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
주제 ① 커뮤니티 저널리즘 어떻게 할 것인가

“옥천군민 20%가 <옥천신문>을 유료 구독해요. 허투루 쓰는 기사가 없기 때문이죠. 다른 지역 주민들은 기자를 만나기 힘들 때가 많아요. 보통 언론사 빌딩이 으리으리하고 보안이 철저하니까요. 하지만 옥천에서는 할머니들이 길 가다가 옥천신문사에서 쉬어 갈 정도로 문턱이 낮아요.”

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는 충북 옥천군 지역주간지 <옥천신문>의 유료화 성공 원인으로 지역 밀착 보도를 들었다. 그는 “포털 사이트에서 옥천을 검색하면 주로 보도자료를 받아쓴 똑같은 기사만 나온다”며 “포털이 커져도 지역 공론장에는 백해무익하다”고 지적했다. <옥천신문>은 보통 언론사와 달리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1990년대 말부터 유료 구독자에게만 종이신문과 홈페이지 기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가 지난 5월 6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첫 번째 주제 ‘커뮤니티 저널리즘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해 특강을 하고 있다. ⓒ 김동우

<옥천신문>은 국내 신문사 중 처음으로 유료화를 시작했다. 황 이사는 “신문이 나오는 금요일이면 주민 일부가 기사를 보고싶어서 우편함에 꽂혀 있는 신문을 훔쳐갈 정도”라며 <옥천신문>의 지역 내 인지도를 설명했다. <옥천신문>은 1987년 민주 항쟁 이후 옥천군민 202명이 1~2만원씩 낸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출발했다. 황 이사는 "옥천신문은 스스로 생존해야 했기 때문에 구독료 수입과, 온라인 유료화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옥천신문>이 유료화를 시작하자 처음에는 ‘<조선일보> <한겨레>도 안 받는 돈을 왜 받냐’는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현재 <옥천신문>은 매주 3500부를 발간해 1부에 2500원을 받고 판다. 황 이사는 주민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사만 제공하는 점을 유료화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옥천신문> 기자들은 이른바 ‘사이비 기자’를 만들지 않고, 정론직필을 이어가겠다고 구독자들과 약속해왔다. 광고료에 의존하지 않고 신문사를 꾸리기 위해, 생활인이기도 한 기자들이 노동 대가로 급여를 받기 위해 구독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조해왔다. 황 이사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국 언론 시장의 문화가 상식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옥천신문>이 계속 독자들에게 유료화에 관해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우리동네 공론장, 어떤 신문이 살릴까?

황 이사는 커뮤니티 저널리즘을 ‘세상을 보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언론은 보통 세상을 보는 창으로 불린다. 창은 세상을 타자화해서 보여주지만, 거울에서는 나 자신을 볼 수 있다. 지역 주민이 겪는 문제를 밀착 보도하고, 해결 방법까지 함께 찾을 때 주민들이 언론을 삶에 꼭 필요한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그는 옥천에 수영장이 생긴 이야기를 꺼냈다. 한때 옥천에는 수영장이 없어 주민이 수영을 하려고 대전까지 가야했다. 옥천에 수영장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면 ‘인구 5만여 명 사는 곳에서는 무리’라는 말이 돌아왔다. <옥천신문>은 주민들이 ‘수영장건립대책위’를 결성하고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는 것을 계속 보도했다. 수영장 건립을 위한 주민의 열망이 크게 공론화했고 결국 수영장이 생겼다. 황 이사는 “지역신문에서 보도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지 않지만, 이러한 사례들이 쌓이면 주민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신문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는다”고 말했다.

황 이사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가 가치있다”고 강조했다. 돈 많거나 학식이 뛰어난 사람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언론에 나와야 지역 공론장이 살아난다는 얘기다. 그는 <옥천신문> 코너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를 예로 들었다. 이 코너에서는 옥천 사람 누구나 참여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생, 최초 여성 이장, 매일 부모에게 문안하는 효자 등 평범한 지역 사람 이야기가 기사로 실린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황 상임이사의 특강을 듣고 있다. ⓒ 윤상은

늘 지역민 곁에 서있는 신문이 필요하다

“지역신문은 항상성이 중요해요. 늘 지역민 곁에 함께 있는 거죠. 문제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있어주는 신문이 지역신문이어야 합니다.”

