년 눈높이에 맞게 제작한 최초의 성교육 시리즈다. 포괄적 성교육 가이드라인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차이, 신체적 접촉을 통한 쾌락과 효과적 피임 방법 등이 제시돼 있다. 유네스코는 현실에 발맞춘 성교육이 안정적인 성생활을 유도하는 반면, 금욕을 강조하는 성교육은 성경험 시작 시기를 늦추거나 성생활 빈도 및 파트너 수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성 엄숙주의를 바탕으로 한 성교육에서 벗어나 지금 당장 청소년이 궁금해 하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공론장이 <성교육은 처음이라>다. 청소년 패널과 일반 성인 패널, 전문가 집단 패널이 모여 성과 관련된 기존 지식, 가치관 등을 나눔으로써 성교육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본보기를 보여준다. 성교육은 단순히 정자와 난자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생물학적 성지식 전달 교육이 아니다. 스튜디오에 출연하는 청소년 패널뿐 아니라 실제 학교 현장 등을 찾아 성교육 문제를 짚는다.

▲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탈피해 나와 타인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교육으로 성교육 인식을 바꿨다. ⓒ MBC충북

“성교육을 시작할 때 성폭력에 관해 먼저 물어봐요. 그래서 그런 거를 맨 처음 수업 시간에 접하다 보니까 성이 더럽다는 기분을 느끼고 시작하는 거 같아요.”

1화는 충주 예성여고 학생 4명을 상대로 성교육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지 묻는 데서 시작한다. 정유나 씨는 성교육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더러움’을 꼽았다. 그에게 성교육은 성폭력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받는 것, 혹은 성폭력을 당한 후 해야 할 대응 방법으로 귀결됐다. 내 몸에 관해 알아야 할 지식, 다양한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을 배우고 토의하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탈피해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시간으로 그 인식을 바꿨다.

잠지라고 부르지 마세요, 음순입니다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은 1985년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측정하기 위해 벡델 테스트를 고안했다. 성평등을 언어로 표현하고 정립해 측정하려는 시도는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는 기준점을 만든다. <성교육은 처음이라>는 TV에서 처음 시도한 벡델 테스트이다. 3화에 출연한 성교육 활동가 심에스더 씨는 패널들에게 생식기를 일컫는 단어가 뭔지 물었다. 남성 생식기를 두고 ‘고추’라고 부를 때 웃기는 해도 경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옅다. 그렇다면 여성 생식기를 일컫는 말은 뭘까? 여성 청소년 패널이 생각하더니 “잠지”라고 말했다.

▲ '잠지'가 어린 남자아이의 성기를 일컫는 순우리말이라고 설명하는 성교육 활동가 심에스더. 여성의 성기를 남성의 성기 이름으로 오랫동안 사회에서 불렀다. 이는 여성 성기를 향한 금기가 담겨 있다. ⓒ MBC충북

잠지를 부를 때 느껴지는 시선은 고추를 말할 때 느껴지는 시선과 다르다. 여성의 성기를 남성의 성기만큼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사회 속에 있다. 잠지라는 용어에 여성의 성기는 부끄럽고 숨겨야 하는 인식이 녹아 있다. 또한, 잠지라는 용어는 사실 어린 남자아이의 성기를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여성의 성기는 남성의 성기로 치환돼 할머니에서 엄마에게 딸에게 전승됐다. 제대로 부르는 말이 무엇인지 아리송한 여성의 성기. 여성 생식기를 제대로 부르는 단어조차 부재한 현실에서 성평등을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양육자분들이 (여성 성기를 부를 때) 제일 많이 사용하는 말 중에 ‘소중이’가 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소중하다고 하면서 진짜 소중한 것의 이름을 안 부르는 경우가 있나요? 음순으로 정확하게 불러야 합니다. 여성의 성기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중요합니다.”

단순히 생물학적 지식을 전달하는 게 성교육이 아니다. 성에 숨겨진 사회적 의미, 젠더적 위치를 조정하는 게 성교육이 도맡은 역할이다. 언어는 차별을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잠지와 소중이 속에 여성이 그동안 어떤 취급을 받아 왔는지 고스란히 반영됐다. 바꿔야 할 대상을 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성교육은 처음이라>의 가치는 ‘성교육 하면 섹스, 섹스는 순결한 것 또는 더러운 것’이라는 이분법적인 가치를 타파한 데 있다. 시대에 따라 성교육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성교육은 섹스에서 더 나아가 결국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관계를 이어야 하는지 다뤄야 한다. 정상 가족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이성애가 있듯 동성애가 있다고 받아들인다든지, 태어날 때 정해진 성별과 본인이 생각한 성별이 불일치할 수 있다는 교육받는 형태다. 결국 성교육의 핵심은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느냐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교육의 첫걸음을 성교육을 통해 <성교육은 처음이라>가 보여준다.

메타버스로 성교육을?

▲ 성교육용 챗봇과 메타버스로 새로운 성교육을 시도하는 <성교육은 처음이라> 제작진. 시공간의 제약 없이 메타버스에서 자유롭게 챗봇 '송아'에게 궁금한 성지식을 질문할 수 있다. ⓒ MBC충북

<성교육은 처음이라> 제작진은 디지털 세대에 적합하게 성교육용 챗봇을 만드는 시도를 했다. 그뿐 아니라 메타버스로 성교육을 하는 등 콘텐츠 확장성을 제시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지원으로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 스타트업과 합작해 AI 성상담 챗봇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소년들이 직접 또래가 어떤 성교육을 받고 싶고, 어떤 성 지식을 원하는지 조사해 AI 성상담 챗봇 ‘송아’를 만들었다. “친구처럼 친근하긴 하지만 할 말은 다 하고, 고민을 얘기하면 친구처럼 보듬어주는 챗봇을 만들고 싶었다”고 제작에 참여한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 송가현 학생이 밝혔다. 프로그램은 챗봇 제작에 함께 참여해 단순히 어른이 청소년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성 지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성교육을 스스로 만들어보는 경험까지 프로그램 안에 녹여냈다. 하지만 겨우 첫걸음을 떼었을 뿐이다. 성에 대한 담론이 음지에서 양지로, 행위에서 관계로 나아가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편집: 심미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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