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자의 시선2] '공공재' ➄ 언론

2019년 겨울, 친구 셋과 함께 전라남도에 있는 절에 갔다. 나는 그해 여름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본격적으로 언론사 입사시험에 뛰어든 차였다. 나에게 주지 스님은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기자라고 했더니, 스님은 다짜고짜 ‘똑바로 하라’고 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말에 뼈가 있었다. 무엇을 똑바로 하라는 건지 굳이 묻지 않았다. 씁쓸했지만 대꾸할 말이 없었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왔던 주변의 익숙한 반응 중 하나였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시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언론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신뢰도 꼴찌였다. 기자와 쓰레기 합성어인 ‘기레기’를 넘어, 구더기가 합쳐진 ‘기더기’로 전락했다. 쓰레기에서 멀쩡한 곡식도 썩게 만드는 존재로까지 ‘진화’한 것이다. 

▲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공동조사한 언론 신뢰도 조사 결과로 주황색 막대가 우리나라를 나타낸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2017년부터 2020년까지의 자료이며,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을 나타냈다. 2020년 자료 기준, 한국은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한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21%로 40개국 평균인 38%보다 낮았고, 판단을 보류한 응답자는 평균인 32%보다 높은 45%였다. ⓒ 디지털 뉴스 리포트

언론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이유

뉴스는 공공재의 속성을 가진다. 공공재의 두 가지 특성은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다. 비배제성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제공된다는 뜻이고, 비경합성은 제3자가 그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소비하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두 속성 때문에 무임승차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개인의 이기가 공동체에 비합리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공공재를 관리하고, 제공한다. 국방, 경찰. 소방, 도로, 공원 등이 대표적 공공재다. 언론은 공적 재화의 지원을 받고 공공의 이익을 지향해야 하지만, 국가의 감시나 감독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공공재와 함께 취급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장에만 맡겨둬서는 권력 감시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보 제공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언론의 공공성이 강조된다. 

언론의 공공재적 속성을 중시하고, 공적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에 시민이 알게 모르게 언론에 공적 자금이 투입된다. 대표적인 게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다. 수신료는 준조세의 성격을 지니며, 시민들은 전기요금과 함께 매달 2500원씩을 <KBS>에 납부해야 한다. 수신료 징수는 방송법 제 64조에 근거한다. 방송법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을 도모하고 방송의 발전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이란 규정으로, 공영방송의 역할과 사명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영국의 <BBC>나 일본의 <NHK>, 독일의 <ARD>나 프랑스의 <FT>처럼 전 세계 여러 나라도 같은 이유로 수신료로 공영방송체제를 유지한다. 수신료는 국민이 돈을 줄 테니, 자본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하라는 시민의 명령인 것이다.

▲ 세계 최초의 공영방송인 영국의 BBC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은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을 위해 수신료 제도로 공영방송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 KBS

수신료를 통한 직접 지원 말고 간접 지원도 있다. 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설치 등을 규정해두고 있으며, 이 법을 근거로 언론진흥재단에서는 언론 역량 강화 사업, 미디어 교육 사업, 언론지원 사업 등 사업비 명목으로 올해 745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난해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언론을 지원하기 위한 지원금액도 100억 원이나 됐다. 모두 언론의 공공성을 기대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도이자 지원이다. 시민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언론이란 공공재 유지에 세금을 지원하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한 것이다.

부끄러운 언론의 민낯

언론의 공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금이 가고 있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이다. 최근에 드러난 ABC협회의 유료부수 조작 사건이 상징적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1월 부수 조작 관련 ABC협회 내부 공익제보자의 진정서 접수를 계기로 ABC협회에서 집계하는 유료부수 문제를 조사했다. 지난 3월 사무 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실제 유료부수와 ABC협회가 발표한 유료부수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신문지국의 평균 성실률을 55.37% 수준이라고 발표했는데, 신문사가 100부를 유료부수라고 보고했다면 실제로는 55부만이 유료부수라는 뜻이다. 유료부수가 2배 정도 부풀려진 것이다. 문체부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ABC협회에 6월 말까지 제도 개선 조치를 권고했다. 하지만 ABC협회는 권고사항 17건 중 10건을 불이행했고, 5건은 이행 부진이었으며 단 2건만 이행했다. 지난 8일, 정부는 ABC협회의 부수 자료를 정책적으로 활용하지 않겠으며 ABC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 잔액 45억 원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유료부수는 언론사의 광고 수입과 직접 관련이 있다. 특히 정부에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광고 단가를 결정한다. 지난 한 해만 2452억원의 정부 광고비가 ABC협회의 공시 결과에 따라 사용됐다. 유료부수 60만 부 이상이 기준으로, 가장 많은 광고비를 받는 A군에는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세 언론사가 포함된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2017년 5월에서 20년 8월까지 정부 광고 상위 20위 신문사에 집행된 금액이 3484억5200만 원인데, 상위 그룹인 동아 305억, 조선 265억, 중앙 173억이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금을 언론사가 부당이익으로 챙겨간 것이다. 

ABC협회는 2019년 <조선일보>의 유가율이 95.94%라고 했다. 100부 중 96부가 돈을 내고 보는 신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문체부 조사에서 <조선일보>의 유가율은 평균 67.24%로 조사됐다. <동아일보>도 같은 기간 ABC협회가 발표한 유가율은 79.19%였지만, 문체부 조사 결과 56.05%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지난 6월 11일 ABC협회가 발표한 2021년(2020년분) 유료부수 인증 결과를 보도하며 “5년 연속 2위”라고 자축했다. <조선일보>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ABC협회’를 검색했더니 논란이 시작된 이후 총 4건의 기사가 나왔다. 4건의 기사 중 관련 논란에 대해 <조선일보>의 입장을 밝힌 것은 없었다. 주요 언론사 중 유일하게 유료부수 부풀리기에 관해 지면을 통해 공식 사과한 <한겨레>와 비교되는 조처였다. 