지역에서 사안이 발생하면 <옥천신문>은 물론 다른 매체 기자들도 취재에 나선다. 때로는 언론 보도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또 다른 논란으로 번지기도 한다. 특히 간호조무사, 보육교사 등 상대적으로 약자 지위에 있는 이들이 겪는 부당한 사건의 경우 그렇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매체에서 지역에 관한 보도를 하더라도 대개 일회성에 그친다. 하지만 <옥천신문>은 지속적으로 사안에 관심을 갖고 보도한다. 계속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지역신문이 지역민 곁에 있으면, 지역민은 언제든지 문제점을 제보할 수 있고, 그것이 기사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황 이사는 “환경미화원이 부당하게 해고당했는데 복직될 때까지 <옥천신문>이 계속 보도했다. 결국 복직했고 나중에 또 다른 부당해고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들이 노조 차원에서 연대하여 함께 투쟁했다”고 말했다. 투쟁하는 과정을 계속 보도하면서 그들에 관한 지역민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자신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상황을 해결될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는 기대와 연대로 믿음이 생긴다. 

<옥천신문> 홈페이지 ‘여론광장’ 게시판은 항상성의 효과를 드러낸다. 옥천 주민의 ‘아고라’ 같은 구실을 한다. 익명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역민이 지역 행정에 관한 비판이나 일상 속 불편, 민원 사항 등을 가감없이 드러낼 수 있다. 공무원들이 여론광장을 늘 확인하면서 문제들이 기사화하기 전에 처리하기도 한다.

▲ <옥천신문> 홈페이지 ‘여론광장’. ⓒ <옥천신문>

지역신문이 ‘1초 민주주의’를 넘어서려면 

황 이사는 “시의원과 자치단체장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아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는 투표가 끝나면 선출된 사람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민주주의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투표하는 순간 민주주의가 끝나면 안 되죠. 기자 한 명이라도 선출된 권력의 행보를 감시하고 기록하면 정치와 행정이 달라져요.”

그는 주민이 의회 활동과 지역 사업 상황, 예산 사용을 자세하게 알고, 정치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일이 지역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이 주민 민원을 계속 전달하면 공론장에서 논의할 의제가 도출된다. 반면 공론장이 없으면 부패와 부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황 이사는 “사람 사는 곳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므로 그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는 게 중요한데 지역 문제에 밀착한 보도는 현저히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공론장을 위협하는 한 원인으로 포털 중심의 획일적인 뉴스를 들었다. 포털에서는 정치인의 소모적인 논쟁과 연예인 관련 뉴스가 주목받을 때가 많다. 그는 “많은 지역 문제가 일상적으로 언론으로부터 외면받다 보니, 일단 기사로 보도되면 특종이고, 단독인 것이 현실”이라며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제대로 보도하는 언론이 적은 상황을 지적했다. 서울 중심 사회에서 각 시군 단위에 공공성을 갖춘 ‘제대로 된’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황 상임이사. ⓒ 김동우

공공성 기반으로 공동체에 밀착해야

“공공성 없는 공동체는 지옥이에요.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옳은 이야기를 못하니까요. 공공성에 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공동체 내에서도 건전한 비판과 지적이 가능합니다.”

황 이사는 지역언론의 토대인 공동체에 관한 막연한 환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언론이 지역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고 하지만,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는 맹목적인 공동체 중심주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성에 관한 인식이 없으면 언론의 문제제기가 어려운 것은 물론, 언론의 문제 제기를 수용하는 여론도 형성되지 않는다.

지역을 기반으로 취재하는 지역신문 기자로서 지역민과 인연을 쌓고,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독이 된다. 사적 인연과 친소관계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황 이사는 “자기 고향이 옥천이 아니기에 온갖 인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취재하고 기사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주민으로서 지역에 인연이 생기고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지역언론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지녀야 하는 저널리즘 윤리와 지역에서 생활하는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황민호 상임이사 역시 20년 가까이 옥천에 살다 보니 지역에 여러 인연이 쌓였다. 두 가지 정체성이 충돌하지 않도록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공공성이다. 언론 스스로 공공성을 지니고, 공공성에 관한 지역사회의 인식을 높이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황 이사는 “지역신문일수록 언론 윤리를 특히 고민해야 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황 상임이사가 소개한 다양한 지역 신문들. ⓒ 김동우

감시와 비판 과정에서 나타나는 익명 보도가 좁은 지역사회에서는 무의미할 때가 많다.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주민들은 기사에 등장한 인물이 누구인지 충분히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혈연과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힌 공동체 안에서 한번 낙인 찍히면 살 수 없다. 특히 지역언론이 특정인을 비판하는 기사를 신중하게 작성하는 이유이다. 

지역 내에서 지역 언론이 지닌 파급력은 크다. 보도에 따라 지역 정책이 달라지고, 사업이 달라진다. 황민호 상임이사는 “지금보다 기자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무엇보다 지역민들에게 기자가 어렵게 다가오지 않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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