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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만든 독일 언론
[인문교양특강] 피아니스트 허효정
주제 ② 누가 음악을 숭고하게 만들었는가
2021년 03월 24일 (수) 21:38:03 양동훈 김계범 최영길 기자 skytop01@daum.net

허효정 피아니스트는 첫 번째 주제 강연 때 인터넷으로 조사한 학생들의 반응에 답하면서 두 번째 주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클래식이 어렵다’는 학생들의 반응에 “클래식 음악 연주회장의 분위기가 진지하고 심각하기 때문에 청중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며 두 연주 영상을 보여줬다. 하나는 18세기 바로크 시대를 재현한 영화 <파리넬리>의 한 장면이고, 다른 하나는 20세기 음악가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 장면이다.

   
▲ 영화 <파리넬리>(왼쪽) 영상과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의 연주 영상. ⓒ 강의 영상 갈무리

그는 두 영상을 보여준 뒤 즉석에서 수강생들한테 영상의 차이점을 물었다. 학생들은 ‘앞 영상은 연주의 초점이 기교에 맞춰져 있고 열정적인 청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반면 뒤 영상은 철학적인 연주와 차분한 청중들을 볼 수 있다’는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허 피아니스트는 학생들 의견에 동의하며 “두 영상은 연주의 초점과 청중의 청취 태도 등이 모두 바뀐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 수강생들은 두 개의 음악을 듣고 느낀 점을 구글 문서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적었다. ⓒ 김계범

허 피아니스트는 19세기 이후 클래식 음악의 등장과 함께 변화한 음악을 과거의 음악과 비교하며, ‘누가 음악을 숭고하게 만들었는가’라는 두 번째 주제 강연을 이어갔다. 

클래식 음악···‘공산품’에서 ‘예술’로

그는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흔히 ‘오래된 서양음악’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1700년대 말에서 1800년대 초에 정립된 개념”이라며 “그 안에는 ‘진지한 음악’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의 개념이 만들어지기 전,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등이 활동하던 시기까지 음악은 일종의 ‘공산품’이었다. 왕족이나 귀족, 성직자가 자녀 결혼식에 쓸 곡이나 예배에서 연주할 곡을 주문하면 작곡가는 주문에 맞춰 곡을 제작했다. 한번 쓴 곡은 이후 다시 쓰지 않았다. 클래식 음악의 개념이 생겨난 19세기, 베토벤 등이 활동하던 시기에 들어서서야 일회성 공산품이던 음악이 역사에 남는 ‘예술 작품’으로 변모하게 된다.

허 피아니스트는 “19세기 이전까지는 바흐가 라이프치히 교회에서 매주 (곡을) 쓰고 올리고 버린 것처럼 실용 목적으로 음악을 쓰다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음악에 ‘작품’이라는 말을 많이 붙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번 쓰고 버릴 곡이 아니라 역사에 남길 예술 작품이므로 한 곡 한 곡 심혈을 기울여 쓰게 되고, 당연히 남긴 작품의 수도 크게 줄어든다. 그는 “바흐가 오르간 작품만 250곡 쓴 반면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를 32곡만 썼고, 하이든이 교향곡을 100곡 넘게 썼지만 베토벤은 딱 9곡 썼다”고 설명했다.

“바흐와 하이든은 뛰어난 작곡가라 칸타타와 교향곡을 백 개 이상씩 쓰고, 베토벤은 부족한 작곡가라 9개밖에 못 썼을까요? 음악 작품이 지닌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작곡가가 자기 작업에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작품 개수의 변화가 보여주는 겁니다.”