▲ <조선일보>는 ABC협회 자료를 근거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료 부수 100만 부가 넘는 신문이라고 홍보를 하고 있다. ⓒ 조선미디어 홈페이지 캡처

ABC협회의 부수 조작 사건은 언론의 부도덕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언론의 가장 큰 불신은 언론의 기본인 보도에서 나온다. 최근 10년간 언론 신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은 세월호 보도였다. 전원 구조 오보를 시작으로 사망자 보험료를 계산하는 <MBC> 보도, 병원에 있던 학생에게 친구의 사망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묻던 <JTBC> 인터뷰는 당시 언론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발표하는 언론수용자조사에서 언론인에 대한 신뢰도는 세월호 사건이 있던 2014년 최하점을 기록했다. 언론 불신은 한두 사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악의적 왜곡 보도와 허위보도, 근거와 실체가 없는 가짜뉴스, 제목이나 내용을 바꿔가며 퍼나르는 어뷰징 기사, 사실과 가치판단이 분리되지 않고 의견을 사실처럼 왜곡하거나 진영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행위는 이제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사익으로 기사를 작성하는 사이비 언론의 문제도 심각하다. 개인의 일탈이나 실수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행태가 반복된다. 지난해 8월 <뉴스타파>는 취재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기사를 쓰는 팸투어와 프레스 투어 관련 문제점을 보도했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으로부터 숙박, 식사 등을 지원받고 홍보성 기사를 쓰는 행태를 지적하는 기사였다. 여행기자 단체 회장은 여행 기사라서 문제 될 게 없다는 의견을 표명했지만, 영국 <BBC>와 미국 <뉴욕타임스>의 취재윤리 규정은 팸투어 같은 지원을 받은 사실을 숨기고 쓰는 기사는 정상적이 아니라 적시한다. 

▲ <뉴스타파>는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가는 공직자를 문제 삼아온 언론’이 출입처와 취재원으로부터 숙박, 식사 등을 지원받아 사실상 ‘공짜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행태를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 ⓒ <뉴스타파>

중앙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9년에는 전라북도 남원지역에서 아파트 홍보를 대가로 20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기자 12명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에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한 일간지 소속 기자가 시민과 공무원을 상대로 협박과 폭언, 폭행을 일삼는다는 내용의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후 해당 기자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왜 지금 다시 언론인가? 

언론과 언론인을 한꺼번에 기레기로 매도할 수는 없다. <JTBC> 태블릿 보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됐고, <한겨레>는 방송통신진흥회 공모전 수상작이었던 대학생 추적단 불꽃의 ‘N번방’ 관련 보도를 주요 언론사 중 가장 처음으로, 심도 있게 다루며 조주빈을 비롯한 텔레그램 성범죄 가해자들을 붙잡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재난주관방송사인 <KBS>는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정보 제공의 중심축이 됐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지금의 언론으로는 개혁과제를 달성할 수 없다며,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언론 불신의 상징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오죽했으면 국민 10명 중 8명이, 표현의 자유라는 원칙을 넘어서 언론과 언론인을 처벌하는 제도에 찬성하고 나섰을까. 

코로나로 직업, 소득, 지역, 세대, 학력과 학벌, 고용에서 불평등의 양극화가 깊어지고 있다. 공정이 시대적 화두로 등장했지만, 능력주의에 기초한 공정 담론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한다. 언론의 공론장이 지금처럼 절실한 때가 없다. 바닥으로 내려가 현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전하고, 코로나 이후의 사회 재설계의 담론을 제기해야 한다. 언론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언론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 <KBS>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상인이 있지만, 수입 고가품 매장에서는 오히려 판매가 늘기도 하는 현상을 보도했다. 소득수준이나 지역에 따른 학력 격차,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 격차 등 코로나19를 겪으며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세상을 제대로 기록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언론의 공공성이 다시 중요해졌다. ⓒ KBS

요즘은 인간관계를 ‘손절’한다고 표현한다. 손절은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파는 일을 뜻하는 경제 용어이지만 용어 사용의 범위가 넓어졌다. 사람들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가 관계를 끊는다. 지금처럼 언론이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신뢰를 얻지 못하면, 언론은 마침내 시민에게 ‘손절’ 당할 것이다. 다시 원론을 뒤적인다. 언론은 입법·행정·사법부와 함께 민주주의의 핵심축을 이뤄 ‘제4부’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를 택할 바에는 정부 없는 언론을 택하겠다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포털의 영향력 확대, 뉴미디어의 보편화 등으로 언론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언론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시민의 신뢰 회복이다. 지금 언론은 공공재로서 책무를 다해야 한다. 건강한 언론 없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청년기자의 시선1]이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관한 다양한 시선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시선2]는 현상들의 관계에 주목해 현상의 본질을 더 천착하고, 충돌하는 현상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비전을 모색한다. 이번 주제는 ‘공공재’다. 코로나 팬데믹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사회를 지탱하는 ‘공공재’의 ‘공익성’에 새로운 시선을 집중하게 했다. 역설적으로 코로나가 사회 재개편과 국가 재설계의 기회라는 지금, 주요 공공영역인 노동‧정치‧돌봄‧신뢰‧언론의 현장이 왜, 어떻게 공공재가 되어야 하는지 주목한다. (편집자)

편집 :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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