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대표 박남준 시인

자연 생태계를 있는 그대로 보존할 것인가, 개발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을 것인가. 산업화 이후 세계 곳곳에서 되풀이된 이 논쟁이 이번엔 지리산에서 불붙었다. 경남 하동군 윤상기 군수가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만들어 하동 100년 먹거리를 발굴하겠다’며 2018년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를 재선 공약으로 내세운 후,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5월 31일 반대위 대표 박남준(65) 시인을 경남 하동군 악양면 동매마을에 있는 자택 심원재(心遠齋)로 찾아가 만나고, 5일 최지한(41) 집행위원장을 문자로 보충 취재했다.

“세상의 부조리에 시로 맞서는 게 시인의 일”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는 박남준 시인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그의 집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새로 나온 시집을 기자에게 증정하기 전 서명하는 모습. ⓒ 심미영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는 박남준 시인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그의 집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새로 나온 시집을 기자에게 증정하기 전 서명하는 모습. ⓒ 심미영

“그냥 여기 앉아서도 (지리산) 형제봉 능선이 다 보여요. 그런데 그 능선에 산악열차가 다니고, 케이블카가 오르내리고, 모노레일이 오르내리고 하는 게 끔찍하죠.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반대위 젊은 친구들이 등을 떠밀어줬어요. 물론 시를 쓰는 일이 시인으로서는 가장 큰 몫이지만,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시를 쓰는 것이 시인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박 시인은 1984년 ‘할매는 꽃신 신고 사랑노래 부르다가’로 등단한 후 자연과 인간의 공존·공생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왔고 최근 임화문학예술상, 조태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이 시작되자 ‘밤에 잠자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깰 정도’로 괴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2008년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을 100여 일간 순례하며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을 했다. 이에 앞서 2004년에는 도법스님이 진행한 생명평화탁발순례에, 2003년에는 수경스님과 함께 새만금 간척 사업에 반대하는 삼보일배를 하기도 했다. 박 시인의 걸음마다 시가 탄생했다. 지난해 8월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형제봉 활공장에서 열린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현장행동’에서는 ‘지리산이 당신에게’가 태어났다.

"강은 강이 아니고 바다는
물고기들만의 바다가 아니듯이
지리산은 다만 지리산이 아니야

당신이 있으므로 내가 있듯이
아직 지리산이 이렇게나마 숨 쉬고 있다는 것은
당신의 몸 안에
나무처럼 자라나며 샘솟는 희망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

그린뉴딜 정부에서 대규모 산악 개발 말 되나 

▲ 지난해 8월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형제봉 활공장에서 열린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현장행동’에서 환경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구호를 펼쳐 들고 있다. ⓒ ‘지리산을 그대로’ 다음(daum) 카페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는 공공기관이 150억 원, 민간사업자가 1500억 원 등 총 1650억 원을 들여 추진하려는 사업이다. 산림휴양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명분이다. 하동군의 화개-악양-청암면 등 지리산 형제봉 일대를 산악열차(12㎞), 모노레일(2.2㎞), 케이블카(3.6㎞)로 잇고, 리조트형 호텔 등 휴양레저 시설을 건설하는 대규모 산악개발 사업이다. 하동군은 산악관광으로 유명한 스위스 알프스 융프라우의 산악열차를 모델로 들고 있다.

반대위에 따르면 이 사업은 윤 군수가 2014년부터 추진하려 했지만 대규모 산림 훼손이 예상된다는 이유 등으로 묻혔는데, 기획재정부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경제활성화를 위한 신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6월 ‘한걸음 모델’을 추진하면서 살아났다. 한걸음 모델이란 각종 규제를 관리하는 정부 부처와 전문가 그룹, 지역주민이 각자 한 걸음씩 양보해 산지 정책의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산림휴양관광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하동알프스 프로젝트’가 선정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아닌, 녹색 생태계 복원 등 ‘그린뉴딜’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산악열차 건립 사업이 부활한 것이다. 녹색 생태계 복원은 국립공원과 도시공간의 훼손 지역과 갯벌 등을 되살리자는 사업이다. 하동알프스 프로젝트 개발 대상지인 지리산 형제봉은 국립공원 바로 바깥에 있다.

