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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따라 세월 흘러도 추억은 남은 곳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충북 제천역
2021년 10월 13일 (수) 20:43:33 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교통은 우리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입고, 먹고, 머무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가는 일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장거리 이동수단으로는 항공, 고속버스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기차는 남다르다. 공항이나 버스 터미널과는 다르게 산속 깊은 골짜기 마을 근처에도 간이역이라고 하는 기차역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사라져 폐역이 된 곳도 꽤 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았고, 보존돼 추억의 명소가 된 곳도 여럿 있다. 

무엇보다 기차는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는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제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갈 수 있으며,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먼 거리를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곳, 만남과 헤어짐의 중심에 기차역이 있다. 충북 제천에도 80년 동안 시민들과 함께해온 제천역이 있다. 

   
▲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연 제천역 신축 역사. 새 역사가 문을 열면서 제천역 주변의 모습도 점차 바뀌고 있다. © 김계범

검은 연기·흰 수증기로 물들던 제천역 

한국 철도의 역사는 1899년 9월 18일,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33.2km에 이르는 경인선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 이후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평남선 등이 차례로 개통했다. 1941년 중앙선이 개통되며 마침내 제천역이 문을 열었다. 올해 81세인 김윤태 씨는 제천시가 지난해 새 역사 완공을 기념해 개최한 제천역 스토리 공모전에 낸 글에서 제천역 개통 무렵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어느덧 저도 자라 나이가 6∼7세가 되었을까,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거리가 멀어도 기적소리가 울리는 열차도 구경할 겸 어린 마음에 제천역을 찾아가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열차가 도착하였는데 아버지께서 구내에서 승객들의 짐을 가득 손수레에 싣고 승객들과 함께 나오시기에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동반하여 나오는 승객들의 모습은 여행 중 스팀, 증기기관차에서 내뿜는 유연탄의 매연에 얼굴과 옷이 검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열차 운행 중에 객차 창문으로 매연이 스며들어 그렇게 승객들이 매연에 젖은 것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7788 향수의 제천역 스토리> 26쪽)

김 씨의 아버지는 제천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짐을 손수레로 옮기는 일을 했다. 해방 직후, 그의 나이 예닐곱 살 무렵, 그는 종종 먼 길을 홀로 걸어 집에서 제천역까지 걸어갔다. 역 대합실에서 아버지가 일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일하던 곳이던 제천역의 풍경을 그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얼굴과 옷이 검게 물든 기차역에 도착한 이들의 모습.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김 씨는 일을 마친 아버지와 함께 소달구지를 타고 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회상했다. 버스와 택시 등을 이용해 주로 역을 찾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선 얘기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의 가족은 제천을 떠나 안동, 원주 등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는 고향을 떠나서도 제천역 철로 위에 있던 많은 객차와 화차, 검은 연기와 흰 수증기를 뿜어대며 차고지를 드나들던 기관차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제천역에서 경비원, 구내 전철기 청소부를 거쳐 기관차를 운전하는 승무원으로 30여 년 동안 일했다. 어린 시절 제천역에서의 강렬한 기억이 그를 철도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하게 만들었다 해도 틀리지 않은 말일 것이다. 

중부 내륙 교통의 중심, 제천역 

80년 전, 중앙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제천역은 1955년 태백선에 이어 1958년 충북선이 개통하면서 중앙선과 태백선, 충북선이 만나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 특히 1970~1980년대 한국의 산업화 시기, 정부가 경제개발을 본격화하면서 제천역은 석탄과 시멘트, 무연탄, 목재 수송의 70% 이상을 담당하면서 한국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시기 제천역은 화물 수송을 많이 하면서도 여객 수송 2위까지 기록할 만큼 많은 사람이 이용하던 기차역이었다.

   
▲ 1974년, 태백선 제천~고한 구간 개통 행사에 김종필 국무총리(가운데)가 참석한 모습이다. © 국가기록원

한국 철도의 발전에서 제천역은 빠질 수 없는 곳이다. 1941년 제천역이 문을 열 당시에는 증기기관차가 철로를 오갔다. 1956년, 기관차공장이 제천에 만들어지면서 주한미군이 사용하던 디젤 전기 기관차 4량을 인수했다. 경제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서울 등 대도시에 필요한 시멘트, 무연탄, 목재, 석회석 등이 많이 필요했는데 이를 수송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 1986년, 경부선에서만 운행하던 무궁화호가 제천과 청량리를 오가는 중앙선에서도 운행을 시작했다. © 한국철도공사 제천역

