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중앙일보'와 '한겨레' 보도 비교

새해 벽두를 뜨겁게 달구던 ‘사면론’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지난 4월 중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17년 2월 17일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 부회장은 2018년 2월 5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지만, 지난 1월 18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다시 구속됐다. 재수감 직후에도 ‘이재용 사면론’은 있었다. 이 부회장의 특별사면 및 가석방 국민청원, 부산 기장군수 호소문 등이 있었지만, 한 달 사이 제기된 사면론만큼 크지 않았다.

▲ 4월부터 ‘이재용 사면’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1월 파기환송심이 끝난 지 100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 참석하는 모습이다. ⓒ KBS

언론은 ‘이재용 사면론’을 이끄는 주요 행위자다. 지난 4월 12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 CEO를 백악관 화상회의에 부른 것이 계기가 됐다. 일부 언론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반도체 패권 경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나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어서 이 부회장이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백신 특사론’도 등장했다. 이 부회장에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자는 논리다.

반대편에는 이 부회장 사면을 반대하는 언론이 있다. 사면에 호의적인 언론에 비해 보도량은 적은 반면,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사면론을 비판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을 부른 4월 12일 이후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이재용 사면론’ 관련 보도를 비교했다.

프레임 하나, 이재용 부재는 한국 경제에 악재

<중앙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주로 ‘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재용 부회장 사면이 필요하다는 프레임을 만든다. 이런 논조는 바이든 대통령이 화상으로 진행한 ‘반도체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보도할 때부터 나타난다. 4월 13일 <중앙일보>는 [330억 달러 투자 들고 바이든 만난 ‘T·G·I’…삼성전자는?]에서 삼성전자가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고 설명하며 익명의 업계 관계자를 통해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 <중앙일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부재를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과 연결했다. “반도체가 곧 국가 경쟁력이 된 상황”에서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자의 “곤란한 처지”는 한국 경제의 악재로 이어진다는 논조다. ⓒ 중앙일보

<중앙일보>는 4월 16일 [“이재용 부회장 있을 곳은 경영 일선” 기장군수, 문 대통령에 사면 호소문]과 [손경식 경총 회장 “홍남기 부총리에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가 반도체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 부회장 사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전했다. 기사는 각각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와 5개 경제단체장의 입을 빌려 이 부회장의 부재가 반도체 경쟁력과 한국 경제에 악재라는 프레임을 강화한다.

<한겨레>는 4월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화상회의에 관하여 보도했지만, 내용은 <중앙일보>와 달랐다. 4월 13일 화상회의를 다룬 [바이든, 삼성 등 불러놓고 “우리 경쟁력, 당신들 투자에 달려”], 4월 14일 [미국의 으름장…삼성·SK 반도체 투자 ‘G2 사이 딜레마’] 기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을 부른 배경을 설명하지만, 이 부회장의 부재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패권 경쟁을 이 부회장의 부재와 연결한 <중앙일보> 보도와 차이가 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의 차이는 오규석 군수와 손경식 회장을 보도하는 양상에서도 나타난다. <한겨레>는 오 군수의 사면 건의는 보도하지 않고 손 회장의 건의만 사설에서 언급했다. 4월 19일 사설 [‘반도체 위기론’ 앞세운 ‘이재용 사면론’ 섣부르다]에서 손 회장이 사면론을 공식 제기했다고 언급했지만, 사면론에 반대하는 주장을 담았다. 이 사설은 '손 회장은 간담회 뒤 “다른 경제단체도 (사면 건의를) 지지했다”고 밝혔지만, 대한상의 등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 그런데도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은 경제단체가 사면을 공동 건의한 것처럼 보도했다'며 <중앙일보>의 보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의 보도를 비판했다. ⓒ 한겨레

이 부회장 부재가 반도체 경쟁력과 한국 경제에 악재라는 주장은 ‘이재용 사면론’에서 가장 강한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지난 4일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서 반도체 수급 상황과 코로나19로 인한 불안한 경제 등을 들며 이 부회장의 사면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루 전인 3일에는 사단법인 평택시발전협의회가 “삼성전자가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한데 최고경영자의 수감으로 신속한 투자 결정이 지연되면서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며 이 부회장 사면을 요구했다. <중앙일보>는 두 목소리를 모두 보도하며 ‘이재용 사면론’에 불을 지폈지만, <한겨레>는 보도하지 않았다.

프레임 둘, ‘백신 특사’ 이재용

재벌그룹 총수의 수감과 한국 경제를 엮는 프레임이 전통적인 프레임이라면, 이재용 부회장과 코로나19 백신을 연결하는 프레임은 팬데믹 시대에 등장한 뉴노멀이다. 코로나19 백신 수급 불안에 이 부회장을 사면해 ‘백신 특사’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4월 22일 [이재용 ‘백신 특사론’…“반도체 지렛대로 백신 확보해야”]에서 손경식 회장과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의 말을 전했다. 이들은 이 부회장의 글로벌 인맥 네트워크가 백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4월 25일에는 ["이재용, 백신 특사 맡기자"…재계·종교단체 커지는 '특사론']에서 “코로나19 백신 협상 과정에서도 이 부회장이 조력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보도했다. 홍정익 예방접종기획팀장은 4월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백신 도입을 위한 공식 협상은 정부와 화이자 간 이뤄졌고, 삼성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 <중앙일보>는 익명의 재계 관계자 입을 통해 “이 부회장이 해외 정·관계 유력 인사와 쌓아온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외교안보에서 ‘막후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라고 보도하며 ‘백신 특사’ 프레임에 힘을 실었다. ⓒ 중앙일보

