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박태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
주제 ② 환경호르몬 어떻게 해결할까

지난 5월 26일,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 완구를 비롯한 수입제품을 검사한 결과 44만 점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생활용품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기사는 이제 낯설지 않다. 환경호르몬을 다루는 기사가 많아지는 만큼 언론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지난 5월 20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박태균 회장은 환경호르몬이란 무엇이고 언론은 환경호르몬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새로운 과학용어를 언론이 사용하는 것의 의미를 설명했다.

▲ 박태균 회장은 언론에서 환경호르몬의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 김태형

언론이 새 과학용어를 사용하는 게 중요

“환경호르몬이라는 용어 자체가 저널리즘이에요. 이건 과학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용어를 잘 만드는 게 중요해요.”

박 회장은 <중앙일보>에서 과학전문기자 생활을 하던 1990년대 당시 환경호르몬이라는 용어가 없었던 것을 회상하며 언론에서 새로운 용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환경호르몬에 관한 강연을 시작했다. 태아의 유산을 일으키는 병원균인 리스테리아도 1997년 처음 등장했을 때는 생소한 탓에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박 회장은 자신이 리스테리아가 얼마나 위험한 균인지 데스크를 설득해서 기사가 나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1997년 ‘미국 아이스크림 회사 드라이어스에서 리스테리아균이 나왔다’는 보도를 언급했다. 그는 “당시 리스테리아를 언론이 잘 몰랐으면 드라이어스 사건도 보도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에서 계속 판매를 할 수도 있었다“며 언론이 새로운 과학용어를 빨리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1996년 9월 14일 <경향신문> 기사. 우유에서도 DOP가 검출돼 발암물질이라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박 회장은 환경호르몬의 기본 정의를 설명하며 강의를 이어갔다. 내분비계 장애물질을 일컫는 ‘환경호르몬’ 또한 박 회장이 처음 언론에 등장시켰다. 1996년 발생한 ‘분유파동’은 같은 해 9월 SBS뉴스가 ‘분유에서 발암물질이 나왔다’고 보도하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와 똑같은 실험을 영국에서는 ‘분유에서 환경호르몬 DOP가 나왔다’는 표현으로 보도했다. 

박 회장은 ”갑자기 환경호르몬이 나왔다고 하면 국민들이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SBS로서는 ‘발암물질이 나왔다’고 보도했다”며 적확한 표현을 사용하지 못한 당시 언론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DOP는 발암물질군으로 따지면 2B군에 속하는 낮은 급수이기 때문에 신체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는 그 보도에 관해 발암물질 문제가 아니라 환경호르몬 문제라고 기사를 써 당시 분유파동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일상을 파고든 환경호르몬

박 회장은 “환경호르몬은 호르몬이 아닌데 호르몬을 흉내내 몸 속에 잔류한다”며 “호르몬이 아닌 것이 호르몬인 척 몸에 달라붙으니 정작 붙어있어야 할 것들이 붙지 못해 건강에 이상신호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과학기자들에게 환경호르몬이 뭐냐고 물으면 정확한 답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환경호르몬이라고 하면 플라스틱을 먼저 떠올리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하고 중금속, 다이옥신, 유기염소계 농약 등이 모두 환경호르몬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생물농축’ 개념을 설명하며 일상 속 환경호르몬 오염의 예로 모유를 꼽았다. 생물학에서 먹이 피라미드는 제일 아래 생산자부터 1차소비자, 2차소비자, 최종소비자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생물농축’은 먹이 피라미드 정점으로 갈수록 체내 화학물질이 쌓여 농도가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는 “먹이사슬 최정점에 있는 것은 인간이고 그중에서도 모유”라며 “모유는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것으로 ‘생물농축’에 따르면 오염물질의 총집합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까지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의 면역물질 등 모유가 주는 이익이 모유 속 오염물질에 따른 피해보다 크다는 과학자들의 분석이 있어 모유수유를 권장하지만, 모유의 위험성이 커진다면 모유 먹이지 않기 운동을 벌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며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농약도 환경호르몬의 일종으로 유기인계 농약, 유기염소계 농약, 카바메이트계 농약 등 여러 종류가 있다. 박 회장은 “요즘엔 농업 현장에서 대부분 유기인계 농약을 쓰고 있다”며 “유기인계 농약은 독성이 강하지만 잔류성은 약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대로 유기염소계 농약은 독성은 약하지만 잔류성이 강해서 유기인계 농약보다 훨씬 더 오래 남는다”고 덧붙였다. 

코끼리를 구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처음에 당구공 만들려고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당구공을 전부 코끼리 상아로 만들었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플라스틱이 코끼리를 구했다고 하죠.”

플라스틱은 1869년 처음 개발됐다. 미국 발명가인 존 웨슬리 하이엇이 당구공 재료로 쓰이던 값비싼 코끼리 상아를 대체하려고 천연수지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플라스틱 시대는 1906년 벨기에 출신 미국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오늘날 플라스틱으로 불리는 최초의 합성물질인 `베이클라이트'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 

박 회장은 “우리가 플라스틱 세상에 살고 있다”며 “최근엔 미세플라스틱 등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플라스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하는 것이 좋은 플라스틱과 사용 가능한 플라스틱을 구분해 설명했다. 그는 “플라스틱 ‘1, 2, 4, 5’는 안전하다”며 “‘3, 6, 7’이나 ‘PVC, PS, OTHER’이라고 쓰여 있는 제품은 비스페놀A와 프랄레이트가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피해야 하는 제품으로, 부드럽고 탄성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 플라스틱 용기번호 구분. ⓒ 3devo

박 회장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화학물질로 비스페놀A를 꼽았다. 이것은 물통 등 플라스틱 제품 제조 때 흔히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그는 환경호르몬으로 의심받고 있는 화학물질로 폴리카보네이트(PC), 폴리염화비닐(PVC), 에폭시수지가 있는데, 비스페놀A는 폴리카보네이트(PC)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비스페놀A 사용이 정치적 의제이며, 프랑스는 비스페놀A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앞으로 비스페놀A와 관련해서 계속 기사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경호르몬 이슈를 다룰 때 유의할 점

2006년 <SBS 스페셜>은 ‘환경호르몬의 습격’ 편을 방영했다. 이 방송은 환경호르몬이 성조숙증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아 사회적 파장이 컸다. 방영 이후 환경호르몬이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됐다. 박 회장은 “당시 그 방송으로 환경호르몬이 성조숙증의 원인인 것으로 인식됐지만 실제 성조숙증은 비만, 영양과다, 가족력, 스트레스 등이 원인일 가능성이 더 높지 플라스틱 식기 탓일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호르몬 관련 이슈가 많이 보도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환경호르몬이 실제 원인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게 대부분이어서 보도할 때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환경호르몬 이슈를 다룰 때 경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호르몬이 사회적 문제가 된 뒤 환경호르몬이 없는 제품이라는 이유로 가격이 오른 사례를 소개했다. 과거에 4~5천 원 하던 플라스틱 젖병이 환경호르몬이 없는 물질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몇 만 원대로 팔고, 한 업체는 비스페놀A가 없는 제품이라는 뜻으로 ‘비스프리’라는 상품명을 붙여 비싸게 팔기도 한다. 환경호르몬이 없다고 홍보하는 제품의 소비자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박 회장은 그런 제품에 정말 환경호르몬이 없는지 확실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환경호르몬 문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례가 많다는 걸 인지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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