제천역은 역이 만들어진 8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중부 내륙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21년 10월 현재, 제천역은 중앙선과 태백선이 만나고, 충북선을 경유하는 대부분의 여객열차가 거쳐 간다. 하루 여객열차는 KTX 16회, 무궁화호 44회 총 60회 운행한다. 서울로 가는 여객열차는 서울역이 종착역인 열차 2회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청량리역이 종착역이다. 지난 1월, 중앙선 서원주~봉양역 구간 복선 전철화로 KTX-이음도 운행 중이다. 하루 평균 이용 고객은 승·하차 인원을 모두 합해 4000여 명이다. 화물 열차는 단양, 영월 등의 시멘트 화물 운송 중계와 태백 등의 석탄 화물 운송 중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천역 인근에는 제천기관차 승무사업소와 대전충청본부 충북지역관리단, 대전철도 차량정비단 동력차정비센터 등 철도 운영에 필요한 부속 시설들이 있다. 

제천역, 80년의 역사를 써 내려간 사람들 

   
▲ 1990년대 초 제천역 대합실의 모습.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매표소 벽에 붙어 있는 여객 운임표도 보인다. 당시 역사 안은 사람들로 늘 북적였고, 잡상인도 많았다. © 한국철도공사 제천역

제천역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제천역에서 35년 동안 여객팀장 등으로 일한 홍성춘(84) 씨는 겨울의 제천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 당시 제천시내 유일의 24시간 개방 장소인 제천역 대합실과 화장실은 난방도 현대화 되어있어 따뜻한 관계로 대합실 및 화장실에 제천시 걸인(노숙인)들이 모두가 모여와 적을 때는 15명, 많을 때는 30명이 넘게 거하며 방열기와 라지에타를 모두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이렇다 보니 겨울만 되면 역무원들이 본연의 임무보다 대합실과 화장실에 있는 노숙인 단속이 주 업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걸인 단속 업무가 제천역 겨울에 가장 고단했고 어려운 일이었기에, 지금 가장 저의 기억 속에 남는 제천역 겨울 에피소드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분들에 대한 저의 강한 퇴거 명령과 행동이 과연 정의로웠나? 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7788 향수의 제천역 스토리> 235쪽) 

홍 씨가 역무원으로 일하던 당시에는 철도 근무 환경이 열악했다. 역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각각 역무원, 역수, 구내원(당시 조차원), 구내수(당시 조차수) 등의 직명이 부여됐다. 역무원은 매표, 개·집표, 역 주변 청소 관리, 화물 취급 사무 등을 주로 맡았다. 이 외에도 업무량이 많아서 상당히 고충이 많았는데, 특히 철도 차량을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작업인 열차 조성 작업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작업 환경 자체가 위험했다고 말한다. 홍 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철도 공무원은 한국 전체 공무원 중에서 순직 사망률 1위, 중상 사상률 1위였다고 한다. 당시 총무처 인사위원회에서 매년 기관 경고 처분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 1980년대 제천역 앞 광장 모습. 당시 제천역은 많은 화물과 여객이 오가면서 인근 상권이 활발했다. © 한국철도공사 제천역

한때 제천역의 업무량과 열차 조성량은 과거 철도청 영주지방청에 속한 전체 역 가운데서 가장 많았다고 한다. 하루 승·하차 인원이 충북선에 있는 모든 역의 인원을 합한 인원보다 많았다. 제천~청량리 사이에 있는 모든 역에서 취급한 여객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제천역을 이용했다. 이런 많은 승객 덕분에 홍 씨가 맡은 여객팀장의 업무도 특별히 많았다. 역 구내 청소관리, 대합실 감독, 각종 민원 처리 등 타 팀장들이 맡지 않는 업무는 다 그의 몫이었다. 

한겨울 역으로 몰려드는 노숙자들로 인한 제천역 근무자들의 고충은 몇 년 전까지도 계속됐다. 불과 7~8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 등의 역에서 노숙자를 화물칸에 실어 보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역을 24시간 개방하지 않고 있어 걱정을 많이 덜었다. 제천에서 오래 근무한 한 경찰관에 따르면 과거에는 경찰 역시 사망 등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지문을 채취하는 등 노숙자 관리가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제천역 앞 시장과 가락국수 한 그릇  

   
▲ 제천역이 생기면서 주변 상권이 발달했고, 시장이 생겼다. 제천역전한마음시장은 특히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지금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 김계범

