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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뉴딜 말 대신 친환경 쌀농사부터”
[단비인터뷰] 교수직 접고 농사짓는 윤석원 양양로뎀농원 대표
2021년 06월 06일 (일) 20:03:59 박성준 기자 creation619@naver.com

지난달 11일 오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 마을에서 산길로 차를 조금 달리자 나무로 지은 3미터(m) 높이 10평 남짓한 갈색 농막 앞에 ‘친환경 농장 양양로뎀농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토끼풀이 수북한 농장 안쪽에서 검은 고무호스를 들고 밭에 물을 주던 농부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28년간 서울 중앙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정년을 3년 앞둔 2016년 명예퇴직하고 농장 주인이 된 윤석원(68) 대표다. 그는 중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주립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농농농(농업·농촌·농민)’을 외치는 교수로 일하다, ‘언행일치는 학자의 양심’이란 생각에 직접 농사를 지으러 농촌에 정착했다.

28년 교수생활 후 ‘언행일치’ 위해 농촌 정착

   
▲ 강원도 양양로뎀농원에서 윤석원 대표가 고추밭에 물을 주고 있다. 사과나무 100여 그루와 함께 고추를 키우는 그는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비닐 대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부직포를 쓴다”고 말했다. ⓒ 박성준

“갈수록 냉해가 빈번하고 병충해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친환경 농장을 운영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생태농업으로 가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실감 나는 시대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선 누적 강수량 716밀리미터(㎜)에 달하는 54일간의 기록적인 장마와 태풍, 폭염이 겹쳐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곡물은 고온에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가 2018년 발표한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앞으로 0.5∼1.5℃ 더 오르면 농업 생산성은 50% 가까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 윤 대표가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생태농업을 고집하는 것도 농업이 기후위기의 주범 중 하나라는 인식 때문이다.

윤 대표는 “산업혁명 이후 에너지 고투입 농업이 됐다”며 “석유와 화학비료, 농약이 모두 에너지를 쓰는 것이고, 그게 바로 탄소 발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발생량은 약 510억톤(t)CO2eq(이산화탄소환산치)인데, 이 중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나 된다. 교통과 운송(16%)보다도 3% 포인트 높은 것이다. 그는 “환경오염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기존 관행 농업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며 “특히 건강에 직접 연관 있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기 때문에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과나무 100여 그루 생태농업으로 재배

   
▲ 양양로뎀농원의 농막 앞 야외 탁자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윤석원 대표. 이 농막은 <한겨레교육>의 ‘작은집 건축학교’ 강좌를 들으며 동기 8명과 직접 지은 것이라고 한다. ⓒ 박성준

윤 대표가 기후위기를 막는 방법의 하나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 생태농업, 즉 자연의 다양성에 기초한 농사다. 그는 ‘시나노골드’라는 노란 사과를 100여 그루 키우는데, 비료와 농약을 모두 천연 재료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말했다. 은행 추출물이나 할미꽃 뿌리를 달인 물은 자연 살충제 구실을 한다. 해충을 퇴치하는 데 효과가 있으면서도 인체에는 해가 없다. 또 화학비료 대신에 유산균이나 효모균을 쓴다. 윤 대표는 “미생물이 토양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물 생장에도 유용하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고초균(유기물 분해능력이 뛰어난 토양 내 대표적인 미생물)은 잎채소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유산균과 효모균은 열매채소나 과수의 뿌리 생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로뎀농원은 2016년 강원대 친환경인증센터에서 친환경 농가 인증을 받았다. 인증은 1년 이상 영농일지를 제출하고 토양검사서와 수질검사서 등 여러 서류를 제출하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농약보다 더 나쁘다고 하는 제초제를 지금 농민들이 너무 쉽게 쓰세요. 그게 결국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겁니다. 지금 해안 연안 가보면 하얘요. 백화현상이라고 하는 건데, 우리 어렸을 때는 바닷가에 가면 물고기도 다니고 조개나 해초도 많았거든요. 지금은 거의 황폐해졌어요. 화학비료나 제초제 같은 것들이 쓸려 바다로 들어간 게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태농업으로 가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런 문제의식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농민들에게 ‘제초제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가 “그러면 당신이 농사 책임질 거냐”는 호통을 들은 일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지난해 냉해를 입어 사과나무가 거의 다 죽어버린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가 기대한 매출은 한 해 1천만 원 정도인데, 냉해 피해 등으로 5년간 2백만 원이 전부였다. 그는 “평생 농업을 연구했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털어놓았다.

