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 ‘행복’

▲ 이예진 PD

대학원 친구들, 그리고 교수님과 함께 등산하던 추억이 코로나 상황에서 아련하게 떠오른다. 목적지는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 시절 ‘옥으로 빚은 죽순 같다’ 하여 이름 붙인 옥순봉. 일반 등산로 같은 구간을 지나면 바윗길이 나온다. 침을 꼴깍 삼키며 두 손으로 바위를 짚는다. 바짝 엎드려 네발로 기어오르면 정상에 이른다. 제천 청풍호반의 옥빛 강을 따라 양쪽으로 아름다운 바위산들이 줄지어 서 있다. 탁 트인 절경에 넋을 놓고 바람까지 맞으니 신선이 된 듯하다.

▲ 옥순봉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 이예진

옥순봉은 몇 개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도달한다. 올라온 길이 하산할 때 내리막길이 되는 섭리가 새삼 좋았다. 문제는 등산 때 반가웠던 내리막길이 오르막길이 된다는 점이었다. 바닥난 체력으로 오르막길을 마주하니 한숨부터 나왔다. 헐떡거리며 걷다가 사람 손목 굵기 나무줄기들을 잡으며 간신히 올라갔다. 스치듯 잡았는데도 체중이 분산돼 한결 걷기 편했다.

옥순봉을 추억하면 정상의 풍경보다 나무를 붙잡으며 걸었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부치는 힘을 덜어주는 존재를 발견한 기쁨이 컸기 때문이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황에서는 경치보다 육체의 고단함을 덜어주는 것들이 훨씬 반갑다. 물, 앉을 곳, 기댈 곳이 고단함을 나눠서 지며 행복을 선사한다. 

우리 일상도 삶의 무게를 나눠서 질 때 행복이 온다. 1월 초 백화점 주차요원 복장에 관한 글이 화제였다. 한파에 얇은 코트를 입고 근무하는 주차요원이 안타까웠던 시민은 여러 백화점에 주차요원이 따뜻하게 입고 근무할 수 있게 하라는 민원을 넣었다. 그중 한 백화점은 주차요원이 롱패딩을 입도록 시정했다.

목표에 도달한 행복도 좋지만 힘듦을 나눠서 지는 행복이 오래 남는다. 목표에 이르기까지 고생만 하는 무한경쟁이 빚어낸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은 ‘양극화’다. 능력주의 경쟁에서 이긴 자는 도도해지면서 공감능력을 잃고, 경쟁에 진 자는 슬픔과 열등감에 휩싸인다.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인디언 속담이 떠오른다.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김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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