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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끝, 막다른 끝’에서 펼쳐지는 풍경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㉖ 부산 ‘흰여울 문화마을’
2021년 02월 22일 (월) 17:47:11 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부산진에 들어서면서부터 기차는 바다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하여 몸을 뒤로 뻗대었다. 초량역에서 본역까지는 거의 한 걸음을 재듯 늑장을 부렸다. (중략)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 ‘흰여울 문화마을’ 전경. 아파트와 해안 절벽 사이에 길게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 ‘흰여울 문화마을’이다. © VISIT BUSAN

김동리가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 간 예술인들을 소재로 한 단편 <밀다원 시대>에서 부산을 묘사한 대목이다. 부산은 6·25전쟁 때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오면서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서울과 이북 등에서 내려온 피난민들로 인구 40만 도시 부산은 전쟁을 거치면서 100만 도시로 급팽창했다. 

바닷가 절벽까지 밀려온 피난민촌

정부와 부산시는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부산 남구 적기에 있던 소 수출검역소와 영도 해안가, 청학동, 남구 대연고개, 서구 남부민동과 괴정 당리동 등 40여 곳에 수용소를 만들었다. 급조한 시설의 수용 규모는 7만명에 지나지 않아 나머지 피난민들은 국제시장 주변 용두산과 복병산 기슭, 대청동 영주동 초량동 수정동 범일동 등과 영도 바닷가 주변인 태평동과 남항 근처 충무동 해안가에 판잣집을 지어 나갔다.정부 기록에 따르면 1953년 7월 판잣집 수는 2만8619호로 영주동 산기슭에 1000여 호, 영도대교로 해안가에 700여 호, 보수동에 600여 호, 송도에 300여 호, 국제시장에 1200여 호 등이 있었다. 피난민들은 위로는 산꼭대기까지, 아래로는 바닷가 절벽 끝까지,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끝까지’ 밀려 나갔다.

   
휴전 10여년 뒤인 1964년 부산 중구 보수동의 판자촌. 전쟁기간에 피난민들이 지은 판잣집들이 산자락에서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 구와바라 신세이 사진전

어느 곳 하나 힘들고 어렵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영도 봉래산 남서쪽 기슭 절벽 위에 세워진 영선2동 일대 판자촌은 그야말로 ‘막다른 끝’까지 밀려 나간 최악의 난민촌이었다. 일제강점기 공동묘지였던 이곳은 ‘피난 온 사람들이 식구 수대로 가마니를 받아서 깔면 거기가 내 집이 됐던’ 피난민촌으로 바뀌었다.

지금도 난간을 붙들지 않고는 내려가기 힘든 가파른 경사지 절벽 위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판잣집에 겨울이면 거센 바닷바람이 바로 불어닥쳤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절벽 끝에 두 사람이 겨우 비켜 다닐 수 있게 나 있는 좁은 골목길 하나가 전부인데, 당시 이 길은 영도 다리에서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진입로였다. 그 길을 따라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서 있어 ‘흰여울 마을로 도망가면 찾지도 못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복잡하고 험한 동네였다.

60년 달동네가 문화공동체로 재탄생

   
'흰여울문화마을’ 들머리에서 바라보면 왼쪽 가파른 언덕 위에 집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쪽 길 아래로는 절벽이 이어진다. © 영도구청

전쟁이 끝난 뒤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이곳에는 한 집 두 집 판잣집을 헐어 내고 방 한 칸짜리나 두 칸짜리 벽돌집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서민 주택가로 바뀌어 갔다. 피난민 판자촌이 들어선 뒤 60년 동안 가난을 달고 살아왔던 이곳은 2011년 12월, 도로명 주소 시범사업과 도시재생사업으로 공동체 ‘흰여울 문화마을’로 거듭났다.

그전까지 폐가와 빈집들이 생기면서 슬럼화하고 있던 곳에 영도구청이 빈집 3채를 사들여 리모델링해 지역 예술가의 작업공간으로 제공하면서 문화공동체 마을 만들기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누추한 골목길에 ‘흰여울길’이란 이름을 붙이고 낡은 담벼락에 벽화들을 그려 넣고, 서양화가, 사진작가, 목공예나 도자공예가들이 터를 잡고 앉자 관광객들이 찾아 들었다. 영도구청이 37억5천만 원을 들여 테마형 담장과 친환경 골목길, 안내센터와 전망대를 만들고 급경사로에 계단과 데크길을 설치해 작년 11월 사업을 마무리했다.

눈 내리듯 흘러내리는 물줄기 ‘흰여울’

   
   
▲ '흰여울 문화마을'의 절벽 끝을 따라 길게 이어진 ‘흰여울길’. 아래 사진에서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 흰여울문화마을 안내센터와 영화 ‘변호사’ 촬영장소다. © 양수호

‘흰여울’은 원래 ‘물이 맑고 깨끗한 여울’이란 순우리말인데, 이곳에서는 봉래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빠르게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모습이 흰 눈 내리듯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바다 건너편 송도해수욕장에서 건너다보이는 절경이라고 해서 ‘제2송도’로 불리기도 한다.

