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㉚ 과천 등 ‘이격거리 규제’로 사실상 금지

스포츠 자동차들이 치열한 경주를 벌이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포뮬러 원(Formula 1·F1) 경기장. 전체 면적 130만제곱미터(㎡·약 40만 평) 중 약 20%인 23만㎡가 주차장이다. 지난해 11월 8일 <단비뉴스> 취재팀이 찾아간 이 주차장은 1구역에서 7구역까지, 축구장 30개 크기의 면적에 태양광 패널들이 웅장하게 도열하고 있었다. 3~4미터(m) 높이로 우뚝 솟은 패널들은 빛을 많이 반사하지 않아 검은빛을 띠었다. 비나 눈이 흘러내리도록 기울어지게 설치된 패널 밑에 주차된 자동차에는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졌다.

영암에프원 태양광발전소는 설비용량 13.3메가와트(MW)로, 20MW 규모인 르노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주차장 태양광발전소다.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이 지난 2012년 515억 원을 들여 지었다. 여기서 연간 4000가구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 약 97억 원의 수익을 낸다.

영암 F1 주차장 태양광 발전으로 연 97억 원 수익  

 
전남 영암군의 포뮬러 원 경기장의 주차장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들. 축구장 30개 면적에서 연간 4000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한다. ⓒ 한국서부발전

안태석(49) 영암태양광발전소 소장은 주차장 태양광의 장점으로 ‘놀고 있는 땅’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논밭, 임야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에는 자연환경 훼손 논란이 있는데, 주차장 부지를 이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주차시설을 이용하는 고객 입장에서도 (태양광) 지붕이 있는 게 훨씬 낫다고 지적했다. 비와 눈을 막아주고, 더울 때는 그늘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안 소장은 일부에서 제기했던 태양광 패널의 안전성 문제에 관해서도 해명했다. 태양광 패널에서 화재가 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 그는 “태양광 패널에 설치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전기제품이라 열이 발생하면 화재가 날 수는 있지만 태양광 패널에 가연물이 없어서 큰 화재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상황에서는 더 이상의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화력발전소에 비해) 더 친환경적”이라며 태양광 패널에서 중금속, 전자파 등의 유해 물질이 방출될 것이라는 우려도 사실과 다르다고 덧붙였다. 

 
영암에프원 태양광발전소 사무실 앞에 설치된 발전 현황판과 내부 상황판, 그리고 주차장 태양광 시설. ⓒ 이현이

국내 3위 주차장 태양광 ‘될 뻔’했던 과천 서울대공원

경기도 과천시 대공원광장로 청계산 자락에는 놀이동산인 서울대공원이 있다. 이곳의 주소지는 과천이지만 부지는 서울시 소유다. 서울에너지공사는 2018년 3월 서울대공원 주차장 부지를 활용해 태양광을 설치하는 사업을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 주차장 태양광발전소건설 사업은 과천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됐다. 

서울에너지공사는 당초 서울대공원 주차장의 지상 공간에 태양광발전소를 지어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과 친환경 서울대공원 조성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주차장 부지 16만㎡ 중 9만㎡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10MW 규모의 전기를 생산한다는 구상이었다. 이는 연간 3600가구가 사용 가능한 전력량이다. 계획대로 됐다면 주차장 태양광으로서는 영암에프원에 이어 국내 세 번째로 큰 시설이 됐을 것이다.

▲ 서울대공원 주차장 태양광발전소 설치 후 예상 전체 조감도(왼쪽)와 예상 투시도. ⓒ 서울에너지공사

하지만 이 사업은 과천시 일부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첫 삽을 뜨기도 전 중단됐다. 제갈임주 과천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주민 반대가 그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며 “주민 설명회를 하는데 거기서 반대 의견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주민들 제기한 ‘태양광 위험성’은 ‘사실무근’ 판명

일부 과천 시민들은 안전사고 우려와 함께 도시 미관을 해친다며 태양광 설치를 반대했다. 2018년 과천 시민들이 결성한 ‘서울대공원 주차장 태양광발전소 설치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는 2019년 6월까지 서울시청 앞에서 10차례 반대 시위를 했다.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김동진(50·시민활동가) 씨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현재도 태양광 설치에 반대한다”며 “엄청난 대용량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빛 반사도 심하고, 학교와의 거리 문제도 있고, 효율성 문제도 있고, 안전성 문제도 있고, 경관을 훼손하는 문제도 있어 반대한다”고 말했다.

김 씨 등 비대위가 주장했던 위험성은 대부분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됐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2015년 논문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의 빛 반사율은 5.03%로, 강화유리의 빛 반사율인 7.48%보다 낮았다. 또 2019년 국립전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3킬로와트(kW)급 가정용 태양광 인버터의 전자파 자기장 강도는 7.6밀리가우스(mG)로, 전자레인지(29.21mG)나 인덕션(6.19mG), 전기장판(5.18mG) 등 생활가전기기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태양광 패널이 중금속 범벅이라는 주장도 나왔으나 2018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 태양광 폐패널에서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의 지정폐기물 기준을 초과하는 중금속 성분은 나오지 않았다. 

