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㉔ 난지도 하늘공원∙노을공원

서울 한강 하류의 선유도는 산이 섬이 됐고, 강 건너편 난지도는 모래섬이 산이 됐다. 인간사회의 문명화는 자연파괴라는 대가를 치르며 이뤄져왔다. 한강 하류의 명승이었던 해발 80m 선유봉은 일제 강점기 여의도 개발을 하면서 평평한 섬으로 전락한 반면, 난지도는 서울이 급속히 커지면서 야트막한 모래섬에서 해발 98m 쓰레기 산으로 솟아올랐다.  

인간의 뒤늦은 반성과 자각으로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선유도는 ‘물과 생명’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재생했고, 난지도는 물질문명의 발전이 가져올 후유증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난지도가 다시 과거의 아름다움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자연과 사람에 관한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너무 아름다워 이름도 많았던 섬

북쪽의 불광천과 동쪽의 홍제천, 서쪽의 난지천이 내려오다 한강 하류에서 만났다. 홍제천과 모래내를 거치며 실려온 은빛 모래가 유속이 느려지며 하구에 쌓여 섬을 이뤘다. 섬들은 홍수가 날 때마다 모래가 쓸리고 물에 잠겨 모양이 바뀌었다. 그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섬들은 절경이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그런 난지도 일대를 화폭에 담아 ‘금성평사’(錦城平沙)라 이름 붙였다. (<단비뉴스> 2021년 2월 1일 ‘시간을 역류하는 ‘물의 길’을 따라가다‘ 참고) 

▲ 겸재 정선이 난지도 일대를 그린 ‘금성평사’. 강속에 길게 뻗어 있는 모래섬 일대가 난지도다. © 간송미술관
▲ 겸재 정선이 ‘금성평사’를 그린 곳으로 추정되는 선유봉이 있던 선유도에서 건너다본 난지도. 강 위에 걸쳐져 있는 다리는 성산대교다. © 유재인

섬은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계절마다 다른 들풀과 꽃이 피었고, 지금은 난지천이라 불리는 난지샛강은 물이 맑기로 유명했다. 갈대들이 바람에 휘날리던 갈밭은 먼 길을 날아온 철새의 쉼터가 됐고, 샛강 맑은 물에는 고기들이 뛰놀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섬은 한동안 ’꽃섬‘으로 불렸다. 난지도라는 지금 이름도 섬에 난초와 지초가 어우러지던 시절에 지어졌다.

꽃섬, 난지도 말고도 섬은 여러 이름을 가졌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경조 오부도’와 ‘수선전도’에 난지도를 꽃과 풀이 많은 ’중초도‘라 적었다. 어느 때는 섬 모양이 오리를 닮았다 해서 압도라고도 불렸다. 난지도는 조선 시대 시인묵객들의 뱃놀이 터가 되기도 했고, 백성들도 유람을 즐기던 곳이었다.  1960-70년대에는 신혼여행지로도 각광을 받았고, 섬 안 포플러나무길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인기를 끌었다. 난지도는 그토록 아름다운 섬이었다. 

재첩 잡고 땅콩 심던 삶의 터전

▲ 1960년대 중반의 난지도 주변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수심이 얕은 난지샛강에는 재첩이 잡혔다. ⓒ <연합뉴스>

사람들은 난지샛강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다. 지금 성산동 자리의 성산리, 매봉산 북서쪽 휴암리를 비롯해 현 상암동 근처 모로리와 귀리, 구석말 등 여러 마을이 있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고 난지도로 건너와 농사를 짓고, 해가 저물면 집으로 돌아갔다. 난지도에서는 개구리참외, 수수, 배추, 무, 땅콩 등이 잘 자랐다. 이곳에서 나는 개구리참외는 굵고 맛이 좋아 인기를 끌었다. 땅콩은 1970년대 이전까지 전국 생산량의 30%가 난지도에서 나올 정도로 수확량이 많았다. 수수빗자루를 만들 때 사용되는 수수의 70%가 난지도에서 났다. 샛강에는 맑은 물에만 산다는 재첩이 많이 잡혀 아낙네들이 재첩을 잡으면 남정네들이 달구지로 실어 날랐다. 

먼지∙파리∙악취 ‘삼다도’로 전락 

▲ 쓰레기가 쌓여 가는 난지도(왼쪽). 쓰레기 매립장 윗 부분(오른쪽). ⓒ 서울시

한강 하류의 아름답고 목가적인 섬 난지도는 1977년 제방을 쌓고 난지샛강을 매립하면서 육지가 됐다.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할 주거지 등으로 개발될 것으로 알려졌던 난지도는 육지로 변한 지 1년도 안돼 쓰레기매립장으로 지정됐다. 