   
▲ 바흐(왼쪽부터), 하이든, 베토벤이 평생 남긴 작품 수 비교. 베토벤이 앞 두 작곡가보다 훨씬 적은 곡을 썼다. ⓒ 허효정

허 피아니스트는 음악의 목적이 변화하면서 작곡가의 정체성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공산품을 만드는 장인’으로 살던 음악가들이 ‘독창적인 천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바흐는 교회음악가로 안정된 환경에서 1년에 50개씩 칸타타를 찍어냈지만, 클래식 음악 등장 이후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는 몇 개월, 심지어 몇 년을 공들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

   
▲ 허효정 피아니스트가 12월 11일 인터넷으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과 연결해 화상 강연을 하고 있다. ⓒ 양동훈

클래식···음악회 형식과 청중 태도 진지해져  

“베토벤이 젊은 시절에도 음악 장르 간에 구분은 있었어요. 베토벤은 선술집 음악도 작곡했는데, 연주회장에서 쓰려고 만든 곡을 선술집에서 연주한다든가 선술집에서 쓰던 곡을 무대 위에 올려서 공공음악회에 쓰지는 않았어요. 서로 다른 용도의 음악으로는 생각했어도, 어떤 게 더 고급이고 어떤 게 더 낮은 거라는 위계 개념은 없었습니다.”

허 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개념 형성에 따라 일어난 변화로 음악에 위계가 생겼다고 말했다. 19세기 클래식 음악이 ‘고급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면서, 선술집이나 카페의 음악과 같이 대중적인 음악은 좀 낮은 것으로 보는 경향이 생겨났다. 

음악의 위계가 생기면서, 연주회장에서 연주를 감상하는 사람들 태도도 바뀌었다. 본래 19세기 이전에는 어떤 종류 음악회라도 시끌벅적하게 떠들거나 식사를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 고급문화로 인식되면서, 클래식 연주회만큼은 청중들이 진지하고 엄숙하게 관람하는 문화가 생겨난다.

“1780년대 라이프치히에 게반트하우스가 처음 생겼을 때는 의자가 무대를 향해 놓여있지 않고 청중들이 서로 마주 보고 대화도 할 수 있게 만들어졌어요. 여기가 라이프치히의 사교계였던 거죠. 그런데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목적이 바뀌면서, 모든 의자가 무대를 바라보는 형태로 바뀝니다. 진지한 음악을 제시하고 그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문화가 생기고 무대 위를 집중하는 식으로 청취 태도가 변한 거죠.”

   
▲ 18세기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왼쪽)와 현재의 모습(오른쪽). 왼쪽은 의자들이 서로를 마주하게 놓여 있는 반면, 오른쪽은 무대를 바라보게 만들어졌다. ⓒ 강의 영상 갈무리

허 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 등장과 함께 음악을 만드는 목적도 달라졌다며 장 필립 라모의 ‘암탉’ 연주 영상과 ‘베토벤 현악 4중주 Op.133’ 연주 영상을 보여줬다. ‘암탉’ 연주를 들어보면 닭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는 점을 소리만으로 알 수 있지만, 베토벤 현악 4중주는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전에는 좋은 음악의 기준이 얼마나 대상을 잘 모방하고 묘사하는가에 있었는데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음악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하면 작곡가 탓이었는데, 이제는 청중이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알아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음악 장르의 목적과 정체성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클래식 음악 등장 이후 음악회의 프로그램 구성도 변했다. 그는 “18세기 초반에서 중후반까지는 음악회 안에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같이 넣어서 지금의 갈라 콘서트 식으로 연출했는데, 19세기에 들어서면 한 연주자가 쭉 연주하는 독주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대중적인 음악만 연주하는 연주회와 진지한 음악을 들으려는 클래식 음악회가 분리된 것이다.

절대 왕정의 쇠락과 부르주아의 성장

허 피아니스트는 17세기까지만 해도 음악계는 왕실이 주도했다고 설명한다.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때는 왕실 전속 음악가이던 장 밥티스트 릴리가 음악계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17세기 후반 들어 왕실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지고 음악에 미치는 권력도 쇠퇴하면서, 그 빈자리를 일반 대중이 채우게 된다. 왕실이 장악하고 있던 음악권력이 일반 대중으로 넘어가면서, 공공음악회와 살롱음악회 등 대중들과 음악이 호흡하는 문화 역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동시에 ‘계급’을 기준으로 음악회장이 분리되던 문화 역시 바뀌어 갔다.

