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항쟁 연속보도] ① 저항과 학살을 기록한 시민들의 사진 첫 공개

지난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다. 지금까지 700명 이상의 미얀마 시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실상은 알 수가 없다. 미얀마 언론은 군부에 의해 모조리 폐쇄됐다. 해외 언론의 몇몇 기자들이 미얀마에 입국했지만 자유로운 취재가 불가능하다. 제한적 정보만 담은 외신을 받아 전하는 한국 언론의 기사에는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일의 실체가 온전히 담겨져 있지 않다.

<단비뉴스>는 미얀마 시민들이 직접 찍은 기록을 입수해 보도한다. 언론의 취재가 불가능해진 곳에서 미얀마 시민들은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초점이 흐리고 화질은 나쁘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은 미얀마의 70여일에 대한 가장 생생하고 확실한 증거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 청년들이 만든 모임인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의 어느 활동가는 미얀마 사람들끼리 공유한 소셜 미디어의 사진 300여장과 영상 10여 편을 <단비뉴스>에 제공했다. 그 가운데 미얀마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진을 골라 아래에 보도한다.

30여 장의 사진에는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단비뉴스>는 이들 얼굴의 대부분을 모자이크로 가렸다. 첫째, 미얀마 군부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사진을 증거로 민주 항쟁 참여자를 체포하고 있다. 그들의 신원을 보호하려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단비뉴스>는 판단했다. 둘째, 죽은 이와 유족의 존엄을 지키고, 독자의 감정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기 위해 주검의 얼굴과 참혹한 상처를 가렸다.

그럼에도 어떤 사진들은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다. 각별한 주의와 함께 신중하게 기사를 읽어봐 주길 부탁드린다. 참혹한 사진을 보도하는 것은 한국의 광주 민주화 항쟁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군부의 시민 학살을 당시 국내 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훗날, 그리고 세계에 그 사실이 알려진 것은 죽은 이들을 기록한 사진과 영상이 공개된 뒤였다.

2015년 9월 터키 해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차갑고 참혹한 주검 사진이 시리아 내전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단비뉴스>가 전하는 이 사진들이 미얀마의 민주항쟁을 깊이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단비뉴스>는 앞으로도 저널리즘의 윤리와 원칙을 지키면서 미얀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보도를 이어갈 예정이다. 

# [미얀마 민주항쟁 연속보도] 보기

②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 활동가 A씨

③ 6만 미얀마 시민들의 텔레그램 단독 취재 

④ 봄의 혁명 100일 기록

⑤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의 증언

▲지난 4월 4일, 미얀마 최대 도시이자 옛 수도였던 양곤의 청년들은 가면을 쓰고 시위에 나섰다. 이마에 두른 파란색 바탕 그림은 국제연합(UN)을 상징한다. 입을 막은 손에는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가 그려져 있다. 눈에서는 피눈물이 점점이 떨어진다. 뺨에는 피 흘리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SAVE MYANMAR(미얀마를 구하라)’라고 적혀 있다.
군부의 탄압이 본격화하면서 미얀마 국민들은 국제사회에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을 호소했다. 보호책임은 국가가 전쟁범죄, 인종청소, 반인륜범죄, 집단학살 등 4대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뜻하며,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강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미얀마 국민들의 요청대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보호책임’을 발동하려면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영·프·중·러)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미얀마의 민주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유엔 안보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4월 9일 양곤 시민들이 미얀마 전통복장 ‘론지’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는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가 그려진 깃발이나 대학교 학생회 깃발 등을 들었다. 쿠데타로 실각당한 아웅 산 수치 전 국가고문의 얼굴이 그려진 사진이나 쿠데타 이후로 집권한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 

4월 10일 만달레이 대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만달레이는 미얀마의 제2도시로 만달레이 외국어 대학교 등 많은 대학들이 이 곳에 있다. 쿠데타가 터진 직후인 2월 4일 처음 가두시위에 나선 것도 만달레이의 대학생들이다. 군부가 이들을 강경 진압한 뒤부터 본격적인 민주화 항쟁이 시작됐다. 사진 속 학생들은 미얀마 군부 독재를 향한 저항의 상징이 된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행진 중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안전모나 오토바이 헬맷 등을 써서 머리를 가리고 있다. 

