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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매미'가 남기고 간 유럽형 성채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㉗ 거제도 매미성
2021년 04월 05일 (월) 20:55:05 김신영 기자 ksy14583@naver.com

외적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게 쌓아 올리던 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긴 담장 형태의 성(wall)과, 유럽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저택 형태의 성채(castle)가 그것이다. 동양에서는 거의 모든 성이 특정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긴 담장 형태였던 반면, 중세 유럽에서는 봉건영주나 귀족이 자신이 거주하는 저택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형 성채가 일반적이었다. 한양도성이나 남한산성처럼 담장 형태의 성이 전부인 우리나라에 성채 모양 유럽형 성이 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바닷가에 있는 ‘매미성’이다. 

   
▲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바닷가에 있는 매미성. © 김신영

부산에서 가덕도와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로 6km쯤 들어가면 대금리 근처에 ‘매미성’ 이정표가 나온다. 지방도 길가에 큰 주차장이 있고 해안으로 걸어 내려가면 바닷가에 아담한 성채가 나타난다. 해안 바위 위에 약 100m에 걸쳐 높이 7~8m 성채 구조물이 늘어서 있다. 화강암 재질 견치석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벽 중간에 향나무들이 길게 심어져 오래된 유럽의 작은 성채를 떠올리게 한다. 성채 바로 앞으로 바로 파도가 들이치는 자갈해변이 이어지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 바닷가에 지어 놓은 견고한 요새 같은 느낌을 준다.   

   
▲ 바닷가 쪽에서 바라본 매미성. 해안가에 지어 놓은 작은 요새처럼 보인다. © 김신영

태풍 ‘매미’에 소실된 밭 보전하려 쌓은 옹벽

매미성은 관광객이 북적대는 명소이지만 처음에는 관광과 전혀 상관없는 곳이었다.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피해를 낸 태풍은 2002년 8월에 불어닥친 ‘루사’로 5조1470억원 재산피해에 124명이 사망하고 60명이 실종되는 인명피해를 냈다. 두 번째로 많은 피해를 낸 것이 2003년 9월의 ‘매미’로 4조2225억원 재산피해에 117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실종되는 인명피해를 냈다. ‘매미’는 경남 사천해안으로 상륙해 지금 매미성이 있는  거제해안도 강타했다. 

이때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해안가 언덕 위에서 밭농사를 짓던 주민 백순삼 씨도 밭뙈기 대부분이 폭풍우와 파도에 휩쓸려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백 씨는 파도와 비바람에 휩쓸려 간 경작지를 복구하면서 태풍으로부터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바닷가 바위 위에 축대를 쌓기 시작했다. 

   
 
   
▲ 매미성 바깥 축대. 자연석 바위 위에 견치석들을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원주형 기둥을 세워 태풍이나 파도가 들이쳐도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 © 김신영

백 씨는 바위 위에 시멘트로 견치석을 고정해 한 층 한 층 담을 쌓아 올렸다. 아래는 기초를 넓게 잡고 위로 올라가면서 비스듬하게 축대를 쌓아 올리고 두세 단계로 단차를 두어 축대가 무너지지 않게 하면서 균형감과 안정감을 주었다. 

‘10여 년 공든 탑’에 관광객 몰려 

처음에 경작지 보호에 만족하던 백 씨는 10여년에 걸쳐 조금씩 쌓아 올린 축대가 성벽 모양을 갖춰 나가자 곳곳에 멋을 내기 시작했다. 축대 중간에 작은 창도 내고 벽을 둥그렇게 쌓아 올려 망루 같은 전망대도 만들었다. 아래는 두텁고 위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도록 쌓아 올라가다가 마지막 윗부분에서는 윗쪽이 더 넒게 튀어 나오도록 멋도 부렸다. 축대 중간쯤 계단벽을 따라 길게 향나무를 심어 성벽 중간에 나무가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소나무 등도 몇그루 심어 조경에 신경을 썼다. 

축대가 성채의 모양을 내기 시작하자 2~3년 전부터 관광객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백 씨의 작은 성에는 어느덧 ‘매미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태풍 매미에서 비롯된 성이란 뜻으로 주민들이 붙여 부른 이름이다. 

   
▲ 매미성 초입에 있는 표지판(왼쪽)과 매미성 위치도(오른쪽). © 김신영

‘매미’는 북한이 붙인 태풍 이름이다. 태풍에 처음 이름을 붙인 이는 호주 퀸즐랜드 지방 기상예보관 ‘클레멘트 래기’였다. 1900년대 초반 래기는 폭풍우가 발생하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인 이름을 붙여 ‘태풍 000가 엄청난 재난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예보하면서 정치권을 풍자했다고 한다. 