1941년, 제천역이 문을 열면서 제천역 인근에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됐다. 물물교환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시장이 1960년대 무렵 역 앞에 생겨났다. 제천뿐만 아니라 태백, 영월 등지에서 보따리를 짊어지고 이곳으로 많은 이들이 물건을 팔러왔다. 제천역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는 전통시장, ‘제천역전한마음시장’은 10분이면 다 둘러볼 정도로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다. 오전 7시면 하나둘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해 밤 11시가 되면 시장의 불이 꺼진다. 현재 70여 개의 상점이 입점해 있다. 이곳 상인과 고객은 대부분 고령층이다. 제천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 코스 가운데 하나이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제천을 찾는 관광객 숫자가 줄면서 시장도 예전보다 활력을 잃은 상황이다. 이 시장은 3일, 8일에 열리는 오일장으로도 유명하다. 코로나19로 사람들 발길이 뜸해진 요즘에도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그나마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제천역전한마음시장은 제천의 특산물인 황기 등 각종 약재를 비롯해 도토리 송편 등이 유명하다. 특히 도토리 송편은 전국 각지에서 택배 주문을 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또 제천 특산물인 약초를 사러 이곳에 오는 사람도 많다. 제천역에 갈 일이 있다면 황기를 비롯해 옻나무, 엄나무 등 각종 약재와 함께 메밀전병, 찰수수 부꾸미, 족발, 떡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제천’ 하면 많은 이들이 약초, 빨간 어묵 정도만 떠올리기 쉽지만 제천역전한마음시장에 오면 색다른 맛의 백설기, 도토리 송편, 찰수수 부꾸미 등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김계범

시장에서 22년째 떡집을 운영하는 고속떡집 전태섭(65) 대표는 “장날에는 수백 개가 팔릴 정도로 마구설기와 백설기가 잘 팔린다”면서 “퍽퍽하지 않고 카스텔라처럼 부드러워서 서울에서도 많이 사 간다”고 말했다.

과거 제천역에 오면 많은 이들이 꼭 ‘가락국수’ 한 그릇을 먹곤 했다. 중앙선, 충북선, 태백선 등의 열차가 다니고 열차 사이의 환승이 이루어지는 제천역 특성상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잠시 머무르며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가락국수가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지금은 KTX가 운행하고, 열차 운행 속도도 빨라져서 과거만큼의 명성은 아니지만 여전히 제천역하면 가락국수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 1990년대 역 앞 광장 모습이다. 휴대전화의 보급으로 지금은 흔히 보기 어려운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역 앞에 있던 ‘홍익국수’ 점포도 보인다. © 한국철도공사 제천역

‘홍익국수’는 오랫동안 제천역 앞을 지키며 사랑받는 가게였다. 지금도 ‘홍익우동’이라는 우동 가게가 있지만 ‘홍익’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가게다. 과거 ‘홍익국수’의 맛을 잊지 못하고 대전, 청주 등 전국 각지에서 이곳에 제천까지 방문하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메뉴는 역시 ‘가락우동’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지금의 홍익우동은 7~8년 전 문을 열었고, 과거 ‘홍익국수’로부터 조리법을 전수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한쪽에 붙어 있는 열차 시간표가 말해주듯 가게는 ‘열차 안내소’ 역할을 한다. 열차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여기서 일하는 직원은 시간표를 보지 않고도 열차 시간을 줄줄 왼다.

   
▲ 2007년,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김종민이 제천역 플랫폼에 있는 가락국수 가게에서 국수를 먹다 낙오됐다. 당시 의도하지 않은 낙오로 화제가 된 장면이다. © <KBS>

서울까지 1시간, 오늘도 기차는 달린다

제천역의 모습은 크게 두 번 바뀌었다. 1941년 중앙선 개통 때 문을 연 역사를 1971년 신축했다. 이후 40여 년 동안 증축하고 여러 번 고쳐 쓰다가 지난해 5월 말, 새로 지은 역사가 운영을 시작했다. 열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며 플랫폼까지 가야 했던 추억의 낡은 역사는 이제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새 역사는 주변 풍경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전면 외관이 유리로 된 건물이다.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등 최신식 설비를 갖춰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도 이용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다.

   
▲ 지난해 새로 문을 연 신축 역사는 건물 전면을 커튼월 공법으로 만들어 투명한 창으로 돼 있다. 제천시 공공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에스컬레이터도 갖추고 있다. © 김계범

지난 1일 오후, 제천역에는 열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역 앞에는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가 줄지어 서 있고 버스들이 오간다. 역 안으로 들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열차의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대형 전광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매표소 앞에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 2006년 9월, 처음으로 종이 승차권이 필요 없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승차권이 도입된 뒤로 이제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승차권을 예매하는 고객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일부 고객들은 승차권을 오프라인 창구에서 구매한다. 제천역 이용 고객 가운데에도 고령층이 많다. 승차권 발매 업무는 제천역 직원들에겐 여전히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역 한 편에 있는 역무실로 향했다. 역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입구 오른쪽에 설치된 CCTV 관제 화면이 눈에 띄었다.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역 곳곳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무실 안에는 6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었다. 