과거에는 귀족이 상위 문화, 부르주아가 그들만 못한 문화를 누리는 것이 당연했다면 이때부터는 ‘취향’을 기준으로 향유하는 음악이 달라진다. 클래식 음악은 당대에도 수준 높은 음악으로 대접받았지만, 귀족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취향에 따라 부르주아들도 진지한 클래식을 듣고 귀족들도 가벼운 대중음악을 듣게 됐다. 허 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공간에는 귀족뿐 아니라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르주아들도 함께 모였다”며 “클래식 음악의 발전은 사회 계층을 나누던 방식도 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클래식 작곡가는 왜 독일어권에서 쏟아졌나

“어릴 때는 작곡가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이 주시는 피아노곡을 치는 식으로 배웠는데, 고등학생 때 이 사람들이 다 독일어권 사람이라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위대한 클래식 음악 작곡가는 왜 프랑스도 아니고 영국도 아니고 다 독일어권에서만 나왔을까요? 4~5년간 연구하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이게 굉장히 이데올로기적인 거였어요. 클래식 음악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곳도 독일입니다.”

허 피아니스트는 바흐, 하이든, 베토벤 등 유명한 클래식 작곡가들이 모두 독일어권 인물인 이유로 독일의 ‘관념론’과 ‘저널리즘’을 꼽았다. 관념론은 관념적인 것을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것보다 우월하게 보는 생각이다. 관념론을 통해 독일인들은 언어와 사유를 통해 명확한 진리에 접근하려는 철학보다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추상적인 예술이 더 높은 차원이라는 생각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 음악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육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나아간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 독일에서 각광받고 발전해 나가는 동안, 이 흐름을 가속화한 것이 저널리즘”이라고 강조했다. 1800년대 초 독일은 공국들의 국가연합 형태로 구성돼 있었을 뿐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중앙집권화해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영국·프랑스에 견주어 스스로가 약하다는 점을 알고 있던 독일 저널리스트들은 발달한 철학과 문화를 통해 자부심을 내보이려 했고, 그 과정에서 선택한 것 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 독일어권 공국들에서 클래식 음악 소식을 전달하던 일반음악신문(Allgemeine Musikalische Zeitung)들. 왼쪽은 라이프치히 일반음악신문 창간호로 바흐의 초상화가 실려 있다. 오른쪽은 베를린에서 발간된 간행물이다. ⓒ 허효정

“바흐는 정말 위대한 작곡가가 맞지만, 그 사람 재능만으로 음악의 아버지가 된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바흐의 진지한 음악을 통해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구심점으로 삼으려 했던 저널리스트들이 영향을 미친 거죠.”

본래 바흐는 자신이 말년에 활동하던 라이프치히 음악계 위주로 알려진 인물이었지만, 저널리스트들의 이런 활동을 통해 독일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바흐의 음악을 소개하는 큰 연주회에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바흐 전집을 내는 등 과정을 거쳐 ‘음악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허 피아니스트는 “영국 문화의 상징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있고 프랑스에서는 팡테옹이 그와 같은 역할을 했지만, 공국 단위로 나눠진 독일에서는 하나의 구심점을 만들기 어려웠다”며 “정신적인 유산을 기념비화할 수 있는 시도 중 하나로 바흐 전집을 구상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악사를 더 알고 싶다면? 

음악사를 더 잘 알고 싶다면 다양한 서적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은 필수다. 그는 “한국에서 음악에 관한 글을 쓰시는 분들 중 음악 전공자가 많지 않아 잘못된 내용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며 “음악학자들이 쓴, 교과서로 쓰일 만한 책들을 찾아보면 정확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음악사에 관한 책으로는 음악세계의 <서양음악사>를 추천했다.

그는 “영어 독해에 무리가 없는 독자라면 외국 서적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스코트 번햄의 <베토벤 히어로>(Beethoven Hero)를 소개했다. 이 책은 프랑스혁명 시기 당대 최고로 추앙받던 작곡가이자 천재 음악가인 베토벤의 뒷이야기와 그가 청중들 사이에 어떻게 알려지게 됐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 허 피아니스트가 추천한 <서양음악사>와 <베토벤 히어로>. ⓒ 음악세계, 프린스턴대 출판국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홍종호 이상수 강유정 이주헌 허효정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오동욱 PD

[양동훈 기자]
단비뉴스 디지털뉴스부, 기획탐사팀, 전략기획팀 양동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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