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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귀족의 하인에서 대중의 천재로
[인문교양특강] 허효정 피아니스트
주제 ① 클래식 음악의 역사성: 살아남은 작품, 살려남긴 작품
2021년 03월 17일 (수) 21:36:19 김현균 이예슬 방재혁 기자 이예진 PD 966mhz@hanmail.net

“’클래식 음악’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허효정 피아니스트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클래식 음악의 역사성’을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기 전 수강생들에게 물었다. 비대면 강연이었지만 수강생들은 “잔잔하고 우아하지만, 지루하고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다”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허 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을 오래 한 내게도 솔직히 어렵고 지루한 느낌이 있다”며 “이렇게 어려운 음악을 누가 왜 들었는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각종 콩쿨 우승자이고 카네기홀에서 2차례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위스컨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자이기도 하다.  

하인 취급받은 음악의 거장들

허 피아니스트는 고전 시대 클래식 음악의 거장 바흐, 하이든, 베토벤의 사진을 화면으로 보여줬다. 허 피아니스트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 봤을 이 음악가들이 활동한 시기에 음악가는 귀족들의 하인 정도 지위였다”며 “도시나 궁정, 교회에 소속돼 금전적 지원을 받고 봉급은 그들의 능력에 걸맞지 않은 초라한 수준이었다”고 설명했다.

   
▲ 고전 시대 클래식 음악의 거장인 바흐(왼쪽), 하이든(가운데), 베토벤(오른쪽) 등은 지위가 명성에 비해 높지 않았다. ⓒ 방재혁

허 피아니스트는 먼저 바흐에 관해 “시 소속 음악가로 활동했고, 말년에 교회 음악가로 일하면서 요즘 관점으로 보면 안정된 고용 위치에 있었지만, 현실은 하인 정도 신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는 가난한 생활을 했다. 허 피아니스트는 “바흐가 음악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도 사후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가 독일 언론을 통해 그를 열심히 알리고 난 다음이었다”고 말했다.

귀족이나 궁정에 소속된 음악가들은 작곡 활동에서도 여러 제약이 있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의 삶도 그랬다. 하이든이 여러 음악적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에스트라하지 가문에 고용된 궁정음악가로 안정된 활동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이든과 후작 사이에 맺은 고용계약서를 보면 하이든에게 불평등한 내용이 많다. 허 피아니스트는 “계약에 따르면 하이든에게는 여행의 자유가 없고, 그의 곡은 모두 궁정 소유였으며 궁정에서 원하는 곡을 작곡해야 했다”고 당시 궁정 음악가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귀족의 실내음악에서 부르주아의 공공음악회로

발라드, 록, 포크, 클래식 등 음악을 장르별로 구분하는 현재와 달리, 18세기에는 연주되는 장소에 따라 음악을 구분했다. 교회 음악, 극장 음악, 챔버(실내) 음악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다. 허 피아니스트는 “곡이 연주되는 공간이 어디냐에 따라 음악적인 편성이나 어법, 분위기에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교회 음악은 예배뿐 아니라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사용된 음악까지 포함한다. 극장 음악은 연극이나 발레를 공연하던 극장에서 반주로 사용된 음악이다. 그는 “18세기의 극장이라고 하면 300명 정도 입장할 수 있는 소규모 극장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100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큰 극장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 오스트리아 마리아 테레사 여제의 개인 살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모차르트. ⓒ 허효정

교회 음악과 극장 음악은 독립된 공간에서 연주된 반면, 챔버 음악은 개인의 챔버, 곧 방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연주됐다. 왕족의 궁이나 귀족의 저택에 있는 방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 연주한 음악이 챔버 음악이고, 이것이 지금 ‘실내악’이라 부르는 장르의 전신이다.

이처럼 18세기 중반까지 귀족 중심으로 교회, 극장, 그리고 개인의 살롱에서 즐기던 음악 문화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이후로 변화한다. 산업혁명으로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층이 나타나면서 공공음악회가 성행하게 된다. 허 피아니스트는 “산업혁명 이후 기존의 왕족이나 귀족의 힘이 약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부르주아 계층이 청중의 다수를 이루게 됐다”고 시대 배경을 설명했다.

   
▲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 1747년 작. 극장에서 음악회를 개최한 호스트가 무대 중앙에 앉아있고, 연주자들은 무대 가장자리와 뒤쪽에 자리한다. ⓒ 허효정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는 1747년 루이 15세의 아들이 결혼할 때 열린 음악회 장면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림에 나오는 청중은 모두 초대장을 받아야 공연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연주자들이 무대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와 뒤편에 있다. 무대 중앙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결혼식 주인공과 부모다. 18세기 중반까지 음악회는 이처럼 귀족이 사적으로 개최해 초대받은 사람들만 참가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층이 떠오르면서 재력을 갖춘 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공연주회가 시작된다. 허 피아니스트는 “18세기 중반에는 사적음악회와 공공음악회가 공존했다”며 “사적콘서트는 초대한 호스트가 음악회의 중심이었다면, 공공음악회는 호스트 없이 연주자가 중심이 되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공공음악회가 성행하면서 음악가의 생활도 달라졌다. 귀족 중심 사적음악회가 중심일 때는 귀족을 통한 사적 후원에 따라 생활하던 음악가들이 공공음악회가 들어오면서 대중들이 사는 연주회 티켓 값으로 생활하게 됐다. 

