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팩트체크주간] 책 <가짜뉴스의 고고학>으로 읽는 팩트체크

시청자미디어재단과 팩트체크넷이 주최한 ‘제1회 팩트체크 주간’의 마지막 날인 8일에는 시청자미디어재단과 YES24가 공동 기획한 북토크가 열렸다. 주제는 ‘책 <가짜뉴스의 고고학>으로 읽는 팩트체크’였다. 북토크에는 <가짜뉴스의 고고학> 저자이자 하버드-MIT-예일 로스쿨 사이버스칼라 워킹그룹 코디네이터인 최은창 박사가 참석했다. 최원석 시청자미디어재단 연구원이 사회를 맡았고,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제작자인 김기화 한국방송(KBS) 기자가 대담자로 나왔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시청자미디어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후 3시부터 약 두 시간 가량 생중계됐다. 

미확인 사실 보도가 허위뉴스 만들어내

최 박사는 언론이 허위정보를 확인 없이 받아 적은 사례들을 소개했다. 1898년 쿠바의 하바나 항에서 미국 전함 메인호가 침몰했다. <뉴욕저널>은 스페인 군대의 공격 탓이라고 보도했고 이로 인해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졌다. 훗날 메인호는 사고로 침몰했을 확률이 높은 걸로 알려졌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했을 때도 언론은 대형 오보를 냈다. 익명의 누군가가 ‘전원생존’했다는 무선전신을 보냈는데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의 여러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 썼기 때문이다. 각각 한국의 천안함 사건 보도와 세월호 사건 보도와 닮은 양상이다. 

▲ 왼쪽부터 김기화 KBS기자, 최은창 박사. 최원석 시청자미디어재단 연구원. ⓒ 시청자미디어재단

최 박사는 침몰사고의 경우 기자들이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보니 작은 실마리를 기정사실화한다고 지적했다. 데스크의 압박과 속보경쟁으로 인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전파를 탄다는 것이다. 최 박사는 “언론이 공익을 위해 보도하며 의도치 않게 허위사실이 섞일 수 있지만, 팩트를 악의적으로 가공해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이 관찰된다”며 두 가지를 딱 잘라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허위정보 재생산 심화

허위정보가 정치 선동을 위해 이용되는 경우는 고대부터 있었다. 최 박사는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사이의 정치 선동을 예로 들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경력이 많고 노련한 안토니우스를 제압하기 위해 이집트 왕 클레오파트라와의 염문설을 퍼뜨리고 안토니우스가 화장을 한다고 소문냈다. 로마 전역에 퍼진 소문은 안토니우스의 실각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확인하기 어려운 허위정보를 퍼뜨려 대중에게 특정 정치인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다. 

최 박사는 특히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허위정보를 걷잡을 수 없이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정보생태계가 다변화하면서 언론사가 의제 설정(게이트키핑) 기능을 독점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허위정보가 진실처럼 퍼지기 쉽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악의적 정치 선동은 이용자들이 정치인 개인을 향한 부정적인 인상을 갖게 만든다. 그는 “언론이 소셜미디어에서 돌아다니는 내용을 무분별하게 기사화해 혐오와 선동을 재생산하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허위정보가 돈이 되는 매커니즘

정치 선동을 위한 허위·조작정보 생성은 경제적 동기를 갖기도 한다. 최 박사는 “유럽의 경우 허위·조작 정보를 통한 여론 선동이 상품화됐다”며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생성하는 가짜뉴스 생산공장(트롤링 공장)까지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 회사들이 한화로 약 3만원 수준의 저렴한 비용에 허위뉴스를 한 편 써줄 정도로 시장이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댓글 부대를 고용해 여론의 향방을 바꾸는 사례도 있지만 마땅히 규제할 방법이 없다.

최 박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정보통신망법이라는 비교적 강한 규제가 있지만 가짜뉴스로 버는 수익이 벌금보다 훨씬 크다”며 “‘우파 코인러’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하는 동력이 된다”고 지적했다. 최 박사가 말한 ‘우파 코인러’란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등 우파를 표방하며 검증되지 않은 미확인 정보를 쏟아내고 수익을 얻는 집단을 의미한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지난해 유튜브 슈퍼챗으로만 약 7억 2500만원의 수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허위·조작정보를 강하게 처벌할 경우 언론의 자유를 축소시키므로 법으로 제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 박사는 법을 통한 규제보다는 플랫폼의 자정노력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며 유튜브의 ‘노란 딱지’를 예로 들었다. ‘노란 딱지’는 유튜브에 올라온 특정 콘텐츠가 광고 게재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구글이 자체적으로 붙이는 노란색 달러 모양의 아이콘이다. 유튜브 콘텐츠에 노란 딱지가 붙으면 수익 창출이 제한된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동시에 돈을 벌려고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개인에게 제동을 거는 효과가 생긴다.

▲ 최은창 박사가 쓴 <가짜뉴스의 고고학>. 최 박사는 2016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허위정보가 세계적 현상이 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가짜뉴스의 고고학>은 예전부터 존재하던 허위·조작 정보가 어떻게 여론을 선동하고 정치와 상업에 영향을 주게 됐는지 고고학적 방식으로 접근해 통시적이고 다각적으로 풀어낸다. ⓒ YES24

나라별 맥락 이해 못하는 다국적 플랫폼의 한계

플랫폼의 자정노력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최 박사는 미얀마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다국적 플랫폼 기업 페이스북은 미얀마 군부의 인터넷 규제가 풀리면서 미얀마에 진입했다. 미얀마에서 페이스북은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네트워크 플랫폼이 됐다. 그러나 미얀마어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는 페이스북 본사의 인력은 1명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미얀마에서 올라오는 뉴스들의 허위성을 파악하지 못해 방치하는 경우가 생긴다. 몇 년 전 군부가 로힝야족의 학살을 선동하고 현재는 시위대에 대한 허위·조작정보를 퍼뜨리고 있는데도 페이스북이 전혀 제재를 가하지 못하는 이유다. 

최 박사는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자체가 모든 나라의 문화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보니 5·18에 대한 가짜 뉴스가 올라와도 규제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다국적 플랫폼 기업들이 각 나라의 문화와 맥락을 이해하며 허위정보를 통제하고 혐오발언을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과학뉴스를 다룰 땐 특히 신중해야

대담 패널로 참가한 김기화 KBS 기자는 “<가짜뉴스의 고고학>이 코로나19 전에 발간됐는데도 과학 뉴스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며 “극히 드문 백신 부작용을 보고도 언론은 과장보도를 하고 대중들은 그걸 믿는 현상은 옛날부터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과학뉴스는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가장 신중히 다뤄져야 한다”며 과학 자체가 불확정적 분야인데 언론이 지나치게 단정적 내용의 보도를 내보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도 과학적 위험성 판단이 어려운 문제인데 언론이 홍보자료를 받아쓰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최 박사는 “장기적 신뢰를 구축하려는 플랫폼이 좋은 평판을 얻고자 노력함으로써 조금씩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한다”며 “변화는 문제를 인식한 순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꾸준한 문제제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제1회 팩트체크 주간’을 맞아 시청자미디어재단과 YES24는 <가짜뉴스의 고고학>외에도 <가짜뉴스의 심리학>, <진실의 흑역사>, <코로나19 가짜뉴스 수사학>, <매체연구회 샘들의 생생한 미디어 이야기> 등 5권의 팩트체크 관련 추천도서를 선정했다. 북토크를 전후해 문화웹진 <월간 채널예스>에 각 도서의 서평과 저자 인터뷰가 게시될 예정이다. 

이날 진행된 북토크는 시청자미디어재단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편집 : 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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