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7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정시에 퇴근하는 걸 ‘칼퇴’라고 부르며 회사 복지처럼 여기는 한국에서 과로는 딱히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유대근, 김헌주, 이범수, 홍인기, 오세진 기자는 2017년,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라는 7회 분의 기획보도에서 과로로 숨진 이들과 유가족 54명의 사례를 발굴하고 심층 인터뷰했다. 1천여 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하고, 관련한 정부 자료를 찾아내어 과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국 사회에 너무 만연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과로가 ‘진짜 심각한 문제’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매 기사마다 적절한 통계를 제공했다. 대안도 제시했다. 이 보도가 직접적인 이유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보도가 나간 후 과로는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이듬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개정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 2017년 10월 10일자 <서울신문> 1면에 실린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1회. ⓒ 서울신문

과로 문제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이 택한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한다. 둘째, 일반 직장인 뿐 아니라 공무원 등 잘 언급되지 않는 다양한 과로 사례를 다룬다. 셋째, 열심히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다 몸이 망가지고 죽은 사람을 조명한다. 넷째, 대중의 눈길을 끌고 공감을 얻기 위해 눈에 띄는 그래픽 요소와 인터뷰이의 서사를 추가한다.

기사를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이도록

<서울신문>은 지면에 실리는 글 기사임에도 인터랙티브 기사처럼 독자가 참여할 수 있는 요소와 그래픽을 거의 모든 기사에 실었다. 첫 편에 실은 건 일본 후생노동성의 ‘직장인 누적피로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였다. 자신이 피로가 많이 누적된 사람인지는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할 요소다. 독자는 체크리스트 항목에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자신이 과로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체크리스트는 독자가 앞으로 나올 과로 보도에 더 많은 공감을 할 수밖에 없는 영리한 장치였다. 

▲ <서울신문>이 제시한 ‘직장이 누적피로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 서울신문

<서울신문>은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서도 과로를 계속하는 이유를 직장인 1천 명에게 묻기도 했다. 전체 응답자 중 58.7%가 평일 초과 근무를 한다고 답했고, 초과 근무를 하는 이유로는 ‘일의 양이 많아서’가 60.6%로 가장 많았다. 경영계가 과로의 원인으로 자주 꼽는 ‘추가 수당을 받기 위해’는 13%에 불과했다.

이 기사는 경영계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인터뷰 기사 바로 뒤에 실렸다. 경총은 정규 업무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늦게 처리해 추가 수당을 노리는 노동자가 있다고 답했다. 이 인터뷰와 <서울신문> 설문조사 결과가 대비되어, 직장인의 야근은 결코 자발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공무원도 일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2012~2016년 과로사한 공무원 중 경찰청 소속이 47명으로 가장 많았고, 기초지방자치단체 공무원 42명, 소방청 11명, 광역지자체 8명 순이었다.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도 7명이 과로사했다. … 불 끄다 숨진 소방관보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소방관이 더 많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3회, 6년 137명 과로사…무너진 ‘꿈의 직장’)

한국 사회에 만연한 과로의 덫이 공무원을 피해갈 리가 없다. 공무원은 ‘놀고먹지’ 않는다. <서울신문>은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공무원의 고충과 공무원 사회의 부조리를 짚어냈다. 주 52시간 근로기준법이 공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이 취재한 유가족 중 2015년 12월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투신한 서울시 7급 공무원 이모 씨(당시 40세)는 생전에 초과 근무 시간만 한 달에 68시간이었다.