전경련 건의로 시작, 박근혜 탄핵으로 일단 무산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낸 ‘산악관광 활성화 건의’와 관련이 있다. 당시 전경련은 산악관광특구를 지정해 산지 규제를 해소할 것과 산림 개발을 위해 경사도 기준을 완화할 것 등을 제안했다. 또 국립공원 정상 부근에 휴양시설을 허용하고 산지 내 승마장 건립,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확대 등도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산악관광 활성화 정책을 추진했다. 거기에는 산림 민영화와 초지 개발 등을 허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후 설악산에서는 오색과 끝청 사이 3.5㎞에 걸친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지리산에서는 육모정-정령치-성삼재-천은사를 잇는 34㎞의 산악열차 건설이 추진됐다.

▲ 박남준 시인과 마주 앉은 최지한 집행위원장. ⓒ 심미영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이 사업들은 묻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환경단체들은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비슷한 계획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전경련과 관련된 집단이 개입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박 시인과 함께 차를 마시던 최지한 위원장은 “2019년 문재인 정부의 산림휴양관광정책은 2014년 전경련의 제안과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산악관광활성화 정책 내용과 놀랄 정도로 일치한다”며 “국립공원의 산림 전체를 대기업에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반대위는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를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이라고 부른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펼칠 당시에도 ‘한국판 뉴딜’을 외치며 경제위기 타개책으로 홍보했다. 특히 수해예방과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 등 ‘녹색 뉴딜’로 포장하면서 규제 회피를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와 관련해서도 2019년 이후 ‘산림휴양관광특구법’과 ‘산림휴양관광진흥법’의 제·개정을 통해 규제를 줄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반대위는 특별법이 통과되면 지리산에 산악열차가 들어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전국에 있는 산림이 무차별적으로 개발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재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의 ‘한걸음 모델’은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원점 재검토’라는 결론이 났고, 민간 사업자로 나섰던 대림건설도 참여를 포기했다. 현행법상 호텔, 식당, 카페 등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 사업성이 높지 않다는 게 중요한 이유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 능력 없는 하동군, 선거 의식해서 강행” 

박 시인은 민자 사업자가 포기한 후에도 윤상기 군수가 이 프로젝트를 계속 밀어붙이는 것은 선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리산을 개발하면 관광 수익이 생긴다는 단순한 논리로 군민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시인은 그러나 이 사업으로 조성되는 휴양지는 모두 산속에 있어 그 안에서만 소비가 돌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이익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또 국내 다른 지역의 사례를 봐도 케이블카나 모노레일로 큰 수익을 올린 사례가 없고, 대부분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 경남 하동군 하동역에 걸려 있는 산악열차 반대 현수막. ⓒ 심미영

사실 하동군은 현재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재정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미 민간자본 유치 사업으로 진행된 대송산업단지가 실패해 2260억 원의 빚을 졌다. 인구증가와 하동시 승격을 기대하며 민자로 추진한 갈사만조선산업단지 조성사업도 시행사 파산으로 실패해, 2018~2019년에 884억 원을 사업 대출금 연대보증으로 피해를 본 대우조선해양에 배상하기도 했다.

박 시인은 산악열차 같은 개발 사업이 지역관광을 활성화할 해법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자신이 입은 빨간 티셔츠를 가리켰다. 티셔츠에는 ‘slow walk(느린 걸음)’가 새겨져 있었다. 지난해 10월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동정호 주변에서 열린 ‘평사리 느리게 걷기’ 행사의 기념품이라고 한다.

“관광 트렌드를 ‘힐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다 같이 산악열차를 타는 게 힐링입니까? 힐링은 둘레길을 걷는다든지, 조용히 길을 걸으며 본인을 되돌아볼 수 있을 때 생깁니다. 제가 처음 여기 악양에 왔을 때 깜짝 놀란 게 있어요. 악양 평사리 그 넓은 들판에 비닐하우스가 없어서입니다. 비닐하우스가 없는 자리를 보리와 밀이 채웠습니다. 보리와 밀이 거둬지면 자운영이 붉게 피죠. 가을이 되면 고개 숙인 벼들이 바람에 흔들려요. 정말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런 장점을 살려 경관 농업(자연환경을 자산으로 활용하는 농업)을 독려하고 걷기 여행을 더욱 활성화해보는 건 어떨까요?”


편집 : 남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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