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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기 터부’ 툭 터놓고 논쟁하자
[상상사전] ‘복날’
2021년 07월 10일 (토) 17:48:25 김정산 기자 kimsan119@naver.com
   
▲ 김정산 기자

1993년 내가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고 9년 뒤 동생이 서울에서 태어났다. 더 이상 가족이 늘어날 것 같지 않았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2010년 여름 막내 ‘검둥이’가 우리 가족이 됐다. 지리산에 갔다가 길에서 파는 강아지를 보고 동생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오천원에 사왔다. 집에 와서 동물병원에 데려갔더니 심장사상충, 피부병 등 많은 병을 앓고 있는 질병덩어리였다. 병원비가 백만원은 족히 나왔다. 그래서 나는 ‘백만오천원짜리 강아지’라고 소개한다. 검둥이는 가족 사랑을 받으며 지금 11살인데 건강하게 살고 있다.

검둥이가 입양되고 아버지는 개고기를 뚝 끊으셨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동생은 애초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개고기를 먹는 이는 나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야만적이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 어떻게 개고기를 먹냐”고 핀잔을 준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사건기사에 등장하는 피해자를 보고 내 가족이 다친 것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검둥이는 가족이고 개고기는 고기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개고기에 갖는 감정이 터부라고 생각한다.

   
▲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펫샵이다. 개의 운명은 반려동물과 식용으로 극단적으로 나뉜다. ⓒ 김정산

개와 인간의 만남은 3만 년 전부터 시작됐다. 개들은 인간이 버린 음식을 주워 먹으려고 인간 주변에서 배회했고, 그러면서 야생동물로부터 인간을 지켰다. 개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인간은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개가 반려동물이 된 첫걸음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히포크라테스는 개고기의 약효를 언급했으며 16세기 일본에 거주하던 선교사 프로이스는 ‘일본인은 개고기를 약으로 먹는다’고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집을 지키고 음식도 되는 개를 곁에 두어 왔다.

물론 개고기에 거부감을 가지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는 소∙돼지∙닭과 달리 인간의 친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소나 돼지를 반려동물로 기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좀 더 근본으로 들어가보면 비위생이 뿌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분당에 있는 모란시장은 3년 전까지 우리나라 최대 개고기 시장이었다. 모란시장에서 개고기를 취급하고 판매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비위생 유통의 온상을 볼 수 있다. 때묻은 스티로폼 위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얼음, 그리고 그 위에 고기를 대충 올려놓은 모습은 불결해 보인다. 가죽만 벗겨 놓은 개고기에 여름이면 파리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정육점에서 재단되어 먹기 좋게 잘린 돼지고기, 소고기와는 딴판이다. 도축방식과 관리방식도 불결하다. 불법 테두리에서 관리가 되지 않으니 위생을 신경 쓰지 않는다. 때려잡아 살을 연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야만적이다. 대중들로 하여금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개고기 시장이다. 여름에는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지만 겨울이나 가을에는 고기를 밖에 널어 놓기도 한다. ⓒ 김정산

개고기는 먹자-말자 논쟁이 아니라 식용 법제화 논쟁이 필요하다. 영양탕 등의 이름으로 시중에 팔고 있으면서 쉬쉬하며 불법 여부도 따지지 않는 것은 위선이다. 위생과 인식 개선이 우선이다. 개고기를 반대하는 이들 의견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처럼 개고기를 즐기는 이들 의견도 무시돼서는 안 된다. 내일은 초복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이정민 기자

[김정산 기자]
단비뉴스 지역사회부, 시사현안팀 김정산입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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