1955년 156만명이던 서울시 인구는 1978년 782만 명으로 5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인구가 늘면서 쓰레기도 급증했다. 소규모 쓰레기매립장이 있던 잠실, 압구정동, 상계동, 구의동 같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더 이상 쓰레기 매립을 할 수 없게 되자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접근성이 좋은 난지도가 서울 쓰레기매립장으로 지정된 것이다. 1978년 3월부터 쓰레기 매립이 시작돼 하루 평균 8.5톤 트럭 2400여대가 드나들면서 쓰레기가 쌓여갔다. 

쓰레기 매립은 7년여만인 1985년 12월 국제 기준인 45m 높이까지 평면매립을 끝냈지만, 다른 대체지를 찾지 못해 1986년부터 제1, 제2 매립지로 구분해 입체매립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섬이던 난지도에는 쓰레기 산 두개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난지도 매립장에는 생활쓰레기, 건설폐기물, 산업폐기물 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마구 버려졌다. 매립방식도 체계적이지 못하고 비위생적이어서 쓰레기를 쏟아 붓고 그 위에 흙을 붓고 다시 쓰레기를 붓고 흙을 덮는 것을 되풀이하는 단순 투기 방식이었다. 

15년간 8.5톤 트럭 1300만대분 매립

▲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으로 들어가는 쓰레기 차량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왼쪽). 난지도 매립장에서 흘러 나온 침출수(오른쪽). ⓒ 서울시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땅속에서 쓰레기가 분해되며 메탄가스가 발생했고, 제대로 된 처리시설이 없어 가스가 그대로 땅 위로 올라왔다. 인화성과 폭발성이 강한 메탄가스에 자주 불이 붙어 매립장이 문을 닫은 1993년까지 15년간 1400여 차례 불이 났다. 쓰레기가 분해되며 만들어진 침출수가 여과 없이 한강과 난지천으로 흘러 들어 심한 수질오염을 일으켰다. 

난지도 인근 서교동과 망원동까지 매캐하고 코를 찌르는 쓰레기 냄새가 퍼져 나가 주민들은 분진과 악취에 시달렸다. 싱싱한 들풀과 아름다운 꽃이 넘쳐 ‘꽃섬’ 이라 불리던 난지도는 먼지, 파리, 악취가 많은 ‘삼다도’로 변했다. 농사를 짓고 재첩을 잡던 원주민은 뿔뿔이 떠나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넝마꾼들과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남아 판자촌을 이뤘다. 당시 서울우유병은 10원, 에프킬라 통은 15원, 진공관은 200원, 브라운관은 400원을 받았는데 벌이가 제법 되는 장사였다. 

1993년 매립장 문닫고 안정화사업 

▲ 하늘에서 내려다본 난지도. 높이 솟아 있는 왼쪽 평탄면이 노을공원이고 오른 쪽이 하늘공원이다. 두 공원 사이 저지대에 메탄가스를 활용한 발전소와 침출수 처리시설이 있다. © 서울시

1991년 경기도 김포에 대규모 수도권 쓰레기매립지가 조성되면서 난지도매립장은 1993년 3월 문을 닫았다. 여의도의 3분의 2에 가까운 19만7천㎡ 터에 15년간 8.5톤 트럭 1300만대 분량인 9197만2천톤의 쓰레기를 쏟아 부어 해발 98m짜리 산을 두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난지도 매립장은 문닫은 뒤 최소한의 오염방지 조처만 해 둔 채 방치돼 있다가 1996년부터 쓰레기 산에서 나온 침출수와 가스 처리를 위한 안정화공사에 들어갔다. 안정화사업은 먼저 매립지 상부 복토작업과 사면 안정화 작업을 진행한 뒤 지금은 침출수와 매립가스 처리가 진행되고 있다.

▲ 난지도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곳곳에 설치돼 있는 침출수집수정(위 왼쪽)과 매립가스를 포집하는 가스포집공(위 오른쪽). 가스포집공에서 모아진 가스를 발전소로 보내는 가스관(아래). © 유재인

침출수 유출을 막기 위해 차단변과 집수정을 만들고 집수정에 모인 침출수를 침출수처리장으로 보내 1차 처리한 뒤 난지하수처리장으로 보내 정화를 한 번 더 해서 한강에 흘려 보낸다. 매립가스 처리를 위해서는 매립지 상부에 120m 간격으로 수직추출정 55공과 매립지 사면에 수직추출정 51공을 설치해 가스를 포집한다.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하루 34만4천㎥의 매립가스 중 절반인 17만2천㎥는 두 산 사이 골짜기에 세워진 가스발전소로 보내 발전연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소각처리한다. 

매립지 내부로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매립가스의 악취 확산과 폭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 쓰레기산 위에 흙을 덮는 상부 복토공사도 했다. 쓰레기 매립층 위에 흙을 덮고 그 위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차단층을 깐 다음, 물이 잘 빠지게 하는 배수층과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식생층, 그리고 표층에 각각 흙을 30cm씩 덮었다.

