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희망'

▲ 이성현 PD

"내가 미친 건지, 세상이 미친 건지 모르겠어."

영화 <매드맥스>의 주인공 맥스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한 시대를 살아간다. 사막 한가운데, 유일한 생존 국가는 악랄한 독재자 임모탄이 지배한다. 그는 식량과 물을 통제하고 시민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킨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시대, 여성 사령관 퓨리오사는 맥스와 함께, 씨앗을 든 여인들을 구출해 전설 속 오아시스를 찾아 떠난다.

영화 속, 인류의 최후는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진 한국 사회를 보는 듯하다. 권력자들은 자기 재산과 권한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고, 약자들은 더 약한 자를 만들려고 투쟁하는 모습이 쏙 빼닮았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가치를 다시 세우려, 안간힘을 쓴다. 그 다급함에 민낯이 드러난다.

한국 사회는 개발독재를 통해 '압축성장'을 했지만, 신자유주의를 통해 성장 신화를 지속하려다가 문제도 압축적으로 일으켰다. 중요한 것은 사람보다 돈이었다. 격차는 심각한 불평등 사회를 키웠다. 한국의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1%를, 상위 10%는 40%가 넘는 소득을 가졌다. 지난해 임시노동자 등 219만 명의 비자발적 실직자가 생겼지만, 소득 7~10분위 상류층은 소득이 증가했다. 자산 격차도 더 커졌다. 작년 순자산 지니계수는 0.6을 넘어섰다. 부동산 투기는 불패 신화를 이어가고, 코스피는 3000을 훌쩍 넘었다.

교육 격차, 의료 격차도 심각해졌다. 올해 지방대는 입시 정시 경쟁률이 기준치를 달성하지 못해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가 심각해도 환자들 생명을 볼모로 의사 파업이 벌어졌다. 서울 강남의 1000명당 의사 수는 10명이 넘지만, 강원도 고성군은 한 명도 채 안 된다. 죽지 않기 위해 수도권에 집을 구하려는 '패닉바잉'이 일어났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매몰된 인간은 무력감과 고독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력한 권위자와 여론에 곧잘 편승한다. 빚을 모아 주식투자에 열 올리고 부동산 막차를 타기 위해 '영끌'을 멈추지 못한다. 대세와 권위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간은 고독이나 불안감에서 회복될 수 있겠지만, 그 대가는 혹독한 자아 상실이다.

▲ "희망 없는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Where must we go,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난다. 결국 희망을 지닌 자가 살아남는다. © unsplash

계속해서 격차를 만들고 서로를 구분 짓는 일을 막지 못한다면, 영화 속 임모탄 제국은 현실에서 재연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통렬하게 성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퓨리오사 일행은 전설 속 오아시스를 찾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조차 사라진 시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퓨리오사와 맥스는 다시 돌아와 임모탄 제국을 무너뜨리고 자기가 있는 곳부터 변화시키겠다고 다짐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김세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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