만달레이 대학생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토바이는 미얀마나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아주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미얀마 양곤의 경우 오토바이의 도심 진입을 법으로 막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오토바이를 자유롭게 탈 수 있기 때문에 시위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4월 10일 만달레이 대학생 협회 시위대는 체포된 이들의 석방을 탄원하며 군사 독재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이 든 깃발은 대학생 협회를 대표하는 깃발로 전국에서 사용 중이다. 붉은 바탕에 그려진 노란색 새가 원 안에서 날아오르려고 준비하는 듯한 모양이다.

4월 8일 미얀마 서북부에 있는 만달레이 지역의 모곡에서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며 파업했다. 모곡은 세계 최고의 루비 산지로 유명하다. 미얀마 군부의 주된 자금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파업에 동참해 군부의 통치 기반을 흔들고 있다. 지난달에는 미얀마 최대 노조 미얀마노동조합연맹(CTUM)을 포함해 농업, 철도, 식품, 광업 등 18개 노동조합이 총파업 참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4월 5일 세계 최고의 루비 산지인 모곡의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피켓에 쓰인 ‘CRPH(연방의회 대표위원회)’는 아웅 산 수치 전 국가고문이 이끌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소속 정치인들이 중심이 되어 2월 5일 창립한 조직이다. 시사 미얀마 연방의회 대표위원회 유엔 특사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CRPH가 국제 사회에서 미얀마 의회를 대표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이 쿠데타로 집권한 후 구성한 내각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있다. CRPH는 아웅 산 수치가 이끌던 정부의 공식 임기가 만료되는 4월 1일 국민통합정부를 새로 출범시켰다. 한편 군부는 CRPH에 반역죄를 적용했다. 

4월 8일 사가잉 지역의 칸발루 마을에서도 파업을 했다. 미얀마 북서부 사가잉 지역은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20km 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은 수도원의 중심지로 미얀마의 국교인 불교 수도원들이 많이 있다. 사진 속 집회 참여자들의 대부분은 여성인데, 도보 시위 중인 이들도 오토바이 헬맷 등 머리를 보호하는 장구를 착용하고 있다.

4월 4일 미얀마 북동부 샨주(州) 차우크메 타운 사람들이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군경과 대치중이다. 시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나 가구 등을 끌어모아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다. 바리케이드는 군경의 총격을 막아주거나 진압 시 시위대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 군경은 집에 있는 다른 시민들을 강제로 징발해 이런 바리케이드를 일일이 치우도록 만든다.

미얀마 곳곳에서는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군부에 협력하지 않고 파업으로 행정을 중단시키겠다는 공무원들의 시민불복종운동(CDM)은 민주화 항쟁의 열기와 함께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의료진, 은행원, 교사, 철도 엔지니어 등 각계 공무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미얀마 대외경제투자부는 최근 CDM에 참여한 공무원 83명을 해고했다고 발표했다. 

망원경으로 군경의 동태를 관찰하고 있는 한 소년의 사진이다. 미얀마의 국교는 불교이지만 ‘낫(Nat)'이라는 전통 토속신앙의 믿음이 매우 강하다. 미얀마의 수많은 통치자들이 점술가의 말을 신봉해 수도를 옮기거나 기후에 맞지 않는 식물을 전국 곳곳에 심는 등 기행을 벌였다. 미얀마 현지에서는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이 ‘한 나라의 왕이 되려면 저항하는 시민의 머리에 총을 쏴야 한다’는 예언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부분의 시신들이 머리에 실탄을 맞아 사망한 채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소년도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조잡한 안전모를 쓰고 철 대야를 위에 얹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우스울 수도 있는 사진이지만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의 한 활동가는 몹시 가슴 아픈 모습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장비를 갖추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없는 시위대의 열악한 형편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총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데, 너무 어려보이는 소년이 목숨을 걸고 전방에 나선 사실이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고 말했다.