역장실에서 지난 6월 부임한 이재철(54) 역장을 만났다. 그는 1985년부터 지금까지 36년째 철도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과거 10여 년 동안 제천에서 일했고 약 2년 전, 다시 제천으로 돌아왔다. 제천조차장역에서 역장으로 1년 6개월 동안 있다가 제천역 역장으로 부임했다. 

   
▲ 이 역장은 KTX 운행으로 제천에서 청량리까지 1시간 5분이면 갈 수 있게 되면서 제천·단양 지역은 ‘수도권’에 편입이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김계범

제천역에는 현재 운전팀, 여객팀, 수송팀, 여행센터 등에 소속된 약 9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제천역은 내부 경영평가에서 69개 관리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역사의 신설과 KTX의 운행이 시작되면서 고객이 늘었고, 무연탄 등 화물 취급이 많아서 수입 성적이 다른 역과 비교해 월등히 좋아서 가능한 결과였다. 이 역장은 제천역에서 일하는 신규직원 대다수가 연고지가 아니라 객지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대전이 집인 이 역장도 사택에서 생활한다. 

이 역장은 주로 고령층 고객이 많지만, 아침저녁에는 서울, 충주, 청주 등으로 출·퇴근하는 20·30대 고객이 많다고 했다. 제천역의 주요 업무는 여객과 화물 취급 업무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비교하면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충북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승객이 매일 제천역을 오간다. 화물은 직접 취급하지는 않지만 중앙선, 태백선, 충북선을 오가는 많은 화물 열차들이 제천역을 거쳐 간다. 제천역에서는 각 지역으로 가는 화물 열차를 조성해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역장은 역사와 함께 환승 시설 등 그 밖의 시설도 새 단장을 하면서 이용하는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역 안에 상업시설과 같은 편의시설이 적은 편이어서 고객들의 불편이 염려되고 아쉽다고 말했다. 제천역 역사는 아직 가 준공 상태로, 준공 처리가 안 된 탓이다. 현재 제천역은 국가철도공단에서 건설 뒤 임시 승인을 받아 운영 중인 상태다. 완전히 준공 절차를 거친 뒤 올해 안으로 인수한다고 한다. 그는 추후에 역 안에 자리를 확보해서 지자체와 협약을 통해 지자체 특산물 홍보 매장 등 편의시설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천 역사가 새단장을 했지만 시장만 좀 활성화됐을 뿐 큰 변화는 없다. 이 역장은 제천시에서 중앙정부 등과 협의해 역 앞 광장을 비롯해 역 일대를 개발할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역 개발이 되고 인근 도로가 넓어지면 이 일대가 명실상부한 사통팔달의 중심지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밝혔다.

   
▲ 지난해 제천역이 새롭게 문을 열었지만 인근 골목 상권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김계범

코로나19로 서로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기조차 쉽지 않은 때, 기차역에서 다른 목적으로 제각기 길을 향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느낀다. 잔뜩 짐을 짊어지고 열차에 오르는 어르신, 면접을 보러 가는 앳된 청년 등 낯선 타인의 모습에서 나도 모를 힘을 얻는다. 마스크가 코와 입을 가려도 사람의 온기마저 가릴 수는 없다.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오늘도 살아가야겠다는 힘을 얻는다.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기차역은 정주와 이동 사이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관문으로 첫인상을 좌우하는 역할도 한다. 시간은 흘러도 역 곳곳에 그 흔적은 남아있다. 

철도 종사자 등 수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에 오랜 세월 제천역은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제천역에서 열차는 제각기 다른 이유로 기차를 타고 내리는 시민들을 싣고 오늘도 달린다. 이제는 시끌벅적한 잡상인의 호객행위도 대합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도 붉게 물들어간다. 하나둘 낙엽이 지고 제법 쌀쌀해진 계절, 멀리 떠날 일이 있다면 제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창밖 풍경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제천역을 방문하게 된다면 따끈한 가락국수를 한 그릇 먹고 시장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과거처럼 역 앞에 은은하게 퍼지던 약초 냄새는 없지만 제천역에서는 여느 대도시의 기차역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철로와 열차 사이에서 스쳐간 사람들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고, 마스크도 막지 못할 따듯함을 물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편집: 이정민 기자

[김계범 기자]
단비뉴스 편집국장, 지역사회부, 편집기획팀 김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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