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안병억 대구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주제 ① 유럽통합과 아시아

“유럽에서 유독 통합이 가장 많이 진전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유럽통합과 아시아’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안 교수는 <하룻밤에 읽는 영국사> <한눈에 보는 유럽연합> 등 여러 책을 썼다. 그는 통합이 유럽에서는 많이 진전됐지만 동북아시아에서는 늦어진 이유가 유럽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고 봤다. 특히 유럽의 지리와 역사뿐 아니라 강대국 관계에도 영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 안병억 교수가 지난 6월 3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윤재영

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유럽 통합의 의미

유럽연합(EU)은 세계에서 결속력이 가장 강한 연합체다. 경제블록으로서 유럽연합은 세계 최대이며,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단일화폐를 이용한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외교·안보 공조를 하고 유럽의회와 지자체 의회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상아색 표시)과 7개 후보 또는 잠재적 후보국(주황색 표시). ⓒ EU

안 교수는 “유럽연합이 아세안 등 다른 연합체와 달리 규범이 강제성을 띤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에 가입할 후보국에게 연합의 규범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노동 및 환경정책, 사형제 폐지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는 유럽연합이 군사동맹이 아니라 비군사적(civilian) 특징을 띠기 때문에 가능하다.

안 교수가 꼽은 단일시장의 힘은 “유럽연합 공통의 통상정책 및 규제”에서 나온다. 규제 장벽을 ‘브뤼셀 효과’라고 부를 정도로 유럽연합 차원의 규제가 많다. 세계 최대 단일시장에 진입하려면 일반정보보호규정(GDPR), 미국 IT 공룡기업 독점 규제 등을 충족해야 한다. 다만 외교와 안보정책은 각 회원국이 결정하되, 유럽연합이 정책을 조정해 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한다.

EU는 ‘평화를 원한 유럽’과 ‘개입하려는 미국’의 합작품

역사적으로 끝없이 분열하던 유럽에서 유럽연합은 세계에서 결속력이 가장 강한 연합체로 자리 잡았다. 안 교수는 유럽이 세계에서 통합이 가장 진전된 이유로 역사적 교훈을 들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1871년 서로 전쟁을 벌였고,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도 대결했다. 양국이 싸워 입은 피해는 극심했다. 프랑스가 서독에 먼저 손을 내밀어 갈등 관계를 청산하고 협력 관계로 거듭나기로 했다.

안 교수는 “유럽 엘리트 주도로 통합을 이뤄내면서, 대외적 요인이 결합되었다”고 분석한다. 유럽이 2차대전 이후 통합된 이유는 독일 나치가 민족주의를 강조한 점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엘리트의 인식과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대응이 있었다. 20세기 중반 2차세계대전과 냉전이 벌어지며 미국이 유럽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의도도 있었다. 미국은 2차대전에 관여했고, 냉전이 진행되며 트루먼 대통령이 미군을 유럽에 주둔시키는 일을 추진했다. 유럽을 관리하며 ‘유럽 세력화’를 꾀해 소련을 견제하려 했다. 안 교수는 “유럽연합을 통합의 모델이 아닌 하나의 통합 경험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통합하는 것을 다른 나라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학생들이 안병억 교수 강연을 듣고 있다. ⓒ 윤재영

석탄과 철강에서 시작한 통합

안 교수는 유럽 통합 과정이 ‘기능적 통합’이었음을 강조했다. 기능적 통합은 처음부터 연합 전체를 통합하는 것이 불가능해 가능한 분야부터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는 석탄과 철강이 통합 가능한 분야였다. 석탄과 철강이 전략물자의 핵심임을 근거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가 결성됐지만 평화가 주요 목적이었다.

철강은 무기를 만들고 석탄은 공장을 돌리는 전략물자다. 독일 중서부 루르 지방에서 석탄과 철강이 많이 생산됐는데, 이 지역을 두고 프랑스와 독일이 자주 분쟁을 일으켰다. 2차대전 후 프랑스는 경제 현대화 계획이 잘 안 되자 서독을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대우하며 동독을 제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에 따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이 ECSC를 형성하며 석탄과 철강을 공동 관리하기로 했다.

이후 석탄과 철강뿐 아니라 경제 전영역을 유럽 차원에서 공동 관리하는 유럽경제공동체(EEC)가 1958년 결성됐으며, 10년 뒤 관세동맹을 만들어 단일관세를 부과하고 단일시장을 형성했다. 유럽 내에서 자유롭게 취업하고 이동할 수 있고 단일화폐를 이용한다.

▲ 유럽연합의 19개 회원국이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유로를 선택했다. 단일 화폐로 유로를 채택해 국가 없는 화폐라는 유례없는 실험을 하는 중이다. ⓒ pixabay

한편 코로나19가 유럽연합에 끼친 영향에 관해 묻는 질문에 안 교수는 “유럽연합 기구가 국제 자금시장에서 단일한 유로화 채권을 발행해서 더 통합이 되었다”고 답했다. 연방으로 가는 길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는 뜻이다. 안 교수는 당장 브렉시트로 유럽연합의 통합이 멀어지는 듯하지만, 길게 보면 유럽 통합이 더욱 전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시아는 식민지 경험 많아 민족주의 강해

안 교수는 유럽과 아시아는 통합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은 민족주의를 해체하려 하고, 동북아시아는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이면 민족주의 정서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과 아시아 모두 민족주의를 국가 유지에 활용했다. 유럽은 두 번 세계대전을 겪으며 민족국가가 극단으로 치우쳐 국가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았다. 유럽 지식인들은 민족주의를 제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아시아는 2차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였던 나라가 많아서 민족주의가 강해졌다. 안 교수는 중동부 유럽도 민족주의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나라별로 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해 통합의 진전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유럽통합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미국은 유럽을 적극 통합하려고 했다. 안 교수는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유럽 우선이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견제가 우선이어서 아시아 통합을 바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월등한 존재감도 통합에 반작용

안 교수는 아시아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중국의 존재를 꼽았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압도적으로 큰 나라다. 경제 규모를 비교해도 유럽 내부 격차보다 아시아 내부 격차가 훨씬 크다. 유럽에서 독일의 경제 규모는 1/5정도이지만, 중국은 동남아시아를 다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다. 안 교수는 “중국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가장 큰 문제”라며 동아시아가 중국을 통제하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안 교수는 동북아시아의 세 나라인 한국, 중국, 일본이 자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도 문제가 된다고 분석했다.

▲ 1부 강연이 끝날 무렵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 윤재영

민족주의 반영하는 통합이 유력

안 교수는 “유럽과 비교하면 낮은 단계지만, 아시아 내부에서 통합을 조금이라도 이뤄왔다”고 평가했다. 경제 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양자 동맹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 안 교수는 “동아시아 통합은 민족주의를 활용하는 통합이 되어야 한다”며 “민족주의 정서를 반영한 통합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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