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사고] (하) 비현실적인 사후 처리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은 2011년 3월 11일 지진해일(쓰나미)로 전력공급이 끊기면서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열을 냉각수로 식혀주지 못해 1~3호기에서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났다. 핵연료가 과열되면서 원자로 노심이 녹아 격납용기 밖으로 흘러내린 것이다. 사고 후 일본 정부는 ‘40년 이내에 사고를 수습하고 폐로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 안팎의 원전 전문가들은 이것이 불가능한 계획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와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등에 따르면 수소폭발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 중 2021년 4월 현재 핵연료봉 회수작업이 진전된 것은 노심용융이 일어나지 않은 4호기의 1535개(2014년)뿐이다. 이 외에 원전에 보관했던 사용후핵연료봉 회수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반면 노심용융이 일어난 1~3호기에는 핵연료가 녹아내려 원자로 내부의 다른 금속물질과 결합한 고체연료 파편이 880여 톤(t)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노심용융 1~3호기 원자로 내부 상태 파악 못해

▲ 크레인을 이용해 폐로 준비작업을 진행 중인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모습. 2019년 2월 13일에 촬영됐다. ⓒ 연합뉴스

상황 파악이 어려운 것은 강력한 방사선 때문에 현장에 접근할 수 없어서다. 일본 원자력규제위가 지난해 9월부터 20차례 원전 내부를 조사한 결과, 원자로 격납용기 바로 위의 지름 12미터(m) 두께 60센티미터(cm) 철근콘크리트 덮개 안쪽에서 초고농도의 방사선이 방출되고 있었다. 해당 부분의 세슘량을 측정한 결과 2호기는 최대 4경(경은 1조의 1만 배) 베크렐(Bq), 3호기는 약 3경 베크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방사선량으로 환산할 경우 시간당 10SV(시버트) 전후로, 사람이 노출되면 1시간 안에 숨질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장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 산하 폐로추진회사인 엔디에프(NDF:Nuclear Damage Compensation Facilitation Corporation)는 지난 2018년 10월 발표한 기술전략계획에서 ‘원자로 건물 하층부에서 건식 측면 접근방식으로 연료파편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건식 측면 접근방식은 로봇 팔로 원전 내부의 고체연료 파편을 수집해 제거하는 기술을 말한다.

그러나 그린피스는 지난 3월 4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주년 보고서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 기술 분석>에서 “로봇 팔이 소량의 핵연료 파편을 채취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로봇이 고농도의 방사능에 피폭되면 고장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방사능 동굴’이 되어버린 원자로에서 로봇을 동원해 핵연료 파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계속 발생하는 방사능 오염수 처리도 난제

▲ 지난해 10월 일본 정부가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조사작업 모습. 전문가들이 수소폭발 잔해에서 시료 등을 채취해 내부 오염도를 조사하고 있다. ⓒ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

그린피스 일본사무소와 서울사무소 등의 의뢰로 보고서를 작성한 사토시 사토 전 제너럴일렉트릭(GE) 원자력 기술전문가는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지표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지하수와 빗물이 원전 내부를 관통하면서 발생한다. 또 원자로 내부의 연료 파편을 냉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는 냉각수로 인해 오염수가 생기기도 한다.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는 도쿄전력은 지하수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6년 원자로 주변 지하 20~30m 깊이에 1700여 개의 냉각제 파이프를 묻어 땅을 얼리는 ‘동토벽’을 만들었다. 지하수가 단단하게 얼어붙은 동토벽에 가로막히면 원전 내부로 흘러 들어가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1월 1600리터(L)가량의 냉각제가 유출되며 냉각 기능이 상실되는 등 동토벽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사토 전문가는 지난달 4일 그린피스가 주최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10주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동토벽은 지하수 오염을 방지하기에 역부족”이라며 “원전을 빙 둘러싸고 해자(건물 주변에 깊게 판 구덩이)를 파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로 내부의 핵연료 파편을 냉각수로 식히는 걸 중단하고 공기냉각 방식으로 전환해 더 이상의 오염수 생성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폐로 대신 방사성 폐기물 장기저장시설로”

▲ 지난달 4일 그린피스가 주최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10주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원전 폐로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토시 사토 전 GE 원자력기술 전문가. ⓒ 그린피스

일본 정부는 2019년 12월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폐로·오염수 대책 관계 각료 등 회의’를 열어 폐로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개정했다. 2011년 폐로 지침을 세운 후 5번째 수정이다. 그러나 ‘사고 후 30~40년 안에 폐로를 마친다’는 원안은 유지됐다.