방역 당국의 답변 이후 특사 프레임은 상대적으로 힘을 잃었다. <중앙일보>는 5월 3일 [평택시장 이어 시민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하라"]에서 “삼성전자와 이 부회장이 마스크 원료 공급 등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기여했고 백신 공급과 생산에도 큰 역할이 기대된다”는 평택시발전협의회의 말을 전하는 데 그쳤다. <한겨레>는 특사 프레임을 비판했다. 4월 22일 사설 [백신 확보, 모든 가능성 열어놓고 전방위 대응을]에서 “다만 ‘백신 특사'를 위한 이재용 사면론’ 같은 본질을 벗어난 주장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소모적 논란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백신 특사’ 프레임이 소모적 논란을 키울 수 있다며 비판했다. ⓒ 한겨레

프레임 셋, 반성한 이재용에게 봉사할 기회를

이 부회장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종교계를 중심으로 등장했다. <중앙일보>는 4월 21일 [“이재용 부회장에 다시 기회 줘야” 조계종 26개 교구 주지들 탄원서]를 통해 대한불교 조계종의 목소리를 담았다. 기사는 4월 12일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 25개 교구본사와 군종교구 주지들이 이 부회장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며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회의장, 헌법재판소장, 법무부 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냈다고 전했다. 4월 27일에는 [성균관 “이재용 국가 봉사할 기회 줘야” 사면 청원서]에서 유교 중앙기관 성균관이 이 부회장 사면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 성균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균관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손진우 성균관장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가 뜬다. ⓒ 성균관

기사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중앙일보>는 종교 단체의 목소리를 통해 이 부회장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기사에 실린 탄원서에 의하면 이 부회장은 “참회를 위한 많은 노력을 했고”, 여러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반성했다.” 기사는 “그가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자신의 맹세를 말이 아닌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란다”고 호소하는 내용도 담았다. 

성균관의 목소리를 담은 기사도 유사하다. 기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앞장서서 해결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받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성균관 성명서 내용을 전했다. 

같은 기간 <한겨레>는 조계종의 탄원과 <중앙일보>에서 보도하지 않은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소속 6개 종단 지도자의 사면 청원을 보도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논설위원 논평 콘텐츠 ‘논썰’을 통해 종교계가 이 부회장 사면에 나서는 이유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주지스님들은 왜 ‘이재용 사면’ 탄원서 냈을까]에 출연한 조현 종교전문기자는 삼성 일가가 기증을 약속한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예술품을 조계종에서도 요구했다며 탄원의 순수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한 ‘이재용 사면론’과 남은 질문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취임 4주년 특별연설 후 기자와의 질의응답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해 “충분히 많은 의견을 들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이는 사면에 대해 유보적 입장임을 시사한다. 청와대는 4월 27일 사면을 검토한 바 없고 검토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지난 4일에도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고 답했던 터다.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 사면을 결정한다면 스스로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된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뇌물, 알선수뢰, 알선수재, 배임, 횡령 등 5대 중대 부패 범죄에 대해 사면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징역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사면 제한 대상이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불을 지핀 ‘이재용 사면론’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사면에 반대하는 언론은 사면을 주장하는 이들의 프레임이 허구라고 지적하며 ‘이재용 사면론’을 비판했지만,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다. <한겨레>는 사설과 칼럼을 통해 ‘이재용 사면론’이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 가치인 ‘법 앞의 평등’ 원칙을 훼손”(4월 19일 자 [‘반도체 위기론’ 앞세운 ‘이재용 사면론’ 섣부르다])하는 “전형적인 ’재벌 특별우대론‘”(4월 20일 자 [이재용 특별사면론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던 야당과 보수언론이 ’제왕적 권한‘인 사면을 요구한다는 비판(4월 26일 자 [사면론, 야당과 보수언론의 자가당착])도 있었다. 하지만 경제와 백신이라는 ’민생‘ 프레임을 이기지 못했다.

▲ 각계에서 ‘이재용 사면론’을 주장한다. 이 부회장 사면에 호의적인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빠짐없이 보도하며 ‘이재용 사면론’에 불을 지핀다. 사진은 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 조기 사면 촉구 의령군민 결의대회'가 열리는 모습이다. ⓒ 연합뉴스

남은 건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질문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 없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할까? 이 부회장은 화이자 백신을 확보하는 일에 도움을 주었을까? 이 부회장은 정말 반성을 했을까?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 부회장의 다른 재판을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지난 4월 22일 이 부회장은 ‘삼성 지배권 불법 승계 의혹’ 첫 공판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 측은 이 자리에서 공소사실 전부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질문이 이어진다. 이제 막 재판이 시작된 이 부회장을 지금 사면하는 게 적절할까? 사면된 이 부회장이 재판 결과 징역형을 선고받았을 때 한국 경제가 위기라면, 또다시 이 부회장을 사면해야 할까? 수많은 질문이 프레임 전쟁 속에 지워진다.


편집 : 김정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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