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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밖에서 사고할 수는 없다”
[사회교양특강] 정준희 방송진행자, 한양대 겸임교수
주제 ② 미디어의 역사: 진실과 탈진실, 포스트저널리즘
2021년 07월 24일 (토) 16:13:39 이예슬 정진명 고성욱 최태현 기자 yeslowly@gmail.com

“우리 사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든, 그건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대중매체가 그리 신뢰할 만한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안다.”

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대중매체의 현실>에서 이렇게 썼다. 신문과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대중은 기존에 몰랐거나 굳이 알 필요가 없던 정보를 알게 됐다. 루만은 사람들이 이러한 정보들을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모두 대중매체를 통해 습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 정준희 한양대 교수가 지난 3월 25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저널리즘의 역사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 최태현

정준희 방송진행자 겸 한양대 겸임교수는 “우리는 대중매체 바깥에서 사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저널리즘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널리즘 위기? 위기 실체가 중요

루만의 말처럼, 대중들은 대중매체가 그리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직업적 저널리즘의 중요성도 논의되고 있다. 정 교수는 “’저널리즘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30년이 넘었는데, 위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기란 신문의 위기나 종이 신문의 위기, 또는 종이신문 판매의 위기일 수도 있다.

정 교수는 “보통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하면 전통 매체 생존의 위기를 뜻한다”며 “세상이 발전하면서 저널리즘의 형식도 달라지겠지만 저널리즘 그 자체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중은 직업화한 저널리스트의 정보 생산에 의존하고, 비판하면서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유튜브 저널리즘’이라는 말까지 생겼지만 사회적 사실로 인정받는 것은 여전히 기성 저널리즘의 영역이다.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려면

“저널리즘이 재현하는 현실은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재현된 현실입니다.”

저널리즘은 사회현실을 거울처럼 재현하지 않는다. 다들 알지만 쉽게 망각한다. 대중이 ‘기레기’라고 비판하지만, 기성 매체가 구현한 현실의 바깥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기사는 ‘저게 진짜일까?’ 의문을 품으면서도 영향을 받는다. 최근에는 ‘내 속을 풀어주는 언론’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내 편을 옹호하는 보도는 믿고 보지만, 반대편은 배격하는 식이다. 정 교수는 “(대중은) 내 귀에 듣기 좋은 뉴스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정부는 통치·지배 형태를 말하고, 신문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뜻한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없다면 통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두기를 하며 강연에 집중하고 있다. ⓒ 정진명

언론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언론에게 왜 이런 권리가 주어질까? 정 교수는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론이 민주주의를 해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언론은 특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는 군사정권이 오랫동안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동일시됐다. 그러나 저널리즘이 자동으로 민주주의를 촉진하지는 않는다. 좋은 저널리즘만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

정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설명했다. 이기적 유전자가 모인 결과 이타적 행동을 유발하는 것처럼, 이기적 저널리스트가 많아지면 이타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언론이 왜 민주주의 가치와 언론 자유의 대의에 충실하지 못하냐고 비판할 수는 있다”면서도 “다만 언론의 이기심을 적절히 통제하되, 약간씩 북돋아주면 민주주의의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이타심으로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거짓말 해도 된다는 ‘탈진실 멘탈리티’

“‘탈진실’은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생각이에요. 거짓말을 안 하면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 더 나아가면 거짓말을 해놓고도 그게 거짓말인지 모르는 현상이죠.“

정준희 교수는 가짜뉴스에 관해 <포스트 트루스>와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책을 기초로 설명했다. 정 교수는 ”거짓말과 ‘개소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짜뉴스’는 거짓말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사실과 연관된다. 그는 “거짓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짓말한다고 인식하지만, ‘개소리’ 하는 사람은 그런 인식 없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한다”고 설명했다.

