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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신화를 걷어 내자
[상상사전] ‘정상가족’
2021년 07월 07일 (수) 21:57:41 이정민 기자 dnehd0716@naver.com
   
▲ 이정민 기자

지난해, 텔레비전에서 한 자동차 광고를 봤다. 광고 주제는 ‘나의 가족에게’. 이승환의 ‘가족’이 배경음악으로 깔려 감성을 건드린다. 이 광고에 나오는 ‘가족’은 불편하지 않다.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성애 부부와 어린 아들, 딸이 평화롭게 숲길로 드라이브를 간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4인용 식탁에서 ‘집밥’을 먹으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광고는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당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준다고 했던가? 마치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건 이런 ‘정상가족’ 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광고를 본 지 1년이 지났다. 1년 사이 우리 사회에는 ‘가족’을 대하는 데 변화가 있었다. 지난 27일,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의 핵심은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에 법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정부는 민법 제779조가 규정한 가족의 범위를 삭제해 가족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려 한다. 법이 정해 놓은 가족은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또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였다. 법안 개정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우리는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예컨대 탈시설 장애인의 돌봄과 생활이 이뤄지는 공동체 구성원끼리도 서로 긴급한 수술이 있을 때 수술 동의 사인이 가능해진다. 의료권리와 더불어 주거자격 등 다양한 권리가 많은 사람에게 보장되는 것이다.

   
▲ 4월 27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의 일부분이다. 동거부부와 사실혼부부 등 다양한 범위를 포함해 가족의 의미를 확대했다. © KBS

프랑스는 시민연대협약(PACS) 제도를 통해 동거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부에 준하는 사회적 보장을 제공한다. 영국의 ‘시민 동반자’(Civil Partnership) 제도도 비슷하다. 부부가 아닌 파트너들도 상속, 세제, 연금, 양육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원과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무엇이 가족이냐는 논의에서 벗어나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개념에 제도로 접근한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다. 2014년에 진선미 의원이 파트너십과 시민연대협약을 모델로 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지만, 당시에는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했다.

한국의 ‘가족’은 다른 나라의 가족과 약간 다르다. 절대빈곤으로부터 해방을 공약으로 내건 박정희 정권의 제3공화국은 '선 성장, 후 분배'의 논리 아래 시민을 위한 사회보장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1963년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으나 실효성이 없어 폐지됐다. 유일한 안전망인 가족 울타리 안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양육, 치료, 빈곤, 노령 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다. 그러는 사이 가족은 ‘나를 지켜주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강해졌고, 그런 ‘정상가족’에 포함되어야 개인의 삶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확산됐다. 

   
▲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한부모가정 등이 '정상가족'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듯 묘사돼 한부모 가정의 아이나 조손가정 아이에게 소외감을 줄 수 있다. © KBS

2021년의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사회보장기본법’은 국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가족’이라는 자급자족 사회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2010년 OECD는 한국의 최우선 과제로 ‘소득 불평등 개선’을 꼽으며 한국의 세제와 복지제도를 통한 재분배 제도가 작고 비효율적이라는 ‘팩트’를 날렸다. 2019년 기준 국가별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율을 보면, OECD 회원국 중 한국은 12.2%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한국보다 낮은 국가는 터키, 칠레, 멕시코뿐이다. 

국민의 실질적인 주머니 사정을 보여주는 1인당 개인총처분가능소득(PGDI)은 2015년 기준 OECD 하위권을 차지한다. GDP가 늘어나도 개인의 지갑은 두툼해지지 않는다.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는 경제∙복지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양극화는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다. 이런 사회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기기란 쉽지 않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은 우리 사회가 가족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려는 훌륭한 첫발이지만, 전통적인 ‘정상가족’을 벗어나 다양한 가족이 가능해지려면 복지 혜택의 수치화인 사회임금을 늘리고 부의 양극화 해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텔레비전을 켰다. 또다시 자동차 광고가 나왔다. 테마는 ’캠핑가족‘. 이 가족이 작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작년에 둘이었던 아이가 하나로 줄었다. 이 광고 역시 우리 사회를 잘 반영한 듯하다. 불평등지수가 조금은 개선되는 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화면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정승현 기자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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