“스마트팜·디지털농업은 농민에게 직접 도움 안 돼”

   
▲ 사과나무 묘목 밑에 토끼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양양로뎀농원 전경. 멀리 바다가 보인다. 토끼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질소를 고정하기 때문에, 질소비료를 사용한 것처럼 땅을 기름지게 만들어 준다. ⓒ 박성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론뿐 아닌 실전 농업 전문가로 거듭나고 있다고 자평하는 그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그린뉴딜’에 관해 비판적 의견을 쏟아내기도 했다. 정보통신기술을 농업에 접목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스마트팜’이나 ‘디지털 농업’ 등은 탄소 감축이나 농민들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윤 대표는 “뉴딜정책이랍시고 지원하는 돈은 결국 기술 가진 사람에게 가게 돼 있다”며 “하루하루 살기 바쁜 농민들이 스마트팜으로 성공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기업에서 대규모 첨단 농업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탄소 줄이는 길은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표의 대안은 ‘벼농사부터 친환경으로 가자’는 것이다. 충남 홍성군에는 친환경 쌀농업이 대규모 단지를 이루고 있다. 그는 “오리농법(해충·잡초를 없애주는 오리 이용)을 처음 시도한 곳이 홍성이고, 지금은 우렁이농법(물속 풀만 먹는 우렁이 특성 이용)과 메기농법(민물메기 이용) 등 여러 가지 생태농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쌀농사를 짓는 실험이다. 윤 대표는 “그나마 친환경 농업이 쉬운 작물이 쌀”이라며 “노력하면 50%까지 친환경 농가로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사뿐 아니라) 삶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다”며 “최소한의 물질과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인터뷰 내내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는 “욕심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며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고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하지 않으면 인생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농민 편에서 연구’ 신념 지키다 연구용역 뺏기기도

 지금은 ‘이론을 갖춘 농부’로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지만, 1974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윤 대표는 입시 성적에 맞춰갔을 뿐 농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등 은사를 만나 농업경제학에 신념을 갖게 됐고, 졸업 후에는 대학원과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원 생활을 병행했다. 연구원에서 5년간 일하며 전국 농촌에 출장을 다닌 것이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현장에 가서 직접 농민들을 만나보니 그들이 너무 어렵게 살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저도 힘들게 살아서 공감대가 형성되더라고요. 바닷가 작은마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 살았는데, 대학 졸업할 때까지 판자촌을 전전하는 수준이었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농촌에는 능력 없는 사람들만 남아있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 농업경제학자로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윤석원 대표. ⓒ 박성준

그는 김 전 장관의 영향으로 ‘농민의 편에서 연구해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했는데, 이 때문에 시장기능을 강조하는 정부나 농협중앙회 등과 항상 갈등 관계에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윤 대표는 “내 몫의 연구용역이 윗선에서 다른 곳으로 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농민의 편에서 농업, 농촌을 바라본 그의 고민은 2016년 출판한 칼럼집 <쌀은 주권이다>에 잘 담겨있다.

그는 교수 시절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살다가 농사를 시작하면서 집을 팔고 농장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내는 처음에 반대하다가 어쩔 수 없이 내려왔는데, (둘이 살며 농사짓는) 요즘은 너무 좋아한다”며 윤 대표는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농부를 꿈꾸는 청년이나 귀농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묻자 정색을 하며 말했다.

“돈 벌겠다는 생각으로는 농사 꿈도 꾸지 마세요. 실제로 돈 벌기 힘든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 농사는 농촌의 가치를 알고 해야 합니다. 농촌에는 시장원리만으로는 거래할 수 없는 ‘비교역적’ 가치가 있어요. 식량공급뿐만 아니라 생태, 문화, 환경을 포함하는 다원적 가치가 농촌에 담겨 있습니다. 이걸 먼저 이해하고 오세요.”


편집 : 유재인 기자

[박성준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시사현안팀 박성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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