탈진실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은 지지세력이다. 외로운 신도들에게 강력한 설교를 통해 유대감을 갖게 하고, 그에 기반한 세력을 다진 초기 교회 공동체의 메커니즘이 그 예시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대표 인물이다. 그가 대선에서 진 뒤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며 지지자들에게 호소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 교수는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미디어 현상이 ‘일베화’와 ‘태극기부대화’라고 진단했다. 이 현상들이 정치적 견해를 떠나 ‘탈진실적 멘탈리티’와 지지세력이 결합된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중매체만 있던 시절에는 극단주의자들이 의견을 표출할 공간이 없었지만, 하이브리드화한 매체는 이들에게 연대·조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공론장에서 비판받을 의견이 비슷한 성향의 사람끼리 모인 조직 안에서 호응을 얻고, 사회에 표출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세월호 참사 당시 일베가 한 ‘폭식 투쟁’이 그 예다.

대중에게 학습된 용어 ‘가짜뉴스’

정준희 교수는 이미 ‘가짜뉴스’라는 말이 퍼진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말로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은 ‘가짜뉴스’라는 말이 뉴스 자체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허위조작정보’라는 단어 사용을 권한다. 하지만 명쾌한 단어를 좋아하는 대중들은 앞으로도 계속 ‘가짜뉴스’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허위조작정보’는 매체 환경에 잘 적응해, 교육 수준과 상관없이 대중을 잘 매료한다. 정 교수는 미디어 정보를 허위정보(disinformation), 오보(misinformation), 유해정보 (malinformation) 3개로 나눈 뒤, 사회에 가장 영향력을 가진 정보를 허위정보라고 설명했다.

허위정보는 전쟁에서 비롯됐다. 거짓 정보를 흘려서 적진을 교란하고 이중 스파이를 잡아낼 때 사용했다. 당시 허위정보의 목적은 상대를 헷갈리게 만드는 것과 상대 진영이 어느 정보도 못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정 교수는 최근 허위조작정보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 접종에 관한 제대로 된 정보값과 정보에 관한 대중 신뢰도를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백신 관련 가짜뉴스들이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했다. ⓒ KBS

불안과 공포에 빠진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정보를 한 번 접하게 되면, 아무리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줘도 거부하게 된다. 유튜브 저널리즘은 허위정보에 잘 적응해, 사회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만들고 있다. 정 교수는 허위정보의 강력한 사례로 이른바 ‘국뽕 콘텐츠’를 꼽았다. ‘국뽕 콘텐츠’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만들지만, 80% 진실과 20% 거짓 식으로 구성돼 있다. 이는 대중이 지나친 애국심에 빠져 현실을 잊고 행복감을 느끼게 하지만, 타인을 향해 차별과 혐오를 가지도록 조장한다.

저널리즘은 ‘전문성’으로 나아가야

정준희 교수는 저널리즘이 가짜뉴스에 대항해 생존하는 방법으로 ‘수용자 결합 유무’와 ‘전문성’을 꼽았다. 오늘의 저널리즘은 내일의 저널리즘에게 부정당할 수 있다. 정 교수는 부정당하지 않으려고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사실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 독자와 신뢰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옛날에는 실제 정책에 반영되거나 취재원의 반응을 보고 저널리즘의 영향력을 느꼈다면, 요즘은 수용자의 반응을 댓글로 알 수 있게 돼, 기자와 수용자 관계가 더 긴밀하고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언론사와 수용자가 직접 관계를 맺었지만, 지금은 언론사는 신뢰하지 못하더라도 자신과 신뢰 관계를 맺은 기자의 기사나 칼럼을 믿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시대에 저널리즘이 존립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문성을 가지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전에는 정확한 문장과 리포팅에서 탁월성이 나왔다면, 이제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기자의 새로운 시각까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를 정확하게 다룬 뉴스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38 노스>(38 North)에서 전해 듣는 현 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 한국 언론의 문제점은 수용자와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지 못하는 데서 나왔다고 진단한다.

정 교수는 “전문적 저널리즘이 저널리스트로서 안정적인 위치와 더 많은 영향력을 보장해줄 수는 없지만, 저널리스트들이 계속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수용자와 신뢰를 쌓는 일을 중시한다면 저널리즘의 미래도 희망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전중환 정준희 김동춘 최배근 황민호 박태균 안병억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주원 기자 

[이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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