제갈임주 의원은 “사실과 다른 정보들이 많았지만 반대 운동하신 분들이 크게 목소리를 내고 부정적인 여론이 다수 형성돼서 아예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동진 씨는 태양광의 빛 반사가 심하지 않고, 중금속이 나오지 않는다는 팩트체크 결과와 관련 “일반 시민들은 거기에 대해서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태양광이라고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다”며 “소규모로 개인이 원해서 지붕에다 설치하는 건 반대하지 않는데, 몇십만 평에다 설치하는 거는 오히려 환경에 더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과천시의회에서 활동하는 제갈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 과천시의회

과천시 도시계획 조례로 태양광발전소 원천 차단

반대 주민들의 안전성 우려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지만, 서울대공원에는 앞으로도 태양광발전소가 들어서기 어렵게 됐다. 2020년 11월 과천시의회가 ‘도시계획 조례 제22조의 2항’ 신설을 통해 태양광 발전시설의 이격거리(안전을 위해 띄우는 거리) 등을 규제했기 때문이다. 이 조례는 도로, 주택과 태양광발전소 간 거리를 촘촘하게 제한해 과천시 내에 태양광발전소 설치를 힘들게 만들었다.

“(조례가) 개선이 돼야 해요. 이제 대공원에는 주차장 태양광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제갈임주 의원은 “국민의힘 야당 의원들 주도로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서 태양광 발전시설 입지 조건을 명시했다”며 “도로, 주택가에서 각각 500m와 300m 이내, 학교에서는 200m 이내에 태양광 패널이나 발전 생산 시설을 두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례를 발의한 국민의힘 박상진 의원은 2020년 10월 20일 열린 조례심사특별위원회에서 “주변 환경훼손을 방지하며 시설 인근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화재 등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조례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제갈 의원은 “다른 시군 같은 경우에는 햇빛발전협동조합을 시민들이 세워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고 생산된 전력을 판매해서 수입을 올리는 사업도 진행하는데 과천에서는 그런 행위를 못하도록 봉쇄를 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8년 1월 8일을 마지막으로 과천시 내에서는 사업용 태양광 패널이 한 건도 설치되지 않았다.

▲ 과천시의회가 지난 2020년 신설한 도시계획 조례 제22조의2 내용. ⓒ 행정안전부

태양광 설치에 가장 직접적인 장애물은 ‘이격거리’

주차장 태양광을 설치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장애물은 이격거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태양광 발전시설 입지 가이드라인’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한 이격거리 기준을 설정·운영하지 않도록 기본원칙을 정했다. 그러나 이 가이드라인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이 2020년 발간한 ‘태양광 발전사업 입지규제의 현황과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 시설 입지규제 조례를 자체적으로 만든 지자체가 2017년 말 83곳에서 지난해 6월 128곳으로 약 47% 늘었다. 기후솔루션은 이런 이격거리 규제가 태양광 발전사업 활성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기후솔루션 조은별(31) 연구원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태양광 에너지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의 원칙과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태에서 태양광을 설치하려고 하면 주민들이 반발하게 되고, 결국 지자체는 이격거리를 지정해 태양광 설치를 막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울 용산푸르지오써밋 2층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기후솔루션 조은별 연구원. 조 연구원은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와 온실가스 배출 저감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 이현이

기후솔루션이 태양광 발전 입지규제를 시행 중인 전남 함평군, 경남 함양군, 경북 구미시 등 3개 기초지자체를 분석한 결과 이격거리 규제를 적용하면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가 가능한 면적은 자연조건 상 설치 가능한 전체 부지의 평균 15%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북 구미시는 도로, 주택과 관광단지 등에 500m의 강한 이격거리 규제를 두고 있어 태양광 설치가 가능한 면적이 전체의 7%에 그친다. 이마저 산림보호로 사실상 설치가 불가능한 산지를 제외하면 0.09%로 감소한다.

▲ 이격거리 규제에 다른 영향 분석 결과(경북 구미시). ⓒ 기후솔루션

조 연구원은 특히 과천시 태양광 설치 조례와 관련 “굉장히 강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와 의료기관의 이격거리까지 명시한 경우는 드물다”며 “(태양광 설치를) 전혀 안 하겠다는 말”이라고 평가했다. 조 연구원은 “태양광은 면적이 필요한 구조물”이라며 “주택, 공공시설, 농로를 포함한 도로에 공공시설까지 이격거리를 적용하면 사실상 주차장 태양광을 설치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50년 탄소중립 위해 주차장 등 유휴지 활용 시급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국내 태양광발전소는 10만 6793곳이다. 태양광 발전량은 2020년 기준 국내 전기생산량의 4.2%에 불과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이에 앞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한다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지키려면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늘어야 한다. 

기후솔루션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장애요인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상향된 NDC를 맞추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태양광 약 348기가와트(GW) 증설이 필요하다. 국내 원전 1기의 평균적인 설비용량이 1GW다.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에 따르면 2021년 4분기까지의 국내 태양광 보급실적은 21.7GW로 추산돼 약 327GW 설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그러나 기초지자체별로 태양광 입지규제가 난립하고, 자가용·영농형 태양광 보급 확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미흡해 태양광발전소의 신속한 확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서 주차장 등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한 태양광발전소 설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50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고있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는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되도록 더 많은 전력 소비가 이루어지는 도시의 유휴지를 먼저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며 “태양광 주차장 설치는 강력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인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서울대 환경대학원

비영리 연구기관인 사단법인 넥스트의 김은성 이사도 <단비뉴스> 이메일 인터뷰에서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야 한다”며 “도심의 유휴부지(주차장, 건물 옥상, 방음벽 등)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태양광 설치 부지가 부족한 대도시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기의 수요지 근처에서 전기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에 전력계통에 무리를 주지 않고 전력 자급률을 높일 수 있어 (주차장 태양광 등이) 장려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편집: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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