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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굴레에 내몰린 죽음을 분석하다
[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8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2021년 08월 25일 (수) 12:57:53 임예진 기자 beautifulday9577@gmail.com

“탐사보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역작.”

2018년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가 <서울신문>의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에 대해 내놓은 평이다. <서울신문> 탐사기획팀 유영규, 임주형, 이성원, 신융아, 이혜리 기자는 2018년 9월 3일부터 12일까지 8회에 걸쳐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을 연재하여, 그해 한국기자상 기획보도상을 받았다. 이들은 환자를 돌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을 ‘간병살인’으로 규정하고 실태 파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한 대규모 심층분석은 처음이었다. 마땅한 통계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간병살인에 대한 공식 집계를 하고 있지 않다.

   
▲ 2018년 9월 3일 서울신문 지면에 실린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1편. 기사마다 분석한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시각화했다. ⓒ 한국기자협회

가족 간병은 대표적인 ‘그림자 노동’이다.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지만 대가는 없다. 환자가 아프면 가족이 돌보는 것을 당연시할 뿐 그로 인한 스트레스나 곤란함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서울신문> 탐사기획팀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간병살인의 실태에 다가갔다. 판결문 108건, 중앙심리부검센터의 자살사망자 298명의 심리부검 사례,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자살사망자 전수조사 자료 등을 모두 확보했다.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2006년부터 2018년 8월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간병살인 사건을 분석했다. 간병인의 심리와 처지를 알아보기 위해 2개월간 가족 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건조한 문서에서 살아있는 이야기로

취재에 착수한 <서울신문> 탐사기획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판결문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간병살인을 다룬 공식적인 연구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판결문은 사건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문서였다. 취재팀은 2006년부터 2018년 8월까지 10여 년간 발생한 간병살인 관련 판결문 108건을 모두 분석했다. 간병살인 가해자 수는 총 154명, 희생자 수는 213명에 달했다. 취재팀은 범죄 사실을 나열한 무미건조한 판결문 속에서 간병의 굴레에 갇힌 이의 절망을 발견했다.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각각의 가정이 겪었을 기구한 사연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취재팀은 개별 사건의 특수성보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을 찾으려 했다. 비슷한 유형의 사건이 10여 년간 반복된 이유를 알아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간병기간, 범행동기,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성별과 나이, 피해자가 앓던 질환, 몸상태의 심각성 등 기준에 따라 사건을 분류했다. 그러자 ‘독박 간병’, ‘장기간 간병’, ‘노노(老老) 간병’ 등의 공통분모가 추려졌다. 이러한 분석 과정을 통해 개인에게 돌봄을 전가하고 있는 사회를 드러낼 수 있었다.

다만 판결문 분석만으로는 실체적 진실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었다. 취재팀은 판결문에 적힌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상 정보를 바탕으로 당사자들을 찾아 나섰다.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간병살인 가해자와 가족들을 찾아갔다. 많은 이들은 살던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형기를 마치고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가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같은 주소지에 계속 살더라도 인터뷰가 바로 성사되는 건 아니었다. 가해자와 유족들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렸다. 취재팀에게 적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취재팀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수차례 찾아가 기획의도를 충분히 설명했다.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편지를 보내어 거듭 설득했다. 조금씩 마음을 연 사람도 있었지만 끝내 만나지 못한 이도 있었다. 평생 묻어두고 싶은 아픈 이야기를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여러 이유로 직접 만나지 못한 경우 주변 친인척과 지인, 사건 담당 경찰관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짤막한 판결문을 토대로 17명의 삶을 재구성하는데 꼬박 3개월이 걸렸다.

노-노 간병, 고령화 사회의 현주소

비극 중 상당수는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노-노(老-老) 간병’에서 발생했다. 환자를 돌보다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간병 자살’은 주로 부부 간병의 상황에서 발생했다. 부부 평균 연령은 69.1세로 대부분 ‘노노 간병’ 끝에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사에 적힌 노부부의 유서는 그 고단함을 드러냈다.

“너희 엄마가 처음 병이 났을 땐 삶을 마감하는 게 너무 이르다 싶어 몇 달 정도 지켜보다 결국 오늘까지 왔다. 너무 아파하고 나도 아파 같이 죽기로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구나. 미안하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① 老-老 간병의 고통)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디스크 수술을 받아 거동이 어려운 아내(69세)를 돌보던 남편(82세)은 한 달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하반신이 마비됐다. 결국 노부부는 나란히 누운 채 죽음을 맞이했다. 식탁 위에는 부부의 영정사진과 유서가 단정히 놓여 있었다. 간병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 2011년 개봉한 추창민 감독의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스틸컷. 영화에는 치매로 고통받는 아내를 정성껏 간병하던 남편이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을 아내를 걱정해 함께 목숨을 끊는 장면이 나온다. ⓒ Daum 영화

한국은 65세 인구 비율이 14%를 넘긴 2017년부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6년이면 65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만성 질환자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노인 질환 중 하나인 치매의 경우 의심, 망상, 폭언, 폭행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같은 폭력성은 간병인에게 극심한 스트레스가 되어 우발적 살인이나 자살 충동을 부추긴다.