▲ 침출수와 매립가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된 난지도 안정화사업 개념도. ⓒ 서울시

월드컵 때 다섯 개 테마공원 열어

1998년 5월, 서울 월드컵경기장 건설 부지가 난지도에 인접한 상암동으로 정해지면서부터 난지도는 쓰레기장으로서 오명을 벗어나게 된다. 매립가스와 침출수 처리에 중점을 둔 안정화사업에 주력하던 서울시는 월드컵 주경기장이 상암동에 들어서면서 난지도 일대를 월드컵공원으로 만드는 공원화사업에 들어갔다.

2년여 동안 공사를 거쳐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은 2002년 5월 평화의공원, 하늘공원, 노을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등 다섯 개 테마로 구성된 월드컵공원으로 거듭났다. 이 중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의 두 산이 변신한 것이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다. 

▲ 월드컵경기장 오른쪽에 있는 ‘평화의 공원’ 전경. © 서울시

월드컵경기장 남쪽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남쪽으로 5분쯤 걸어가면 ‘평화의 공원’이 나타난다. 거기서 북서쪽으로 나 있는 육교를 건너가면 하늘공원 진입로가 있다. 육교 아래쪽으로 보면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희망의 숲길’이 나온다. 

▲ 하늘공원 초입에 있는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사진을 찍어 주고 있는 연인들(왼쪽). 하늘공원 정상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인 하늘계단(오른쪽). ⓒ 유재인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세 갈레가 있다. 정상까지 지그재그로 나 있는 291개 하늘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다른 경로는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는 길이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하늘공원 꼭대기에 도착한다. 걸어 가거나 계단 오르기가 싫은 사람은 ‘맹꽁이 전동차’를 타면 된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정상까지 운행하는 ‘맹꽁이 전동차’는 성인 기준 왕복 3000원으로 쉽고 빠르게 공원에 올라가는 방법이다.

▲ 주차장에서 하늘공원과 노을공원 정상까지 운행하는 ‘맹꽁이 전동차’© 유재인

하늘공원 정상에 오르면 서울 서북지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산, 인왕산, 매봉산과 바로 눈앞으로 월드컵경기장이 보인다. 가까이는 상암동 아파트단지와 멀리로는 남산 N서울타워와 잠실 롯테월드타워도 보인다. 강 하류 쪽으로 가면 경관은 좋으나 높은 곳이 없어 주변 경치를 감상할 방법이 없는데, 하늘공원에 오르면 한강 하류지역 일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하늘공원 전경. © 유재인

아래서 볼 때는 산이었는데 올라와 보면 광활한 평원이 멀리 펼쳐진다. 길게 동서남북으로 이어진 산책로는 사색하며 걸어도 아무 생각없이 걸어도 다 좋다. 공원 중간쯤 있는 ‘하늘을 담는 그릇’이란 조형물에 올라가 팔을 벌리면 온몸으로 하늘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이 되면 이곳에는 옛날 섬이었을 때 난지도에 줄지어 서있던 갈대숲이 바람에 나부껴 장관을 이룬다. 서울시는 매년 하늘공원에서 ‘서울 억새 축제’를 열었는데 작년에는 코로나로 축제를 취소하고 하늘공원 자체도 가을에는 문을 닫았다.

▲ 매년 가을이면 억새와 갈대로 장관을 이루는 하늘공원에서 ‘서울 억새 축제’가 열린다. ⓒ 서울관광재단

캠핑장과 야외조각전시장 노을공원

하늘공원 북서쪽 사면을 따라 내려가 야트막한 골짜기를 건너가면 노을공원이 맞이 한다. 노을공원은 하늘공원보다 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반딧불이생태관, 누에생태체험장, 자연물놀이터 등 아이들을 위한 생태공간이 조성돼 있다. 중장년을 위한 파크 골프장과 젊은이를 위한 캠핑장도 있다. 캠핑하기 좋은 계절에는 가족과 연인 등 도심 속 캠핑을 즐기러 오는 이들로 북적인다. 

▲ 노을공원 ‘바람의 광장’(위)과 캠핑장 안내센터(아래 왼쪽), 데크가 줄지어 있는 캠핑장(오른쪽). © 유재인
 
노을공원 ‘바람의 광장’ 주변에 전시돼 있는 조각작품들. © 유재인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노을공원은 한강 하류로 넘어가는 낙조가 일품이다. 공원 북쪽 전망대로 가면 일산지역 아파트군이 멀리 보이고, ‘바람의 광장’ 너머로는 북한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노을공원은 야외 산상 미술관이기도 하다. 산책로를 따라 ‘바람의 광장’으로 걷다 보면 유명작가의 야외조각품들이 눈길을 끈다. ‘약속의 땅’ ‘천지인’ ‘확산공간’ 등 2009년 설치된 국내 원로 조각가들 작품 10여 점이 하늘, 바람, 노을과 함께 어우러진다. 43년 전 난초와 지초가 흐드러지던 섬에서 악취 풍기는 쓰레기섬으로 전락한 난지도가 34년 만에 서울에서 가장 사랑받는 공원으로 거듭나 사람들을 맞고 있다.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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