태풍 작명은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공군과 해군이 한꺼번에 두 개 이상 태풍이 발생하거나 잇달아 태풍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태풍의 진로 등을 예보할 때 혼선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고 공식으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태풍이 큰 피해 없이 얌전하게 지나가라는 염원을 담아 자기들 부인이나 애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단체들이 반발하면서 1979년부터는 남자와 여자 이름을 번갈아 붙였다. 2000년 이후부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의 태풍에 관한 관심과 경계심을 높이기 위해 태풍위원회 회원국들이 제시한 고유 이름을 붙여 사용한다. 

2003년 ‘매미’는 북한이 붙인 이름

태풍 이름은 한국 캄보디아 중국 북한 등 태풍위원회 소속 14개 회원국이 각각 10개씩 제출한 140개 이름을 28개씩 5조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붙인다. 태풍에 유독 한글 이름이 많은 것은 남한과 북한이 둘 다 각각 10개씩 20개 이름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낸 태풍 이름은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10개이고, 북한이 낸 이름은 기러기 도자리 갈매기 매미 메아리 버들 민들레 소나무 봉선화 날개 등이다. 

피해가 극심한 태풍의 이름은 바꾸는 경우가 있다. 태풍위원회는 특정 태풍에 큰 피해를 입은 회원국이 그 이름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면 바꾸어 주는데, 지금까지 모두 16개 태풍 이름이 퇴출됐다.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큰 피해를 입힌 태풍 ‘매미’는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무지개’로 바뀌었는데, 태풍 이름에서는 퇴출되고, 태풍 피해로 생긴 성의 이름으로 되살아나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 매미성 전망대에 올라서면 남해 앞 바다가 한눈에 들어 온다. © 김신영

남해 조망하는 ‘핫 스팟’은 어디?

매미성 입구로 다가서면 성채를 바라 보면서 왼쪽으로 성채 위에 올라가는 비스듬한 언덕길이 있다. 성문을 지나 성벽 사이길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 매미성 위로 올라가는 진입로. 성문 안으로 들어 서서 성채 위로 올라가는 성벽 사이길 같은 느낌을 준다. © 김신영

비스듬한 경사로를 따라 30미터쯤 올라가면 원형 망루처럼 생긴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 안으로 들어서면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출회랑처럼 생긴 성벽 위를 올려다보니 마침 매미성 ‘성주’ 백순삼 씨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작업하는 성벽 아래에는 ‘작업중이니 말을 걸지 말아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관광객이 백 씨를 보면 물어 보는 것이 많아 농사일과 성채보수 작업 등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 매미성 주인 백순삼 씨(사진 왼쪽 나무 아래 모자 쓴 이)가 성채 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 © 김신영

성채 위쪽 흙마당을 둘러보고 성벽 옆 통로를 따라 내려오면 볼거리가 제법 눈에 띈다. 성벽을 따라가서 먼 바다를 보고 포즈를 취하면 멋진 인증샷을 건질 수 있다. 성벽 중간에 홈을 파서 대나무를 심어 놓은 곳도 있고, 담쟁이 덩굴과 향나무가 성벽에 걸린 듯 심어져 있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성벽을 쌓아 올리면서 시멘트 벽 사이에 유리병을 거꾸로 박아 넣어 모양을 낸 곳들도 있다. 

   
▲ 성채 위에서 바라보는 남해 풍경. 성벽에 걸쳐 있는 향나무와 성채의 돌출회랑처럼 생긴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 김신영
   
▲ 성벽에 내놓은 창을 통해 바라본 남해. 창호 안에 대나무를 심어 놓았다. © 김신영

무료 개방에 외딴 마을이 관광지 변신

매미성에 관광객이 몰려들자 조용하던 어촌 바닷가 외진 동네도 관광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원래 이곳은 몇 안 되는 주민이 농사를 짓고 살던 동네인데 매미성이 유명세를 타면서 카페 음식점 등이 10개 이상 들어서 북적대고 있다. 마을 앞 주차장 위에는 캠핑장이 생기는 등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에 활기가 돈다. 매미성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백 씨는 정작 자신은 특별한 덕도 못 보면서 다른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편집 : 강훈 기자

[김신영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장, 디지털뉴스부, 시사현안팀 김신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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