그린피스는 보고서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 1~6호기를 모두 해체할 때 약 150~200만t의 콘크리트 잔해와 철강 부산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매일 처리한다 해도 약 1만 일, 즉 30년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다. 더구나 회수 및 취급이 어려운 기타 방사성 폐기물은 처리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폐로 과정에서 최대 난제는 사용후핵연료의 폐기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인체에 위험을 미치는 기간은 최소 10만 년으로 추정된다.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폐기하려면 10만 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해결책에 접근한 나라는 핀란드, 스웨덴을 비롯한 7개국 정도다.

마이클 매드슨 감독의 2010년 다큐멘터리 영화 <영원한 봉인>을 보면 핀란드는 발트해 인근 올킬루오토라는 섬에 ‘숨겨진 곳’이라는 뜻의 ‘온칼로’ 폐기물 영구처분장을 지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하기로 했다. 온칼로는 폭 5.5m, 높이 6.3m짜리 터널이 지하 455m 깊이까지 이어진 구조물이다. 온칼로의 지층은 18억 년 동안 지각변동 없이 유지된 화강암층이다.

그러나 지진이 잦고 지각이 불안정한 일본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비롯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저장할 곳은 찾기 어렵다. 사토 전문가는 “연료파편을 다 수거한다고 해도 안전한 곳에 저장하려면 긴 대기시간이 발생한다”며 “연료파편회수를 나중으로 미루고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전체를 방사성 폐기물 장기 저장 시설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밀집도’ 국내 원전 역시 안전 우려 심각

우리나라의 동남해안인 부산, 울산, 경주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원전이 밀집한 지역인 동시에 원전 단지 중 최대의 인구밀집지역이다. 원전 단지로부터 반경 30킬로미터(km) 이내에 약 380만 명, 50km 이내에는 약 500만 명이 살고 있다. 원전 반경 30km 내 인구가 약 16만 명이었던 후쿠시마에 비해 밀집도가 약 24배나 된다.

문제는 이렇게 대도시 부근에 밀집한 국내 원전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사고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자료를 보면 2011년 1월 1일부터 2021년 3월 31일까지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고장’은 총 123건이다. 원인별로 보면 계측 결함(제어기 등)이 29건(23.6%)으로 가장 많았고, 기계 결함(22.8%), 외부영향(17.9%), 전기결함(16.3%), 기기 조작 및 정비 활동 중 실수(13.8%) 등이었다.

▲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해변을 따라 늘어선 월성 원전 1~4호기의 모습. ⓒ <단비뉴스>

한국방송(KBS)은 지난 2월 후쿠시마 사고 같은 수소폭발을 막기 위해 국내 원전에 설치한 피동형 수소제거장치(PAR)의 성능이 기준에 미달했다고 보도했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내부보고서에 따르면 PAR의 수소 제거율은 한수원이 구매 당시 요구한 규격의 30~60% 수준에 불과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한수원이 수소제거장치 폭발위험을 알고도 은폐한 의혹이 있다며 지난달 11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또 전남 영광의 한빛원전 4호기는 원자로 핵심 시설인 증기발생기에 균열이 생기고 격납건물 철판이 부식되는 등 부실시공이 드러나 2017년 5월부터 가동을 멈췄다. 한빛 5호기는 핵분열 제어기능과 직결돼 원전 안전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원자로 헤드 관통부에 용접 오류가 드러났다.

원전이 몰려있는 동해안의 잦은 지각변동도 원전 안전에 관한 우려를 높인다. 2016년 9월에는 국내 관측 최대인 5.8 규모의 지진이 경주에서 일어났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경주‧포항 지역에 약 300회의 지진이 발생했다.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박종진 교수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경주·포항 지대 지층은 신생대 제3기층으로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져 다른 지역보다 지반이 약한 상태”라며 “향후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해 원전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원전설계전문가로 일했던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원자력 업계가 원전을 불투명하게 운영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고가 안 나길 막연히 기대하며 대충 운영하다가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안전하게 운영하지 않을 거면 원전을 폐쇄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지난해 원전사고 9년을 맞은 일본 후쿠시마를 현지 조사한 후 ‘심각한 재오염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독일, 벨기에, 일본, 한국 등 다국적 방사선 방호 전문가들로 구성된 그린피스팀은 지난 2019년 10월과 11월 3주에 걸쳐 현지에서 방사선 측정 등 종합적 실태조사를 벌인 후 지난해 3월 ‘2020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의 확산: 기상 영향과 재오염’ 보고서를 발표했다. <단비뉴스>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전문가 인터뷰와 분야별 자료를 보강, 후쿠시마의 오염 실상과 우리의 안전에 미치는 위협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

편집 : 김해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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