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대] ⑤ 청소년기후행동 시위와 녹색당 단식 현장

27일 오전 11시 30분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검은색 우비를 입은 남녀 청소년 5명이 서울 을지로7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 광장에 섰다.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활동가인 이들은 취재진 30여 명이 빙 둘러선 가운데 ‘청소년들이 DDP 앞에 썩은 당근 217kg을 쏟아부은 이유는?’이란 주제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들의 뒤편엔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국무총리, 한정애 환경부 장관 등의 사진이 들어간 종이 조형물과 ‘기후위기는 최악인데 왜 입만 움직여?’ 등이 적힌 팻말이 놓여있었다. 윤현정(17) 활동가가 말문을 열었다. 

“이번 30일과 31일 진행될 ‘P4G 정상회의’로 기후리더를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이번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기획했습니다. 현재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기만행위이며, 지금 당장 정부는 신규 석탄발전소 중단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상향 계획을 발표해야 합니다.”

한국 ‘P4G 정상회의’ 개최 자격 있나 

▲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들이 ‘P4G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정부 기후대응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 고성욱

‘P4G’는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라는 국제협의체다. 이번 회의는 DDP에서 화상으로 열리며 45개 국가, 21개 국제기구에서 정상급 인사 68명이 참여한다. 윤 활동가가 말한 우리나라의 기존 NDC는 오는 2030년까지 2017년 탄소배출량의 24.4%를 줄이겠다는 내용으로, 국제사회에서 매우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유진(19) 활동가는 이어진 발언에서 “과연 우리나라가 P4G 같은 국제 파트너십을 개최할 자격이 있나”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사업을 강행하면서 앞으로 (석탄발전) 신규투자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굉장한 결심인 양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0대 활동가들을 지원하러 나온 정주원(27) 활동가는 “한국의 ‘녹색성장’이나 ‘기후리더십’은 그저 만들어진 표현일 뿐”이라며 “한국이 석탄화력발전을 하면서 다른 나라 온실가스 줄이는 것을 돕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꼰대’다”라고 꼬집었다.

당근 217킬로 쏟으며 ‘탄소배출 2억1700만 톤 이하로

기자회견 후 이들은 정부의 기후행동을 촉구하며 문 대통령 등의 사진이 들어간 조형물에 주황색 물감을 뿌렸다. 이어 손수레에 담긴 217킬로그램(kg)의 썩은 당근을 쏟으며 시위를 마무리했다. 당근은 청소년들이 ‘위험한 상황에 있으면 조용히 당근을 흔들어 달라’며 인터넷에서 유행어로 쓰는 말인데, 활동가들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지적하기 위해 썩은 당근을 싣고 왔다고 설명했다. 217kg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억1700만 톤(t) 이하로 배출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 윤현정 활동가가 ‘말만 앞세우고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하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강훈

이번 시위를 공동 기획한 윤현정 활동가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10월 초에 정부가 온실가스 목표를 다시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새 목표가 청소년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는 수준인 ‘2030년도까지 (2017년의) 70% 감축’으로 상향할 때까지 계속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행동으로는 바뀌는 것이 많지 않다”며 “가장 효과적인 것은 함께 행동하는 것이니, 당사자인 청소년이 연대해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녹색당 이은호 기후정의위원장은 11일째 단식

청소년 활동가들이 당근 퍼포먼스를 한 곳에서 100미터(m) 정도 떨어진 ‘너와 나의 서울’ 조형물 앞에는 성인 2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녹색 천막이 있었다. ‘당신을 죽이지 않는 석탄은 없다, 신규 석탄발전소 아웃(OUT)’ ‘신규석탄발전 공항건설 중단하라’ 등의 구호가 내걸린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이날로 11일째 단식 중인 이은호(32) 녹색당 기후정의위원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 녹색당 이은호 기후정의위원장이 단식 시위를 하고 있는 DDP앞 천막농성장. 왼쪽부터 이헌석 정의당 기후에너지정의특별위원장, 여영국 정의당 대표, 이은호 위원장이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강훈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논평 기자회견 아니면 집회, 집회도 이제 코로나 때문에 몇 명 이상 안 돼.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절박한 마음에 단식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11일간 물, 소금, 효소 외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아직 몸 상태는 괜찮다고 말한 이 위원장은 “우리가 지금처럼 탄소배출을 계속한다면 지구가 스스로 기온을 회복할 수 있는 기능을 잃어버리는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까지 6년 7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온도상승을 막기 위해 1년, 2년이 중요한 상황인데 아직까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소를 국내(7기)와 해외(3기)에 추가로 짓고 있는 것과 석탄발전소 56기를 가동하고 있는 우리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전력과 삼성물산이 베트남에 짓고 있는 붕앙2 석탄화력발전소가 본격 가동될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이 연간 660만t인데, 한국 정부가 2025년까지 그린뉴딜을 통해 감축하려고 하는 온실가스 총량이 1229만t이라고 지적했다. 5년간 줄이는 온실가스양이 붕앙2가 2년 동안 가동되면 모두 상쇄된다는 얘기다. 이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금 당장 국내외에 건설 중인 신규석탄발전소 10기 공사를 중단하고, 가동 중인 56기의 석탄발전소 폐쇄 계획을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새로 짓는 석탄발전소도 경제성을 빠르게 잃게 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석탄발전업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자고 말했다.

기후위기, 개인적 실천 넘어 ‘국난급 대응’ 필요

“지금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고, 어디 섬나라의 문제가 아니고, 당장 국민들이 죽고 동물들이 죽고, 나아가서는 경제·복지·의료·안보·일자리 문제 다 연결이 돼 있는 건데... 국난급이란 말이에요. 이게 진짜 국난이 되기 전에 미리 함께 힘 모아서 이걸 극복하자고 해야지. 그냥 일상의 자잘한 불편, 뭐 우리의 지구니까 전기를 잠깐 꺼요, 뭐 텀블러를 써요, 이러면 우리 함께 지구를 살리고 기후위기 막을 수 있어요... 이건 거짓말이라는 거죠.”

그는 지난 27일 청와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문재인, 박진희, 타일러! 지구를 위한 특별한 토크>영상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의 실천을 강조한 것에 관해 “지금은 그런 메시지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진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고, 힘을 모아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 위원장은 “한국의 기후위기 정책은 포장지 좋게 예쁘게, 하는 척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작은 실천을 해봤자 정부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유튜브 영상에서 배우 박진희, 방송인 타일러 라쉬 씨와 대담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가 노력해야 하고 국제간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들이 생활 속에서 하는 작은 실천”이라고 말했다. ⓒ 청와대

그는 지난 24일 열린 P4G 지방정부 특별세션에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에 관해 “선언에 따른 후속 조처가 반드시 뒤따라야 선언의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무원들이 기후위기에 관해 의무 교육을 받아야한다”며 “(이를 토대로) 사회적 안전망을 잘 갖춤과 동시에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막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이번 P4G 정상회의에서 한국정부가 ‘석탄발전소 문을 닫겠다’ ‘NDC (탄소감축 목표를) 50%까지 상향조정하겠다’ 등의 선언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계속 요구했던 내용이지만, 이번에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며 “(정부가)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 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이행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단식을 6월 1일까지 할 예정이지만 이후에도 계속 정부를 감시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개인의 실천이나 대기업의 기술개발에만 의존하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탄소감축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시민들도 기후위기를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고, 정부가 제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편집 : 정승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