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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하 너머의 삶
[마음을 흔든 책]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1년 06월 30일 (수) 09:46:34 김세훈 기자 domenico7@naver.com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한국기자협회 엮음/포데로사/1만1700원

소설가 김훈은 기자였다. 30년 가까이 현장을 글로 옮기는 일에 몸담았다. 그는 현실을 기사에 담아내는 데 거듭 실패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전두환 신군부까지 어두운 세월을 지나며, 감방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문장에 쓰지 못하고 동물원을 돌면서 기사를 냈다. 슬프고 더러워 회사를 나왔다. 그는 언론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육하(六何) 너머에 인간의 진실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김훈은 현장을 떠나 소설을 쓴 이유를 밝혔다. <한겨레>로 돌아와 사건기자로 경찰서를 출입할 때 김훈은 “현장에 밀착한 기쁨”을 느낀다고 말했다. 두 말을 묶으면 기자란 육하원칙으로 현장을 사유하는 이들이다.

육하원칙을 처음 정립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처음에는 ‘칠하(七何)원칙’이었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무슨 수로, 어떤 모양새로, 왜 했는지 일곱 물음으로 인간 행위를 구분할 수 있다고 봤다. 일곱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게 가능하면 그것은 의도를 가진 행동이며, 답하지 못하면 이는 의도하지 않은 행위다. ‘무슨 수로’ ‘어떻게’ 두 질문이 하나가 되며 육하원칙으로 굳어졌다. 세월이 흘러 의미는 달라졌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간 행위의 의도를 캐물을 수 있다. 따라서 육하원칙에 입각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기자는 왜 현장에 가는가. 무엇으로 사는가.

   
▲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표지. ⓒ 한국기자협회

왜 기자가 되셨나요?

한국기자협회는 기자 사회를 들여다본다는 기획으로 기사 14편을 엮어 2016년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펴냈다. 현직 기자를 취재해 기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을 다뤘다.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육하원칙으로 돌아가서 기자들에게 왜 기자 생활을 하는지 묻는다. 손석희 당시 JTBC 보도담당 사장의 추천사를 빌리면, 그 고생을 하면서 무엇 때문에 ‘쓰고 전하는 일’을 하는지 묻는다. 노동 여건이 열악하면 다른 일을 찾아도 될 텐데 왜 세상을 육하에 담아내려 부단히 노력하는지, 이 책에 실린 14편의 기사들은 되레 기자들의 삶을 육하로 붙잡으려 든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19년 발표한 <언론인 조사>를 보면 기자가 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부분 기자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라고 응답했다. 이는 왜 기자를 하느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에는 사회운동과 정치 등 다른 길이 있다. 왜 하필 기자냐는 질문은 풀리지 않은 채 남는다.

‘기자’라는 호칭은 특이하다. 기자라는 말에 정확히 대응하는 영어 단어는 없다. 현장을 취재하여 기사로 옮기는 직군이라는 뜻에서 그나마 리포터(reporter)와 닮았는데, 용례를 들여다보면 그마저 다르다. 한국 언론사에서 기자는 취재기자, 편집기자, 사진기자, 촬영기자, 교열기자, 조사기자, 논설위원 등으로 나뉜다. 실제 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발행하는 <한국 언론 통계 데이터북>에서는 기자를 이렇게 구분한다. 현장을 뛰어다니는 리포터와 기자가 같은 뜻이라 하면 ‘편집기자’ ‘교열기자’ ‘조사기자’ 같은 조어는 성립할 수 없다. 세 직군은 현장을 취재하지 않는다. 기자라는 말이 아우르는 범주는 더 넓다.

한국에서 기자라는 말이 처음 쓰인 시기는 1898년이다. 당시 <제국신문>은 일본인이 조선 사람에게 행패를 부렸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본인들이 모여 만든 <한성신보>는 이를 두고 작은 일을 부풀려 보도했다며 글을 쓴 ‘기자 이승만’을 집어 비난했다. <제국신문>은 곧 ‘기자 이승만’이라 지적당한 것이 나라를 위한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논설을 냈다. 당시 기자 직함은 요즘으로 치면 글쓴이를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뜻이 확대되어 기자는 언론이라는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회사원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

기자로 산다는 것

기자는 무엇으로 사느냐고 물을 때, 더 정확한 말로 물음을 바꾸면, 한국에서 기자라는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슨 의미냐는 질문이 된다. 책은 3부에 걸쳐 기자 사회를 이루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일하는지, 무엇을 전하려는지, 어느 시기에 무엇을 고민하는지 기자들을 취재한다. 사변을 늘어놓지 않는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기자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구체 방식을 그저 보여준다.

누가 기자인가. 겨울철 입김을 뿜으며 새벽까지 경찰서를 돌아 기삿거리 찾는 수습부터,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기자 생활을 그만둘지 고민하는 주니어, 선후배 사이에 끼어 회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허리 연차, 저널리즘과 수익을 함께 챙겨야 하는 데스크까지, 이들이 언론사에 다니는 회사원들이다.

기자가 일하는 언론사란 어떤 곳인가. 기자는 소송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재판의 승패와 관계없이 보도 자체를 막으려는 봉쇄 소송에 언제든 걸려들 수 있다. 소송 이후 기자들은 스스로 기사를 검열해서 내보낸다. 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제14회 언론인 조사에서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언론 관련 법과 제도라고 답한 비율은 25.2%였다.

기자는 어떻게 일하는가. 그들은 자주 병마와 겨룬다. 오래 일하고 적게 자는 까닭이다. 노동 피로에서 회복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들은 하려는 말을 종종 삼킨다. 신문방송업이 침체하며 저널리즘보다 영업 매출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회사가 없으면 언론의 가치도 구현할 수 없다.

육하에 담지 못하는 물음이 남는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책은 왜 기자를 하느냐는 질문에서 출발해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탐구하는 것으로 맺는다. 기자라는 직군을 뭉뚱그려 ‘저널리즘 정신’을 모호하게 정의 내리지 않고, 현직 기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이 하는 일을 보려 했다. 답할 수 없는 것을 감히 말하려 하지 않는다. 기자가 물음에 답하는 방식을 직접 보여주어 저널리즘 정신에 가닿으려 했다는 점에 이 책의 아름다움이 있다. 김훈의 말마따나 그것은 육하 너머에 있는 진실이다.

100자평 
언론사 안팎에서 본, 기자의 사회학. 한국 기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강력 추천. 고된 노동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기자 정신'이라는 다소 지사적 결론은 아쉽다.

편집 : 심미영 PD

[김세훈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편집기획팀 김세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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