부르주아 계층에게 음악이란?

18세기 중반에는 왕족과 귀족, 부르주아가 한자리에 모여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상위 계층과 사귀고 싶은 부르주아들은 음악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사교를 위해 음악회에 참석했다. 부르주아에게 음악은 자신의 교양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허 피아니스트는 18세기 영국 중산층 이야기를 다룬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소개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는 남자 주인공 다아시가 여자 주인공 엘리자베스에게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피아노는 어느 정도 배웠을 것”이라며 피아노를 쳐보라고 한다. 다아시는 “여성은 음악, 노래, 그림, 춤 등에 대해 다재다능하다는 말이 어울릴 법한 완벽한 지식을 갖추어야 해”라며 피아노가 여성의 교육 수준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귀족이면 나도 태어날 때부터 귀족인 것과 달리, 부르주아는 아버지가 부르주아였다고 해서 나도 계속 부르주아 계층으로 지낸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래서 부르주아는 혈통이 아니라 매너로서 자신이 부르주아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어요. 어디에 가서 어떤 말투와 제스처를 쓰고, 어느 정도 교양 수준을 지녔는지 등이 부르주아에게는 중요한 자기표현 수단이었죠.”

허 피아니스트는 부르주아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보다 높은 계층인 귀족을 향한 동경과, 자신보다 낮은 계층과의 차별화 욕구로 음악이나 미술 등 교양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살롱음악회, 문학과 음악의 만남

살롱음악회는 부르주아 사회의 공공음악회다. 산업혁명으로 피아노를 대량생산하면서 부유한 귀족만 소유하던 피아노를 중하위 계층도 살 수 있게 됐다. 허 피아니스트는 “부르주아 사회에서 피아노를 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며 “19세기에 이르러 피아노 교육은 부르주아 계층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하농이나 체르니 같은 교습 교재도 이 시기에 출판됐다. 피아노 문화가 확산하면서 부르주아 계층은 공공음악회인 살롱음악회 문화를 형성했다. 귀족만 모이던 챔버음악회와 달리 살롱음악회에는 귀족과 부르주아가 함께 모여 음악을 나눴다.

   
▲ 살롱음악회 그림을 보여주며 살롱 문화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허효정 피아니스트(오른쪽 위 구석). ⓒ 이예진

본래 살롱은 문인이 모여 자기 시나 산문 등을 보여주며 감상과 비평을 주고받는 곳이었다. 음악가는 성당이나 교회에서 따로 모였다. 허 피아니스트는 “18세기를 넘어 살롱 문화 본격화와 함께 문인 모임과 음악가 모임이 교차하면서 시너지가 일어났다”며 “문학 비평에 쓰인 개념이 음악 비평에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 곡을 가져다 가사만 바꿔도 작곡가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러나 문인과 음악인이 함께 하는 살롱 문화가 정착하면서 ‘독창성’이 음악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졌다. 허 피아니스트는 “18세기에 들어서기 전에는 음악을 평가할 때 독창적이라는 게 좋은 평가가 아니었다”며 “문학에서 16, 17세기를 거치며 독창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고, 이것이 좋은 음악을 감별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현재도 독창성은 음악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음악가의 삶을 바꾼 살롱음악회

허 피아니스트는 독창성과 더불어 천재성도 새로운 기준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한다. 당시 문학 작품을 비평할 때 작가의 타고난 능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했는데, 이를 음악에도 적용했다는 것이다. 음악가는 전수된 기술을 갈고 닦아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바뀌는 계기였다. 

“천재성이라는 관념이 음악가에게 적용되면서 19세기에는 예술가의 능력이 열심히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신이 부여한 영감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생각하는 관념이 처음 만들어지게 됩니다.”

음악가의 새로운 정체성은 사회적 지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천재적인 예술가는 경외받아 마땅한 특별한 존재가 됐다. 허 피아니스트는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봉건사회에서는 하인 정도였지만, 부르주아 문화인 대중음악회와 살롱음악회를 통해 천재에 가까운 지위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허효정 피아니스트는 슈베르트가 살롱음악회에서 가곡을 발표하고 음악가와 문인의 의견을 듣는 그림을 보여주며 가곡은 살롱음악회의 주요 장르였다고 설명했다. ⓒ 이예진

살롱음악회는 장르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곡은 살롱 음악회를 통해 발전했다. 허 피아니스트는 “이전에도 가곡이 있었지만 ‘아리랑’과 같이 구전민요의 가사를 가진 곡이었다”며 “문인과 음악가가 살롱 문화를 함께 접하면서 괴테처럼 유명한 시인의 시에 맞춘 가곡이 많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평가하는 기준, 음악가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음악 장르까지 부르주아 사회의 살롱음악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홍종호 이상수 강유정 이주헌 허효정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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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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