손에 손 잡은 비장한 모습들은 지난 2월 만달레이 거웨이 부두에서 군경들의 강경탄압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사진으로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지워졌다. 
미얀마 군경들은 시위대나 봉사자들이 총상을 입은 사람들을 수습하려고 하면 저격을 통해 방해하고 있다. 그 사이에 골든아워가 지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이들도 있다. 심지어 다수의 구급대원들도 목숨을 잃었다는 제보가 나온다. 시민들은 각종 고문과 체포, 살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저항을 이어나가고 있다.

군경들이 시위대를 쫓고 있는 사진이다. 평화롭게 행진하던 시위대가 군경이 등장하자 다급히 도망치고 있다. 

군경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는 젊은 청년들을 붙잡아 무릎 꿇리고 걷어차고 폭행한다. 이 사진은 영상 스틸 사진으로 원본 영상은 누군가가 자신의 집에 숨어서 몰래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화면이 흔들리고 초점이 잡히지 않지만 군경의 폭력성이나 상황의 긴박함을 잘 전달해주고 있다.

한 젊은 남성의 목을 조르며 끌고 가는 군경들이 막대기로 그의 팔과 다리, 머리 등을 구타하고 있다. 미얀마에서는 약 700여 명 이상이 군경의 폭력으로 사망했다. 부상자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체포된 사람도 수천여 명에 이르며 끌려간 후 생사가 불분명해진 경우도 많다. 

미얀마 따닝나이주 꼬따웅시에서 체포됐다 풀려난 어느 대학생의 사진이다. 사선으로 가로지른 무자비한 구타와 폭력의 흔적이 등에 남아 있다. 

4월 8~9일 미얀마 바고 지역에서 군경의 발포로 최소 82명이 사망했다. 3월 14일 양곤에서 100명이 넘는 시위 참여자가 사망한 이후로 가장 많은 수치다. 군경은 실탄뿐만 아니라 박격포 등 중화기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 날 학살에 사용된 박격포탄이다. 
바고에서 부상당한 이들은 응급치료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군경들이 부상 환자를 치료하는 자원봉사자와 의료진들까지 체포했기 때문이다. 무료로 시위대를 돌보던 의료 전문가들과 보건 인력들이 차례대로 구속되면서 바고 지역은 의료공백 상태에 놓였다. 
미얀마 인권단체 정치범지원연합(AAPP)에 따르면 군경은 바고에서 숨진 사람들의 시신을 가족에게 돌려주는 대가로 12만짯(약 9만6000원)을 요구하고 있다. 흡사 ‘시신 장사’를 하는 행태에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한 병원의 응급실 모습이다. 시위에 참여했다 부상당한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누워 있다. 이들은 휠체어에 실려 구급 이송된 후 간이 침상에 누워 처치를 받는다.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총탄에 맞은 시위자를 지혈하고 있다. 고통에 신음하는 시위자의 모습이 생생하다.

4월 2일 양곤의 밍글라 타웅뉴운 철도병동에 머리 부상으로 사망한 어린 학생의 주검이 놓여 있다.

따닝나이주 베이시에서 고무탄에 맞아 부상을 입은 여대생의 사진이다. 상처를 봉합한 흔적과 머리 뒤쪽에 동그랗게 난 상처가 보인다. 이 사진은 고무탄도 살상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군경이 시위대의 머리와 상체를 향해 발포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미얀마 북동부에 있는 샨 주(州) 주민의 주검이다. 화재가 발생해 불을 끄려고 나서다 군경들에게 잡혀가 사망했다. 약혼자와의 결혼을 앞둔 상황이었다. 군은 그가 소방차에 치여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검에는 이마, 눈두덩, 코, 입술, 광대뼈 등 얼굴 전체에 혈흔과 멍이 들어 있다. 목 아래부터 복부에 이르기까지는 길게 절개하고 다시 꿰맨 자국이 남아 있다. 숨진 이들의 가슴이나 배 부위에 이처럼 길게 봉합한 흔적들이 거듭 발견되면서 미얀마 시민들은 군경들이 시위대 주검에서 장기를 빼내어 밀매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만달레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사가잉 지역, 칼레이 마을에서 4월 7일 오전 5시께 미얀마 군경이 시위대에 마구잡이로 총격을 가해 8명이 사망했다. 당시 시위대는 군경 진입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쌓던 중이었다. 사진은 당시 숨진 이의 주검인데 머리에 총탄을 맞아 사망해 뇌수가 흘러나와 있는 상태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활동가는 “군경의 무차별적인 총격으로 도로 위에 흩어진 시신들을 수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군경이 수습하려는 이들까지 총으로 쏘기 때문에 숨진 이들의 시신이 몇 시간 동안 길거리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가잉 지역, 칼레이 마을. 군경의 포격으로 사망한 이의 옷이 찢어져 있다. 왼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 모습이 보인다. 미얀마에서 붉은 완장은 위험한 상황에서 신체를 보호해주는 부적으로 통한다고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활동가는 설명했다. 