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간병살인에서 주목할 또 다른 측면은 장애인 간병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 돌봄으로 인해 사회와 단절되고 고립감을 느끼기 쉽다. 특히 발달장애의 경우 자녀들이 성인이 되면 행동을 억제하기가 어렵고 시설에 맡기기도 힘들다. 부모들이 매일 상당 시간 동안 돌봄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자녀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에 평생 시달리기도 한다. 기사에는 장애 아들을 41년간 간병하다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고 보니 사는 게 그늘이 많았어. 사는 재미가 없었어.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었지.”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④ 장애인 간병)

자신의 삶을 ‘그늘’로 표현한 그는 평생을 간병의 그늘 아래 살았다. 아들은 5살에 다운증후군으로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없는 살림에도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냈지만 나아지는 게 없다는 선생님의 말에 일말의 희망을 잃어버렸다. 아들을 보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5살 터울인 작은아들은 장애를 둔 형 때문에 파혼을 당했다. 부모가 죽고 없으면 형을 돌볼 수 있는 가족은 동생뿐이지 않냐며 상대편 부모가 반대한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늘 허덕였다. 여러 공장을 전전하다 60세에 환경미화원을 끝으로 은퇴했고, 이후 빌딩 경비 일도 했지만 교대 근무로 큰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오래 하진 못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 그는 뇌출혈 선고를 받았다. 이윽고 큰아들과 함께 죽는 게 모두를 위해 최선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내가 일을 나간 이른 새벽, 아들의 머리를 망치로 내리쳤다. 미리 준비한 수면제 수십 알을 삼키고 복도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으나 가는 도중 정신을 잃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그를 발견했고, 3일간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났다. 법원은 그가 아들을 수십 년간 정성 들여 보살핀 점을 인정해 형의 집행을 유예했다. 그는 세상과 스스로 단절했다. 가족들과도 연을 끊었다. 다만 돈 때문에 아들을 마음껏 못 가르친 게 한으로 남아 소액이지만 매달 발달장애 아동 단체에 기부금을 낸다.

   
▲ 가족 간병은 오랜 시간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지만 노동의 대가는 없다. 있던 직장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은 가족의 삶을 조여 오고 종종 극단적 선택을 부추긴다. ⓒ <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경제적 어려움은 간병인을 사지로 모는 큰 요인 중 하나다. 의료비 부담도 만만찮지만 돌봄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서울신문>이 한국치매협회, 네이버 ‘뇌질환 환우 모임’ 등과 함께 가족 간병인 32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3.9%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아픈 가족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면 경제적 궁핍에 빠지고, 결국 극단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기 쉽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가족 간병을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노동으로 인정하고 보답하고 있다. 일본은 가족을 돌봐야 할 경우 잠시 직장을 쉴 수 있도록 간병휴가와 휴직을 도입했다. 휴직기간 중에는 임금의 40%를 고용보험이 지원한다. 독일은 유급 간병휴가와 함께 간병으로 경제활동을 못 하는 경우 국민연금 보험료를 대신 내준다. 영국은 주당 35시간 이상 간병 시 수당을 지급한다.

한국에서도 돌봄 수당을 시도하고 있으나 장애인 간병은 사각지대에 있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요양 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가족 간병을 하는 경우 하루 1시간씩 월 최대 20일의 노동을 인정해 급여를 지급한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부담을 조금은 덜어준다. 반면 장애인의 신체활동이나 가사 및 이동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는 지원이 불가한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하고는 가족의 돌봄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다.

장애는 질병과 달리 낫지 않는다. 따라서 장애인 간병도 끝이 없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을 통칭하는 발달장애인은 평생 돌봄을 필요로 한다. 경제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 간병인들은 일생을 가난과 간병 스트레스에 허덕이게 된다.

풀리지 않은 뫼비우스의 띠

30여 년간 탐사보도를 해온 <시사IN> 정희상 선임기자는 탐사보도를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춰 제도 변화나 개혁을 이루어내는 데 불쏘시개가 되는 기사”라고 정의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은 가족에게 일임했던 돌봄이 우리 모두의 삶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임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원인 분석, 내러티브, 해결책 제시 등 구성에서도 완결성이 뛰어나다. 그 덕에 ‘제50회 한국기자상’, ‘제36회 관훈언론상’, ‘제21회 국제앰네스티언론상’ 등 언론계의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자 제도권에서도 반응했다. 마지막 회가 보도된 2018년 9월 12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는 합동으로 ‘발달장애인 평생 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발달장애인의 생애주기별 필요 서비스를 분석해 돌봄, 취업 등 개인의 특성을 고려한 지원을 하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책 발표회 및 간담회에 언론사를 대표해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장을 초청했다. 의사 출신인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같은 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을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족 돌봄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박 장관도 연재 기사를 모두 읽었다고 했다. 기사가 개혁의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취재팀은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기획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의지를 끌어내긴 했지만 간병에 허덕이는 이들이 실감하기에 변화는 더디다. 치매 국가책임제나 발달장애 국가책임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간병의 부담은 가족의 몫이다. 2019년 취재팀은 기사를 다듬어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연재에 싣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도 추가했다. 책에서 취재팀은 이 기사를 통해 더는 가족 간병의 어려움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바람과는 달리 기사가 나간 뒤에도 간병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사는 아직 종지부를 찍지 못했다.

   
▲ 2019년 07월 05일 출간된 책에는 보완된 기사 내용과 함께 취재 뒷이야기도 실려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이 실제적으로 간병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개발되는 데 좋은 자극제이자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루아크

“오늘도 누군가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자식이거나 부모여서, 선의로 때론 의무감으로 시작한 전쟁이지만 아군의 지원 따위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납니다. 한국 사회가 우군이 되어주지 않는다면 가족 간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책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들어가는 말’ 가운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건 많은 이들의 관심이다.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다. 간병인도 될 수 있다. 서로가 서로의 우군이 되어줄 때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죽음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은 “이 기획은 미완”이라며 후속 기사를 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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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태형 기자

[임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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