82번이나 85번 버스를 타고 열한 번째 정류장인 부산보건고등학교 앞에서 내리면 절영해안산책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00m 정도 걸어가서 만나는 말머리계단을 따라 절벽 위로 올라서면 ‘흰여울문화마을’이 시작된다.

   
부산보건고등학교 앞에서 시작되는 절영해안산책로. © 양수호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눈앞에 확 펼쳐지는 망망대해가 가슴을 확 트이게 해준다. 부산 외항에서 입항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항대교와 함께 부산 남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이 이곳을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잠시 한숨을 돌리고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든다. 가파른 절벽 위로 올라오는 계단은 손잡이를 잡아야만 제대로 올라갈 수 있어 부산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험한 곳으로 악명이 높다.

   
   
▲ ’흰여울 문화마을’에서 간선도로로 올라가는 계단(사진 위)과 해안 산책로에서 ‘흰여울 문화마을’로 올라가는 말머리 계단. 너무 경사가 가팔라 반드시 난간 손잡이를 잡고 올라가야 한다. (아래) © 양수호

오션뷰 카페만 20여곳 늘어선 낭만골목

   
   
▲ ’흰여울길’을 따라 줄지어 있는 카페에서 바라보는 부산 외항 앞 바다(사진 위)와 남항과 남항대교의 모습.(아래) © 양수호

이곳에서 약 1km에 걸쳐 나 있는 ‘흰여울길’에는 20여 개 카페가 줄지어 있다. 거의 모든 카페가 가파른 절벽 위에 있어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탁 트인 오션뷰를 즐길 수 있다. 더구나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남항 앞바다 잔물결에 햇볕이 비치면서 반짝이는 윤슬과 낙조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벼랑 위로 난 길을 걸으면서 한 치의 틈도 없이 잇달아 붙어 있는 집들과 땅이 없어 물통에 흙을 담아 기르고 있는 상추 등 채소를 보면 이곳에서 살던 피난민들 모습이 절로 눈앞에 떠오른다. 흰여울길 양쪽으로 서 있는 담벼락에는 숨바꼭질하는 어린이들 모습 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고, 여기저기 사람들 얼굴과 꽃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 흰여울길 담벼락에 마을 주민들을 모델로 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 양수호

영화 ‘변호사’ ‘범죄와의 전쟁’ 등 촬영

흰여울길 중간쯤 가면 영화기록관, 마을회관, 마을 카페를 한데 모아 놓은 복합문화공간이 나타난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이 전시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변호인>과 부산 조직폭력배 이야기를 다룬 <범죄와의 전쟁> 중 몇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 영화 ‘변호인’의 촬영장으로 활용된 ‘흰여울 문화마을’ 안내소 모습. 벽에 영화의 대사 중에서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란 내용이 붙어 있다. (사진 위)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우석이 흰여울문화마을 안내소 앞에 서 있는 모습. ‘흰여울 문화마을’ 안내소는 시위도중 실종된 아들을 찾는 국밥집 여주인의 집으로 설정돼 영화촬영에 사용됐다.(사진 아래) © 양수호, 영화 ‘변호인’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태풍> <사생결단> <카운트다운> <암수살인> 등 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 흰여울 문화마을 집들 담벼락에 붙어 있는 협조 안내판. 이 마을에는 지금도 거주하면서 사는 주민들이 많아 조용하게 관람해 줄 것과 무단출입을 금해 달라는 당부를 하는 안내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 양수호

절영해안 산책로와 터널도 인기 코스

흰여울길을 따라 아기자기한 동네 모습을 구경하면서 차도 한잔하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간다. 길 끝쯤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피난촌 시절 판잣집에 살면서 화장실을 갖출 수 없어 사용하던 공중화장실을 리모델링해 사용하는데, 지금도 일부 주민은 공중화장실을 사용한다. 화장실을 지나 봉래산 방향으로 올라가서 ‘흰여울 루프탑 전망대’를 돌아보고 내려오면 해안 산책로로 내려가는 데크 계단이 나온다. 피아노 계단으로 이름이 붙여진 이곳을 따라 걸어 내려가 해안 산책로를 걸어가면 ‘흰여울 해안 터널’이 나온다. 영도구청이 산책로 방문객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암벽 구간 70m에 터널을 뚫어 개통했다. 터널 내부의 인조암벽을 타고 흐르는 여러 가지 색깔의 조명과 터널 가운데 있는 사랑의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남기면 좋다.

   

▲ '흰여울해안터널’ 내부와 터널 가운데쯤 있는 사랑의 포토존. © 양수호

   
▲ '흰여울 문화마을’ 안내도. © 영도구청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정진명 기자

[양수호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시사현안팀 양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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