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김지윤 기자

작년 겨울, 산업혁명의 격동기를 남대문시장에서 마주했다. 아버지의 일터였다. 30년 넘게 악세사리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때보다 당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금껏 아버지가 일감을 얻는 방식은 이러했다. 남대문 악세사리 상가에 입점해 있는 가게들에 물건을 납품한다. 오며 가며 마주한 가게 사장들과 안면을 튼다. 친분이 쌓여 믹스커피를 얻어먹을 쯤이 되면 건너건너 새로운 거래처를 받는다. 한국의 ‘악세사리 밸리’라 불리는 남대문시장에서, 사람 좋은 아버지는 꽤나 많은 거래처를 가졌다. 지리산 산골 마을에서 자라 외국어 하나 할 줄 모르는 아버지가 중국 바이어와 거래할 수 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코로나로 남대문을 방문하는 거래인들의 발길이 끊기자 이 방식이 불가능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감을 얻던 아버지에게 비대면 시대는 수입의 종말을 의미했다. 보다 못한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면서 가게를 내기로 결심했다. 부자재를 사는 곳이 없으니 직접 만들어서 팔기라도 할 심산이었다. 유명 가게를 벤치마킹하러 동대문을 방문했다. 요즘 청년들이 말하는 ‘인스타그램 감성’ 가게였다. 조명부터 내부 인테리어는 물론, 감각적인 악세사리 상품은 젊은 소비자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SNS를 통해 상품을 홍보했고 곧 홈페이지를 만들어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게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인지 코로나 상황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그런데도 예순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는 그 앞에서 점차 미소를 잃어갔다.

▲ 대면 만남에서 일거리를 얻었던 전통시장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 큰 타격을 받았다. ⓒ KBS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4차산업혁명 시대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 공언한다. 변화하는 산업의 흐름을 설명하며 혁신경제를 만들어낼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자라 사람을 만나며 일을 얻던 아버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버지에게 비대면 시대는 갑자기 ‘인스타 감성’ 상품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세상이었고, 온라인으로 거래를 하라는 세상이었다. 대니얼 서스킨트는 저서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에서 이를 ‘마찰적 기술 실업’이라 부른다. 기술이 노동시장의 파이를 더 키웠지만 정작 기존 일자리에서 밀려난 이들은 그 파이를 먹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힘들고, 그 일자리가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1950년 미국 제조업이 몰락했을 때도 그랬다.

누군가는 코로나 이후 경제를 ‘브이노믹스’라 부른다. ‘바이러스(Virus)’의 V와 ‘경제학’(Economics)을 결합한 단어다. 서점에는 ‘언택트 시대 살아남는 법’이니 ‘코로나 사피엔스’니 각 분야 전문가의 통찰이 담긴 책들이 즐비하다. 산업혁명 격변기에서 지금껏 다른 방식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 이들의 당혹스러움은 그 안에 없다.


편집 : 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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