워킹맘과 운전기사까지, 없는 곳이 없는 과로의 덫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회사 업무와 가사노동 시간을 합치면 주당 60시간이 넘어가는 워킹맘을 ‘시간거지’라고 표현했다. 시간이 너무 없어 구걸할 정도라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기혼 남성 129명과 기혼 여성 222명을 직접 설문하고 심층 인터뷰해 경제활동과 독박육아, 집안일까지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의 현실을 짚었다. 특히 자녀 양육과 집안일을 전담하는 ‘전업대디’를 향한 엇갈리는 시선을 보도한 점은 신선했다. 남성 응답자가 전업대디에게 느끼는 감정은 ‘부러움’이 11.6%로 가장 많았다. ‘부럽다’고 답한 남성들은 “여유롭게 살 것 같다”고 답했다. 반면, 여성 응답자는 ‘불안함(18.0%)’을 가장 많이 느꼈다.

▲ <2017년 대한민국 과로 리포트, 4회, 슈퍼우먼 콤플렉스에 짓눌린 워킹맘>에 실린 그래픽. 기혼 여성이 ‘워킹맘’ 하면 떠오르는 감정과 이유가 적혀있다. ⓒ 서울신문

가사노동 역시 노동이기 때문에 이를 수행하는 워킹맘과 돌봄과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전업맘의 노고가 사회적으로 인정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다수 남성이 이를 ‘노동’이라고 인식조차 하지 못하다 보니, 많은 여성들이 우울증과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는 것이다.

대안 제시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는 한국 사회를 울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과로 사회”라고 지적했다. 공감하는 댓글이 많이 달리는 등 반응도 뜨거웠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제시한 대안 가운데 상당수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 보도 이후인 2017년 10월에 정부가 내놓겠다고 약속한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포괄임금제는 연장근로수당 등을 기본급에 포함하는 임금 지불 방식을 말한다.

장시간 노동한다는 걸 입증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고자 국회에 제출된 노동시간 기록·보존 법안들은 대부분 20대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논의는 거의 사라졌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남성 배우자의 유급 출산휴가 기간을 5일에서 30일로 확대하자고 발의했던 ‘슈퍼우먼 방지법’은 고작 5일 늘어난 10일에 그쳤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뇌·심혈관계 질환이나 직업성 암, 근골격계 질환 등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뇌·심혈관계 질환은 과로사의 대표적인 원인인데, 이 질환이 ‘직업성 질병자’의 질병 범위에서 제외됨으로써 많은 과로사가 산재로 인정받기 힘들어진 것이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 이미 <서울신문>은 보건의료노동자가 근로시간 특례업종 종사자로 들어간 것을 우려하는 기사를 썼다. 간호사의 업무 강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된 지금, 더 무겁고 강해졌다. 여전히 간호사는 보건의료노동자로서 근로시간 특례업종 종사자다.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의료본부 관계자들이 4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력 부족으로 쓰러지는 간호사들과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환자들의 모습을 표현하며 코로나19 감염병상 간호인력 기준마련을 서울시에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의 유대근 기자는 <신문과 방송> 2017년 11월호 취재기·제작기 코너에 이렇게 적었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밝힌 만큼 우리를 둘러싼 장시간 노동 관행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낡은 기업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길 기대하긴 어렵다. 법이 바뀌면 편법을 찾을 것이고, 성실한 노동자들은 또 퀭한 눈으로 늦은 밤까지 사무실을 지켜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다른 김 부장과 박 과장, 이 대리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릴 계획이다. 과로 리포트 시즌2가 됐든 시즌3이 됐든 이 문제만큼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노라고 결의를 다졌다.”

<서울신문>은 여전히 노동과 과로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지난해에는 산재 야간 노동자의 과로사 등 부고를 모은 인터랙티브 <당신이 잠든 사이-달빛 노동 프로젝트>를 내놓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직장 내 과로 문제를 깊이 파고들어 폭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시리즈”라는 2017년 한국기자상 심사위원단의 평처럼, 과로 문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다. 그러나 너무 익숙해져 고치기 힘든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고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은 끊임없는 관심과 치료 시도다. 한국 사회에 수많은 ‘김부장’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세상에 외치고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파고드는 보도가 더 필요하다.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저널리즘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기사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주)

편집 :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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