사가잉 지역, 칼레이 마을에서 수습된 주검이다. 귀와 목, 머리와 가슴이 피로 물들어 있다. 

사가잉 지역, 칼레이 마을에서 수습된 주검의 모습이다. 주민들이 주검을 들것 위에 눕히고 붉은색 천을 덮었다. 옷에 핏자국이 묻어 있다. 

미얀마 달라 지역에서 외동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사진이다. 다른 가족이 없어 서로 의지하며 살았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혼자 두고 세상을 떠났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연대’ 활동가는 그가 좋지 않은 형편에도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들을 주워 와 기를 정도로 마음이 착한 아들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천으로 덮었다. 한 손은 아들의 가슴 위에 놓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아들의 생전 사진과 유골함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하염없다. 

4월 2일 양곤의 시내에서 심야 기도회가 열렸다. 민주 항쟁 중 사망한 이들을 기리며 미얀마 민주주의의 회복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모습이다. 

만달레이 주택가의 부서진 유리창들. 실내도 안전하지 않다. 군경이 집 안까지 쫓아와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23일 만달레이에서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던 6살짜리 여자아이가 집까지 쳐들어온 군경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기도 했다.

3월 29일 사진. 카렌주에 거주하는 카렌족 피난민들이 거주 지역을 떠나 숲속으로 피신해 있다. 
미얀마는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버마족을 포함해 135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렌족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이 이번 반군부 투쟁에 동참하면서 버마족 군부의 보복이 이루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3월 27일~30일 카렌주를 공습했다. 전투기를 동원해 진압할만큼 소수민족을 대할 때 훨씬 가혹한 군부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일 카렌민족연합(KNU) 성명에 따르면 이날 공습으로 어린이와 학생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고 학교, 주택, 마을이 불에 타 파괴됐다. 1만 2000명이 음식도 물도 약도 없는 상태로 마을에서 도망쳐 정글에 숨어 있다. 이들은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할 방도조차 없이 굶주림과 폭력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4월 2일을 ‘돌아올 수 없는 영웅들’을 위한 추모의 날로 정했다. 참혹한 상황에서도 미얀마 곳곳의 시민들은 저항의 상징인 세손가락 경례와 추모의 의미인 꽃을 결합한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번 보도를 위해 각 사진의 구체 정보를 확인하는 막바지 단계에서 <단비뉴스>는 ‘유일한 진실 보도의 창구’였던 미얀마인들의 소셜 미디어가 폐쇄당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의 활동가는 4월 14일 <단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은 군인이나 경찰이 시민의 폰을 빼앗아 페이스북에 어떤 글과 사진을 게재했는지 검열하고 있다. 그 사진에 나오는 인물을 추적해 체포하고 고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지의 미얀마인들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게시했거나 공유한 사진과 영상들도 삭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활동으로 인해 미얀마의 가족이 위험에 처할까 두렵다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에도 <단비뉴스>는 미얀마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 제보를 기다린다. 미얀마 군부의 탄압과 검열로 인해 ‘마지막 진실의 기록’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단비뉴스>가 이를 수집하고 보관하여 역사에 남기려 한다. 

또한 미얀마의 민주화 항쟁을 지원하는 모금 운동도 벌이려 한다. ‘행동하는 미얀마 청년 연대’의 활동가는 “군부에 맞서는 시위대,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공무원들, 여러 부상자와 사망자, 집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주민 운동 연대 코코(KOCO)가 미얀마 민주항쟁 지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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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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